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시더는 못마땅한 티를 여실히 냈다. 그러나 에스페란사가 숄을 여미고 고개를 까닥이는 데는 도리가 없었다.
“좋아요. 그럼 그 용건 중 하나는 그 종이에 써 있겠군요.”
아, 맞다. 이것도 있었지. 뛰어오르느라 어느새 잠옷 주머니에서 덜렁거리고 있는 암호문을 꺼내 펼쳤다.
이야기의 물꼬를 트기에는 이것도 괜찮은 것 같았다. 에스페란사는 암호문을 해석한 메모를 다시 훑어보았다.
“아까 이걸 보다가 생각이 났는데 다리아가 접촉한 그 해적들, 아마 파오룬 해적일 거예요.”
“파오룬 독립 세력과 협력하고 있다?”
“아마도요. 그렇다고 식민지 독립을 원하는 것 같진 않지만. 써먹을 구석이 있는 거겠죠, 뭐.”
13년 후의 세상이 다리아가 원한 대로 만들어진 세상이라는 전제를 두고 본다면, 다리아는 결코 평화 주의자가 아니었다. 식민지의 처참한 실상은 다리아에게 그저 자신이 착취할 오스던을 부유하게 만들어 줄 피착취자의 피착취자, 노예의 노예일 뿐이었다. 13년 후에도 파오룬은 여전히 오스던의 식민지고, 식민지 사람들은 여전히 비참했으며 식민지 위에는 오스던의 왕관이, 그 위에는 헌터들의 놀이터가 있었다.
“쓰고 버릴 거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당장은 그쪽에 뭔가 힘을 실어 줄 가능성이 있어 보여요. 저번에도 말했지만 파오룬 해적과 관련해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은 안 나요. 중요한 일이었던 것 같은데…….”
“당장 기억해 낼 필요는 없어요. 우리가 그 일을 반드시 막아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일이 벌어지고 나면 떠오르는 게 있겠죠.”
시더는 손수건으로 손을 닦고는 탁자 위의 우유 잔을 들어 올렸다. 아직 김이 폴폴 나는 우유 잔은 따뜻했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찬 공기와 달리.
“이건 당신이 마시는 게 좋겠어요.”
우유 잔을 든 시더가 창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에스페란사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거기 있어요. 오지 말고.”
“창틀은 의자가 아니고 창문 밖은 앉는 곳이 아니에요, 숙녀분. 그냥 들어와서 말해 줄 순 없는 건가요?”
“안 돼요.”
에스페란사는 아예 돌아앉았다. 얼굴이 보이지 않게. 조금 춥기는 하지만 견딜 만했다. 지금 할 이야기는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도리어 시더와 얼굴을 맞대고는 할 수 없었다. 그가 손을 감싸 쥐고 뺨에 입 맞추고 웃으며 이름을 부르는 것에 흔들려선 안 되니까.
“좋아요. 그럼 여기에다 둘 테니, 할 말이 끝나면 들어오는 거예요.”
어깨를 풍성하게 덮은 머리칼이 흔들렸다. 시더는 그것을 ‘끄덕임’이라고 멋대로 알아듣겠다고 선언했다.
에스페란사는 잠옷과 숄에 감싸인 무릎 위에 턱을 괴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바람이 머리칼을 헤집고 휘날렸다. 제법 매서운 바람 사이에서도 목소리는 또렷했다.
“난 떠날 거예요.”
시더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에스페란사가 숨기려는 얼굴을 확인하려 들지는 않았다. 벽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 채,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느슨하게 묶은 머리칼이 어깨를 따라 흘러내렸다.
“길어 봐야 1년이겠죠. 더 짧을 수도 있고. 난 돌아가야 해요. 당신은…….”
“상관없어요.”
시더가 말했다.
“당신이 떠나도 상관없어요.”
무릎을 감싸 쥔 에스페란사의 손끝에 하얗게 힘이 들어갔다. 그 말이 상처가 되었을까, 아니면 안심이 되었을까, 허공에 붕 뜬 정신으로 자문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가 안 가요. 끝날 줄을 알면서도 관계를 정립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게 뭐예요, 자학도 아니고.”
