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시더는 여전히 그의 손을 붙잡고 사이러스를 경계하는 에스페란사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런 눈이라면 한 백 년쯤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이상 셋이 둘러앉아 시간 낭비를 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자. 일단 황금 발톱 이야기부터 해 보도록 하죠. 시간 여행을 한 보람이 있는지부터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어요?”
“……알겠습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저쪽에서 하자는 대로 끌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주도권 싸움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질질 끌려가는 것도 달갑지 않았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으므로, 사이러스는 탁자 위에 황금 발톱을 꺼내 놓았다.
“몇 번의 부품을 바꾸긴 했지만, ‘황금 발톱’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원형 그대로입니다.”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인가. 에스페란사는 이곳에 떨어진 이후 내내 찾아왔던 ‘황금 발톱’의 몸체를 응시했다. 몸통 전체에서 옅은 황금빛이 도는 기계는 마치 성물처럼 보였다.
“정확히는 낫이었죠. 시간의 신의 낫.”
그렇게 말한 시더가 천천히 황금 발톱을 집어 들었다. 긴 손가락이 마도구를 감쌌다. 내키지 않는다는 듯 느리게.
“없앨 수 있겠습니까?”
사이러스는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 시더는 매끄러운 기계의 외피를 열었다.
짐승의 이빨이나 발톱처럼 매끄러운 기계의 내부는 눈이 아플 정도로 복잡한 부품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시간이 멎은 것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로.
“마력 개입 없이 중앙 제어 장치를 분리해 내는 게 문제였겠군요. 마정석 자체의 마력 분출을 억제하면서, 외부 마력 개입도 없어야 하고…….”
손끝이 기계 부품을 헤아리듯 스치고 지나갔다.
시더는 자리에서 일어나 종이를 가져오더니 뭔가 빠르게 적어 내려갔다. 옆에서 본 것이 있다 보니 몇 가지는 에스페란사도 알아볼 수 있었지만 문맥을 파악하기도 전에 종이가 넘어갔다. 그렇게 순식간에 종이 세 장을 써 내려간 시더가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두 쌍의 눈이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없앨 수는 있어요.”
안락의자에 등을 묻은 채 그렇게 대답한 그는, 다음으로는 에스페란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보고만 있자, 에스페란사의 눈에 의문이 서렸다.
“왜 그래요?”
시더는 에스페란사의 눈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순수하게 애정과 신뢰가 가득한 눈이었다. 차갑고 부드러운 머리칼을 손가락 사이로 흘리듯 쥐어 본 시더는 종이를 한 장 넘겨 빈 부분에 뭔가를 휘갈겨 쓰더니 찢어 냈다.
“에스페란사. 부탁이 있어요. 복도 끝 방에 밀런이 있는데, 가서 이걸 좀 전해 줘요.”
두 번 접은 종이를 손안에 쥐여 준 시더가 빙그레 웃었다.
지금? 갑자기?
“위험하지 않겠어요? 필요한 거면 그냥 바로 밀런을 부르는 게…….”
“에스페란사 님, 백작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없습니다.”
에스페란사는 여전히 의심의 눈빛을 거두지 않았지만 시더가 의외로 단호했다.
“중요한 일이에요. 난 걱정 말고 다녀와요.”
에스페란사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리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에 복도를 걷는 걸음이 급했다. 하지만 복도 끝 방에 다다랐을 때쯤,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날 보내 놓고 할 말이 있었던 건가?’
내가 들으면 안 되는 말이 있다고? 이 상황에서 갑자기?
짐작이 가지 않는다. 혹시……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런 경우라면 시더가 추궁해야 할 쪽은 사이러스가 아니라 에스페란사였다.
일단 할 일을 하자. 에스페란사는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에스페란사 아가씨?”
“시더가 이걸 전해 달라고 해서.”
밀런이 종이를 펼쳐 열었다.
“아…….”
