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1
헌터와 매드 사이언티스트 ( 델마르 )
1화
히든 에피소드가 풀리면서 맵에 새로운 건물이 나타났다.
[에이번데일 백작의 저택]정확히 말하자면, 원래도 있었으나 들어갈 수는 없었던 곳이었다. 상류층의 주거 지구인 어퍼 레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상당한 규모의 저택.
“어어, 여기가 열릴 줄은 몰랐는데?”
저택은 좀 삭막하게 생겼다. 아름다운 분수나 이국의 수목이 만발한 정원도 없고, 사람이 사는 흔적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에이번데일 백작 저택은 기본적으로…… 폐가니까.’
가상 현실 게임 ‘황금 발톱’ 내의 설정은 이렇다.
히든 에피소드 ‘에이번데일 백작의 비밀’은 신문팔이 소년 잭이 에이번데일 백작 저택의 소문을 담은 쪽지를 보내는 것으로 시작했다.
사교계 명사들의 저택부터 뒷골목까지 두루 다니며 온갖 소문을 다 알고 있는 잭은, 어퍼 레인에서도 끄트머리에 있는 한적한 저택이 ‘귀신들린 저택’이라고 했다. 새벽에 그 저택 주변을 지나다 보면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고. 꾸깃꾸깃한 쪽지 귀퉁이에 작은 글씨로 아무에게도 말해 주지 않은 진짜 비밀 정보라고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으며.
던전에서 몬스터를 죽이는 것이 게임 콘텐츠의 80%를 차지하는 ‘황금 발톱’에 느닷없이 귀신이 튀어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기껏 해 봐야 12년 전 죽었다는 에이번데일 백작이 숨겨 둔 아이템 같은 게 있겠지. 아니면 이상한 소리를 내는 몬스터나.
폐가까지 데려와 놓고 좋은 아이템도 안 나오면 개발사를 가만두지 않을 테다.
괜찮은 아이템을 얻고 나면 그걸 활용해서 더 큰 음모, 더 어려워진 던전, 더 강해진 몬스터들과 싸워야 한다. 그리고 그 몬스터들을 해치워 얻은 부산물을 마도 공학자들에게 맡겨서 좋은 장비로 재탄생시키고 또 그 장비를 들고 던전을 깨러 가고. 게임은 그 패턴의 반복이었다.
‘황금 발톱’은 19세기 런던을 모티브로 한 스팀펑크 세계관에 느닷없이 나타나는 던전과 몬스터를 물리치는 헌터(플레이어)들의 이야기이니까.
‘이런 제국주의 도시 따위 없어져도 그만이지만.’
하지만 게임에서 이기려면 도시를 지켜 줘야 하니 어쩔 수 없다. 식민지 경영으로 얻은 돈과 발전된 마도 문명으로 좋은 아이템이나 떨궈 주길 바라야지.
기껏 스토리를 다 깼더니 가챠 박스나 던져 주면…… 고인물의 탈주가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 줄 테다.
[에이번데일 백작의 저택] 문 앞에 서자 알림 창이 떴다.망설임 없이 입장했다. 끼이익. 10년은 기름칠을 안 한 듯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대문이 열렸다. 스산한 배경 음악이 들리는 기분이었다. 망가진 오르골 소리와 심장 박동을 따라 조금씩 빨라지는 타악기 소리가 섞인 그런 것. 그리고 적당한 때에 까악! 하는 까마귀 울음.
잡초가 길을 다 덮은 정원을 가로질러 먼지 쌓인 현관에 도착했다. 헌터용 장갑을 낀 손으로 문고리를 비틀었다. 당연히 잠겨 있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가져온 게 있지.”
이 게임을 하면서 빈집을 뚫어 본 게 어디 한두 번 일도 아니고. ‘황금 발톱’의 유저라면 인벤토리에 꼭 가지고 다니는 게 일회용 철사였다. 열쇠 구멍에 철사를 집어넣고 깔짝거리자 달칵, 달칵, 하는 소리가 났다.
물론 일반적인 마도 공학자의 집이라면 대문 열쇠 구멍에 철사를 집어넣는 순간 온 집안에 쩌렁쩌렁하도록 소리가 울리는 장치 같은 것을 해 놓았겠으나.
