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132
132화
“운전은 언제 배웠어요?”
험한 자갈길을 지나느라 시더에게선 잠시 대답이 없었다. 길이 다시 평탄해지자 과거를 더듬는 듯 느릿느릿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 마차를 개조할 때 익혔어요. 쉽게 쓰라고 만든 물건이니 운행법도 간단해요.”
“아, 네.”
난 못 하는데. 투덜거리는 소리를 어떻게 들었는지 대답이 돌아왔다.
“기회가 없었던 거겠죠.”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다른 헌터들 중에서는 증기 마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에 맞추어 1인용 내지 2인용으로, 마치 스쿠터 같은 증기 마차들이 출시되기도 했다. 운송 수단에 불과했던 증기 마차가 유희의 수단이 된 것이다.
“따지자면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고 흥미가 없었어요.”
“지금은 흥미가 생겼나요?”
“조금?”
그 말과 동시에 에스페란사는 마차에서 빠져나왔다.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는 외진 길이었고, 마부석은 두 사람이 앉을 정도로는 충분히 넓었다. 마차가 느려지는 틈을 타 창문으로 완전히 빠져나와서 증기 마차의 상판에 올라앉았다가, 마부석으로 미끄러지듯이 내려왔다. 좁은 마부석이 가득 차자 시더가 혀를 찼다.
“숙녀분, 운전 이전에 안전 수칙부터 다시 배우셔야겠군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시더에게 저런 시선을 받다니. 에스페란사는 코웃음 치며 대꾸했다.
“난 안전해요.”
“아, 그러시겠죠.”
자기 연구실에선 기계가 펑펑 터지고 있으면서. 누가 누구보고 안전을 운운해?
“사흘 동안 네 시간 자면서 위험한 장비 만지는 건 안전 수칙에 안 어긋나나 봐요?”
그러자 시더는 눈 하나 깜짝 않고 되물었다.
“내가 위험할까 봐 걱정돼요?”
“그게 왜 그런 말이 돼요?”
때마침 마차가 덜컹거렸다. 에스페란사는 반사적으로 난간을 붙잡았다. 시더는 에스페란사의 팔을 끌어 자기 쪽으로 더 당겨 앉히며 대답했다.
“그야 당신은 언제나 날 걱정했으니까요.”
“……아, 네에.”
부정해 봐야 그리 믿음직스럽지 않을 것 같았다. 에스페란사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찬바람이 머리칼을 붕 띄웠다. 시더가 낮게 웃었다.
마부석에 깊숙이 앉아 눈앞에 이어진 길을 바라보았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가,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은 마부석이 등에 이고 있는 커다란 마차를 보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래선 마차를 끌고 온 보람이 없잖아요. 정작 저 좋은 자리를 비워 놓고 둘이 나란히 마부석에 앉아서 가는 꼴이라니.”
품위도 없고 효율도 없다.
“하지만 그리 나쁘지 않죠.”
“그건 그러네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날씨는 코끝이 얼얼할 정도로 싸늘했지만 아직 낙엽이 채 떨어지지 않은 길은 울긋불긋해서 제법 예뻤다. 시더는 에스페란사가 경치를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마차의 속도를 조금 늦추었다.
그렇게 30여 분을 더 달리자, 널찍한 벌판이 나타났다.
“그래서, 여기가 어딘데요?”
저택에서 서쪽으로 약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이었다. 야트막한 청보리가 발목을 간질였다. 싹이 얕게 올라온 들판. 과연 인적이 없어 갑자기 사람이 날아오른다 해도 볼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내 사유지예요. 근처에 폐광이 있어서 드나드는 사람도 없고, 여기가 가장 적당할 것 같았어요.”
“아무도 안 와요?”
“확언은 못 하겠지만, 굳이 찾아올 만한 곳은 아니잖아요?”
에스페란사는 모자를 한 손으로 누른 채 바람에 낮게 누운 청보리 밭을 둘러보았다. 나들이 모자를 벗자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렸다. 바람과 청보리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그렇겠네요.”
청보리 밭을 둘러보고 돌아온 에스페란사가 인벤토리에서 챙겨 온 장치들을 꺼내자, 시더는 에스페란사의 등에 거대한 강철 날개를 달아 주었다. 철컥, 철컥, 묵직한 기계가 제자리를 찾았다. 순식간에 에스페란사의 등이 금속으로 뒤덮였다.
“지금은 좀 복잡하지만 완성되면 혼자서도 쉽게 착용할 수 있을 거예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하나하나 어린아이를 보살피듯 기계를 채워 주면서 썩 즐거워하는 티가 났다. 보살핌 받는 쪽도 간지러운 기분에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됐어요.”
마지막으로 두 날개를 다시 한 번 점검한 시더가 몸을 일으켰다.
에스페란사는 연구실에서 그랬듯이 커다란 날개에 마력을 넣어 접었다 펴 보았다. 전처럼 부품이 부딪치거나 마력이 막히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문제는 다른 쪽에 있었다.