“죽을 날을 받아 둔 사람과 살아 본 적 있어요?”
그는 대답 대신 대뜸 그렇게 물었다. 에스페란사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시더는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다는 것일까? 문득 두 사람 모두 젊은 나이에 부모를 잃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에스페란사의 부모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갑작스럽게 떠났다. 인사할 시간도 남겨 두지 않고. 하지만 시더는?
“어차피 죽을 테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평생을 두고 후회하게 될 거예요. 사랑은 오래가는 감정이 아니에요. 후회는 영원하죠.”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고백이었다. 하지만 에스페란사의 속은 할퀴어진 듯했다. 그래서? 오래가지 않는 감정이니 될 대로 되라고? 뒷일 따윈 생각하지 않고?
“그러니 난 당신이 떠나도 상관없어요.”
시더가 괜찮다면 에스페란사도 괜찮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에스페란사라면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갔다는 이유만으로 시더를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에스페란사는 격앙된 목소리로 다그치듯 물었다.
“우린 죽는 게 아니에요.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데요? 내가 돌아간 다음에는요?”
만나지 못하는 건 문제의 일부였다. 다른 세상에서 살아갈 서로를 어쩌면 만날 수 있지도 않을까 하는 희망, 내 마음이 사그라들기 전에 상대의 마음이 먼저 변하지 않았을까 하는 불안.
이제 와서 관계를 이름 짓지 않는다고 새삼 그 모든 번민이 마법처럼 사라질 리가 없다는 건 알고 있다. 이미 늦었다는 건. 하지만…….
시더가 빙그레 웃었다.
“다시 만나지 못한다면 죽는 것과 뭐가 다르죠?”
진심이다. 기가 막힐 정도로 진심이다.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방금 전까지는 배경음에 지나지 않았던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에스페란사는 입을 꾹 다문 채 등이 부풀 때까지 찬 공기를 들이쉬었다.
시더의 발소리가 조금 멀어지는 것이 들렸다. 이런 말을 해 놓고 그냥 간단 말이야? 그렇게 무심하게? 에스페란사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정말이지, 이게 뭐람……. 그냥 오늘 여기 오지 말 걸 그랬다.
그때, 날카롭게 벼려진 청력에 이상한 소리가 잡혔다. 규칙적인 기계 소리에서 뭔가 어긋난 듯한, 아니지, 이건 기계 소리가 아니다.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창문 안쪽을 바라보았다.
커튼 틈새로 보이는 높은 천장까지 기계 장치와 복잡한 파이프라인이 빽빽했고, 그중 하나에서 푸른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시더의 머리 바로 위에서. 작은 불씨는 순식간에 기계 장치 전체를 태울 만큼 큰불로 번졌다. 눈앞이 하얘졌다.
“뭐 해요, 피해요!”
에스페란사는 창문을 벌컥 밀치고 미끄러지듯이 창틀에서 내려와 그 반동으로 뛰어올랐다. 그대로 천장의 파이프를 한 손으로 붙잡고 불이 붙은 기계 장치를 숄로 감싸고 뛰어내렸다.
작은 불은 금방 꺼졌다. 하지만 놀란 가슴은 여전히 바쁘게 뛰었다. 불탄 기계 부품을 감싸고 까맣게 그을린 숄을 대충 바닥에 던져 버린 에스페란사가 고개를 들었을 때, 시더는 어느덧 창문가에 서 있었다. 그는 창문을 꽉 닫고 걸쇠까지 걸어 버렸다. 눈이 마주치자 무슨 일이나 있었냐는 듯이 빙그레 웃었다.
웃어?
“방금 엄청 위험했던 거 알아요?”
“머리 위에 기계를 가득 달아 놓고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는 법이죠.”
“‘이런 일도 있는 법이죠’라니, 불이 날 뻔했다고요.”
“그래요, 고마워요.”
그런 말을 듣자는 게 아니잖아! 화가 치밀어 올라 쏘아붙이려던 에스페란사가 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당신 숄이 다 타 버렸군요.”
이런 소리를 하라는 것도 아니었다. 두 번째 한숨은 아까보다 조금 더 깊었다. 보아하니, 이거 일부러 벌인 일이다. 더 할 말도 없었다.
