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cademy’s Battle God RAW novel - Chapter (434)
제434화
방학 숙제는 학생들의 무덤이다.
게으른 학생들이 모범생을 절대 따라올 수 없는 영역이며 특히 겨울 방학은 필기시험의 실력을 교수에게 증명하는 기간이었다.
1. 국어: 전국 연합고사 4개년 문제 풀이
2. 언어: 던전 상형문자 연도 측정법 3개 이상 정리하기
3. 수학: 파일로 첨부된 마나함수 및 아티팩트 출력 측정법 문제 풀어오기
4. 사회·문화: 게이트 피해로 개인 부지(敷地)를 폐쇄했을 시 토지법에 의거해…….
스미레는 목차를 읽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픈 소해정의 숙제를 하루 만에 다 끝냈다. 아카데미에서 가장 빠른 기록이었다.
“윽, 끄, 끝났다…….”
역시 같은 방학 숙제도 소해정 교수가 내면 급이 달랐다. 스미레의 경우는 머리가 좋아 일찍 처리해서 다행이지 성적이 나쁜 학생들은 방학 내내 숙제와 씨름하는 경우도 있었다.
“……우읏!”
스미레는 뻐근한 몸을 풀기 위해 쭈욱- 기지개를 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스미레는 거실로 나갔다. 부실이 아닌, 세븐 넘버의 개인 기숙사였지만 거실엔 스미레 혼자가 아니었다. 잠잘 시간이 한참 넘었음에도 TV에 열중한 벨벳과 오르카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벨벳~ 어서 잘 시간이에요~”
불렀지만 벨벳은 여전히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신난 듯 몸을 흔들고 있었다.
“캬항! 스미레 엄마 저기 봐! 아빠야!”
스미레는 그제야 TV를 보았다. 대서특필이라도 되었는지 긴급 뉴스에선 신유성의 사진을 띄워두고 여성 앵커와 나이 든 해설가가 논평을 하고 있었다.
– 던전 난이도를 2번이나 관측에 실패한 건 국내에선 이번이 처음인데요. 측정 기관을 믿을 수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이 들리고 있습니다!
– 국외를 통틀어도 몇 없는 사건입니다만 이번처럼 7급 게이트의 경우는 몇몇 케이스가 있긴 했습니다. 보스가 마나 측정에 간섭할 힘을 가지고 있는 경우지요.
갑자기 7급 던전을 언급하는 해설가의 말에 스미레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도 그럴게 7급 던전이라니?
이번에 신유성은 테스트를 위한 5급 던전을 공략하러 간다고 했다.
“에…… 에엣!? 7, 7급!?”
“정말 대다네…… 인터넷에도 티비에도 아빠 이야기뿐이야! 포켓에 아빠 사진이 잔뜩 이써!”
놀란 스미레는 황급히 포켓으로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신유성! 7급 던전 공략 성공!] [6급 헌터 유라 의식불명! 메트로 시티로 이송 중.] [현재 전문가들은 보스의 이름을 악신 모티스로 추정…….]다리에 힘이 풀린 스미레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버렸다. 신유성이 7급 게이트를 공략했다는 사실은 정말이었다.
“7, 7급…….”
공략대를 꾸려도 위험한 7급 게이트를 신유성은 겨우 2명이서 간 것이다.
– 메트로 시티와 볼튼 사거리에 인접한 곳에 있던 델타 타워는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 중 한 곳인데요. 공략에 실패했다면 보스로 인한 피해가 만만치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 델타 타워에 인접한 1킬로미터 반경엔 재앙이 닥쳤다고 봐야겠지요. 도시의 인구밀집도가 높아 최근 7급 보스가 출몰했던 볼테라보다도 피해가 컸을 것으로 보입니다.
– 사상자 없이 공략에 성공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의식불명이 된 유라 헌터님께서 빠른 시일 내에 회복되길 기원하겠습니다.
6급 헌터 2명이서 7급 게이트를 공략했다는 소식은 해외에 대서특필 되는 건 물론이고 국내 모든 방송을 점령했다.
그중에는 긴급 파견을 나간 강유찬이 모든 일을 해결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여론은 신유성과 유라의 편이었다.
6급 헌터 둘이서 7급 게이트를 공략에 성공한 사례가 이번이 처음인 만큼 특별 승급을 시켜야 하는 게 아닌지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역시 아빠는 대다내! 벨벳도 아빠처럼 강해지꺼야! 근데 건강한 몸을 가지려면 일찍 자야 해!”
“백번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작은 주인님!”
벨벳은 종종걸음으로 스미레의 방에 들어갔고 오르카는 어디서 났는지 이불을 챙기고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이, 이게 무슨…….’
스미레는 정신이 나간 얼굴로 멍하니 TV를 보더니 이내 신유성에게 통화를 걸었다.
뚜르- 뚜르- 뚜르르- 턱!
길고 짧은 3번의 신호음 뒤에 신유성이 통화를 받았다. 포켓 너머에선 기자들의 시끄러운 질문 공세가 들려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였는지 귀가 아플 정도였다.
– 스미레?
하지만 스미레는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에도 신유성의 목소리를 구분할 수 있었다.
신유성의 목소리를 듣자 밀려오는 건 벅찰 정도의 안도감.
“유, 유성 씨이…… 정말 다행이에요오…….”
최근 당당했던 스미레는 마치 처음 만났던 그 날처럼 울보로 돌아갔다. 덕분에 당황한 건 신유성도 마찬가지였다.
– 스, 스미레 우는 거야?
“죄송해요……. 유성 씨가 더 놀랐을 텐데…….”
스미레는 훌쩍이며 눈물을 닦았다. 이제 막 숙제를 마친 순간 갑자기 상상도 못 한 날벼락을 맞았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 괜찮아. 스미레가 알려준 공략 덕분에 하나도 안 다쳤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어.
