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사이러스는 황금 발톱을 없앤다고 했어요. 고치는 거라면 당신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없애는 거라면…….”
“일반적으로는 그런 일에 시간 이동이 필요할 이유가 없죠. 하지만 그 시대의 마도 공학자들은 마력이 닿기만 해도 폭주하는 마도구를 없앨 방법을 알아내지 못한 것 같네요.”
그 시점이라면 사이러스와 다리아가 기용할 수 없는 마도 공학자는 없었을 것이다.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봐도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겠지.
“그래서 당신한테?”
“그래서 나한테.”
이런 위험한 짓을 시도할 정도라면 정말 다른 방법은 없다는 뜻이다.
“뭐, 그것뿐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래서 황금 발톱을 다 없애고 나면 어떻게 돌아가려고 했던 건지.”
에스페란사는 알 것 같기도 했다.
“귀환증이 있잖아요. 만약 사이러스가 다리아의 황금 발톱을 얻었다면, 퀘스트도 성공했을 테니까, 귀환증을 얻어서 바로 돌아가면 되죠.”
“그럴까요.”
시더는 침묵을 지켰다. 황금 발톱이 마도구임이 밝혀진 이 시점에서 오스던에서,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마도 공학자로서의 견해를 밝히건대, 그는 그 ‘귀환증’이란 것이 그리 미덥지 않았다. 마법사가 사용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모를까, 마도 공학의 범위에서라면…….
하지만 이 이야기도 그는 구태여 꺼내지 않았다. 시더가 추측한 것을 사이러스가 모를 것 같진 않았다.
“뭐가 됐든, 그자를 다시 만날 땐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어 볼 필요가 있겠군요.”
에스페란사는 조금 긴장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이야기하게 되면 에스페란사의 비밀도 알게 되지 않을까?
지금 이야기하면, 시더는 그때 에스페란사가 비겁한 질문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날의 대답이 기만이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때 말했어야 했다. 어떤 말이라도 들어줄 것 같았던 그날 밤에. 하지만 그 밤은 지나갔고, 그날 충분히 진실하지 못했던 대가로 에스페란사는 이 오후를 차가운 불안 속에 보내고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그 사실이 시더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 * *
“아, 추워!”
빨개진 코를 후드 아래로 숨기며 현관으로 달려가던 루이즈 보일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 멀리서, 그들의 낯설고 이상한 손님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벌어진 어깨는 간헐적으로 떨리고 있었고, 마치 군인 같이 곧던 걸음걸이는 이따금 휘청거렸다. 무엇보다 얼굴이 터질 것처럼 새빨갰다.
루이즈는 용기를 내서, 그가 부르라고 요청했던 이름을 입 밖에 내 보았다.
“사이러스,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아파 보여요.”
“아픈 게 아닙니다. 아니, 아픈……. 보일 양, 죄송하지만 오늘 석찬에는 참가하기 어렵다고 전해 주시겠습니까?”
“정말 아프신 게 아닌가요? 의사를 불러드릴까요?”
“괜찮습니다. 부디 그렇게만 전해 주십시오.”
무슨 일일까. 그는 무언가를 찾으러 이곳 리튼에 왔고, 같은 이유로 외출했다. 그러나 돌아온 그는 만족스러워 보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실패한 자 같지도 않았다. 그저 아주…….
“뭐가 저렇게 부끄러운 거지?”
아주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을 당한 사람 같았다.
루이즈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사이러스는 방으로 올라가 문을 잠그고 침대에 주저앉았다. 얼굴을 감싼 손가락 사이로 앓는 듯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에이번데일 백작은 넓은 등으로 에스페란사를 가리고 있었고, 그들이 자리한 소파는 등받이가 높았다. 사이러스가 본 것은 남자의 목에 감긴 흰 팔과 파도치는 머리카락. 등받이 너머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넓은 등. 그리고 시더 클라이번의 비웃음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게 완성됐다.
분명 보라고 깔아 놓은 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와 마주쳤을 때 커졌던 백작의 눈은 정말로 놀라고 당혹스러워 보였으니까. 다만 그는 발 빠르게 그 상황을 이용하기로 했고, 사이러스는 그대로 걸려들어 도망쳤다.
‘약혼은, 가짜인 줄 알았는데.’
에스페란사는 돌아갈 마음이 있는 것 같았다. 없었다면, 사이러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을 이유 자체가 없었다. 에이번데일은 그걸 알까? 모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애초에 진짜 목표를 공유하지 않고 아군으로 삼을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인물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약혼을 했다기에 당연히 눈가림용 약혼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사이러스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두 사람 모두 진심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페란사가 떠나려고 한다는 가정을 했을 때……. 어쩌면 그들은 세기의 마도 공학자를 아군이 아니라 적으로 두어야 할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이러스는 자신이 시더 클라이번과 두뇌 싸움을 할 재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남은 선택지 중에서 비열한 것을 제외하면.
‘처음부터 다 말하는 수밖에 없어.’
그리고 이건 미움받는 길이다.
미움받게 될 줄 알았고, 어쩌면 이미 미움받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그 길을 자처하는 기분은 참담했다. 사이러스는 깊은숨을 내쉬며 펜을 들어 천천히 카드를 적었다.
잠시 후, 운 좋게 해고를 면한 줄도 모르는 팔자 좋은 어린 하인이 동전을 받고 헤벌쭉한 얼굴로 저택을 뛰쳐나왔다.
