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젊은 에이번데일 백작은 혼자 기차 일등실 한 칸을 전부 차지한 채 객실 문을 닫아 버렸다. 테이블을 펼치던 밀런이 조용히 고개를 틀곤 혀를 찼다.
“들리는 것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역에서 산 신문과 나인 호더의 보좌관이 보내온 보고서가 가득 쌓였다. 시더는 심란한 눈으로 자리에 앉았다. 긴 손가락이 더러운 것을 만지듯 손끝으로 신문 가장자리를 집었다.
누런색의 신문에 커다란 글자가 박혀 있었다.
그보다 더 작은 글씨로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대파오룬 무역 항로가 봉쇄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하여간 이 나라는 자급자족하는 게 없단 말이지.”
지금껏 관심도 없었던 문제에 대해 가벼운 유감을 표시한 시더는 신문을 빠르게 넘겼다. 정치면에선 이 사태에 대한 온갖 유력 인사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경제면에선 어떤 무역 상사가 파오룬 해적에게 피해를 입었으며 가라앉은 배는 몇 척인지가 줄줄이 적혀 있었다.
배는 단위였다. 식민지에서 만족스러운 거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기업가들이 얻는 이익의 단위, 군인들이 가진 자부심의 단위, 혹은 그냥 단위. 배에 타고 있는 사람에 대해 조명한 기사는 단 한 칸이었다.
시더는 그 기사도 곁눈으로 넘겼다.
아침 일찍 역에 도착한 덕에 어제 자 신문과 오늘 자 신문을 모두 받아 볼 수 있었다. 오늘 자 신문에는 템프턴 내각 관계자가 뭐라 했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줄줄 늘어졌다.
요지는 그것이다. 식민지 무역 항로가 봉쇄됨에 따라 공급에 차질이 생긴 수많은 것들 중 필수품에 해당하는 몇 가지의 생산 시설을 국유화하겠다는 것. 뭐, 말은 좋다. 시더는 그런 문제에 간섭할 생각이 없었다. 거기에 마정석 광산이 들어있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자급자족도 안 되는 마정석을 효율 떨어지게 온갖 데에 때려 부어서 마도 문명이니 기술의 최첨단을 달리는 오스던이니 선전을 해 온 주제에, 지금 책임을 누구한테 돌리는 건가. 이런 류의 징집은 제대로 된 보상도 없다.
“밀런. 상원 의원 명단.”
시더는 만년필로 명단에서 열 명 정도를 추려 냈다. 망설이던 펜 끝이 추가로 세 명을 더 찾아내고 멎었다.
고작 열세 명이란 말이지. 그러나 사태가 길어지면 또 무엇이 징발의 대상이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니, 반대표를 던져 줄 사람을 찾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마도 공학 대학의 멍청이들을 쳇바퀴에 열흘쯤 굴리다 보면 그 열악한 효율을 개선할 방법을 토해 낼지도 모르지. 지금도 열심히 굴리고 있을 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정석 광산이 첫 번째 타깃이 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시더의 생각이 차츰 정리되었을 때, 밀런이 불쑥 물었다.
“백작님, 던바틴 공작가에서 묵으실 겁니까?”
“그래야겠지. 피할 수 있다면 피하겠지만.”
“피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까 들어오면서 옆 객실을 봤는데 옆 객실에…….”
밀런이 때맞추어 내놓은 소식은 시더의 기분을 한층 더 악화시켰다. 찌푸린 얼굴을 펼 생각도 않은 채 차츰 밝아지는 바깥에 시선을 고정했다.
에스페란사는 지금쯤 일어났을까? 말도 없이 사라진 시더를 향해 화를 쏟아 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굳었던 입술이 조금 풀렸다.
던바틴으로 갈 계획은 며칠 전부터 있었다. 다만 때마침 에스페란사와의 사이가 틀어져 말할 기회가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당연히 함께 왔겠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시더는 턱을 괴고 한숨을 내쉬었다.
쉬이 용서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관계의 뿌리부터 뒤흔든 기만과, 배려도 없이 쏟아부은 진실. 멋대로 품었다 힘없이 저버린 희망을 제쳐 두고 사실만 보더라도 지극히 모욕적이다.
