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148
148화
두 마리의 말이 연구소를 지나쳤다. 늘 가던 마구간으로 향하던 말들이 잠시 헤맸지만 능숙한 기수들은 금방 말을 연구소 너머로 이끌었다.
작은 사냥용 오두막 앞에 말뚝이 있었다. 말을 묶어 둔 에스페란사는 오두막을 바라보다 고개를 기울여 말에서 내리는 시더의 얼굴을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여긴 시더의 아버지가 쓰던 오두막이었다. 사냥에 끌려다녔다고 했으니 시더도 종종 다녀갔을 텐데, 그는 오두막에는 관심도 없어 보였다. 에스페란사는 다시 오두막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편 말뚝에 자기 말을 묶은 시더는 에스페란사가 오두막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나로 성기게 땋아 내린 머리칼이 칼바람에 흔들거리면서 빨갛게 언 귓바퀴가 보였다. 몸을 감싼 망토 안쪽으로 다리를 감싼 가죽 바지와 군화와 비슷한 모양의 전투화가 보였다.
그 차림의 의미를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경계’였다. 상대는 사이러스겠지. 그래서 오늘 그는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버지가 쓰던 사냥용 오두막이에요.”
생각에 빠져 있던 에스페란사가 고개를 휙 돌렸다. 시더가 말을 걸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해서, 잠깐 멍청하게 입술을 달싹였다. 시더는 모르는 척 말을 이었다.
“난 안 쓰죠.”
“전에, 콜먼이 들어가는 걸 봤어요.”
잠깐 이것저것 다 불어 버릴까 싶었던 에스페란사는 시더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그쯤에서 입을 다물었다. 시더는 알 만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콜먼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는데 전부 일찍 죽어서, 아버지를 마치 아들처럼 키웠다더군요. 유독 아버지에게 애틋한 것도 그런 이유겠죠.”
시더가 콜먼의 무례한 행동들을 대강 넘기는 것도 그래서였다. 아버지의 죽음을 아들보다도 더 온몸으로 추모하는 집사가 귀찮고 피곤해도 완전히 밀어낼 수는 없었다.
“자기가 할 일만 잘한다면 취미로 아버지의 오두막을 관리하는 것 정도는 상관없어요. 안엔 별것도 없고.”
“안에 당신 어머니의 책장이 있던데.”
“들어가 봤어요?”
눈동자가 데구루루 굴렀다. 말하기가 민망한 이야기긴 했지만,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지.
“네……. 몰래. 살짝. 뭘 건드린 건 아니고요.”
“왜 난 몰랐죠?”
왜냐면 그 날, 말하는 걸 잊었기 때문이다. 잊었던 이유는. 뺨에 열이 올랐다.
“영지관리인이 왔던 날이라 나 혼자 왔으니까요. 숨기려던 건 아니고 깜박했어요.”
시더는 목을 울리는 낮은 소리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구태여 잊은 이유를 캐는 대신에 말을 돌렸다.
“어떻게 들어갔는데요?”
“……철사로 자물쇠 땄어요.”
“아하. 그런 것도 할 줄 아는군요.”
“헌터 일을 하다 보면 다 하게 돼 있어요. 아니면 애초에 폐가였던 에이번데일 저택엔 어떻게 들어갔겠어요?”
왠지 방어적인 대답이 나왔다. 폐가 문을 따고 들어가는 것 정도로 뭐라 할 것 같진 않았지만.
“하지만 아무리 폐가였다고 해도, 잠긴 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가는 건 당신답지 않은 일이네요.”
“원래는 당연히 그러지 않지만, 퀘스트였으니까요.”
“하긴, 가짜라고 생각하면 도덕적일 이유가 없죠.”
사실이 그렇다. 가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람이 죽고 다쳐도, 건물이 무너져도 괜찮았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고 돌아섰다. 시더가 그것을 비난한다면, 에스페란사도 할 말이 없었다.
모처럼 오가던 대화가 얼어붙었다. 냉랭한 침묵이 견디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기 전에 수풀 너머에서 인기척이 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마른 수풀을 헤치고 사이러스의 긴 그림자가 나타났다. 에스페란사는 일순간 그가 반가워질 지경이었으나, 사이러스의 손에 들린 것을 발견하고는 우뚝 멈춰 섰다.
사이러스는 손에 황금 발톱을 들고 있었다.
저번에 그 꼴을 보고도? 미친 거 아닌가?
