Hunter Academy’s Battle God RAW novel - Chapter (332)
제332화
눈앞에 펼쳐진 믿기 힘든 풍경을 보며 아델라는 아까 전 자신이 읽었던 퀘스트의 문구 내용을 떠올렸다.
[퀘스트: 산드라의 마지막 침공에서 세이덴을 지켜내십시오.] [상세-산드라를 처치하기 전까지 세이덴의 기사단 대부분은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아델라는 신드라가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어떤 작전을 준비했는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해도 산드라의 힘은 쉽사리 대응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전조가 무엇이냐 물으면 산드라는 그저 읊조렸을 뿐이다. 분노에 절은 듯 광기 어린 눈을 했음에도 무감한 목소리로 그저 이렇게 읊조렸을 뿐이다.
[나의 고통 앞에 맹세하노라. 오늘은 규율과 징벌의 날이니 나는 순수의 피로 하여금 ……제약의 달을 불러오리라.]그 한마디로 대낮의 하늘이 바뀌었다. 하늘에는 붉은 달이 떠오르고 푸르른 바다는 비린내 나는 향을 풍기며 진홍색으로 물들었다.
‘이건 환각이 아니야.’
아델라는 동일한 형태의 기술을 가지고 있기에 빠르게 눈치챌 수 있었다. 자신의 [눈의 오페라]처럼 산드라가 펼친 기술은 일종의 결계였다.
‘하지만……. 이 정도의 결계를 구현하려면…….’
마나를 다루는 이에게 결계의 구현이란 상징의 구현이며 마음의 구현이다. 겨울의 마녀가 볼테라에 겨울을 선사했듯, 결계의 시전자는 절대로 자신의 심상과 머나먼 풍경을 구현할 순 없다.
그렇다면 이 피로 물든 풍경은 산드라가 지닌 마음의 구현이자 산드라의 세상이라는 뜻.
위잉-
하늘에 뜬 붉은 달이 서늘한 빛을 내뿜자 산드라는 느릿한 목소리로 운을 뗐다.
– 너희는 모르겠지. 달군 인두로 눈을 지지는 통증보다 잔인한 녀석이 바로 기억이라는 놈이라는 걸.
붉은 달의 힘일까?
산드라의 목소리는 왕국의 내부부터 주변의 바다에 이르기까지 세이덴의 모든 곳에 울려 퍼졌다.
– 조금이라도 적막이 감돌 때면 잊지 말라는 듯 가장 끔찍한 순간을 상기시켜주곤 하지.
얼마나 기다린 달콤한 복수의 순간이던가.
– 기뻐해라. 이 붉은 달 아래에서 너희들은 나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될 테니.
공포. 분노. 슬픔.
산드라가 말한 대로 그녀가 느꼈던 복잡한 감정들이 주변으로 퍼지기 시작하며 4급 이상의 힘을 가진 소수의 기사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좀비처럼 울부짖으며 광기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산드라가 20년에 걸친 시간 동안 쌓아왔던 감정을 일순간에 느끼며 그야말로 지옥도가 구현된 것이다.
적과 아군 할 것 없이 광기에 잠긴 전장 속에서 아델라는 눈을 감았다.
‘……바뀐 건 없어. 처음부터 내가 할 일은 하나였으니까.’
아델라는 지켜내야 했다. 아니 정확히는 전선을 유지하며 신유성과 동료들이 산드라를 처리할 시간을 끌어야 했다.
저벅저벅-
이전의 아델라에게 전투란 스스로가 살아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했다. 전투의 박동밖에 느끼지 못하는 무감한 가슴은 강한 자극만을 좇았다.
그러나 이젠 달랐다.
아델라는 감정을 느꼈다. 슬픔을 알았으며, 기쁨을 알았고, 소중한 것이 있었다. 이제 아델라는 혼자 모든 걸 짊어질 필요가 없었다.
‘동료를 믿는 것.’
아델라는 신유성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세이덴의 개들을 죽여 버려라!”