* * *
시더와 에스페란사가 사이러스를 다시 만난 것은 그들이 던전을 함께 공략한 지 사흘이 지난 날이었다. 혹시 모를 마력 간섭을 배제하기 위하여 만나는 장소는 글라일리 하우스의 서재로 했다.
테이블 주위에 같은 모양의 안락의자 두 개와 긴 소파가 놓여 있었다. 하나는 원래 있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거 좀 치졸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노골적으로 편을 가르는 듯한 배치였다. 시더는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유치하잖아요.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해요?”
“그렇게 유치하진 않아요.”
치졸하단 말은 못 들은 척하더니, 유치하단 말은 기분이 나쁜 모양이다. 그게 더 유치해 보였다. 스스로도 그 사실을 알았는지, 그는 금방 차분한 낯을 꾸며 냈다.
“자, 숙녀분. 일단 자리에 앉으세요.”
춤을 추듯이 손끝만 붙잡고 안락의자로 끌고 오는 손을 밀치지도 못하고 따라갔다. 자기도 모르게 시키는 대로 의자에 주저앉아 버린 에스페란사가 픽 웃었다.
시더는 고요한 얼굴로 차를 탔다. 에스페란사가 주전자를 받아 세 잔의 찻잔에 차를 따랐다. 마지막 찻잔에 찻물이 가득 찼을 때, 밀런이 문을 두드렸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사이러스가 들어왔다. 서재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 그는 절도 있는 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시더는 말없이 찻잔을 그의 자리로 밀었다. 사이러스도 자리 배치에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았다.
아주 무례한 방식의 손님 접대였다. 그러나 오늘 그가 하게 될 말의 무게를 생각하면 이 정도 심술은 당해 주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반갑지는 않지만, 필요한 만남이지요.”
시더가 먼저 운을 뗐다. 에스페란사는 곁눈으로 그를 살피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번에는 피치 못하게 이야기를 못 해서 미안하게 됐어. 먼저 갔다며?”
“……네.”
사이러스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말이 이렇게 되어 있을 줄 알았다. 며칠 지나고 나니 감정을 들킨 데에 대한 수치스러움은 잦아들었다. 에스페란사는 그날의 일을 알지 못했고, 에이번데일 백작은 침묵을 지킬 것이다.
“먼저 호칭을 정리하도록 할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죠? 난 로드 에이번데일로 좋아요.”
“그렇게 하십시오. 저는 그냥 사이러스입니다.”
대번에 날카로운 대꾸가 돌아왔다.
“성도 없나 보죠? 우리가 무슨 사이라고 내가 당신을 이름으로 불러야 합니까?”
두 사람이 연초에 나인 호더의 저택 서재에서 만났다면 시더의 반응도 이보다는 살가웠을 것이다. 마법사가 제 발로 굴러 들어왔으니 이름 따위가 무슨 문제겠는가, 형제 취급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말에는 오직 적의만이 가득했다. 사이러스는 이해했다.
“헌터 씨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시더는 왈칵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사이러스라면 몰라도 에스페란사의 성은 본인이 정해 준 것이니 어디 불평할 데도 없다.
“……이름으로 하죠. 친해 보이고 좋군요.”
불쾌한 대화였지만, 한 가지는 얻었다. 사이러스의 이름에는 성이 없다. 그리고 에스페란사도 그랬다. 헌터라는 건 그들의 직업이나 단체를 뜻하는 것이지 성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런 자들이 어떻게 그 오랜 시간 동안 존재를 숨기고 살았을까?
줄곧 머릿속 한편에 있던 의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걸 묻진 않았다. 모름지기 질문에도 차례가 있는 법이다.
“그럼, 사이러스. 내 생각엔 우리와 당신이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본래 심문을 할 때는 이쯤에서 착한 경찰이 사이러스를 한번 다독여 주는 모양새가 나와야 했지만, 에스페란사는 찻잔을 입에 댄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것 같군요. 처음부터 말하겠습니다.”
처음의 처음부터.
“때는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다리아가 ‘황금 발톱’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리아는 그날의 일을 제게도 잘 말하지 않습니다만, 쉬운 과정은 아니었던 것으로 압니다. 마치 마법처럼 그것이 자신을 불러들였고, 자신은 운 좋게, 운명처럼 그것을 얻었다고만 말했지요.”
그리고 다리아는 마법사였다. 성실하다 못해 독한 성격의 마법사. 다리아는 곧 황금 발톱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저희는 이 기계를 아주 오랫동안, 아주 많이 사용했습니다. 지금은 몇 달에 한 번씩 던전을 만들었지만, 13년 후의 세계에서는 하루에도 몇 개씩 만들었습니다. 많은 수의 헌터들이 있어 피해는 크지 않았습니다만.”
에스페란사가 미간을 찡그리는 모습을 본 사이러스는 돈 때문이라는 말을 반복하지 않은 채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래서 황금 발톱은 고장이 났고, 폭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세상의 가장 대단한 마도 공학자들조차 황금 발톱을 고치지도, 하다못해 부술 방법을 찾아내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마도구의 성질에 있습니다. 이건 시공간 기계입니다.”
여기서 약간의 마도 공학, 아니, 마도 물리학 강의가 따라온다.
“로드 에이번데일, 에스페란사 님. 하나의 시공간에서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