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139
139화
“보스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남았다고 했으니, 그 때까지는 여기서 쉬는 게 좋겠습니다.”
사이러스는 시더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뭔가를 한 움큼 꺼냈다.
“펜리르의 이빨입니다. 경황이 없어 가죽을 벗겨 오지는 못했지만 연구에 도움이 될 겁니다.”
이빨을 받아 든 시더는 오토마톤을 시켜 창고에 넣어 버렸다. 호의의 표시인지, 단지 연구소에서 쉬게 해 주는 데에 대한 대가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시더는 저 남자가 아주 싫었으니까.
그래서 그는 웃었다. 예의 바르게.
“일단 들어가죠. 로비에서 쉴 순 없으니까.”
그들이 향한 곳은 시더와 에스페란사가 매일을 보내던 서재가 아니라 있는지도 몰랐던 응접실이었다.
잘 쓰지 않아 황량한 기운이 감도는 커다란 방에 띄엄띄엄 놓인 안락의자와 소파가 있었고 가운데에는 테이블도 있어 그럭저럭 응접실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불을 땐 지 오래된 벽난로도 있었다.
시더는 벽난로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이 연구소를 지을 때 아버지 권유에 못 이겨 만든 응접실이에요. 난 여기에 사람을 데리고 올 일이 없을 테니 없어도 된다고 했었는데, 결국은 아버지가 옳았군요.”
오토마톤이 삐걱거리며 들어와 에스페란사의 피크닉 바구니를 가져다주었다. 그리하여 간단한 샌드위치와 찻잔을 각자의 앞에 둔 채로, 세 사람은 말없이 자기 일에 집중했다.
쾅. 쾅. 시더가 설치해 둔 대포가 이따금 터지며 그들이 아직 던전 안에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에스페란사는 총을 점검했고, 시더는 에스페란사의 날개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사이러스는 피 묻은 검을 닦았다.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고, 미치도록 어색했다.
에스페란사는 차라리 그 어색함이 고마웠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스스로를 곱씹을 수 있었으니까.
사람을 죽였다. 실수로도, 그럴 만해서도 아니었다. 명백히 의도를 가지고, 게임 경험치 따위를 위해서…… 살 수도 있는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 뒀다. 끔찍하다. 떨리는 손을 행여나 들킬까 꽉 쥐어 눌렀다.
하지만 이렇게 고민하는 것도 아무 의미 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었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스스로를 경멸하는 것뿐이었다.
그래, 어쩔 수 없어. 끔찍하지만, 돌이킬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일은 적어도 이 던전을 끝맺은 다음 해도 늦지 않다.
세 번이나 점검한 총을 의미 없이 딸깍거리며 역시 아무 말 없이 자기 일에 몰두한 척하는 두 사람을 곁눈질로 확인한 에스페란사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이러스.”
두 남자가 거의 동시에 눈을 들었다. 에스페란사는 사이러스를 부르면서 시더의 눈을 살폈다. 그는 그저 가늘게 뜬 회색 눈동자를 빛내며 다음 말을 기다리는 듯했다. 그의 눈을 보자 속에서 밀려 올라오던 자기혐오가 조금 가라앉았다.
“네 목표가 뭐야?”
마른 입술을 달싹인 사이러스는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황금 발톱을 없애는 겁니다. 제가 가진 것도, 다리아가 가진 것도.”
“고치는 게 아니라?”
“고친다고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십수 년간 사용했고, 심지어 그중 7년 동안은 한시도 빠짐없이 작동시켰습니다. 어떤 마도구라도 고장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언젠가 또 벌어질 일입니다.”
마도구? 황금 발톱이 마도구였나? 의문이 들었던 찰나, 사이러스는 고해하듯 말했다.
“저는…… 전부 그만두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말로 꺼내진 않았지만 그건 ‘황금 발톱’이라는 게임까지 포함한 말일 것이다. 에스페란사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떴다. 사이러스는 그 눈동자에 찔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형형한 자색 눈동자는 속내를 꿰뚫어 볼 듯 날카로웠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지만, 묻지 않은 것도 대답할 수밖에 없게 하는 눈이다.