“그거 당장 집어넣어!”
“마력이 닿지만 않으면 괜찮습니다.”
“그럼 더욱더 집어넣어야지! 저 창고 꼴 좀 봐, 안의 기계는 멀쩡할 것 같아?”
세 사람은 거의 동시에 창고를 바라보았다.
사실 창고라는 이름조차 감지덕지했다. 건물은 반쯤 무너진 상태였고, 성한 벽돌이 드문 데다 넝쿨에 둘둘 감싸여 있었다. 안으로 들어갈 수는 있는지, 들어가자마자 무너져 버리지는 않을지 두려울 정도였다.
일전에 시더가 5년 전 태풍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얘기해 준 적이 있었다. 정작 그때 그는 나인 호더에 있었다고 했지만.
“음. 그럼, 들어가기 전에.”
에스페란사가 입을 뗐다. 와, 이건 아닌 거 같아, 하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다행히 할 말도 있었다.
“거래 조건을 맞췄으니까, 너도 할 말이 있잖아?”
사이러스는 날카롭게 따라오는 에스페란사의 눈초리에 못 이겨 황금 발톱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제 인벤토리는 덕분에 난장판입니다.”
“내 알 바 아냐. 그래서?”
“……백작이 죽은 건, 연구소 안에서였습니다. 기왕이면 그게 좋지요. 닫힌 연구소 문을 억지로 열면 폭파되는 장치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시더를 돌아보자,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답을 해 줄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사이러스는 시더를 향해 흘긋 시선을 주었다가 무기질적인 어조로 말을 이었다.
“원래는 죽일 생각이었습니다만, 여기 와 본 이후로는 생각을 바꿨었습니다. 백작이 우리에게 협력했다면 살았을 겁니다.”
처음 연구소에 들어왔을 때의 충격이 떠올랐다. 21세기의 최첨단 기술과 비교해도 나쁘지 않았고, 가끔 어떤 것은 이쪽이 나은가 고개를 기우뚱하게 되기도 했다.
헌터의 세계에서도 기술은 꽤 중요한 요소였다. 게다가 시공간 기계의 문제도 있으니, 시더 클라이번을 산 채로 영입할 수 있다면 계획을 수정할 만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지.
“그러니까, 원래 계획대로라면 연구소에 있을 때 찾아올 거란 말이지?”
“그런 셈입니다. 하지만 백작을 처리하는 건 우선순위가 높은 일은 아닙니다.”
쉽다는 거야, 뭐야. 에스페란사는 괜히 자존심이 상해서 눈을 부라렸다. 사이러스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지금은 다른 일을 하느라 신경 쓸 여력이 없겠지요. 무엇보다…… 우리에겐 현실이 있으니까요. 지금은 바쁜 시기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었다. 어쩐지 일 처리가 느릿느릿하다 했지. 다리아는 상당히 급한 성격으로 보였는데, 그런 것치고는 그럴듯한 행보가 없었다.
갈리스턴 공작의 편지에 따르면 나름대로 건물도 짓고 해적들도 포섭하고, 일을 하기는 하는 모양이지만 결국 다리아가 직접 무언가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건물은 인부들이 짓는 거고. 포섭해 놓은 해적들도 알아서 시킨 일을 할 테고.
“현실 때문에 바빠서 여기 잘 못 넘어오는 사이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들을 시작해 놓았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이를테면 공부하는 동안 자동 전투 모드로 돌려놓는 것과 같은, 그런 말이었다. 허탈할 정도로 별것 아닌 이유였다.
“네. 빨리 해치울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때마침 새로운 일이 발생해서, 몇 달 미루었습니다.”
“당분간은 안전하다는 뜻이야?”
“일단은 그렇습니다. 최대한 이쪽 사람들에게 일을 맡겨 두고, 중간중간 찾아와서 꼭 해야 할 일만 하니까요. 그리고 저는 다리아 없이 혼자 넘어올 수가 없어서.”
자기 무능을 고백한 사이러스가 멋쩍게 웃었다.
“하지만 새해부터는 주의하셔야 합니다. 그때부터 백작을 추적할 테니까요.”
에스페란사는 황금 발톱과 연구소를 번갈아 보았다. 하지만 다리아가 황금 발톱을 이미 얻은 상태라면. 그리고 그 기계의 본체는 바로 저기에 있다면.
“다리아는 이미 연구소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 아니야?”
