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내 말 안 들려요? 방금 건 당신 짓이라니까. 이봐요, 로드 에이번데일.”
차마 상대가 다칠까 밀쳐 내지도 못하고 손바닥으로 등을 툭툭 밀면서 말해도, 자기한테 불리한 말은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버리는 상대에게 대항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좋나?’
생각만으로도 얼굴이 화끈해질 만큼 오만한 소리지만,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받아 가는 것 하나 없으면서, 에스페란사 때문에 온갖 고생만 하고 있으면서. 뭐가 좋다고 이렇게 퍼 준담.
에스페란사는 시더의 몸에 턱을 기댄 채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홀릴 것 같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애정이 가득 깃든 눈동자가 웃음기 없이 내려다보면, 번개가 온몸을 관통하는 기분이 든다. 시더는 너무 가까워서 초점이 풀린 것뿐이라고 말했지만, 저런 눈에서 시선을 뗄 수 있을 리가 없다.
숨이 답답했다. 속에서 끓는 말이 있는데, 내놓기 전까지는 그 말이 무엇인지도, 그 말을 한 후 무엇이 어떻게 변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도박에 희생하기엔 이 관계가 너무 소중했다. 비스듬히 안겼던 몸을 천천히 바로 세웠다.
시더가 입을 달싹였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러나 다음 순간, 그들은 동시에 몸을 휙 돌렸다.
탕, 탕탕!
요란한 총소리가 고요하던 숲을 어지럽혔다.
“침입자?”
주인 있는 숲에?
“설마요.”
고개를 돌린 순간 이미 에스페란사가 들어 올린 장총의 총구를 눌러 내린 시더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심을 채울 시간을 방해받아 불쾌한 티가 역력했다. 그는 창문 너머로 침입자의 존재를 살피며 덧붙였다.
“길 잃은 사냥꾼들이겠죠. 옷이나 태도를 보면 직업 사냥꾼은 아니고, 놀러 왔다 길이라도 잃어버린 젠트리 도련님들이겠네요.”
탕탕탕탕. 정신없이 쏘아지는 총소리와 고성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에스페란사는 시더가 서 있는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손가락 두 마디 정도 열었다.
의미를 알 수 없던 목소리가 조금 더 또렷하게 들려왔다.
“여기 집 같은 게 있는데?”
“숲 한가운데 무슨 집이야?”
술이라도 거하게 들이켠 것처럼 혀가 꼬인 남자의 목소리.
“이런. 여길 발견했나 보네요.”
“문을 안 열어 주면 돌아가지 않을까요?”
“보안은 걱정 없어요. 그보다는 마구간이 문제죠.”
아, 그렇지. 오버 테크놀로지가 본관에만 깔려 있는 건 아니었다. 집에 돌아가질 않는 주인 탓에 하루 종일 다른 말 한 마리 없는 마구간에서 외로이 머무는 말을 위한 작은 복지였다. 게다가 지금쯤이면 시중의 잔디깎이 따위보다 훨씬 발전된 정원사 오토마톤이 밖을 돌아다니고 있을 시간이니.
“일단 할 수 있는 만큼 원격으로 닫아 놓을게요.”
“그럼 난 저 사람들을 해결할까요?”
시더는 바닥을 향한 총신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나가지는 말고, 보다가 문제될 것 같으면 쏴 버려요.”
죽이라고?
지금 사람을 죽이지 않고 일을 끝내려고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던가?
“……아. 팔다리만?”
그런 거라면야. 에스페란사는 총기 내부에 돌리던 마력의 양을 확 줄였다. 시더가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게 아니라, 마취 침을 써요. 그리고 귀에.”
귀를 가리키는 행동의 의미를 금방 파악한 에스페란사는 인벤토리를 뒤졌다. 시더가 미소를 지었다.
짧은 작전 회의 후, 시더는 지하의 관제실로, 에스페란사는 밖이 잘 보이는 서쪽 끝의 3층 방으로 향했다.