“……새로 사 줘요.”
“물론이죠.”
허탈했다. 에스페란사는 숄을 발끝으로 툭툭 쳤다. 이게 뭐람.
“이왕 들어왔으니 우유라도 마셔요. 조금 식었지만.”
창문 앞을 지키고 선 시더가 턱짓으로 탁자 위의 우유 잔을 가리켰다.
“일부러 가져온 건데.”
자기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다. 에스페란사는 말이 끝나자마자 입을 꾹 다물었지만, 꺼낸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시더는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좀 아까운데. 한 모금만 남겨 줄래요?”
“……됐어요. 누가 준대요?”
뭐가 예쁘다고. 유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에스페란사는 보란 듯이 우유 반 잔을 마셨다. 잠깐만, 이거 시더 클라이번이 원하던 대로 된 거 아닌가?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켜서 뭐가 뭔지 도무지 모르겠다. 잔을 내려놓자, 시더는 근처에 있던 스위치 보드를 들어서 뭔가를 조작했다. 에스페란사와 눈이 마주치자 곧 내려놓았지만.
“뭐 했어요?”
“글쎄요, 뭘 했을까요?”
얄밉다.
다행히 시더가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연구실 문이 열리고 프로펠러가 달린 작은 오토마톤이 날아 들어왔다. 특이점이 있다면, 다른 오토마톤들과 달리 아래에 뭉툭한 갈고리 같은 것이 달려 있다는 것과 그 위에 두툼한 정장 겉옷이 걸려 있었다는 점 정도였다.
오토마톤은 바로 에스페란사의 손 위에 겉옷을 올려 주고 작은 프로펠러를 열심히 돌리며 방을 나갔다. 다시 연구실에는 두 사람뿐이었다.
“담요가 있으면 좋겠지만, 일단은 그거라도 덮어요.”
걸치고 왔던 숄은 재투성이가 돼서 도저히 걸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손끝까지 가리는 겉옷을 걸치고 다시 우유 잔을 쥐자,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우스꽝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겉옷에선 시더의 머리칼 사이에서 나던 향이 났다. 향기는 때로는 빛보다, 소리보다도 더 강했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아주 오랜 시간 후에, 시더 클라이번의 저 우아한 생김새, 달콤한 목소리를 전부 잊어버린다고 해도 이 향기를 맡으면 버릇처럼 그를 떠올리게 될 거야. 절대 잊어버리지 못할 거야. 아주 오랫동안 슬프겠구나.
눈앞이 조금 흐려졌다.
손끝까지 덮은 세심한 배려와 무심한 진심. 어느 쪽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 대답에서 어떤 결론을 내야 할지도.
혼란스러운 마음을 도무지 억누를 수가 없었다. 에스페란사는 우유 잔을 내려놓고 창문으로 향했다.
“……괜찮아요. 그만 갈래요.”
에스페란사는 떨리는 손으로 창문 걸쇠를 잡아당겼다. 창문이 열리려는 찰나 문을 밀어 닫은 시더가 에스페란사의 등을 덮듯이 끌어안았다.
“가지 말아요.”
걸쇠를 쥔 에스페란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시더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귓바퀴에 입술을 반쯤 붙인 채 속삭여 물었다.
“상처받았나요?”
“그걸 말이라고 해요?”
에스페란사는 울컥한 티를 숨기지 못한 채 날카롭게 말했다. 당장이라도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치고 쏘아붙이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태라 정말 다행이었다. 이 어쩔 줄 모르는 감정의 편린 따위는 누구에게도 보여 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한 손으로 에스페란사를 안은 채, 시더는 걸쇠를 쥔 에스페란사의 손 위에 남은 손을 덮었다. 에스페란사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지금 내가 당신 봐주고 있는 거예요. 공작처럼 맞고 싶어요?”
“하지만 공작과 다르게 당신은 날 좋아하죠.”
“남의 감정을 무기로 휘두르지 말아요.”
시더가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귓가에서 녹아내리는 듯한 웃음소리와 함께 그는 에스페란사의 머리 위에 뺨을 기댔다.
“이길 생각이 없는데 무기가 왜 필요하겠어요? 다만…….”
