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오토마톤의 최초 개발자인 시더 클라이번이 더 이상 오토마톤을 만들지 않는 이유.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오토마톤이 지금은 상류층의 장식품으로 전락한 이유.
“별걸 다 기억하고 있네요.”
웃음으로 얼버무려도 소용없다.
“굶어 죽었어요?”
“날 좀 배려해 줄 생각은 없어요?”
비뚜름한 대꾸에 카트 앞에 여전히 주저앉은 채로 주변의 다른 기계들을 만지작거리던 에스페란사가 턱을 들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시더는 더 이상 답을 미루지 못했다. 그는 떠밀리듯 속삭였다.
“죽었어요.”
“당신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우스운가요?”
“이리 와서 좀 앉아 봐요.”
물에 비친 달처럼 흔들리는 눈빛이 애처로웠다. 시더는 시키는 대로 에스페란사의 앞에 주저앉았다.
“당신과 이런 이야기까지 하고 싶진 않았어요.”
“날 믿어요?”
“정말이지 불공평하네요.”
불평과 달리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믿어요.”
에스페란사는 시더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구불거리는 머리칼이 그의 등과 가슴에 쏟아지고, 손등을 간지럽혔다. 이 방을 나가면 푹신한 소파도 있고, 밤을 새우며 측정 결과를 기다릴 때 쪽잠을 자던 침대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카펫도 깔리지 않은 연구소 바닥에 서로에게 기대어 앉았다.
“당신을 여기로 초대한 게 잘한 일인지 모르겠어요.”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요.”
눈치를 줄 만큼 줘 놓고 할 말은 아니지만, 겨우 딱지가 앉은 상처를 헤집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난 돌아갈 사람이잖아요. 그러니까 당신이 숨기고 싶었던 걸 내게 들킨다고 해도 문제가 되진 않을 거예요.”
스스로를 돌아갈 사람으로 칭하는 혀끝이 씁쓸했다. 이 남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내 말뜻을 이해했을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시더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부르는 게 값일 기계들이 잡동사니처럼 쌓여 있는 모습을 어린 소년처럼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에게 보여 주고 싶었어요.”
“그래요?”
“당신에게만은 보여 주고 싶지 않기도 했고.”
어느 쪽인지 모를 모순적인 마음의 추가 전자로 기울었던 것은 신뢰의 무게 때문이었다.
“보고 나면 날 싫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당신은 그러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도 조금은 모험을 한 거죠.”
13년 후에서 왔다는 점, 마물 앞에서도 눈도 깜짝 않는 담대함, 대체로 무던하고 무심한 성격.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마음으로 연구소 문 앞에 카드도 써 놓았다. 그만하면 시더 클라이번으로서는 과할 정도로 몸을 사린 축이었다.
그리고 잔뜩 몸을 말고 시도한 모험은 성공을 거두었다.
“오토마톤을 처음 만든 건 열네 살 때의 일이었어요. 에이번데일 시 외곽에 마정석 광산이 있어요.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진 몰랐지만 다섯 살 남짓 된 어린아이들을 데려다 싼값에 부리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때는 가당찮은 정의감이 있었어요. 안 믿는군요? 진짜예요. 어렸잖아요.”
가당찮은 정의감. 열네 살 소년의 정의감은 현실이란 바위에 부딪힌 달걀처럼 쉽게 깨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더 클라이번은 천재였고, 그의 서재에는 그 가당찮은 정의감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이 아주 많았다.
“귀부인들 오르골에 붙어 있는 발레리나랑 다를 바 없는 물건이었어요. 그래서 이름도 오토마톤. 모양은 훨씬 흉측했지만.”
“알 만하네요.”
시더는 메마른 웃음소리와 함께 에스페란사의 손 위를 겹쳐 쥐었다.
“하지만 광산 채굴의 전 과정을 대신해 줄 수 있는 발명이었죠. 아버지는 꽤 흥분했어요. 그렇게 안 보여도 나름대로 가정적인 분이었으니까, 아들 자랑이 하고 싶었던 모양이죠? 그걸 당장 광산에 가져다 팔았어요. 마정석이 비싼 데다 효율이 그리 좋지는 않아서 사람을 전부 대체하지는 못했어요. 그나마 마정석을 제일 적게 먹는 운반용으로만 썼지만, 그것만으로도 꽤 절약을 한 모양이더군요. 어린아이들을 쓰는 것보다 말도 잘 듣고, 밥값도 안 들고, 시체 처리 비용도 안 들 테죠. 보기도 좋았을 거예요.”
