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12
12화
마법 용품 가게의 사장은 말이 많았다.
“오랜만입니다, 백작님. 하하, 얼마 만에 찾아 주신 건지. 그래도 제가 백작님 얼굴만은 잊지 않는답니다.”
시더가 마법 용품 가게를 최소한으로만 들르는 이유였다. 기본적인 용품은 최대한 집사를 시켜서 사고, 특별히 눈여겨볼 만한 물건이 있거나 직접 보고 사야 하는 물건이 있을 때만 직접 나섰다.
“벌써 한 달 만이던가요. 요즘 연구는 잘돼 가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럭저럭이네.”
“그래도 오늘은 숙녀분까지 대동하시고 말입니다. 이런 적은 없었지요.”
“미스 헌터께서도 마법에 관심이 있으셔서.”
“미스 헌터라고 하시는군요. 어쩐지, 학자의 새싹이 보이더라니요. 백작님께서 데리고 오실 정도면 훌륭한 재능을 가지신 분이겠지요! 물론 클라이번 박사님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요.”
새싹? 역시 사장은 보는 눈이 없었다. 에스페란사는 새싹 따위에 비견될 수 없었다. 학자도 아니지만. 지금도 번드르르한 마법 물품들 대신 험한 재료들 쪽을 맴돌며 눈을 빛내고 있지 않은가.
“요즘 새로 들어온 물건은?”
“특별한 건 없습니다. 마력 투과 물질이 다 거기서 거기다 보니까 말입니다. 백작님 같은 분들이 쓰실 만한 건, 영…….”
오랜 거래 상대끼리 이어지는 형식적인 절차였다.
“나 같은 사람이 못 쓸 만한 것은?”
“그런 것으로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요.”
그래도 가게를 오래 운영한 짬이 있는 사장이 한 발짝 뺐다. 눈치가 없다고 루트도 없는 건 아니다. 이런 가게를 운영하려면 사냥꾼이나 학자, 부자들만 알아서는 되지 않는다. 불법 시술자나 무허가 무기 판매상, 마약상, 밀렵꾼, 밀수업자 등 수도 없이 많은 범죄자들과 접촉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눈치가 없어서 지금까지 살아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자들에게 납품받은 물건들은 창고 한편에 보관하고 있다. 몇 없는 직원들도 들어가지 못하는 깊숙한 곳에.
시더는 일찍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거기에 얼마나 더럽고 위험한 물건들이 많은지. 그도 여기서 그런 물건들을 꽤 많이 샀다. 예를 들면 무연고 변사자의 시체라든가, 무허가 약물이라든가.
하지만 오늘은 용건이 좀 다르다.
“창고를 보여 주진 않겠지?”
“아무리 백작님이시라도 그건 안 됩니다. 신고 안 하실 분인 걸 아니까 말씀이라도 드리는 거지요!”
“사실 구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합법적인 수준에선 찾을 수 없을 듯싶어서 말이네.”
“어떤 것을……?”
대체 저 괴짜 마도 공학자가 또 얼마나 대단한 연구를 하는 것인가, 하는 기대로 눈을 번들대는 사장이 성큼 다가왔다. 시더는 불쾌감에 고개를 뒤로 뺐다.
“발톱.”
“맹수 발톱 말입니까? 그런 거야 불법 포획 아니라도 꽤 있지요. 특히 맹금류 발톱은 마력 투과율이 꽤 높잖습니까.”
“그런 것 말고.”
“설마 보호종의 발톱을……?”
시더는 일단 황금 발톱을 문자 그대로 이해해 보기로 했다. 적어도 형태는 발톱 형태겠지. 이름을 그렇게 붙여 놓고 발톱 비슷하게 생기지도 않았다면 꽤 우스울 테니 말이다. 진짜 발톱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내가 찾는 게 맞는지 확인해야 하니 가진 걸 보여 줬으면 하는데.”
“에이, 알 만큼 아시는 분이 왜 그러십니까? 그 창고는 10년 일한 조수도 못 들어가는 곳입니다.”
“꼭 구해야 하는 게 있으니 하는 말이지.”
“어떤 연구에 필요하신 겁니까?”
사장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사장은 귀족을 믿지 않았지만 천재 마도 공학자 시더 클라이번의 연구만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꼭 필요한 물건이라고 하셨지요?”
“내가 지금까지 자네 창고 구경시켜달라 한 적 있나?”
