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151
151화
두 눈을 홉뜬 집사가 발을 동동 구르는 덴버 부인을 위협하듯 이를 갈며 물었다.
“뭐라고?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백작님이 왜 저 숲에……! 오늘 외출하셨다고 했잖습니까!”
“집에 아무도 없어서 외롭다고, 아침부터 가셨대요! 저도 이제야 들었어요. 이를 어쩌면 좋아요.”
발이 아릴 듯한 진동. 시커먼 아가리를 벌린 하늘. 휘몰아치는 마력의 바람과 그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터져나가는 건물의 파편. 콜먼이 비틀비틀 주저앉았다. 덴버 부인이 그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뭐 해요! 빨리 백작님을 찾아야죠!”
당시 백작의 시종이었던 찰스 밀런이 하인들을 이끌고 숲으로 달려갔다. 대낮에 횃불을 들고, 백작을 부르며 숲을 뒤졌다.
“거지도 안 입을 누더기를 입은 사람과 괴물 같은 산짐승을 보았다고 했는데, 밀런 씨 본인도 제대로 본 건진 확실하지 않다고 했지요. 그 사람도 그땐 거의 정신이 나가 있었으니. 그리고 전 백작님은…….”
백작은 살아 있었다. 하지만 부상이 심한 데다 발견이 늦었던 점이 치명적이었다.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절대로, 백작님의 기계 때문이라고는 하지 말라고요.”
문을 열고 들어오던 밀런이 묵직한 공기에 놀라 멈칫했다.
“전 몰랐습니다.”
뒷말만을 듣고도 상황을 짐작한 그가 재빨리 말했다.
“그랬을 겁니다. 밀런 씨는 전 백작님의 손을 잡고 맹세했어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아들에게조차도. 그 사람이 백작님의 사후에 사직한 것도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어요. 아시다시피 그는 비밀을 지키는 일에 그리 적합하지 않으니까요. 콜먼은 불만이 많았지만, 그도 결국 맹세했습니다. 다행히 제 차례가 오기 전에 백작님께서 돌아오셨죠.”
급보를 받고 도착한 시더는 아버지가 사고로 크게 다쳤다고만 알고 있었다. 그 상처가 덧나 죽음에 이를 때까지. 그리고 지금까지도.
창백하게 굳은 낯과 달리 영민한 머릿속은 아버지가 그런 거짓말을 해야 했던 이유를 쉬이 짐작했다.
날카로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에스페란사가 깜짝 놀라 커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아버지를 죽인 게 나라는 말이지.”
누구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시더는 눈을 지그시 내리감은 채 팔걸이를 꽉 쥐었다. 힘줄이 불거진 손등이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그 모든 폭풍이 속에서 휘몰아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 * *
문 앞에 선 에스페란사는 문고리를 쥔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밀고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시더는 에스페란사가 그런 말을 듣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는 체하지 않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예전이었다면, 그러니까 신뢰가 바스라지기 전이었다면 망설임 없이 문을 열 수 있었을 것이다. 시더는 오랫동안 혼자였다. 그에게 슬픔은 감내하는 것이지 나누는 것이 아니었다. 한 번쯤은 나누어 보는 것도 좋잖아, 하고 뻔뻔스레 나올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지금도 그런 마음으로 문 앞에 서 있지만…….
과연 그가 위로를 원할까? 아니, 시더가 에스페란사의 존재를 원할까?
신뢰는 깨졌고 애정은 기만당했다. 오늘과 같은 날을 에스페란사와 함께 보내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마음을 짐작도 하고 이해도 하지만 직접 듣고 싶지는 않았다.
발끝이 모여들었다. 무언가 심장을 쥐어짜는 듯했다. 문고리를 잡은 손이 축축해졌다. 긴장과 공포가 혼재된 눈앞이 흐릿했다. 그래도. 그래도…….