냉랭하게 중얼거린 그는 에스페란사의 눈빛을 살폈다. 그 안에서 경멸의 씨앗이라도 찾는 듯이.
“당연히 아이들은 해고됐어요. 그해의 겨울은 유독 혹독했고, 다른 일자리를 못 찾은 아이들은 죽었어요. 전부 다 죽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거예요. 아버지는 그 아이들이 험한 광산 일을 계속했더라도 죽는 건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했지만, 글쎄요…… 어디까지 진심이었을지는 아직도 모르겠군요.”
큰 충격을 받은 어린 아들을 위해 백작은 큰 금액을 구빈원과 아동 보호 단체에 기부했지만, 그런다고 죽은 목숨이 살아 돌아올 리는 없었다.
천재 마도 공학자의 집답지 않던, 다른 저택에서도 오토마톤이나 기계를 사용하는 일에 굳이 사람을 고용하는 에이번데일 저택. 장신구나 다름없는 오토마톤을 바라보던 냉소 어린 얼굴.
“사람의 자리를 빼앗는 기계는 내가 아니라도 만들 사람이 많고, 무엇보다 돈이 되죠. 기업가들이 돈을 싸 들고 다니면서 그런 기계들을 의뢰하니까. 좀 천천히 발전해도 되는 분야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말을 잠시 멈추었던 시더는 에스페란사의 손끝을 쓸고는 조금 더 힘을 주어 쥐었다.
“그때 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기계는 만들지 않기로 했죠. 문제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거예요. 당연히 이런 건 사람이 할 일이 아니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거죠. 그래서 그냥 그 원칙은 포기했어요.”
반사적으로 터져 나온 웃음소리가 시더의 어깨를 울렸다. 그럴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덕분에 어깨를 굳히고 있던 시더도 한숨처럼 웃었다.
“포기가 그렇게 쉬워요?”
“별로 절박하지 않았으니까요. 사실 얼마 가지도 못했어요. 세 달? 이후엔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을 대체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 거라면 아예 사람 자체를 대체해 보자고 만들기 시작한 게 브론즈 시리즈예요.”
“그거 설마 인간을 복제하려고 했다는 이야기예요?”
시더는 대충 얼버무렸다.
“좀 달라요. 뭐, 여러 가지 기술적 어려움이 있었죠. 모양을 보면 알겠지만 몇 가지 직업을 대체하는 정도에서 그쳤어요.”
복제 인간은 아니라고 했지만 결국 사람에 가까운 오토마톤을 만들려고 했다는 말이다. 포기한 것에 미련이 없는 그의 성정이 지금만큼 다행스러운 적이 없었다. 변호사 브론즈 자리에 진짜 사람 같은 오토마톤이 있었다면 에스페란사의 반응도 같을 순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공개할 생각도 없었으니 외형은 ‘명탐정 브론즈’에서 가져오고, 이름도 그대로 했어요.”
저작권 있는 디자인을 마음껏 가져다 썼다는 이야기다. 비공개라고 아주 막 나갔군. 에스페란사는 나직이 혀를 찼다.
“그다음부턴 그냥 맘 편히 만들고 싶은 걸 만들기로 했어요. 알다시피 난 선량하지 못해서, 남이 죽어 가든 말든 내 답답함이 더 중요하니까요.”
그런 말을 하면서 참 당당하기도 하다. 시더는 비로소 미소를 지었다. 방금 전까지 그를 괴롭히던 긴장은 거의 달아난 상태였다.
“그때쯤 이 연구소도 지었죠. 처음엔 고용인들이 와서 청소를 했었는데 관리용 오토마톤을 만든 다음에는 돌려보냈어요. 콜먼도 그때쯤부턴 여기에 와 본 적이 없을 거예요.”
“그런데 왜 그렇게 무서워했대요?”
“여길 악마 소굴 정도로 생각하니까요?”
