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비행 요새, 벙커, 초소형 정찰용 오토마톤.
“어디 피난 가요?”
“이런 걸 만들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리고 저 비행 요새는 어디까지나 휴양 시설이에요.”
규모가 규모이니만큼 완성된 상태는 아니었고 설계도와 모형, 주요 부품만 제작되어 있었다. 공간적 제약 때문에 진짜 요새의 크기로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돈이 되겠네요.”
“시류를 잘 탄다면요. 하지만 국제법에 저촉돼서 상용화될 여지는 없어요.”
“저런.”
날아다니는 요새에서 휴양을 즐기는 건 꽤 멋진 발상 같은데.
문 없는 통로를 통해 들어간 방에는 또 다른 기계가 있었다.
“이건 또 뭐람.”
“공기 청정 비행선이 하루에 두 번, 나인 호더에서 매연과 증기를 몰아내고 있지만 그 덕에 나인 호더 외곽 공장 지대는 사람이 살 곳이 못 되는 형편이죠. 이건 아예 매연을 흡수해서 압축하는 방식이에요. 마력 효율이 나쁘긴 해도.”
구구절절한 설명을 압축해 보면, 일종의 매연 정화 기계였다.
“좋은 거 아니에요? 이게 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만한 물건이에요? 이 나라 대기 오염은 좀 심각한 수준이잖아요.”
“아무리 압축해도 매연의 절대량이 너무 많아서 처리할 데가 없어요. 그럼 내각은 만만한 식민지에 그 쓰레기를 팔아넘기고 늘 하던 대로 대가로 금이라도 받아오려 할 테고, 그렇게 되면 식민지와의 갈등은 더 심해지고, 결국 외교적 문제까지 이어지는 거죠.”
“좀 비약인 것 같은데.”
“그럴 수도 있고요.”
그냥 핑계였다. 에스페란사는 픽 웃으며 다음 방으로 넘어갔다. 이번에도 역시 기계 장치가 발 디딜 틈도 없이 공간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는데, 뭔지도 모르지만 왠지 아까 본 것들에 비해 더 위험한 느낌이 났다.
“뭐 하는 기계라고요?”
“지진을 일으키는…….”
사회적 물의의 문제가 아니잖아. 움직이지 않는 기계를 등지고 시더를 노려보자, 그는 성의 없이 변명했다.
“연구에는 좋을걸요.”
“누가 연구하자고 진짜 지진을 만들어요?”
“왕립 대학에 팔면 팔려요.”
꼭 자기 같은 사람들한테 팔아넘기려고. 에스페란사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말 별걸 다 만들었네요.”
“10년 동안 그때그때 만들고 싶은 건 전부 다 만들었으니까요. 반 정도는 폐기했는데도 아직 많이 남았네요.”
지금 본 것만도 이런데 뭘 얼마나 더 만들었길래? 그 질문에 시더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어리고 상상력이 풍부하던 때였죠.”
“그래서 그 풍부한 상상력으로 뭘 만들었다는 거예요?”
시더는 눈가를 접으며 웃었지만 끝까지 대답은 해 주지 않았다. 에스페란사는 혀를 차며 질문을 바꾸었다.
“만드는 시간은 얼마 안 걸려요?”
“회로와 논리 체계만 만든다고 하면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아요.”
다음 방에는 커다란 냉동고가 있었다. 안은 비어 있었지만, 방 전체에 냉기가 돌아 스산했다. 그러고 보니 이 방만 철문으로 되어 있고.
“뭐에 쓰는 거예요?”
“새로 시작할 연구라 아직 정해진 건 없어요. 조사가 필요해서요.”
물론 온도 때문일 수도 있지만, 목덜미가 싸한 것이 결코 예사로운 연구는 아닐 것 같았다. 내용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신경 쓰였다.
다음 방으로 향하자 주변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 무심코 문고리를 돌렸던 시더가 황급히 문을 쾅 닫았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에스페란사의 눈은 문 안쪽의 것을 보고 말았다. 정체 모를 녹색 용액 안에 들어가 있는…… 팔?
“사, 사람이에요? 설마 사람을…….”
시더가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말을 하냐는 듯이 눈을 찡그렸다. 뻔뻔스럽기 그지없다.
“죽은 사람이에요.”
“죽은 사람을…….”
“시체 사서 해부하는 것 정돈 많이들 해요. 불법이긴 하지만 대단한 불법은 아니죠.”
에스페란사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아무리 그래도. 시체 해부가 도덕적으로 문제될 것은 아니지만, 그 시체가 어디에서 왔느냐가 문제였다. 21세기 인간의 윤리 의식이 ‘저건 아니지 않냐’고 뇌리를 두드렸다.
“생물학에 관심 없다면서요?”
“관심 없어요.”
그럼 왜? 묻지도 않은 질문에 시더는 쉽게도 답했다.
“당신이 본 오토마톤들이 어떻게 인간처럼 움직이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을 흉내 내려면 사람을 연구할 수밖에 없어요.”
일리가 있다. 일리는 있는데. 에스페란사는 닫힌 문을 흘끔거리며 물었다.
“원래 뭐 하던 팔, 아니, 사람들인데요?”