“밖에서 이걸 달고 있으니까…… 진짜 창피하네요.”
“저런, 익숙해져요.”
“작게 만들어 주겠다면서요!”
“안 보일 정도로 작게 만들 수는 없잖아요. 자, 숙녀분. 이제 여기 서 봐요.”
울상을 지은 에스페란사를 들판 한가운데 세운 시더가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지금 날아 보라고? 이렇게 갑자기?
“어, 어떻게 하는데요?”
“그거야 나도 모르죠.”
“……뭐라고요?”
“마력을 넣어서 날개를 움직이면 이론적으로 날 수는 있지만, 내가 직접 써 본 건 아니니까요.”
그건 알지만, 그래도 설명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날개를 어떻게 움직이라든지.
어디 보자. 날개를 그냥 퍼덕거린다고 될 것 같진 않다. 일단 마력으로 몸을 조금 띄워서, 날개를 동시에 움직여 보면…….
“안 보면 안 될까요?”
“안 웃을게요.”
정말로 시더의 입가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언제 꺼냈는지 마력판을 가져다가 마력 측정을 하느라 웃을 틈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럼 뭘 하나.
“눈이 웃고 있잖아요.”
“난 언제나 이 얼굴이에요.”
“웃기는 소리 하지 말아요.”
에스페란사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자 시더는 그제야 입술을 끌어 올려 미소 지었다.
“좋아요, 정 신경 쓰인다면 안 볼 테니 연습하고 싶은 대로 해요.”
그동안은 마력 측정도 소용이 없을 테니, 시더는 빈 공책을 펼치고 마부석에 걸터앉았다.
에스페란사는 막 날갯짓을 시도하는 새처럼 몇 번이나 형편없이 굴렀다. 한 번은 발을 굴러 날려다가 삐끗했고, 한 번은 중심을 잘못 잡아서 뒤로 주저앉았다.
시더는 몰래몰래 지켜보며 눈을 찡그리기는 했지만 나서서 말리지는 않았다. 공책 한쪽 귀퉁이에 짧은 단어 몇 가지를 빠르게 메모하는 것으로 애석함을 표현할 뿐이었다.
그리고 한 시간쯤 지났을까, 시더가 공책 두 장을 낙서로 메우고 세 번째 빈 페이지를 펼쳤을 때였다.
“어? 됐다!”
강철 날개를 단 에스페란사가 어중간한 높이에 떠 있었다. 날리는 머리칼을 한 손으로 대충 쥐고 날개를 몇 번 움직여 보더니 감을 잡았는지 단숨에 시더가 걸터앉은 마차까지 다가왔다.
“금방 성공했군요?”
“그러게요. 생각보다 할 만하네요.”
에스페란사가 환하게 웃었다. 매사 무덤덤하던 얼굴에 성취감이 반짝거렸다. 시더는 다소 충동적으로 불쑥 말했다.
“이리 와요. 머리 묶어 줄게요.”
“나 끈 있어요.”
“알아요.”
웃음기 어린 눈동자를 바라보던 에스페란사는 이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뺨이 조금 붉었다. 시더는 목을 감싸던 타이를 끌러 내 머리를 묶어 주었다. 스카프도 아니고 타이로 머리를 묶다니. 에스페란사는 어색한 기분으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그런다고 묶은 머리가 보일 리 없었지만.
“전혀 이상하지 않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요.”
회색에 엷은 무늬가 들어갔을 뿐인 밋밋한 실크 타이였지만 갈색 곱슬머리와 제법 잘 어울렸다. 멋쩍은 듯 입술을 삐죽거리는 웃음을 지은 에스페란사가 시더의 옆으로 다가왔다.
“뭐 하고 있었어요?”
“별 건 없어요. 볼래요?”
시더가 내민 공책을 펼쳐 보았다. 말마따나 내용은 별것 없었다. 그저 시야에 보이는 대로 그려진 들판, 마차, 그리고 머리를 휘날리는 뒷모습만 보이는 에스페란사.
“보지 말라니까 왜 봤어요.”
넘어지고 엎어지는 꼴을 다 봤다고 생각하니 뺨이 달아올랐다. 다행히 그림 속에는 그런 모습이 없었다. 마지막 장엔 자기 키만큼 떠오른 에스페란사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고개를 돌려 시더의 반응을 살피자, 설명 없이 이마와 콧등에 자잘한 입맞춤이 떨어졌다. 에스페란사는 키득거리며 시더를 꽉 끌어안았다 떨어졌다.
“난 이만 연습하러 갈게요. 마력 측정할 거면 지금 해요.”
두 팔 사이로 빠져나간 에스페란사는 눈 깜짝할 사이에 들판 한가운데까지 도달했다. 낮은 비행은 벌써 몸에 익은 듯했다. 하지만 마도구 두 개를 동시에 다루는 건 어떨까? 총을 들면 제어하기가 더 어려울 테니 그것도 연습을 해 둬야겠다.