“처음부터 욕심으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더 통제할 수 없게 되기 전에 저희가 벌인 일을 바로잡고 싶을 뿐입니다.”
“돈을 벌 만큼 벌어서겠지.”
말한 순간 후회했다. 에스페란사가 생각하기에도 방금의 그 대답은 좀 치졸했다. 정말 상처입히기 위한 목적밖에 없는 말이 아닌가. ……사과해야지.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이러스는 결국 그렇게 말했다. 진심이란 건 알 수 있었다. 무려 7년 동안 보아온 게임 친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에스페란사는 그가 꺼림칙했다. 또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쾅. 바닥이 크게 진동했다.
알림 창이 반짝거렸다.
[00:59:59]“이거 타임 어택 던전이었어?”
아니, 그것과는 좀 다르다.
창문으로 달려간 에스페란사가 바깥을 내다보았다. 발밑이 얼얼할 정도로 진동하는 땅. 대포가 쉴 새 없이 터져 나가고, 몬스터의 피와 살점이 튄 땅이 얼룩덜룩했다.
아무리 잘 만들었다고 해도 대포가 헌터보다 나을 리가 없다. 마력을 가득 뭉친 대포를 얻어맞고도 비틀비틀 다가오는 몬스터를 바라보던 에스페란사가 창문 틈으로 총구를 내밀었다. 탕, 탕. 짧고 간결한 총성과 함께 달려오던 몬스터의 목이 날아갔다.
“이런. 대포로는 역부족이겠네요.”
시더가 가볍게 혀를 찼다. 반도 채 먹지 못한 에스페란사의 접시를 집어 들고 양손으로 총을 쥐고 있는 에스페란사의 입에 샌드위치를 물려 줬다.
사이러스가 창백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먼저 나가 보겠습니다. 에스페란사 님, 좀 더 쉬십시오. 이야기는…… 다음번에 기회가 있겠지요.”
그는 에스페란사가 자신을 반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이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연구소 밖으로 나간 그는 이윽고 거친 손속으로 몬스터의 머리만 베어 내며 사체의 산을 쌓았다.
시더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같은 마법사인데, 에스페란사의 마법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경외감이, 강력한 끌림과도 같은 흥미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의 마법사를 돌아보았다. 에스페란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총기 안의 마력을 괜히 딸깍거리고 있었다.
“아까부터 기분이 나빠 보이는데, 나한테 얘기해 줄 생각은 없나요?”
원인은 대충 알 만하지만.
에스페란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방금까지 사이러스가 앉아 있었던 빈자리를 노려보는 시선이 착잡했다.
“던전을 만들고, 헌터들을 모으고…… 그게 다 돈 때문이래요.”
“구시대적이지만, 그럴듯하네요.”
물론 시더는 그것뿐만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에스페란사가 너무 동요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허점을 찌르는 대신 그냥 그렇게만 말했다.
“사람들이 아주 많이 죽었는데요.”
“에스페란사. 식민지 사업은 원래 그런 거예요. 사람을 갈아서 돌아가는 건데, 당연히 많이 죽죠.”
죽어도 된다고 상정하고 시작하는 일이니까. 그저 예상보다 너무 많이 죽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입 안이 썼다. 너무 참혹하고 잔인한 논리였다. 에스페란사는 몰랐지만, 사이러스와 다리아는 알면서도 저질렀다.
“하긴, 이 나라도 마찬가지네요.”
사실 이 세상에는 그런 자들이 아주 많고, 그게 심지어는 당연하다는 말이지.
그래서인지 시더는 별달리 놀라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그는 조금쯤 무감해 보였고, 무감해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떠미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못했다.
“이 나라가 해 온 바가 있으니 다른 누군가가 이 나라를 그렇게 지배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죠. 감정적으로야 달갑지 않지만.”
어쨌든 그도 이 야만적인 시대의 사람이었다.
그 말을 곱씹던 에스페란사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럼 당신은 왜 사이러스를 싫어해요?”
“내가 싫어하는 것 같나요?”
“티를 냈잖아요?”
그랬던가? 시더는 무심코 뺨을 만져 보았다. 하지만 만져 본다고 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글쎄요, 그냥 기분 나빠요. 앞으로도 좋아질 일은 없을 것 같군요.”