늘 무뚝뚝하고 변화 없던 표정이 처음으로 당혹감을 띠었다. 에스페란사와 쪽지를 번갈아 보던 밀런이 보란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백작님께 드릴 음, 물건, 물건이 있었습니다. 제가 물건을 찾아올 때까지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시더는 중요한 일이라고 했는데, 밀런은 전혀 언질을 들은 게 없었던 티가 났다. 확실히 뭔가 이상했다. 그러나 무슨 물건이냐고 묻기도 전에 밀런은 안쪽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다.
‘이거 아무래도. 맞는 거 같지?’
시더가 밀런에게 에스페란사를 여기 붙잡아 놓으라고 한 게 틀림없었다. 사이러스와 단둘이 할 이야기가 뭐가 있다고?
혹시 진짜 자기가 죽었을 때 이야기 같은 걸 물어보려는 건 아니겠지?
일단 확인을 해야겠다. 에스페란사는 밀런이 들어간 방 안쪽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선반 앞에서 ‘뭘 가져가지?’ 하고 중얼거리는 밀런의 어깨를 쥐어 몸을 돌리게 했다. 몸을 꽉 조인 조끼 앞주머니에 꽂혀 있던 쪽지가 순식간에 에스페란사의 손에 들어왔다.
“대체 언제……?”
빼앗을 틈도 없이 멀찍이 떨어진 에스페란사가 쪽지를 펼쳐 보았다.
정말이었군. 에스페란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길은 둘 중 하나였다. 서재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모른 척 시더가 원하는 대로 놀아나 주거나.
* * *
두 남자만 남은 서재는 잠시 고요했다.
“에스페란사 님을 내보낸 이유가 뭡니까?”
시더가 놀란 눈으로 사이러스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건 알아봤군?’ 하고 말하는 듯이. 저 천재 마도 공학자가 사이러스를 얼마나 얕봤는지만 자명해졌다.
황금 발톱을 내려다보던 시더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숙련된 기술자라면 제어 장치의 마모 상태만 보고도 마도구의 사용량을 추측할 수 있죠. 난 기술자는 아니지만.”
그가 사이러스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황금 발톱. 과연 망가질 만하더군요. 하루에 던전 몇 개? 하루에 천 개씩 만들어도 저만큼 닳아 없어질 수는 없어요. 게다가 부품이 교체된 흔적도 있네요. 내가 쓰는 부품이 아니에요. 장담컨대 못 해도 두 번은 부품 전체를 새로 맞췄을 테고.”
차가운 시선이 사이러스를 꿰뚫을 듯했으나 입술은 여전히 가벼운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대체 남의 발명품을 가져다 뭘 했길래 이 꼴이 됐는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고. 당신들의 세계 정복 계획 따위, 식상하고 재미없을 테니까.”
말할 듯 말 듯 본론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답답했다. 하지만 시더는 여유를 갖지 못하는 사이러스가 딱하다는 듯이 나직이 혀를 찼다.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있죠. 13년 후의 세상이나 헌터라는 집단이나, 내가 듣기에는 아주 비현실적이고 모순투성이란 말이에요. 당신들이 내 기계를 가지고 무슨 짓을 했길래 그런 세상이 됐는지…… 그런 건 정말로 안 궁금한데.”
그래서 대체 뭔데?
사이러스는 답답함을 감추지 못한 채 눈살을 찌푸렸다. 호선을 그리던 시더의 입술이 냉랭하게 다물렸다. 웃음기 없는 눈으로 물었다.
“돌아가면 어떻게 되죠?”
“무슨 뜻입니까?”
“모든 게 성공해서 당신 뜻대로 황금 발톱을 없애고 13년 후의 세계로 돌아간다면, 다리아는 아주 분노하겠죠?”
“이미 아주 분노해 있을 겁니다.”
“그래요. 그런 권력자가 아주 분노해 있을 거란 말이죠. 그럼 내 마법사가 보복당할 가능성은?”