서쪽 복도 끝으로 달려가 계단을 오르다 보니 걸음에 맞춰 착, 착, 소리와 함께 셔터가 내려갔다. 에스페란사의 걸음 속도를 완전히 계산한 듯이. 사소한 것이라도 박자가 맞아떨어질 때는 기분이 좋다. 에스페란사는 한층 더 속도를 높였다. 인벤토리에서 떨어진 검은 망토가 몸을 덮었다. 어깨에 걸친 총이 인벤토리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대신 라이플형 마취총이 손에 잡혔다.
3층 끝의 빈방으로 들어가 창문에 걸터앉은 에스페란사는 침을 장전한 다음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술 취한 남자 두 명이 사냥용 엽총을 들고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썩 위협적이진 않았지만 술에 잔뜩 취한 탓에 언제 총을 발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함은 있었다. 아까만 해도 허공에 총을 난사하던 모양이고. 그런데 지금은 조용한 걸 보면.
‘탄알을 다 썼나? ……기본이 안 됐네.’
“보여요. 접근 중. 무장해제 상태.”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자, 반대편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해치워요.’ 에스페란사는 총구를 겨눈 채, 사냥감을 노리는 맹금처럼 때를 기다렸다.
“여긴 뭐 하는 데야? 시간도 늦었는데 그냥 여기서 자고 갈까.”
“닫혔는데?”
쾅쾅쾅. 두 쌍의 주먹이 닫힌 문을 정신없이 두드렸다. 바로 옆에 달린 도어 록은 보지도 못한 것 같았다. 봤더라도 어떻게 했겠느냐마는. 다행인 건, 문을 두드리다 못해 총을 휘두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봐요! 문 좀 열어 줘요! 길을 잃었다고요!”
“젠장, 아무도 없나 봐.”
“아까 소나기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집에 돌아갔을 텐데. 이게 무슨 꼴이람!”
소나기가 왔던가? 에스페란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구간이 있는 동쪽으로 발길을 돌리는 두 사람의 뒷목을 향해 총을 조준했다.
“여기가 어디더라? 표지판 넘어가지 말라고 했는데…… 왜 그랬더라.”
“몰라! 사냥은 죄다 허탕 치고, 길도 잃고, 되는 일이 없어!”
발을 쾅쾅 굴러댄다. 도무지 가만히 있질 않네. 총을 쥔 에스페란사의 손에 짜증이 서렸다. 그에 반응한 마취총 내부 마력이 차르르르 돌아갔다.
“야, 여기 봐.”
연구소는 닫아 버린다고 해도, 동물 소리는 감출 수가 없었다. 어슬렁거리던 남자들도 소리를 듣고 마구간으로 향했다.
“말이다. 말.”
“배고파 죽겠는데, 말고기라도 구워 먹어?”
“하나는 타고 가고, 하나만 굽자.”
“그런데 여기 누가 사나? 웬 말이 있지? 게다가 이 근처만 좀 서늘하지 않아?”
“그냥 술에 취해서 정신이 없는 거겠지.”
공기 정화 시스템이다. 마구간을 적당히 쾌적한 온도로 유지해 주는. 남자들이 저녁에 왔기에 망정이지, 낮에 이 저택을 발견했다면 굴뚝에서 증기가 솟는 탓에 숨길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마구간 앞에 멈춰 선 순간, 에스페란사는 빠르게 방아쇠를 두 번 당겼다. 소리도 없이 빠져나간 마취 총이 두 남자의 목 뒤를 정확히 맞추었다. 인벤토리 안으로 총을 집어넣은 에스페란사는 그대로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두 번 돌아 착지한 몸이 용수철처럼 가볍게 튕겨 나갔다.
마구간 옆에 쓰러진 남자들의 몸을 발끝으로 뒤집어 보았다. 제대로 잠들었군. 마취 침을 회수한 에스페란사는 시체처럼 미동도 없는 둘을 바라보다가 귓가의 기계에 대고 말했다.
“해치웠어요. 마구간 옆이에요. 문에 손댄 건 아니었고.”
―그리로 가죠.
잠시 후, 불이 꺼진 저택의 문을 열고 나온 시더가 쓰러진 남자들을 보고 혀를 찼다.
“아는 사람들이에요?”
“그럴 리가요. 이런 쓰레기 같은 걸 알고 지내기엔 내가 너무 바빠요.”
