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내부는 마치 나인 호더에 있는 에이번데일 저택의 서재 같았다. 서너 칸짜리 짧은 계단을 내려가 카펫 위에 서서 2층짜리 서재를 둘러보았다.
커다란 방 한가운데에 놓인 마호가니 책상에 마력판이 있었고, 시더는 그 위에 띄운 홀로그램으로 연구소 전체의 구조를 살피고 있었다. 작은 왕국을 굽어살피는 왕처럼 자신의 연구소를 내려다보던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는 책상에 기대 선 채로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물었다. 홀로그램에 반쯤 가린 손끝이 책상 위를 부지런히 두드렸다.
“소감은?”
“무슨 소감이요?”
“역시 좀 무서운가요? 징그러운가? 그래도 13년 후에는 꽤 흔하게 볼 수 있죠? 그렇게 생각하면 별로 무서울 것도 없겠네요.”
무섭다느니, 징그럽다느니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말들 사이에서 딱 하나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발견한 에스페란사가 냉큼 입을 열었다.
“일단 13년 후엔 이런 거 없어요. 전혀.”
시더가 미간을 찡그렸다.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이.
“왜 없죠? 내가 죽었다면서요.”
“그거야 나도 모르죠.”
13년 후의 나인 호더는 물론 지금에 비해서는 비약적으로 발전한 세계였다. 하지만 에스페란사가 보기에는 ‘그래 봐야 20세기’였다.
“그래서 무서워요?”
“좀 징그럽긴 했어요.”
시더는 책상에 팔을 짚은 채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책상을 짓누른 손끝이 하얗게 질려 있었으나, 두 사람 모두 눈치채지 못했다.
“오토마톤은 왜 전부 토끼예요? 당신 디자인 진짜 못해요.”
“아, 그 토끼는 어릴 때 만들어서. 당신도 알 텐데, 명탐정 브론즈라고……. 그게 다예요?”
“전등 스위치는 보이는 데 만들어요. 못 찾아서 고생 좀 했어요.”
“그게 끝?”
칭찬을 바라는 건가? 에스페란사는 입술을 모으며 생각했다.
“음 그리고, 대단한 것 같긴 했어요. 에이번데일 저택에서 봤던 것보다도 백 년쯤 앞선 거 같네요. 이 연구소에 있는 건 다 당신이 만든 거죠?”
대답이 없어도 알 만했다. 새삼 감탄스러웠다. 저 많은 걸 다 혼자 만들었단 말이지. 그의 자신감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홀로그램 위로 내리뜬 눈을 바라보던 에스페란사가 남몰래 생각했다. 내가 이 남자를 자랑스러워하지 못할 이유는 없겠지.
“날아다니는 기계공은 특히 마음에 들었는데 변호사는 하는 말마다 소름 끼치니까 어떻게 좀 해 봐요. 방화니 살인이니, 대체 누가 만든 건지.”
“참고하죠.”
잠시 할 말을 고르는 것 같더니 금세 말에 웃음기가 돌아왔다. 턱을 괴고 또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에 빠졌던 에스페란사가 고개를 휙 돌렸다.
“왜 웃어요?”
“안아 봐도 돼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짧은 순간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안 될 것까지는 없지 않나?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한편에 스쳐 지나갔으나, 에스페란사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팔을 벌렸다.
“네, 뭐…… 근데 왜요?”
대답 없이 허리를 끌어안은 시더는 에스페란사의 어깨에 뺨을 묻고 간지러운 웃음을 흘렸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말을 해 줄 법도 한데.
어정쩡하게 헤매던 팔을 그의 팔 위에 올리자,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기분이 이상해져서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나한테 이런 거 보여 줘도 괜찮은 거예요? ‘날 믿어요?’ 같은 카드나 붙여 놓고. 신뢰를 의심해야 할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일 텐데. 내가 남들한테 말해 버리면 어쩌려고 그래요.”
“당신이 말할 사람이나 있어요? 이 세상에 나밖에 없으면서.”
그 날 그 말을 한 게 죄지. 지금 몇 번이나 우려먹고 있는 건지. 괜한 말을 꺼냈다, 정말.
“맞는 말이긴 한데, 그렇게 말하진 말아 줄래요?”
“난 좋아요.”
“아, 그야 당신은 좋겠죠. 근데 나는 별로…….”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상처받게.”
“취했어요?”
시더가 끌어안은 자세 그대로 고개를 휙 치켜들었다. 그는 진심으로 즐거운 얼굴로 눈을 빛내고 있었다. 지나치게 가까워 코끝이 닿을 것 같다는 것만 빼면, 아까보다는 훨씬 보기 좋았다. 에스페란사는 몸을 뒤로 물리려고 했으나 허리가 붙잡혀 있어 그럴 수도 없었다.
“당신은 괜찮아요.”