놀라울 정도로 원색적인 표현이었다. 에스페란사는 그 말이 시더의 입에서 나온 게 맞나 그의 입술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일말의 기대를 배반하듯이 말했다.
“그래서 내가 불경스러운 짓 하다가 지옥에라도 갈까 봐 늘 노심초사해요. 딱한 일이죠.”
“그걸 지금 말이라고.”
“옛날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미신에 휘둘리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콜먼이나, 던바틴 공작이나.”
그쪽도 어지간했지. 시더는 에스페란사의 머리칼을 귓바퀴 뒤로 쓸어넘기며 빙그레 웃었다.
“신경 안 써요. 브론즈 시리즈 같은 걸 보면 점잖던 신사 클럽 회원들도 악마 소리부터 꺼낼걸요. 당신이 그러지 않았던 건 내 모험의 승리였고.”
“내가 잘한 건데 왜 승리는 당신이 챙겨 가요?”
시더는 그 말을 가뿐히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콜먼은 교회에서 날 잡으러 오기라도 하면 내 앞을 가로막고 버티다가 자기가 먼저 죽겠다고 할 사람이니까. 혹시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천재의 불우한 어린 시절 같은 걸 생각했다면 틀렸어요.”
“아, 그러시겠죠.”
어두웠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평소대로 돌아왔다. 에스페란사는 지체 없이 기대 있던 몸을 떼어 냈다. 시더는 웃으며 에스페란사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에스페란사는 그를 툭 쳐내며 투덜거렸다. 시더가 변명하듯 말했다.
“별 얘기 아니라고 했잖아요.”
“말 안 하려고 했으면서, 뭐가 별 얘기가 아니라는 거람.”
“매력적인 이야기는 아니니까요.”
어릴 때의 만용으로 사고를 치고, 스스로 세웠던 원칙은 지키려는 노력도 없이 갖다 버렸다. 그리고 이 연구소 안에 들어앉아 밖에는 보이지도 못할 것들을 만드는 것. 그는 그런 삶을 부끄러워 해 본 적이 없었다. 이 연구소 없이도 그는 세기의 천재였고, 공개된 기술만으로도 이견 없는 최고였으므로.
하지만 에스페란사 앞에서는 부끄러웠다. 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진심이었다.
“난 좋아해요, 이런 이야기.”
에스페란사가 어깨를 크게 으쓱였다. 위로하려고 한 얕은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남의 깊은 이야기를 듣다 보면 듣는 사람의 속내도 함께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나한텐 그런 계기 같은 건 없거든요. 흘러가는 대로 살았고, 살다 보니 이렇게 됐고. 아무리 큰일이 있어도 그 ‘살다 보니’를 흔들지는 못하는 거예요. 난 그냥 그때도 지금도 나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느닷없이 당신의 그 서재에 떨어진 후에도 여전히. 그냥저냥 살고, 그냥저냥 나예요.”
무던하고 무심하고 쉽게 잊고, 잘 변하지 않는다. 친구들은 돌 같다고 했고, 그건 심지를 꿰뚫는 말이었다. 깎이고 굴러서 겉은 매끄러워져도 그뿐, 돌은 돌이다.
“난 당신이 섬세한 사람이라 좋아요.”
그리고 그 말은, 전혀 예정에 없던 말이었다. 에스페란사는 말을 꺼내자마자 입을 꽉 닫았다. 하지만 침묵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내 말은, 그러니까.”
“친구로서. 두 번 말하지 않아도 이해했어요.”
시더는 별로 서운한 기색도, 놀리려는 생각도 없어 보였다. 에스페란사만 유난스럽게 군 모양새였다. 왜 아무렇지도 않은 건지 내심 기분이 이상해졌지만, ‘날 좋아한다면서?’ 같은 소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시더는 정말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기계를 원래 있던 자리에 돌려놓고 문을 열었다.
“계속 구경하고 싶어요?”
“음. 방 하나에 이야기 하나예요?”
“남은 이야기는 없어요. 지루한 마도 공학 강의만 남았어요.”
시더는 겁을 주듯이 말했지만, 1 대 1 강의라면 어떻게든 멈추게 할 수 있었다.
“다른 방엔 뭐가 있는데요?”
사악한 목소리가 속삭였다.
“주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만한 발명’이죠.”
“볼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