“모두 돌격! 우리 뒤엔 산드라 님이 계신다!”
전장을 가득 채운 용병들이 병기를 들고 광기 어린 돌격을 해왔지만 아델라는 작은 동요조차 하지 않았다.
“눈의 오페라.”
그저 한쪽 손을 뻗으며 차가운 볼테라의 겨울과 너무나 따뜻한 아늑한 보금자리를 떠올리며 작게 읊조릴 뿐이었다.
“Overtura(서곡).”
물안개처럼 아름답게 일어난 눈보라가 기사단의 주변을 맴돌았다. 자그마한 얼음 입자들은 이리저리 교차하며 아델라를 따르는 단원들의 무기에 냉기를 불어넣었다.
“저는 이 전선을 지키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모두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산드라가 이끄는 대군을 상대로 아델라가 가진 병력은 소수의 기사와 여성으로 이루어진 직속부대 정도였다. 아델라가 그들에게 힘을 나눠준 건 혼자만의 무대가 아니라는 걸 인정했다는 뜻.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자들은 무기를 드십시오. 당신들이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걸 스스로 지켜내십시오.”
말을 마친 아델라가 레이오나에게 하사 받은 검을 치켜들자 단원들은 함성을 지르며 무기를 치켜들었다.
* * *
비록 겉모습은 달라졌으나 흑룡포를 입고 머리를 묶은 신유성의 태세는 전심전력을 상징했다.
‘산드라가 있는 곳까지 길을 뚫으려면 대략 1천 명. 그 주위를 지키고 있는 건 백 명 정도군.’
단신으로 적진을 향해 전진하는 신유성의 모습은 대부분의 헌터가 무모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정거리가 긴 무기, 엄청난 숫자의 병력.
대군이 맞부딪히는 전쟁에서 맨몸의 무투가는 가장 취약한 포지션이라는 게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는 상식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건 상식에 불과했다.
전쟁도 전투도 모두 상대적이다. 압도적인 힘 앞에서 일반적인 상식은 새로 쓰이기 마련이었다.
‘가령…….’
신유성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불꽃 세례를 보았다. 마법사들의 파이어볼과 궁병들의 불화살이 뒤섞인 장거리 공격은 근접전을 중시하는 무투가에게 가장 효과적인 공격이었다.
그러나 상대보다 한참을 상회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랐다.
스윽-!
신유성이 한쪽 팔과 다리로 반원을 그으며 깔끔하게 회전하자 파동에 맞은 불세례는 우산에 닿은 빗물처럼 힘을 잃고 옆으로 흘러버렸다.
‘원거리 공격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힘은 약해진다. 이렇게 가벼운 동작으로도 상쇄할 수 있지.’
그렇다고 상대가 숫자를 믿고 근접전을 시도한다면 그건 우스운 일이었다. 무투가의 힘은 근접전에서 빛을 발한다.
“상대는 한 명이다! 겁먹지 말고 에워싸라!”
“그래! 방패를 앞세워 진형을 지켜라-!”
상식을 벗어난 힘의 차이 앞에서 상식을 앞세운 이상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이 정도의 실력이라면 근접전에서 숫자는 의미가 없어.’
신유성은 예리한 칼날을 한끝 차이로 피하며 상대에게 주먹을 질러 넣었다. 진형을 갖춘 창병들의 공격은 신유성이 뒤로 물러남으로 아슬아슬 하게 닿지 못했다.
반면 신유성은 움직임마다 상대의 갑옷을 일그러트리고 정신을 잃도록 마나의 흐름을 끊어 놓으며 계속해서 전진해나갔다.
“뭐하는 거냐! 겨우 한 명에게 전선이 무너졌잖아!”
이제 와서 이상함을 감지했어도 흐름을 바꿀 방법은 없었다.
‘아무리 많은 숫자의 병력을 가지고 있어도 직접적으로 나와 맞부딪히는 건 기껏해야 10명.’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데미지를 주지 못하면 의미는 없었다. 집중력이 흩어지고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다면 이야기가 달랐지만 상대는 신유성이었다.