시더는 신경질적으로 웃었다. 그리고 시체를 건드리듯 발로 남자들의 몸을 툭툭 치더니, 다리를 질질 끌어 말 위에 올렸다.
“……연구소를 들키지 않으려면 우리도 돌아가야겠군요. 귀찮게 됐네요.”
에스페란사도 뒤늦게 생각했다. 귀찮게 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계속 단둘이 있다가는 정말로 부지불식간에 휩쓸려 버리고 말 테니까.
그나저나 저 좋은 수련장을 한 번 써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야 하다니. 아까워라.
* * *
제임스 보일과 더윈 에거튼은 칼리지 동기로, 가족들끼리 사이가 좋아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방학이면 종종 서로의 집을 찾았다. 보일 가문은 리튼 주에 작은 영지를 가지고 있어, 그들은 에이번데일 인근의 컨트리하우스에서 보일 가족과 함께 여름을 났다.
사냥에 별다른 소질도 없는 두 사람이 길잡이도 없이 단둘이 숲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마침 저택에 와 있던 제임스 보일의 사촌, 사이먼 보일의 말 때문이었다.
‘어제 내가 여기 사냥터에서 뭘 잡았는지 알아? 이쪽 숲에 늑대가 나오더라고. 그래서 단숨에 가서, 콱! 이쪽 사냥터는 주인이 누군지 참, 관리가 안 됐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인지 심심한 사슴 따위만 나오는 게 아니라 제법 무시무시한 놈들이 나오더라고.’
한참을 설명해도 무관심한 두 사람의 기를 꺾어 놓기 위해 사이먼 보일은 다소 무리한 수를 던졌다.
‘잡자마자 윌컷 양에게 선물했더니 아주 감동받으시더군.’
라비니아 윌컷 양은 리튼 주에서도 상당히 부유한 젠트리의 외동딸로, 제임스 보일과 사이먼 보일이 서로 눈치를 보며 구애 중인 숙녀였다. 쉽게 도발 당한 제임스 보일이 단번에 열을 올렸다.
‘사냥이 능숙한 신사가 멋있어 보인다던데, 제임스, 넌 윌컷 양 근처에도 못 가겠다?’
‘……네가 하는 건 나도 다 할 수 있어. 두고 보라고.’
사실 윌컷 양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죽은 사냥감을 꺼리는 티가 빤히 보여서, 사이먼은 그럴 바에는 경쟁자인 사촌도 똑같은 방법으로 점수를 깎아 버릴 셈이었다. 거기다 약간의 심술을 더해서, 초행이었지만 길잡이도 필요 없었다고 허세를 부리기까지 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쁜 머리에 비해 지나친 경쟁심을 가진 제임스 보일은 냉큼 친구 하나만 데리고 사냥터로 나섰다.
갔다가 다리라도 하나 부러져서 돌아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점수가 깎일 테니 괜찮고. 사냥 초보가 제대로 된 걸 잡아 오지도 못할 테니 기가 꺾이더라도 좋고.
제임스 보일에게도 나름의 계산은 있었다. 그는 사냥은 처음이지만 사격 점수는 꽤 좋았다. 운이 좋아 뭐라도 잡아 온다면 사이먼의 콧대를 눌러 줄 수 있었고, 실패하더라도 크게 손해 볼 건 없다는 속셈이었다.
정작 당사자인 라비니아 윌컷 양에겐 두 보일 씨 모두 남편감으로서 고려 상대조차 아니었지만, 그것을 모르는 둘만 서로를 향해 열을 올렸다.
그러나 날이 좋지 않았다. 잘 가꾸어진 사냥터에서 개를 풀어 즐기는 여우 사냥 정도만 경험해 본 그들에게 직접 엽총을 들고 말을 몰며 풀이 높게 자란 숲속의 동물을 잡는 건 사격 수업에서 A를 받았다고 곧잘 할 수 있는 수준의 작업이 아니었다.
게다가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피하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미리 알아두었던 길에서 멀찍이 이탈해 버리고 말았다.
실력은 없고 자존심만 있는 두 남자에게 악재가 겹치고 겹치자,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