“다만?”
“솔직해지기 위해서는 그 정도 보험쯤은 필요하다는 이야기예요.”
무기가 아니라 보험이다? 에스페란사는 걸쇠를 쥔 손을 창틀로 내렸다.
“적어도 당신이 이 늦은 밤에 창문으로 불쑥 찾아와서 이런 질문을 할 정도로는 날 좋아한다는 거죠. 뺨에 입 맞춰도 화내지 않을 만큼은. 약혼녀 행세를 시켜도 선뜻 해 줄 만큼은.”
하나하나 세듯이 에스페란사의 손가락을 벌리고, 그 사이로 미끄러지듯 은근하게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숨을 들이쉰 채로 굳어 있던 에스페란사가 속삭이듯 대답했다.
“……맞아요.”
인정의 말을 기대하지는 않았던 듯 등에 닿은 심장 소리가 조금 더 빨라졌다. 이건 숨길 수 없는 부분이다. 숨기려면 멀리 서 있었어야 했다. 에스페란사가 등을 돌리고 물었듯이.
그러니 지금은 서로 얼굴을 보고 있지 않아도, 솔직할 수밖에 없었다. 숨길 수 없는 감정을 혀끝으로 밀어 넣고.
“솔직하게 말하면, 당신이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 그렇지. 에스페란사가 탄식을 터뜨렸다. 등 뒤에서 시더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적어도 이 질주하는 듯한 심장 소리에 걸맞은 얼굴을 하고 있을지. 하지만 커튼에선 아무것도 비쳐 보이지 않았으므로, 아주 조금 떨리는 말끝만으로 그 말에 실린 감정을 더듬어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돌아가야겠다면, 적어도 남은 시간은 내 거예요. 마지막 1초까지. 이해하겠어요?”
“아까는 분명 상관없다고 말했잖아요.”
“나라고 좋을 리가 있나요? 하지만 망설일 시간은 없어요. 그러니까, 상관없어요.”
시간은 정해져 있다. 그리 길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에스페란사도 끊임없이 되뇌어 온 말이었다.
“분명 아주 힘들 텐데요?”
시더가 선뜻 대답했다.
“이제 와서? 에스페란사, 이제 힘들지 않게 끝낼 방법 같은 건 없어요.”
그건…… 그렇지. 이젠 어떻게 해도 힘들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선택으로 조금 더 힘들어질지도 모르지만. 에스페란사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죠?”
“이미 망했으니까 망한 대로 즐기자는 말이잖아요. 진짜 헛소리 같은데 설득당할 것 같아요.”
“헛소리라니.”
불만스러운 대꾸와는 달리 손은 에스페란사의 손등을 쓸듯이 매만지고 있었다. 손등을 다 덮은 길고 곧은 손가락. 기계를 만지는 손답게 군데군데 굳은살이 박여 있었지만 둔탁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겹쳐진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자니 속이 간지러웠다. 손끝이 오므라들었다. 심장 소리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내가 느끼는 것을 당신도 느끼고 있다는 증거가 필요해.
에스페란사는 예고 없이 시더의 팔 안에서 몸을 돌렸다.
“……에스페란사?”
깜짝 놀라 커진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예상치 못한 순간이었기 때문에 숨길 수도 없었다. 짧은 순간, 무방비한 애정에 둘러싸였다. 시선, 심장 소리와 체온, 향기까지. 제법 단단하게 벽을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허물어졌다.
다짐하듯이, 꼭꼭 누르듯이 물었다.
“난 원래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갈 거예요. 당신은 내가 돌아가는 걸 도와주고 있고요. 이제 남은 시간도 얼마 없어요. 그래도 상관없어요?”
시더는 물끄러미 에스페란사를 내려다보았다. 지그시 깨문 입술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언제나 선명하게 빛나던 보랏빛 눈동자는 불확실한 답을 기다리며 떨고 있었다.
말에는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말에 적시가 있다면 바로 지금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사랑해요.”
그 한마디로 마지막 남은 망설임까지 전부 무너졌다. 울음을 참듯 뭉개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이 좋다면, 나도 좋아요.”
에스페란사는 발끝을 들어 사랑을 고백한 입술에 입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