시더가 빙그레 웃었다.
“사형수, 연고 없는 변사자. 듣기 좋은 얘기는 아니겠지만. 연구에는 도움이 돼요. 빈약한 그림 자료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게 많으니까요.”
연구에 필요했다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본능적인 거부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남의 무덤에서 파낸 시체보다는 사서 쓰는 게 나아요. 한번 묻혔던 것들은 보존 상태가 나쁘거든요.”
“……아, 네.”
해부용으로 팔 시체를 구하기 위해 무덤을 파는 일이 만연한 시대에 사형수나 변사자의 시체를 사는 것 정도야 차라리 인격적이다.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꼭 저래야만 하는 건가?
에스페란사가 계속 닫힌 문을 흘끔거리자, 시더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 말까요?”
“네.”
꼭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했던 것과 달리 그는 사뭇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페란사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 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요.”
뒷말이 묘하게 걸리긴 했지만.
“그런 식으로 웃지 마요. 징그러워서 그런 거 아니니까.”
“난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말을 안 하면, 모를까 봐? 에스페란사가 코웃음을 쳤다.
금세 다시 투닥거리며 도착한 마지막 방은 빈방이었다.
“여긴 왜 비어 있어요?”
“오늘 비웠어요. 새 연구를 위해서.”
새 연구?
“우리가 왜 여기 왔는지 잊었어요? 당신의 기동력을 높일 방법을 찾으려고 왔잖아요.”
“그걸 하려고 여길 비운 거예요? 이렇게 큰 공간이 필요해요?”
“일단 그렇긴 한데, 그 얘기는 천천히 하죠.”
시더는 에스페란사를 다시 서재로 안내했다. 그들은 여느 때처럼 식사를 하고, 함께 차를 마시고, 나인 호더에 있는 서재와 비슷한 서재에서 시답잖은 잡담을 했다.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옛이야기를 몇 마디 꺼내고, 꽁꽁 숨겨 뒀던 그의 비밀스러운 연구소를 좀 구경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하지만 정말 이 정도로 똑같을 일이야?’
에스페란사는 어느덧 평소처럼 서재 소파에 길게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중간에 시더가 가져다준 쿠션도 무릎 밑에 하나, 등 뒤에 하나 깔려 있었다. 연구소 주인은 고개만 들면 보이는 책상에서 책을 뒤적거리며 만년필을 놀리다가, 마력판 위의 회로를 조정하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었다.
“내 기동력 얘기는 언제 할 거예요?”
시더가 만년필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그럼 지금 그 얘기를 좀 해 볼까요? 시간이 늦기도 했고.”
바깥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시계를 보니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놀이터에서 놀다 저녁 시간을 놓친 기분이었다.
“이리 와요.”
에스페란사는 쿠션 위에 책을 올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시더는 의자에서 일어나 에스페란사가 다가오자 그대로 어깨를 눌러 주저앉혔다.
“어, 어? 내가 앉아요?”
“앉아서 봐요.”
잘 보라고 의자를 책상 안쪽으로 넣어 주기까지 했다. 에스페란사는 멀뚱한 얼굴로 책상 위를 보았지만 복잡한 회로에서 알아볼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그나마 청소년용 마도 공학 책을 읽은 것과 얼렁뚱땅 강의를 한 시간 정도 들었던 게 도움이 됐다.
“이게 C형 회로죠?”
“A형이에요.”
“아님 말고요.”
시더는 웃으며 한 손을 등받이에 대고, 에스페란사의 머리 너머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는 노트를 넘겨 빈 종이를 펼쳤다. 만년필을 쥔 손이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자, 이렇게 생긴 거예요.”
진한 잉크가 가느다란 선으로 구조도를 그렸다. 에스페란사의 눈이 부지런히 그 흐름을 좇았다. 시더는 에스페란사의 귓바퀴에 입술이 닿을 만큼 가까이 있었다.
“기동력을 높이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건 속도겠지만, 그 부분은 당신이 이미 갖췄다고 판단했어요. 그러면 결국 장애물이 많은 나인 호더에서 가장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비행이죠. 그래서…….”
커다란 손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부품이 복잡하게 맞물렸다.
“알겠어요?”
“당신은, 그림을 이렇게 잘 그리는데 디자인은 왜 이 모양이에요?”
에스페란사는 들으란 듯이 덧붙였다.
“진짜 못한다…….”
그러고는 시더의 손에서 만년필을 휙 빼앗아 갔다. 펜촉이 마치 인쇄한 듯한 그림을 툭툭 성의 없이 건드렸다.
“이거 봐요. 딱 봐도 엄청 무거워 보이고, 커 보이고. 이런 걸 달고 어떻게 싸워요? 제일 먼저 총 맞고 떨어지겠다. 제일 큰 문제는, 이거 날개잖아요!”
에스페란사는 입술을 뾰족하게 모으며 투덜거렸다.
“창피해서 이런 걸 어떻게 달고 다녀요?”
그게 제일 큰 문제였다. 지금이 코스튬이 난무하는 헌터 시대도 아니고. 시더가 종이에 그려 낸 것은 사람 몸보다 더 큰 크기의 날개였다. 태엽으로 돌아가는.