다리아가 13년 후의 세계와 헌터들의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그토록 크다면, 보복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게다가 헌터는 던전을 공략해서 부산물을 얻고 사람들을 구하는 직업이다. 황금 발톱이 없어지고 던전도 사라진다면 헌터라는 직업은 존재 가치를 잃는다. 이미 기득권의 삶을 맛본 사람들이 그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일 리 없었다.
혼란을 진정시키기 위해 필연적으로 사이러스는 공적이 되고, 에스페란사도 같은 부류로 묶일 것이다.
13년 후의 세상은 에스페란사에게 위험하다. 시더는 그렇게 판단했다.
“에스페란사 본인은 괜찮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가족들은 어떨까요? 이미 보복이 시작된 건 아닌가요?”
그래서 에스페란사가 있는 자리에선 말할 수 없었다.
“난 확답이 필요합니다.”
* * *
심장이 정신없이 쿵쾅거렸다. 문에 기댄 머리가 혼미했다. 옷자락을 말아 쥔 채 조용히, 들리지 않게 숨을 들이켰다.
시더는 거의 비밀에 근접했다. 조금만 더 고민했다면 정답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틀린 추측을 했어.’
그건 그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다른 것보다 에스페란사의 안위를 걱정했기 때문이다. 13년 후로 돌아갔을 때의 안위. 그리고 가족들이 이미 보복을 당했을 경우,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받을 상처.
조금만 외면했다면 영원히 모르는 일로 남겨 둘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이별이 죽는 것과 같은 것처럼 말했으면서. 상관없다던 그때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지만, 또 온전한 진실도 아니었던 것이다. 문고리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거칠어진 숨을 애써 다잡은 에스페란사가 문을 열었다.
시더가 놀란 얼굴로 돌아보았다. 에스페란사는 힘겹게 입술을 끌어 올려 미소를 만들어 보였다.
“그건, 내가…… 내가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진실을 말하기에 적당한 때가 있다면, 결코 지금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은 말해야 하는 때였다. 궁지에 몰린 기분이다.
“어디부터 들었나요?”
“필요한 건 전부 다요.”
시더가 눈을 찡그렸다. 듣지 말라고 내보낸 걸 알고 있었고, 알면서도 들었다.
“……난, 보복당하지 않을 거예요. 다리아는 나나 내 가족한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할걸요. 그렇지?”
사이러스는 갑자기 제게로 넘어온 질문에 황급히 대답했다.
“네. 그럴 겁니다.”
시더는 가만히 에스페란사를 올려다보았다. 어느덧 고요해진 눈이 에스페란사의 시선에 얽혀 들었다. 시더의 손끝을 쥔 에스페란사의 손이 차가웠다.
“내가 이유를 물어야 할 차례인가요?”
“……다리아는 지금도, 13년 후의 세상에서도 아마 대단한 권력자겠죠. 헌터들을 움직일 수도 있고, 왕실이나, 아마 정부나 군부와도 관련이 있을 테고. 오스던에서 그만큼 강력한 인물은 손에 꼽을 거예요. 하지만, 그건 ‘이 세계’에서만이죠.”
그 말로 충분했겠지만, 에스페란사는 천천히,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움직였다.
“우린 다른 세계에서 왔어요.”
시더의 눈빛이 무슨 의미인 듯 가늠하다가 이내 유리 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지는 듯했다.
“사이러스와 다리아는 그 세계에서 ‘황금 발톱’이라고 하는 게임을 만들었어요. 우리, 헌터들은 이 세계에 게임을 하러 온 거예요. 우리는 대단한 사명감이나, 생계를 위해서 던전을 없애고 사람들을 구해 주지 않아요. 그냥 놀이일 뿐이에요. 진짜 삶은 이 세계 밖의 우리 세계에 있고. 거기서 다리아는 아마 돈은 많겠지만 우리 세계에선 마법사도, 대단한 권력자도 아니에요. 국적도 다른 나를 찾아서 해칠 수도 없고 그럴 여유도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마치 이 모든 이야기의 요점이 그것인 것처럼 말을 마쳤다.
“그러니까 나도, 내 가족들도 괜찮을 거예요. 다리아는 우리에게 보복할 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