밀려나더라도 말이라도 해 보는 게 낫겠지. 거절당하는 아픔은 에스페란사가 감당하면 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시더는 한마디의 위로조차 없이 이 밤을 보내게 될 테니까.
그러나 역시 두렵다. 에스페란사는 눈을 질끈 감고 문을 두드렸다. 대답이 없었다. 못 들었나? 하고 문을 조금 열었다.
눈이 따가울 정도로 매캐한 연기가 방 안에 가득했다. 빛이라고는 탁상용 랜턴과 벽난로의 불밖에 없었다. 시더는 평소와 달리 안락의자에 깊이 앉아 아무것도 없는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끝에 달랑거리는 궐련 하나만 쥐고.
우아한 청동 골조로 된 재떨이 안에 반만 타들어 간 궐련이 가득했다. 개수를 세 보지는 않았지만, 양으로 보건대 방으로 돌아온 이후로 쉬지 않고 피운 것이 틀림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거품처럼 목 안에 피어올랐다. 에스페란사는 애써 그것들을 가라앉혔다.
“할 말 있나요?”
냉랭한 목소리가 연기와 섞여 탁하게 느껴졌다. 에스페란사는 약한 숨을 내쉬었다.
“당신이 괜찮은지 확인하고 싶어서 왔어요.”
“보시다시피.”
말끝에 비소가 묻어 있었다. ‘보시다시피’ 괜찮다고? 아니면 ‘보시다시피’ 엉망이라고?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 쪽이든 에스페란사를 반기지 않는다는 것만은 확실했지만. 적어도 아직 명확히 거절당한 건 아니었다.
문고리를 쥔 에스페란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교로 붙인 듯 달라붙은 입술을 억지로 움직였다.
“……내가 아직 당신을 위로할 수 있을까요?”
시더는 마지막 궐련을 대충 재떨이에 버렸다. 불씨가 뻐끔거리며 타들어 갔다. 알싸한 파오란 향에 질식할 것 같아도, 고작 궐련 하나의 열기일 뿐. 뚜껑을 덮자 금세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마음속의 열기는 뚜껑을 덮고 외면해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끝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인데도.
재떨이 뚜껑에 시선을 고정한 그가 돌연 짧게 웃었다. 감상에 빠진 머리로 비관적인 비유를 찍어 내는 꼴이라니. 어지간히 제정신이 아닌 게 틀림없다.
“당신이 뭘 할 수 있겠어요. 믿음이 없는데.”
긴 그림자가 에스페란사의 위를 삼키듯 드리웠다. 커다란 손이 뺨을 감쌌다.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와 달리 말에는 칼이 서려 있었다. 상처 입힐 것을 찾는 듯이. 그걸 알면서도 에스페란사는 그 손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겼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당신이라도 필요하니까.”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뺨을 덮듯이 쥔 손의 차가움과 부딪히는 입술의 뜨거움과, 마주치지 않는 시선과 녹아내릴 듯 얽히는 혀끝에서 그에게 아직 태워 버릴 감정이 남았음을 알 수 있었다. 기만당하고, 배신당하고, 타고 남은 재에 불과할 테지만, 비참하게도 고작 그런 것에 위로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에스페란사의 손이 시더의 뺨을 어루만졌다. 지우지 못한 연민이 묻어났다.
그가 오만하고 화려하고 드높을 때는 떠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외롭고 비참하고 서글플 때에는 옆에 있어 주고 싶었다.
마치 그 감정을 알아챈 듯 입술이 떨어졌다. 그러나 숨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떨리는 눈동자를 관찰하듯 바라보았다. 박제를 보듯 무감동한 눈빛으로.
“불쌍해요?”
“……아뇨. 그냥, 미안해서요.”
시더는 짧게 웃었다. 비웃은 것 같기도 하고.
“당신이 위로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안 될 것 같으면 나가라고 하면 돼요.”
그럼 에스페란사는 얌전히 문을 닫고 나갈 것이다. 한마디 항의도 없이. 참 쉽게도.