에스페란사는 그것이 방금 전의 물음에 대한 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더 이상의 ‘왜’는 의미 없었다. 에스페란사가 시더의 카드를 보고 의심하지 않았듯이, 그도 그냥 당연히, 자연스럽게 그러했을 것이다.
“그래서, 구경은 잘 했어요?”
“거의 못 했어요. 사람을 초대해 놓고 이렇게 안쪽까지 혼자 들어오게 하는 게 어딨어요? 콜먼은 가지 말라고 말리는 눈치지, 안은 불도 안 켜져 있지.”
“콜먼은 그냥 둬요. 순수한 걱정일 테니까. 그보다, 불이 안 켜져 있었다고요? 경비원도 보냈고, 불도 전부 켜 뒀는데.”
“안 켜져 있었어요.”
그 말에 미련 없이 몸을 일으킨 시더는 책장 옆에 붙은 스위치보드를 확인했다. 다이얼을 몇 개 돌리고 내부를 열어 회로를 점검하더니 이마를 찡그렸다.
“혼선이 있었나 봐요. 오늘 아침에 전체적으로 손봤더니. 그래도 당신이 건드려서 위험할 만한 건 다 꺼 뒀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아무거나 만져 봐도 돼요.”
여기가 기계마다 일일이 설명이 붙은 박물관도 아니고, 체험학습 온 어린애마냥 이것저것 만지고 다닐 생각은 없었는데. 하지만 만져 봐도 된다고 하니 궁금해지긴 했다.
“그럼 구경이나 시켜 줘요. 나 혼자 봐서 뭘 알겠어요.”
시더는 잠깐 망설였다. 하지만 이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페란사는 그 눈에서 묘한 거부감을 읽었다. 에스페란사를 향한 거부감일 리 없으니, 이 연구소에 대한 것일까? 아까부터 보이는 묘한 태도, 갑작스러운 포옹도 그렇고. 뭔가 그를 흔들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 시더는 자기 발명품들에 확실한 자신감과 애착을 보였다.
그들은 연구소의 복도를 따라 이어진 방을 하나하나 들어가 보았다. 첫 번째 방에선 황동 기계 팔에 달린 펜촉이 프린터마냥 깔끔한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회로를 그리고 있는 거예요.”
그 말에 다가가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정말로 파이프와 여러 가지 부품이 섞인 회로였다.
“발명 하나를 해 놓으면 기계가 새 발명을 하다니 편하긴 하겠네요.”
“이걸로 발명까지 할 수는 없죠.”
시더는 기계 팔의 관절 부분을 툭툭 치며 말했다. 다 그려진 회로가 금속판에 찍히고, 그 위를 금으로 덧그리고, 기계 부품이 윙윙 돌아가며 회로에 따라 짜 맞추어지는 과정. 이 공정을 통해 시더의 손을 거치지 않고도 증기를 뿜으며 날아다니는 네 발 기계가 탄생했다. 아까 에스페란사가 봤던 기계공과 같은 것이었다.
마음에 들었다고 했더니, 일부러 이걸 만들어 낸 것 같았다. 에스페란사는 까치발을 들고 손을 뻗어 퐁퐁 날아가는 기계공을 잡아챘다.
“당신 가져요.”
별로 아깝지도 않은 모양이다. 하긴, 언제든 원하면 다시 만들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에스페란사에게도 쓸데가 없는 건 마찬가진데. 엉뚱한 선물을 받은 에스페란사는 스티뮬러가 달린 발을 허우적거리는 작은 기계공을 인벤토리 안에 집어넣으며 물었다.
“이런 것도 당연히 바깥에는 없겠죠?”
“없죠.”
“이런 게 있으면 쓸데가 많을 텐데. 책 찾아 주는 데 쓰면 좋겠네요. 순찰용으로도 쓸 수 있을 거고.”
“용도야 많겠지만, 공개할 생각은 없어요.”
“왜요?”
시더의 입술이 일 자를 그렸다. 사뭇 단호하게.
“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걸 많이 만들어요. 그 결과를 책임질 생각도 없고. 하지만 적어도 그걸 공개하려면 여파를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시더가 그런 부분을 신경 쓸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왠지 이 대화가 낯설지 않았다. 처음 증기 마차를 타고 마법 용품 상점에 갔을 때였을 것이다.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것뿐인가요?’
‘그것뿐이에요.’
그때 무슨 말을 했더라?
고민하는 사이 그들은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방 한가운데 뇌 모형을 둔 방에서는 기계들이 부품을 조합했다 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오토마톤이 부품을 조합하고, 다른 기계들이 그 안에 마정석을 넣고 반응을 확인한 다음 해체하면, 타자기가 멋대로 움직이면서 수치를 기록했다. 다른 기계는 타자기와 기계 팔을 동시에 움직이면서 타자기로는 숫자를 쏟아 냈고 기계 팔로는 그래프를 끝도 없이 그리고 있었다.