확인을 위해 시더를 돌아보자 그는 아, 하고 가벼운 탄성을 터뜨리고 말했다.
“일이 그렇게 되겠군요.”
사이러스는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다리아가 황금 발톱을 얻게 된 것은 정말 우연입니다. 그때는 그걸 다룰 줄도 몰랐고, 경황이 없었던지라 어디에서 얻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이 시기에도 모를 겁니다. 우리가 황금 발톱이 시공간 기계의 부품에 불과하단 사실을 깨달은 건 이곳에 와 본 이후였으니까요.”
시더를 살려 두려고 한 건 꼭 그의 발명품들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정리해 보자면, 새해가 되기 전까지는 안전하다. 그리고, 새해가 지나면 연구소로 찾아올 거다?”
“일단은 그렇습니다. 할 일이 있으니 중간중간 넘어와 보긴 하겠지만, 금방 돌아갈 겁니다. 어디까지나 일이 제가 알고 있는 과거와 같이 진행될 경우입니다만.”
변수가 둘이나 있으니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에스페란사가 옆에 있을 테니까…….
“아. 혹시 몰라서 백작이 죽은 날짜를 찾아 가지고 왔습니다.”
사이러스는 무뚝뚝한 얼굴로 인벤토리에서 수첩을 꺼내 펼쳤다.
“저와 다리아가 이곳으로 찾아온 게 2월 1일. 몇 번 백작의 저택으로 명함을 보냈는데 만나 주지 않아서 그냥 쳐들어온 게 2월 7일. 그 이후엔 잠깐 바쁜 일이 있어서 백작을 만난 건 2월 14일입니다.”
수첩을 탁, 덮은 사이러스가 시더와 에스페란사를 번갈아 보았다. 에스페란사는 멀뚱멀뚱 눈을 깜박이다가 물었다.
“그리고 만나자마자 죽였다고?”
“네. 백작의 의사가 확고했으니까요.”
그걸로 끝이었다. 에스페란사는 어쩐지 가슴이 조여드는 기분을 느끼며 시더의 낯빛을 살폈다. 그는 예상대로 별 타격이 없어 보였다. 뭐 좋은 소리를 들었다고 고개도 끄덕거리고 있었다.
‘나만 정상인이지.’
속이 터졌다.
“뭐. 좋아요. 그럼 들어가 볼까요?”
시더는 애초에 자기 죽음에는 관심도 없었던 듯 폐창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들어갈 거예요?”
“처음부터 들어갈 생각이었어요.”
시더는 에스페란사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여서 말을 이었다.
“실패작이라고 생각했던 연구가 사실 성공이라잖아요? 당연히 확인해 봐야죠. 어떤 연구자라도 같은 마음일걸요.”
말의 내용은 무던했지만, 귓바퀴를 스치는 입술에서 온도가 느껴졌다. 에스페란사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목덜미가 찬 바람에 언 귀 끝처럼 붉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시더의 눈동자에 얼핏 웃음기가 지나갔다.
오늘의 그는 확실히 에스페란사에게 상냥했다. 예전과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날을 세우지는 않았다. 변덕 같기도 했고, 웃기지도 않은 말싸움 이후로 조금 풀어진 것 같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에스페란사에겐 좋은 일이었다.
에스페란사의 귓가에서 입술을 천천히 떼어 낸 시더가 녹슨 문에 시선을 주었다.
“문이 잠겨 있긴 하지만.”
그 말에 괜히 귓바퀴를 매만지던 에스페란사가 문으로 다가가 자물쇠를 쥐었다. 인벤토리 안에 손을 휘저어 꺼낸 철사를 자물쇠 안쪽에 넣고 몇 번 찌르자 잠금은 금방 풀렸다. 하지만 녹슨 자물쇠는 문고리에 달라붙은 듯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이거 잘 안 되네.”
그 말과 동시에 자물쇠가 뻑뻑한 비명을 질렀다. 자물쇠를 힘으로 비틀어 버린 에스페란사가 녹슨 쇳덩이에 불과해진 것을 바닥에 던졌다. 쇳녹이 묻은 손을 바짓단에 닦으려는 것을 발견한 시더가 손목을 붙잡았다.
“왜요?”
한숨을 내쉰 그는 말없이 손수건을 쥐여 주었다. 사이러스가 뒤따라와 문을 억지로 비틀어 열었다. 누더기가 된 문짝이 열리고, 묵어 있던 과거의 공기가 바깥으로 밀려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