그 정도로 중요한 물건이란 뜻이다. 사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귀족 나리들이 보면 까무러칠 만한 물건도 있지만, 시더 클라이번은 다르지 않은가. 까무러칠 만큼 놀랄 시간에 물건의 효용부터 판단할 인물이다. 그런 면에선 도저히 귀족답지 않은 인물이다.
역시 에이번데일 정도면 그 창고를 보여 줘도 괜찮지 않을까…….
“로드 에이번데일!”
사장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구경만 하던 숙녀가 백작을 불렀다. 사장은 퍼뜩 고개를 저었다. 귀족 나리 말발에 홀려 큰일 날 뻔했다. 백작이 못마땅한 듯 혀를 찬다.
그래도 숙녀와 마주 보자, 모자 그림자에 가려진 눈까지 싱긋 웃는다. 사장을 향해서는 입꼬리만 삐죽 올리던 양반이.
“무슨 일인가요, 미스 헌터? 무서우시면 나가 계셔도 괜찮아요.”
‘무슨 일인걔얘? 말투 한번 끝내주는군.’
귀족 나리들의 들쩍지근한 말투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사장이 귀를 벅벅 긁었다.
복숭아색 장갑을 낀 숙녀는 드레스 자락을 살짝 들고 다가와 백작에게 몸을 붙였다. 그러곤 백작과 둘이 뭔가 속닥거린다. 백작이 고개를 숙여 가며 대답하는 걸 보니 상당히 친밀한 관계인 듯한데.
숙녀는 백작의 팔을 끌어당기며 뭐라고 투정을 부린다. 백작은 곤란한 듯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것이 숙녀의 투정이 싫지 않은가 보다. 허, 오래 살다 보니 저 시더 클라이번에게서 저런 꼴도 보는군.
“하하, 보기 좋으십니다. 백작님을 이렇게 끌고 다니는 아가씨가 나타나시다니, 정말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에요.”
제발 내가 있다는 걸 알아달라는 투로 짐짓 크게 말하자, 백작과 숙녀는 몸을 떼어 냈다. 역시 귀족 아가씨답다고 해야 하나, 가게 주인은 그냥 가구나 다름없었던 거지. 신경도 쓰지 않은 것이다.
숙녀는 백작을 끌고 가 뭔가를 보여 주며 당부하더니 밖으로 나갔다. 어둑한 조명 아래에선 잘 몰랐는데, 문을 열고 나가는 여자는 대단한 미인이었다. 도톰한 장밋빛 입술이 사라진 지 오래인데도 눈앞에 선했다.
저런 미인을 데리고 다니면서도 일에 집중이 되다니, 정말 대단한 양반 아닌가? 하기야 본인 외모도 어지간하지마는. 사장이 백작을 흘끔거리며 생각했다. 귀족 아가씨들이 줄줄이 따라다닐 텐데 그래도 이런 냄새나는 마법 재료가 더 좋은 모양이지.
한편 시더 클라이번은 사장의 오해 따위보다는 에스페란사가 남기고 간 말에 더 집중했다.
‘이 가죽, 이거 어디서 샀는지 물어보고, 꼭 사요. 이유는 나중에, 나가서 말해 줄게요.’
에스페란사가 가리키고 간 가죽은 다른 것에 비해 특출한 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시더는 품 안에서 스티뮬러를 꺼냈다.
“어, 어, 백작님!”
의심받지 않게 안쪽 가죽부터 하나하나 확인해 보자 사장이 발을 동동 굴렀다.
“아니, 우리 가게 제품을 믿지 못하십니까? 제가 언제 백작님 속인 적 있습니까, 왜 그러십니까?”
“자넨 그런 적 없지.”
시더는 시원스레 대답하며 다음 가죽에 스티뮬러를 가져다 댔다. 유리로 된 몸체 안에서 황동 톱니바퀴가 정신없이 돌아갔다.
그리고 문제의 가죽에 스티뮬러를 가져다 댔을 때, 스티뮬러의 진동이 달라진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무서운 것을 본 듯이 덜덜 떨어댄다.
‘뭐지?’
멀찍이 떨어져 있는 사장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스티뮬러가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방향도 달라졌다. 똑같이 생긴 가죽이고, 똑같이 마력을 투과시키겠지만 효과는 다를 것이다. 조금만 가공하면 재미있는 걸 볼 수 있겠다.