자세한 설명은 서로를 위해 생략했다. 그편이 웃음을 유지하기에 좋았다. 두 사람도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돌아갔다.
벌써 시간이 반이나 지났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일단, 나가 보…… 저게 뭐야. 원래 이 숲에 저런 게 있었어요?”
숲 한가운데에 시커먼 바위가 뚝 떨어져 있었다. 바위인가? 저렇게 커다란 게? 아니. 바위라기보다는, 저건…….
“그럴 리가요.”
시더가 멍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말과 동시에 바위가 움직였다. 처음에는 움찔. 그다음에는 꿈틀.
“저거, 살아 있는 건가?”
굉장히 불길한데. 에스페란사는 문을 벌컥 열고 나가며 소리쳤다.
“사이러스! 대체 저거 뭐야!”
진작 숲 안쪽으로 기어들어 갔는지, 사이러스는 대답도 없었다.
“가 볼게요. 아무래도 저게 보스인 거 같은데, 왜 알람이 안 뜨는 건지……!”
“기다려요.”
시더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려는 에스페란사를 붙잡고 등 뒤에 매달린 날개를 다시 한 번 빠르게 확인했다. 그리고 손을 떼는 순간, 에스페란사는 한 걸음 만에 1층 높이만큼, 다음 걸음에는 저택보다 더 높이 날고 있었다.
에스페란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시더의 입가에 남아 있던 웃음기가 순식간에 증발했다. 그는 스위치보드를 쥐고 마력 측정기와 던전 감지기를 전부 켜 두었다.
숨기는 게 있다. 말하지 않은 것들이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비밀이 전부 밝혀지면, 지금으로는 절대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았다.
* * *
시더와 멀어지자, 다시 불필요하고 자학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기계적으로 총을 쏘고 있었지만, 손이 떨렸다. 이 순간에도 에스페란사는 뭔가를 죽이고 있다. 생명의 불이 꺼지는 괴물들의 눈을 보자면, 에스페란사가 죽게 내버려 둔 사람들도 이렇게 똑같이 죽어 갔을 것 같았다.
생각하지 말자. 생각하지 말자.
어차피 이제 와선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잖아. 몰랐어. 몰랐다고. 그리고 이것들은 날 공격하려고 하는 괴물들이야. 사람이랑은 달라!
마지막 몬스터를 향해 강력한 마력탄을 쏜 에스페란사는 숲 한가운데로 내려와 숨을 다잡았다.
“에스페란사 님.”
사이러스가 피 묻은 검을 내리며 다가왔다.
“거기 있어. 가까이 오지 말고.”
“괜찮으십니까?”
그러는 넌 왜 괜찮은 건데? 나보다 더 많이 죽여 놓고. 에스페란사는 튀어나오려는 날카로운 말을 애써 눌렀다.
“됐어.”
“곧 ‘니드호그’가 깨어날 겁니다.”
“……그렇지.”
이 상태로 보스전을 치를 수 있을까?
“니드호그는 흑룡입니다. 4년 전의 SS급 던전을 기억하십니까?”
아…… 생각났다. 이벤트성으로 처음 나온 SS급 던전이었다. 수십 명의 헌터가 달려들어서 일주일 만에 겨우 깼다. 그때 그들의 전투력으로는 깨는 게 거의 불가능했지만 그걸 일주일 동안 질질 끌어서 버티기 전략으로 겨우 깼던 기억이 있었다.
에스페란사도 쉬다가 와서 감을 잃은 상태였고, 모았던 파티도 초면인 사람들이 많아서 이래저래 문제가 많았지만, 그 거대한 흑룡을 무너뜨리던 쾌감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이건 B급 던전이니까 그때만큼 대단하진 않겠지. 그래도 위험도가 높은 걸 보면 상당히 강할 것이다.
“진짜 괜찮을까…….”
“여기서 죽으면 진짜 죽습니다.”
사이러스는 검에 묻은 피를 툭 털어 내며 말했다.
“흑룡은 제가 맡겠습니다. 에스페란사 님, 날개를 맡아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