그는 집중력의 힘으로 정갈한 호흡을 유지하며 간결한 동작만으로 상대를 눕히고 있었다.
추풍낙엽.
아무리 신유성에게 공격을 퍼부어도 용병들은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스러져갔다.
‘칼의 경우는 팔의 움직임을 보는 게 훨씬 빨라.’
하나.
‘창은 길지만 좁다. 서로 공격 범위를 보완해주지 못하도록 정면이 아닌 측면을 공략해야 한다.’
둘.
‘용병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뒤엉키면 궁병들의 사격이 멈추는 군. 동료를 의식한 건가.’
셋.
‘전쟁에 참가한 용병들은 대부분의 무기가 통일 되어 있다. 공격의 거리가 일정해.’
넷.
신유성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용병들을 무자비하게 쓰러트리며 전투의 감각을 빠르게 습득해나갔다.
아무리 토끼가 많이 모여도 호랑이를 이길 순 없듯, 압도적인 힘 앞에서 병력의 숫자는 의미가 없었다. 신유성은 자신의 손으로 길을 뚫으며 끝없이 전진해나갔다.
“답답한 녀석들! 당장 비켜! 겨우 한 명을 상대로!”
참지 못한 대장급이 직접 나서도 결과는 같았다.
투신류 월영보법(月影步法)
잔상을 남기며 신유성의 인영이 사라지자 주변의 용병들은 전부 정신을 잃었다. 깜박임과 같은 짧은 찰나에 신유성은 순식간에 마나의 맥을 끊어 놓았다.
‘앞으로 몇 명이지?’
신유성은 산처럼 쌓인 용병들의 위에서 다시 산드라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괴, 괴물…….”
“어이! 이야기가 다르잖아! 세이덴에 이런 녀석이 있다곤 말 안했잖아!”
“이건 타산이 안 맞아……. 개죽음을 당하고 싶진 않다고!”
용병들은 사기가 바닥을 친 탓인지 전쟁터를 이탈하기 시작했고 신유성의 주위는 빠른 숫자로 적이 줄어들었다.
더 이상의 소모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전쟁터에서 신유성과 유의미한 전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 밖에 없었다.
20층의 공략이 시작된 순간부터 신유성의 적이 될 수 있었던 건 오직 보스인 산드라뿐. 단신으로 전선을 뚫는 신유성의 믿을 수 없는 대활약에 산드라는 그 사실을 직감한 모양이었다.
“……믿을 수 없군.”
하지만 그 이전에 산드라는 궁금한 게 있었다. 세이덴의 대응이 이토록 빨랐던 건 분명 신유성 때문.
그렇다면 신유성은 어떻게 정보를 빼냈을까? 산드라는 제약의 눈을 통해 신유성의 말이 거짓인지 테스트했으며 욕탕에서 자신과 관련된 기억을 지웠다.
“비범한 줄은 알았다만. 이런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니. ……대체 언제부터 나를 속였지?”
그렇다면 신유성은 어떻게 정보를 빼돌릴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 정보를 손쉽게 전달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궁금증은 길지 않았다. 산드라는 금방 에이미의 얼굴과, 신유성과 나누었던 대화들이 떠올랐다.
달이 밝던 밤.
“처음부터입니다. 저는 전쟁을 막기 위해서 왔으니까요.”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이미 벌어진 일은 돌이킬 순 없다는 걸.”
이미 산드라에게 벌어진 과거를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산드라는 이 전쟁을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게 복수의 성질이었다.
어떤 희생자를 낳든 불씨가 꺼지지 않는 한 스스로 멈출 수는 없었다.
“……참으로 슬픈 일이군.”
산드라는 믿었다.
아무리 강하다 하여도 이 붉은 달이 떠오른 세상에서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없다고.
산드라는 패배를 염두에 두지 않았기에 너무나 슬픈 얼굴로 신유성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난 널 죽이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