“…….”
역시 아무것도 없지. 이 집 주인이 죽은 지 12년이 지났는데. 12년이면 건전지도 닳겠다.
에이번데일 백작이 뭐 때문에 죽었다고 했더라? 신문팔이 잭이 가져다준 정보를 쭉 훑었었는데,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뭐, 중요한 건 아니니까.
“열렸다.”
죽은 백작이 보면 통탄할 일이기는 했다. 웬 외부인이 집을 통째로 털어먹게 생겼으니. 아니지, 이렇게 허술한데 지금까지 안 털린 걸 고맙게 생각해야지.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은 문이 제법 무거웠다. 문을 밀어 열고 홀 안으로 들어갔다.
쿵.
등 뒤에서 문이 닫혔다. 마치 세상과 단절시키는 듯한 소리 때문일까, 공기부터 아까와는 달라진 것 같았다.
저택은 평범한 귀족 저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인인 에이번데일 백작이 그렇게 괴짜라더니 별로 그런 티는 나지 않았다. 조각품이나 도자기 같은 것을 전시해 놓은 홀 끝에 양쪽으로 퍼지는 계단이 있다. 기괴한 동물 박제라도 있을 줄 알았더니, 그런 쪽의 괴짜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맵을 켜 보았지만 저택 내부 구조는 전부 새까만 칠이 되어 있다. 직접 하나하나 들어가 보기 전에는 맵을 열어주지 않는 구조였다. 마치 던전처럼.
이럴 땐 어디부터 가 봐야 할까?
귀족의 성이나 저택의 구조는 거기가 거기다. 이미 구조가 훤히 뚫려 있는 왕성을 참고하자!
[맵: 왕성]왕성의 맵을 켰다.
방이 너무 많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저택에 방이 이렇게 많을 것 같지는 않다.
저번에 털었던 험프리 경의 저택을 참고하는 게 낫겠다. 다시 맵을 켜서 어퍼 레인 한가운데 있는 험프리 경의 저택을 눌렀다.
[맵: 험프리 하우스]흠. 이제야 좀 비슷하다. 어디부터 가 봐야 할까. 어차피 전부 다 열어 볼 거지만.
정보를 얻으려면 서재가 가장 좋겠지. 우수한 마도 공학자라면 서재에 유용한 정보를 꽤 많이 채워 놓았을 것이다.
험프리 하우스의 구조를 참고해 층계를 올라갔다. 3층에서 가장 빛이 잘 들어오는 곳. 서재로 삼기엔 딱 적당한 자리. 손잡이를 돌려보자 아니나 다를까, 잠겨 있었다.
[인벤토리]철사를 꺼냈다. 철사는 이제 157개 남아 있었다.
‘왠지 좀 아깝다. 저택에 들어오기 전에 철물점을 들를걸.’
999개를 채워 두지 않으면 마음이 안 놓이는 강박증의 소유자가 생각했다.
문이 열렸다. 새하얀 햇빛이 들어오는 큰 창문. 그 앞의 책상. 책상 위의 알 수 없는 기구들과 작은 조명. 그리고 사면이 전부 책장으로 둘러싸인 공간.
‘천장이 뚫려 있네.’
이 방만 그런 것인지, 천장이 뚫린 채 2층까지 전부 책장이었다. 책장마다 책이 가득가득 꽂혀 있었다. 천장에서 내려온 샹들리에가 화려하게 반짝였다. 잠깐만.
“샹들리에?”
현관문 경보 장치도 망가진 저택에 샹들리에가 멀쩡히 빛을 낸다는 게 말이나 되나?
뭔가 좀 잘못된 것 같은데. 혹시 이 성에 아직 누가 살고 있다는 설정인가? 늙은 집사나, 어린 하인이나. 뻔하지만 보통은 그런 설정이니까.
서재 안쪽으로 한 발짝 더 내딛는 걸음은 아까와 달리 조심스러웠다. 카펫 위로, 소리도 없이. 그리고 서재 안쪽의 공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누구세요?”
“그건…… 내가 할 말 아닌가?”