그러나 더 끔찍한 것은, 그가 그 모욕을 어떻게든 용서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는 것이다. 그건 모멸감 그 이상이었다. 자존심이 꺾인 정도가 아니었다. 고작 그 포옹 하나로 모든 걸 용서하고, 아버지를 추모하는 눈물에 기만당한 분노까지 흘려버리려 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지.’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그는 자기 마음의 자리를 깨달았다. 무저갱 바로 위의 벼랑 끝. 한 발짝만 내디디면 끝이다.
대체 어쩌다가, 언제부터 이런 꼴이 된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모든 얼간이들이 그렇듯이, 그 역시도 다 늦어서야 겨우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였다.
이건 자기방어였다. 자기방어성 도피거나. 어느 쪽이든 꼴사나운 짓인 건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비록 편지에는 ‘내 생각을 많이 해 줬으면 좋겠어요’ 따위의 말을 적었지만 그는 되도록 에스페란사가 그의 행동을 곱씹지 않기를 바랐다.
“밀런. 식당칸에나 가 봐.”
시더는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들어오자 밀런은 이마를 인상을 찡그렸다.
“정말 제명에 못 사는 지름길입니다.”
“내 명이 그리 길지는 않을걸.”
밀런이 객실에서 나가자, 시더는 품 안에서 궐련을 꺼내 불을 붙였다. 피곤이 묻어나는 눈이 다시 보고서를 훑었다.
* * *
일주일 치 신문이 바닥에 쌓였다. 탁자 위에 있던 마지막 신문까지 그 위에 올려놓은 에스페란사가 몸을 늘어뜨렸다.
“다 봤다……. 피곤해.”
시더처럼 신문을 통째로 외우는 능력 같은 건 없었으므로 중요해 보이는 부분은 일일이 스크랩해야 했다. 수첩에는 키워드를 노란 색연필로 칠해 놓은 신문 기사가 빼곡했다.
에스페란사는 시더의 서재 의자에 앉아서 머리만 젖힌 채 눈을 깜박였다.
‘중요한 내용’이란 대체 무엇인가? 고등학생 때나 했던 고민에 빠졌다. 에스페란사의 스크랩북에는 그간 오스던 전역에서 일어난 큼직한 일들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었다.
파오룬 무장 독립운동 단체로 인한 해양 무역 봉쇄 논의, 템프턴 내각의 세금 정책, 연쇄 살인 사건, 농장 노동자의 노동 쟁의, 마력은 악마의 힘이라고 주장하는 단체의 공장 습격, 나인 호더 시가지 공사.
이 많은 일들을 전부 머릿속에 넣고 계산을 돌릴 자신은 없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때였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뭐지?’
가장 급선무는, 역시 시더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 저택의 사람들 중 아무도 시더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일이 있어서 갔다는 말을 믿어 본다면 그의 용무가 있는 곳에 그도 있을 것이다.
사이러스의 말이 맞다면, 그를 손톱만큼이라도 믿을 수 있다면, 당분간은 안전하겠지.
그다음 일은 원래의 목표대로 ‘황금 발톱’을 찾는 것. 그건 다리아가 나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일인데, 언제 나타날지는 사이러스가 알고 있을 것이다. 변수가 없다면.
그렇다면 이 많은 정보들 중 당장 시더의 ‘일’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것은, 영주로서는 농장 노동자의 노동쟁의 관련 문제. 하지만 시더의 영지는 에이번데일 시에 있다. 이 문제가 그를 괴롭히더라도 기차를 타고 다른 지역까지 갈 이유는 없다. 나인 호더엔 오지 않았을 테니 시가지 공사는 제쳐 두고.
‘공장 습격?’
이쪽은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급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뭔가가 퍼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에스페란사는 잠시 고개를 기울였다.
‘내가 이걸 왜 일일이 알아보고 있지?’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한테 얻으면 되는 건데.