참 쉽게도 감정을 긁어내린다. 시더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좋아요. 어디 한번 해 봐요.”
그 말을 끝으로 시더는 보란 듯이 팔을 늘어뜨렸다.
“음…….”
막상 판을 깔아 주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해야 할 말들이 머릿속에서 빙빙 돌고 있는데 소리가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 머뭇거리고 있자, 시더가 혀를 찼다.
“아. 계획이 전혀 없었나 보죠?”
“있었어요! 있긴 했는데. 음. 막상 하려니까, 어색하네요.”
해 보라는 듯이 지켜보는 눈 앞에서 다른 것도 아니고 위로를 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게다가 협조도 안 해 주고. 위로라는 게 애초에 상대방이 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게 무슨 위로야, 발표지.
“무슨 계획이었는데요?”
“술이나 마시면서 얘기를 들어준다든지……? 아니면 샌드백이라도 때려 볼래요? 비슷한 건 있는데.”
그리고 그린 듯한 비웃음이 되돌아왔다.
“창의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계획이네요.”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빈정거릴 필요가 있나? 그럼 뭐 얼마나 대단한 계획을 가지고 왔어야 하는데?
‘그렇게 별로야?’
억눌렀던 감정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원래 위로는 이렇게 하는 건데. 자기가 위로에 대해서 뭘 안다고!
“애초에 위로에 창의성이 왜 필요해요?”
발끈한 티를 감추지 못한 에스페란사가 충동적으로 시더의 등을 끌어안았다.
팔 사이로 느껴진 시더의 등은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마치 에스페란사가 그를 처음 안았던 그 날처럼. 망설이던 손이 등줄기를 따라 천천히 쓸어내렸다. 어린 짐승을 달래듯이 조심스러운 손길에 바짝 긴장했던 근육이 조금씩 풀렸다.
순전히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뺨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당겨 안고 나니 기분이 이상하게 들떴다.
체온과 체온이 닿은 것이 얼마 만이었더라. 날짜로 세면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셔츠 너머에 닿은 살갗은 뜨거울 정도로 낯설었다. 입 안이 바짝 말랐다.
벽난로의 불씨 타는 소리가 고요한 방 안을 메웠다. 시더의 어깨 위에 턱을 괸 에스페란사는 언제고 그가 밀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긴장을 풀지 못했으나, 시더는 귓가에 가벼운 한숨을 흘려냈을 뿐, 에스페란사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반짝이는 머리칼이 뺨을 스쳤다.
“내가, 처음 당신을 멋대로 끌어안았을 때요.”
“네.”
낮은 대답이 돌아왔다. 온몸이 같이 울리는 듯했다. 에스페란사는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그때 내가 당신을 안은 건, 기쁨을 나눠 주기 위해서였잖아요. 그러니까, 이번엔 당신이 나한테 슬픔을 나눠줘도 될 것 같아요.”
“……궤변이군요.”
한참 후에야, 한층 더 낮아진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별로였나? 하지만 방금의 말은 진심이었다. 이곳에서 에스페란사는 달리 슬플 일이 없었다. 그러니까 시더의 슬픔을 조금 나눠 가져도 괜찮았다.
말이 별로였던 건…… 그건 어쩔 수 없지 뭐.
그렇게 생각하며 손을 다시 들어 시더의 등을 쓸어내리려는데, 문득 한쪽 어깨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석상처럼 굳은 에스페란사가 붕 뜬 손을 어쩌지 못하는 사이 어깨가 고요히 젖어 들었다.
흐느낌도 없었다. 여전히 방 안의 소리라고는 장작이 타는 소리와 시계 초침 소리, 그리고 에스페란사의 쉼 없이 달리는 심장 박동뿐이었다. 그러나 모든 감각이 일시에 멀어진 것 같았다. 오직 오른쪽 어깨에 느껴지는 무게와 뜨거운 눈물의 온도만이 선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