분명 처음 보는 가죽이었다. 이런 물건이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에스페란사가 굳이 어디서 샀는지 물어보라 한 것도 그렇고. 시더는 눈을 가늘게 떴다. 다른 가죽도 몇 개 더 확인해 봤지만 아까와 비슷하다.
“이 가죽들, 어디서 났지?”
“예? 아, 얼마 전에 무슨 사냥꾼에게서 얻었습니다. 그 이상은 기밀입니다.”
백작이 콧잔등을 찡그리자, 사장은 긴장했다. 귀족에다, 큰 고객 중 하나인 백작과 척을 지고 싶진 않았다.
“어디에서 사냥한다던가?”
“그런 건 모릅니다. 말투가 동부 해안 쪽이니 그 근처 숲이겠지요.”
“늘 거래하던 자인가?”
“아,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몇 개는 새로 거래를 튼 자에게서 얻었습니다. 늘 거래하던 자의 친척이라길래 한번 사 봤지요.”
사장이 짚어 주지 않아도 시더는 그중 에스페란사가 고른 가죽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이상은 저도 모릅니다. 사냥꾼들이 말이 많은 족속도 아니고요.”
안절부절못하는 것이, 더 이상 말했다가는 정말 의심을 살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오늘은 수상한 짓을 많이 했으니까.
“사냥터가 괜찮으면 근처 사는 지인에게 추천할까 했을 뿐이야, 신경 쓰지 말게. 가죽은 전부 사지.”
“예에?”
귀족답지 않게 꼼꼼하고, 귀족답게 눈이 하늘에 올라가 붙은 백작이다. ‘전부’ 사는 일 같은 건 단 한 번도 없었다. 늘 품질을 따져서 최상급만 쏙쏙 골라가 놓고,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사장의 의문은 타당했다. 시더도 말해 놓고 실수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둘러댈 말이 없는 건 아니다.
“자네가 발톱을 보여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말이야.”
“아, 안 보실 겁니까?”
“숙녀분을 바깥에 기다리게 하고?”
시더는 한심하단 듯 사장을 바라보았다. 사장이 꿍얼거리면서도 손을 빠르게 놀려 가죽을 포장했다.
에스페란사가 지목한 가죽도 종이봉투에 잘 들어갔다. 특별히 신경 쓰는 기색도 없다. 에스페란사는 알고, 시더는 관찰하기 전에는 몰랐고, 가게 주인은 눈치도 못 챘다. 그 차이가 뭘까?
값을 치르고 상점에서 나와 마차로 향했다. 마부에게 짐을 맡기고 들어서려는데, 마부가 물었다.
“미스 헌터는 어디 가시고요?”
마차 문이 열렸다. 아무도 없다. 생각해 보면 에스페란사는 결코 마차에 앉아서 가만히 기다릴 사람이 아니었다.
‘설마 뒷골목으로 들어갔나?’
어둑하고 불결한 뒷골목. 숙녀라면 눈길도 주지 않을 곳. 그러나 에스페란사는 ‘숙녀’가 아니고, 자기 몸 하나 지킬 능력도 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는 게 맞는데.
아니, 그가 확인한 건 사격 실력 정도였다. 뒷골목 놈들은 그것보다 더 추잡하게 군다. 어린아이로 유인해서 목덜미에 마비 침을 찔러 넣으면? 한 놈이 구걸을 해서 시선을 빼앗고 다른 놈이 공격하면? 시더 역시 들어서 아는 것이지만, 직접 보지 못했기에 상상은 더욱 구체적이었다.
근접 전투력은 확인한 적이 없고, 무엇보다 에스페란사는 드레스 차림이다. 조금만 방심하면 잡힐 테고, 그놈들이 숙녀에게 예의를 차릴 리도 없다. 몸값이나 요구하면 다행인 일이다.
어쨌든 손님으로 대하겠다고 했으니 에스페란사의 안전도 그의 책임이었다. 에스페란사라면 어떻게든 탈출은 하겠지만, 그걸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게다가 마법사의 피에 대한 연구를 이제 막 시작했는데, 정작 그 마법사가 심하게 다치거나 문제가 생긴다면 앞으로의 연구에 차질이 생길 것이다.
“테일러, 내가 한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거든 경찰에 연락해서 얼터 지구로 오라고 해.”
“백작님, 그 더러운 데 들어가시게요? 미스 헌터가 설마 그런 곳에 발걸음을 했겠습니까? 모자 가게 같은 델 가셨겠지요!”
“그랬으면 좋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