물론 정보상에게는 진작 다녀왔다. 그 낡은 집에는 벌써 다른 사람이 들어앉아 있었다. 시체 썩는 냄새가 나는 걸 보아 장의사가 아닐까? 이제 빈민가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던 잭도 없는 마당에 새 정보상을 뚫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정보상을 찾는 방법을 모르는 건 아니다. 아직 갈리스턴 공작의 목숨값을 받지 못했으니, 이걸로 해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에스페란사는 갈리스턴 공작 저택으로 편지를 보내려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암호를 보내야 할 정도로 감시를 받고 있는 공작에게 편지가 제대로 갈 것 같진 않았다. 그렇다고 셔버리 공작 부인을 통하는 방법이 또 효과가 있을지, 언제까지 답을 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어머, 어디 나가세요?”
창문으로 몸을 내미는 에스페란사를 발견한 애니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에스페란사는 입가에 검지를 올렸다.
“걱정 마세요. 저녁 식사는요?”
고개를 끄덕이자, 애니는 들고 있던 수틀을 내려놓고 식당으로 향했다. 에스페란사는 후드를 깊게 내려썼다.
갈리스턴 공작의 궁전, 파인먼트 하우스까지 가는 발걸음이 차츰 빨라졌다.
* * *
경비가 삼엄했다. 티는 잘 나지 않았지만, 곳곳에 숨어 있는 눈과, 평범하게 일을 하는 듯 보이지만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은 고용인들.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된 거지?
공작에게 좋은 감정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딱할 지경이다. 이게 무슨 궁전인가, 감옥이지.
시야 한쪽 끝에 맵을 작게 켜 놓은 에스페란사는 머릿속으로 공작의 방이 아니라고 추정되는 곳들을 전부 제외했다. 일단 양쪽 날개는 아닐 테고. 1층도 아닐 테고. 그중에 이미 다녀가 봐서 미색으로 칠해진 방들도 아니다.
공작의 방이라면 적어도 바깥과 정원이 모두 보이는 위치에 있을 테니, 적당한 방은…….
빠르게 후보를 추린 에스페란사는 망설임 없이 담을 넘었다. 높다란 담장에 분명 공작이 설치한 것은 아닐 방범 센서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말이 방범 센서지 쥐덫에 가까운 흉물이었지만.
넓고 탁 트인 정원을 가로지르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에스페란사는 달리 방법을 찾지 못해 그냥 나무 사이로 발을 디뎌 가며 궁전 지붕을 탔다.
3층으로 내려와 발코니마다 옮겨 가며 조금씩 엿들어 보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설마 다리아가 공작에게 외출을 허락해 준 건 아니겠지? 에스페란사는 적이 더 철저한 인물이길 기도하며 발코니 난간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이윽고 정중앙에 위치한 방에 도착했을 때. 희미한 말소리가 들렸다.
“다시 한 번…… 목숨이…… 주의하십시오.”
“알겠네.”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힘없는 목소리였다. 분명 울리는 듯이 낮은 목소리는 갈리스턴 공작 에드먼드의 것이 틀림없었지만, 한순간 다른 사람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상대는 감시자인 것 같았다. 중간중간 끊어져서 문장의 내용을 짐작할 수 없는데도 고압적인 태도가 느껴졌다. 감시자는 할 말을 끝내고 나서도 방을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애초에 방에서 일거수일투족을 지키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공작과 독대하기 위해서는 감시자를 제거해야 한다는 말인데.
에스페란사는 잠깐의 고민 끝에 복도 반대편 발코니로 넘어가 무언가를 방 안으로 슬쩍 밀어 넣었다. 곧이어 방 안에서 폭발하는 소리가 났다. 갑작스러운 폭발음에 감시인이 잠시 사라진 사이, 에스페란사는 발코니 문을 두드렸다.
갈리스턴 공작 에드먼드는 이 느닷없는 방문에도 놀란 기색이 없었다. 그는 마치 스스로 초대한 방문자를 맞이하듯 창문가로 걸어와 발코니를 열고는 에스페란사를 깜깜한 방 안으로 안내했다. 램프 하나 켜 두지 않은 상태였다.
“오랜만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