“크기는 줄여 줄게요.”
“크기도 문제고, 무게도 문제고, 이걸 어느 세월에 착용하는지도 문제고, 무엇보다 날개 같은 걸 달고 전투를 한다는 수치심이 제일 문제라고요.”
시더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은 얼굴로 미소 지었다.
“디자인 문제야 만든 다음에 해결하면 되고.”
“무슨 수로 해결을 하겠다는 거야…….”
“더 큰 문제가 있어요.”
“뭔데요?”
“이런 걸 만들어 본 적이 없어요.”
그게 뭐가 문제지? 에스페란사는 고개를 젖히며 물었다.
“언제부터 처음 만든다는 게 문제씩이나 됐어요?”
“시간이 오래 걸려요.”
아, 그러면 안 되지. 하지만 에스페란사는 곧 시더 클라이번의 ‘오래’는 보통 사람들과 단위가 다를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래 걸려 봤자…… 얼마나 걸리는데요?”
“당신이 좀 도와준다면, 세 달 안에는 끝내 보도록 하죠. 그사이에 당신은 도시 구경도 하고 놀아야 하니까 시간이 조금 더 걸리겠지만.”
‘대체 내가 뭘 도와줄 수 있다는 거지?’
의문이 남았지만 시더는 그저 빙그레 웃기만 했다.
* * *
시더와 에스페란사가 저택으로 돌아오자, 콜먼은 외알 안경 밑에 손을 넣어 눈가를 손수건으로 꾹꾹 눌렀다.
“선대 백작님이 돌아가신 이후로 그 연구소인지 뭔지에서 살다시피 하시던 우리 자작님, 아니, 백작님이 하루도 안 돼서 저택으로 돌아오시다니…….”
연구소에 틀어박혀 무슨 짓을 하는지는 몰라도, 콜먼은 백작이 대단히 불경한 무언가를 만들고 있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그러했으니까 말이다.
“나인 호더에서도 저러시던가?”
밀런은 고민에 빠졌다. 시더 클라이번의 생활 패턴은 별달리 바뀐 것 같지 않았다. 에스페란사가 나타나기 이전의 생활 패턴도 단조로웠다. 서재 소파에 에스페란사가 앉아 있는 것 말고 딱히 변화랄 것이 있던가?
“아, 기상 시간이 오전으로 바뀐 것 같긴 합니다.”
아슬아슬하게. 평균 11시 50분 정도.
“역시! 두 분께서 돌아가시고 방황을 오래 하셨지. 이제 혼인하실 나이도 되셨으니 마음을 잡으신 게야. 그래, 언제까지 그 불경한 기계들이나 붙잡고 사실 순 없는 것 아닌가.”
밀런은 콜먼이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그는 썩 좋지 않은 부분에서 주인을 닮은 시종이었다.
“예, 그런가 봅니다.”
“에스페란사 아가씨께 그 방을 내어드렸을 때부터 짐작했지. 피후견인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약혼녀인 거지?”
감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밀런은 속 편하게 대답했다.
“예, 그런가 봅니다.”
그리고 동시에 복도 뒤쪽, 그들이 미처 보지 못한 기둥 뒤에서 에스페란사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 방?’
그냥 시설이 좋은 방이어서 준 줄 알았더니, 다른 사연이 있었나? 방으로 돌아온 에스페란사는 애니에게 물었다.
“애니, 이 방이 뭐 하는 방이었는지 아는 거 없어?”
“전 나인 호더 저택에서만 일해 와서 잘 모르겠어요. 잠시만요.”
어딘가로 후다닥 달려간 애니가 잠시 후 손을 흔들며 방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밀런 씨가 그러는데, 전 백작 부인의 방이래요!”
“……뭐?”
백작 부인의 방이라고? 여기가? 시더가 굳이 당부해서 에스페란사에게 준 이 방이?
폭탄을 터뜨려 놓고도 아무렇지 않게 옷장에 옷을 차곡차곡 정리한 애니는 눈을 찡긋거리며 방에서 나갔다.
홀로 남은 에스페란사는 침대에 몸을 던졌다. 백작 부인의 방이라니. 순간적으로 온몸에 열이 올랐다.
그 열기를 꺼뜨리듯 서늘한 침구로 몸을 감쌌다. 뒤늦은 여운이 손발 끝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이불에 얼굴을 묻은 채 천천히 숨을 뱉었다.
백작 부인의 방. 그 고상한 이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연구소의 차가운 공기가 떠올랐다.
그 안에서 머리칼이 섞이도록 붙어 앉은 채로, 심장 소리가 손끝을 타고 들릴 정도로 가까이에서 그는 깊이 숨겨 두었던 것을 내밀었다. 감정의 바닥을 긁어서. 끝이 떨리던 목소리, 쇠 냄새가 배어 있던 커다란 손등, 에스페란사를 감싸 안고도 남았던 어깨와 낮은 웃음.
그가 다른 누구에게도 준 적 없는 것, 내가 그 누구에게서도 받은 적 없는 것.
“그래. 친구 사이라도 설렐 수 있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