“당신이 좋아하는 브론즈 시리즈가 만들어지는 과정이에요. 당신이 봤던 초기작들은 직접 만들었지만.”
내가 언제 그 시리즈를 좋아했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날조하는 게 보통 솜씨가 아니었다. 방금 분명히 징그럽다고 했는데.
“그럼 얘도 토끼예요?”
“토끼로까지 만들 생각은 없고, 데이터만 수집하는 거예요. 어차피 머리에 들어가는 내용만 다르고 틀은 똑같으니까.”
그렇게 그려진 그래프들을 기계가 둥글게 말더니 원통형 캐리어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방마다 연결된 파이프라인 아래에 놓자, 캐리어가 쑥 빨려 들어갔다.
“뭐예요? 어디로 보낸 거예요?”
“서재로요. 서재에도 있었잖아요, 저거.”
잠시 후 빈 캐리어가 돌아왔다. 에스페란사가 파이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자, 시더는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이런 거 은행에서 본 적 없어요?”
“내가 은행을 갈 일이 뭐가 있겠어요.”
“하긴.”
그 커다란 인벤토리를 두고 굳이 남의 손에 돈을 맡길 이유가 없었다. 시더는 잠시 탐욕스러운 눈으로 에스페란사의 등 너머를 바라보았다. 요즘 좀 멀쩡해 보이나 싶더니, 또 이렇게. 에스페란사는 방어적으로 중얼거렸다.
“안 줘요.”
“달라고 한 적 없어요.”
“탐냈으면서.”
의미 모를 미소로 답한 시더는 방문을 열고 나왔다. 복도엔 아직 여덟 개의 방이 남아 있었다.
“방금 본 방 두 개만 현재 사용되는 연구실이고, 나머지는 거의 보관용이에요.”
저 많은 방들이 전부 보관용이란 말이다. 방 하나하나 열어 볼수록 기가 질렸다. 작은 오르골부터 커다란 방의 절반을 차지하는 거대한 해석 기관까지. 하나라도 유출되면 나라가 뒤집힐 것 같은 물건들이 잡동사니처럼 쌓여 있었다.
“이건 뭐예요?”
그중 에스페란사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무릎 정도 크기의 기계였다. 커다란 기계들 사이에 묻혀 있었는데 어쩌다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먼지를 털어 보니, 기계는 커다란 바구니를 실은 다리 네 개가 마치 벌레처럼 서 있는 모양이었다. 운반용이라는 건 짐작이 갔는데 앞에 달린 센서가 어디에 쓰는 건진 알 수 없었다. 에스페란사는 그 앞에 주저앉아 센서 부분을 만져 보았다. 아무런 반응도 오지 않는다. 마력이 다했나?
“그건…….”
에스페란사가 건드리는 물건을 본 시더의 눈이 흐려졌다. 낭패감이 역력한 시선이 에스페란사에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입술이 내키지 않는 듯이 느리게 움직였다.
“마정석 광산의 좁은 갱도를 통해 채굴한 광물을 지상으로 옮기는 카트예요. 그 전에는 어린아이를 고용해서 하는 일이었죠.”
에스페란사의 얼굴도 함께 침통해졌다. 언제였던가, 산업 혁명 시기의 광산 노동과 관련한 그림을 본 적이 있었다. 작은 스케치에 불과한데도 숨이 막힐 정도로 처참해서 더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버렸던 기억이 났다.
“다른 광산은요?”
마정석 광산도 문제지만 석탄 광산 같은 곳은 정말로 아동이 일할 만한 곳이 아닐 텐데. 이 시기의 아동 노동 환경이라면 어딘들 여건이 좋았겠느냐마는.
“다른 곳은 사람을 고용하는 게 더 이득이라서. 마정석 광산에서는 상품 가치가 없는 저품질 마정석을 갈아 넣을 수 있는데 다른 광산은 마정석을 사서 써야 해서 수지가 안 맞아요.”
그렇게 말하는 시더의 목소리는 사뭇 건조하게 들렸다. 에스페란사는 눈을 찌푸렸다. 가늘어진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럼 아직도 어린 애들을 써요?”
“4년 전에 제정된 아동노동법 때문에 그렇게는 못 하고, 16세 이상의 체구 작은 여성을 쓸 거예요.”
세상이 나아지려고만 하면 어떻게든 틈을 찾아내는구나.
“그래도 애들은 안 쓰니까 조금 나아지긴 한 건가…….”
“글쎄요. 광산 일을 못 하게 된 어린아이들을 어디로 보냈을까요? 성냥 공장? 직물 공장? 일을 찾으면 다행이고 아니면 굶어 죽었겠죠.”
‘그것뿐이에요.’
흐릿했던 예전의 대화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자기 연구에 대한 자부심과 모순되는 냉소의 이유.
“오토마톤을 안 만든다고 했던 것도 그래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