시더가 마력판 두 개를 설치하고 측정 기구를 올려 두는 데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저 간단한 기계로 이 들판 전체의 마력을 측정하는 것이다. 에스페란사는 곁눈질로 그 모습을 살폈다. 순식간에 그럴듯하게 설치된 기계와 한 쌍의 시선만으로도 등에 달린 날개가 아까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고공비행 시도해 볼 거예요. 그다음엔 총이랑 동시에 쓰는 걸 해 볼 거고, 둘 다 성공하면 전투 연습을 시작해도 될 것 같아요.”
“좋아요. 감안하죠.”
완전히 익숙해진 건 아닌지라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다. 하지만 집중하기 시작하자 시선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마력이 황동빛 깃털 끄트머리까지 흘렀다. 넓게 펼쳐진 날개가 몸을 띄웠다. 팔이 닿는 부위에 톱니바퀴가 느껴졌다. 자기 키만큼 낮게 날던 에스페란사의 날개가 거칠게 날갯짓을 했다. 순식간에 높은 하늘까지 솟구쳤다.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쳤다. 어깨를 짓누르는 기계의 무게도 이젠 익숙했다. 마력으로 날개를 움직이는 법도 얼추 알 것 같았다. 아직은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산봉우리 사이의 들판을 넓게 한 바퀴 돌았다. 나뭇가지 위로 올라가 보기도 했다. 단풍이 예쁘게 든 나뭇잎 하나를 전리품 삼아 들판으로 돌아왔다.
까마득히 높은 하늘에서, 청보리 밭에 선 시더는 아주 작게만 보였다. 에스페란사는 가만히 허공에 서서 측정에 여념이 없는 그를 지켜보았다. 꽤 멀리 있는데도 이마를 찡그리고 눈을 진지하게 빛내는 모습이 전부 보이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시더가 고개를 들었다. 왠지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시더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서렸다. 에스페란사도 거울상처럼 같은 미소를 지었다.
내 장난감 병정.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서렸다. 문득 하늘을 밟고 선 발밑이 허전하게 느껴졌다. 이만 내려갈까?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 저 아래에서 시더가 뭔가 다급하게 속삭였다. 아니, 속삭였다고 생각한 건 에스페란사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그가 뭔가 바쁘게 말하고 있는데 바람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요?”
“……조심해요!”
앞의 말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 말만은 선명했다.
조심하라고? 왜?
들리지 않는 말을 듣기 위해 날개를 움직인 순간, 빠드득 소리가 났다.
“어? 어어어?”
날개가 안 움직인다! 마력도 막혔다. 뭐지? 그러나 생각하는 중에도 몸은 땅으로 끌어당겨지고 있었다. 장난감 병정처럼 작게 보이던 시더가 점점 커졌다. 이러다간 부딪힐지도 모른다!
“뭐, 뭐 해요? 피해요!”
시더는 뒤로 물러났다. 에스페란사의 눈이 더 커질 수 없을 만큼 부릅떠졌다.
왜, 왜 뒤로 가는데! 부딪힌다고!
“미쳤어……!”
그 모든 것이 한순간의 일이었다. 부딪히듯이 떨어진 에스페란사의 몸을 시더가 받아 안았고, 자연스레 시더의 몸이 뒤로 기울어졌다. 에스페란사가 시더의 머리 뒤에 손을 받치자, 시더는 그런 에스페란사의 양팔을 자기 손으로 끌어당겨 쥐었다.
거친 숨이 섞일 만큼 가까웠다. 한참 달려온 듯이 심장이 뛰었다.
“미쳤어요? 피했어야죠! 안 다쳤어요?”
“안 다쳤어요.”
수확할 때를 놓친 청보리 밭이 푹신했던 것이 다행이었다. 시더는 누운 채로 에스페란사를 올려다보았다. 에스페란사의 시선이 시더의 눈가와 뺨을 훑다가 차츰 멍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더가 코끝을 톡 건드리며 물었다.
“당신은?”
“난, 멀쩡해요. 누구 덕에.”
“그럼 됐어요.”
“뭘 잘했다고 웃어요! 사람이 떨어질 것 같으면 피해야지, 거기 서 있으면 어떡해요? 다치……진 않았지만, 다칠 뻔했잖아요!”
시더가 비뚜름히 웃으며 물었다.
“어차피 추락할 거라면 혼자보단 둘이 낫지 않은가요?”
추락이라니, 말을 해도 꼭. 물론 방금의 그것은 추락이 맞았다. 하지만.
“추락하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그럼 처음이자 마지막 추락만 함께 해 줄게요.”
그리고 어정쩡하게 몸을 일으키고 있는 에스페란사의 허리를 양팔로 감아 완전히 그의 몸 위에 눕혔다. 서로의 심장 소리가 겹쳐질 때까지. 에스페란사는 얄미운 애인을 한참 흘겨보다가, 못 이긴 척 입을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