“훌쩍, 그건, 거짓말이에요…….”
스미레는 그런 위로에 속아버릴 바보가 아니었다. 기껏해야 밴시 공략법 정도가 7급 던전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이번 생환은 정말 신유성의 실력과 천운이 겹쳐 만든 기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강유찬이 등장해주지 않았다면 정말 목숨이 위험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 ……그래도 스미레. 내가 다치지 않았다는 건 정말 사실이야. 아, 근데 지금은 통화를 할 수가 없어서…….
신유성은 병원에 있는 터라 어쩔 수 없이 통화를 끊었다. 치료를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었다.
신유성이 진료를 받고 있다면 당연히 이쪽에서 찾아 가는 게 인지상정.
‘금방 갈게요! 유성 씨!’
소매로 눈물을 훔친 스미레는 겉옷조차 안 챙긴 채 밖으로 나갔다. 스미레는 무작정 메트로 병원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 * *
침대에 누운 김은아는 신유성에게 메시지를 보낼까, 말까, 백번을 넘게 고민했다.
‘지금쯤이면…… 자고 있겠지? 걘 새벽에도 일어나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괜히 연락을 해서 잠을 깨우고 싶진 않았다. 이젠 당분간은 각자의 길이 있으니까 지금은 약간의 거리감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 참자.’
김은아는 오늘만 해도 얼마나 바쁜지 연락 한 번 할 시간이 없다는 사실이 야속했다. 물론 바쁜 건 신유성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오늘만 해도 신유성이 5급 게이트를 공략하러 갔다는 소식을 오빠한테 들었다.
게이트를 공략하러 가서 태평하게 전화나 하는 건 안 될 노릇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이라는 건 이성만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자는지 확인해볼까?’
슥- 스슥-
참아야 한다는 김은아의 생각과 다르게 이미 손가락은 메시지를 적고 있었다.
[유성아, 자니?]그러나 이건 좀 구차해 보였다.
괜히 떠 보는 거 같아 묘하게 비굴해 보이기도 하고 김은아의 스타일과 맞지 않았다.
‘이건 아니야.’
김은아는 지우기 버튼을 연타했다. 지금 김은아는 너무 가볍지 않으면서도 가벼운 느낌을 원했다.
[뭐하냐?]이번에도 김은아는 지우기 버튼을 연타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가벼웠다.
[우리, 통화할까?]이번에도 틀린 거 같았다. 잠이 들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밤인데 너무 질척거리는 느낌. 이대로 계속 고민만 한다면 새벽 내내 계속 메시지만 썼다. 지웠다. 를 반복하지 않을까?
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띠링!
“뭐야 갑자기?”
[특급]델타 타워 주변 지역 이동 봉쇄 결정아주 특별한 상황에서만 위험 관리국에서 보낸다는 특급 메시지에 김은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델타 타워라면…….”
심지어 델타 타워는 신유성이 공략을 간 장소. 결국 김은아가 홀린 듯 특급 메시지를 확인했다.
1초.
2초.
3초.
“어? 어, 어어!?”
메시지를 읽은 김은아가 현실을 받아들이는데 걸린 시간은 단 3초였다. 5급인 줄 알았던 게이트가 사실 7급이었다니?
심지어 김은아의 오빠가 입원했던 메트로 병원에 신유성이 이송되고 있다니?
벌떡!
침대에서 일어난 김은아는 당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자마 차림으로 통화부터 걸며 아무런 옷이나 일단 걸쳤다.
– 네, 아가씨. 전화 받았습니다.
“저택 입구에 당장 차, 대기 시켜줘!”
이수현이 전화를 받자마자 김은아는 다급하게 자동차를 준비하라며 명령을 내렸다. 저택에는 항상 개인 기사가 대기하고 있고, 유사시에는 이수현이 운전을 할 수 있으니 문제는 없었다.
– 아! 네! 당장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넓은 저택은 이럴 때만큼은 불편했다. 복도도 길고 거창한 중앙 계단까지 있으니 헐레벌떡 달려도 입구까진 너무 멀었다.
“아가씨! 여기입니다!”
이수현은 손을 흔들었다. 아무래도 김은아가 옷을 챙기는 동안 발 빠르게 차를 대기시켜 놓은 모양이었다.
턱!
김은아는 얼마나 급한 건지 리무진에 타자마자 출발하라는 손짓을 했다.
“메트로 병원으로 출발해! 빨리!”
“잠깐만 은아야!”
하지만 김은아 못지않게 황급히 저택에서 뛰쳐나온 김준혁은 리무진을 불러 세웠다.
그리곤 당연한 듯 리무진에 타며 도리어 목적지를 외쳤다.
“메트로 병원으로 가주세요!”
“아니 오빠는 왜!?”
김은아는 어이없어했지만 김준혁도 느긋하게 설명이나 체면을 차릴 때가 아니었다.
“헉 나도, 나도…… 만날 사람이 있어!”
김준혁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예전에는 잘나가는 헌터였지만 2년 가까이 침대에 누워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더니, 몸의 근육이 전부 없어져 이젠 일반인보다 기초체력이 낮은 병약한 남자였다.
김은아가 지금 메트로 병원에 신유성을 만나러 간다면 김준혁에겐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유라야…….’
입술을 지그시 물며 걱정 가득한 얼굴로 아련하게 창가를 바라보는 김준혁.
‘……유성아.’
마찬가지로 걱정 가득한 얼굴로 신유성을 걱정하는 김은아의 모습.
‘어떻게 둘이 똑같네.’
이수현은 너무나 닮은 둘을 보며 그만 흐뭇하게 웃고 말았다. 역시 피는 못 속이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