한 팔에 책 두 권을 끼우고 느슨하게 묶은 금발을 늘어뜨린 남자가 서 있었다. 노동 계급에서 백만 광년쯤 떨어진 흰 얼굴은 물망초처럼 청초하고 우아했다. 그런데 한 겹뿐인 셔츠 아래 체격은 겉보기에도 탄탄했다.
‘취향에 맞는 미남을 넣어 주는…… 인큐버스 던전인가?’
이 저택은 폐가일 뿐, 던전은 아니었다. 던전이었다면 알람이 왔겠지. 하지만 지금은 폐가조차 아닌 것 같으니 문제였다. 잭의 정보가 거짓말이었단 말인가?
대답이 없자 남자는 책장에 기대 비뚤게 웃으며 다시 물었다.
“누구시길래 내 저택에 소리 소문 없이 들어오셨는지?”
아니. 머리를 잘 굴려 보자. 분명 폐가였다. 경보 장치도 먹통이었고, 정원도 엉망이었고. 그리고 잭은 절대 잘못된 정보를 주지 않는다.
‘사실은 이런 뒷설정이 있었답니다!’ 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건 스토리 끝에 가서 밝혀져야 되는 거고. 폐가랬는데 멀쩡히 사람이 살고 있는 경우는 없었다!
“저는 헌터인데요.”
“사냥꾼? 그럼 숲으로 가셔야지.”
“몬스터 잡는 헌터요!”
남자는 트레이에 책을 내려놓았다. 무기를 꺼내야 하는 타이밍인가?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자세를 갖추고 무기를 꺼낼 준비를 마쳤다. 한 발짝만 더 오면…….
인벤토리를 더듬던 손에 긴 장총이 잡혔다. 처음으로 손에 익도록 다루었던 무기였고, 다른 무기를 쓰기 시작한 이후에도 이 장총은 몸의 일부인 것처럼 다룰 수 있었다.
“날 죽이러 온 것치곤 처신이 허술하고, 뭘 훔치러 왔다기엔 당당하고.”
멀지 않은 거리에서 턱을 매만지며 위아래로 고개를 까닥인 남자가 빙그레 웃었다.
“이름이?”
“……에스페란사.”
“좋은 이름이군요. 에스페란사, 자리에 앉아요. 그 무식하게 큰 무기도 내려놓고. 처음 보는 형태의 총인데, 관심이 생겼으니까.”
말투가 정중하지 않은 존대로 바뀌었다. 그리고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내 눌렀다. 잠시 후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백작님, 부르셨습니까?”
“예상치 못한 손님을 맞이하게 됐어. 차를 내오도록 해. 티 푸드는…….”
빈틈없이 장갑을 끼고 있는 손을 확인한 남자가 덧붙였다.
“간단하게 집어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예, 백작님. 그런데 저 숙녀분은……?”
“그건 앞으로 알아볼 생각이야. 밀런, 차를 가져올 때 내 스티뮬러를 잊지 마.”
시종으로 보이는 밀런이란 남자는 상황에 대한 의문 한 번 표하지 않고 문을 닫았다.
“하인이 있어……?”
뒤늦게 묻는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백번 양보해 폐가에 사람이 살 수는 있다. 내부가 이렇게 멀쩡한 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하인까지 갖춰 놓고 살 수는 없다.
“폐가라며……. 아니, 분명 폐가였는데.”
“에이번데일 저택이 폐가?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이 저택은 지난 150년 동안 한 번도 주인이 없었던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그렇지만 12년 동안 비어 있었잖아요……. 현관 경보 장치도 없고, 정원에 풀도 수북하고!”
“어제 제초 작업을 한 정원사가 들으면 슬퍼하겠군요.”
에스페란사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팔짱을 낀 남자는 ‘이제 네 헛소리를 다 들었으니 내 할 말을 하겠다’는 얼굴을 하고 에스페란사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걸친 남자가 목덜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나긋한 어투로 물었다.
“총의 형태가 굉장히 특이한데, 한번 봐도 될까요?”
“예, 뭐, 보세요.”
무기를 넘겨주면 안 된다는 생각 같은 걸 할 정신이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총을 넘겨주는 내내 이해가 안 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어제 제초 작업을 했다고 했지. 달려가 창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