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고 굳이 굳이 강조한 켄드릭이 상황을 짧게 설명했다.
그러니까, 에스페란사가 신문에서 보았던 이야기들이 대충 하나의 쟁점으로 연결되는 것이었다.
파오룬 해적이 해로를 봉쇄해서 상선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그 덕에 식민지 무역에 차질이 생겨 필수품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중이다. 곡물이나 공산품의 원료 같은 것들도 모두 문제가 되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마정석이다.
물론 오스던에도 광산은 넘치도록 있었다. 매장량을 따지자면 백 년은 거뜬할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라는 것이 참으로 애매했다. 한 번에 캐는 마정석의 양을 늘릴 수도, 그렇다고 속도를 높일 수도 없는 것이다. 마정석 광산의 위치나 지질학적인 문제가 복합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문제니까, 이 부분은 넘어가고.
아무튼 빠르게 마도 문명을 건설하고 온 세계에 ‘마도 제국’이라는 이름을 선전하고 있는 오스던은 부족한 마정석을 식민지 무역으로 채우고 있었다. 인즉슨, 헐값에 강도질 중이라는 말이지.
그리고 지금 바로 그 파오룬에서 오는 상선이 죄다 막혀 버렸다. 하늘길이야 열려 있었지만 비행선은 증기선에 비해 마력도 많이 들고 한 번에 적재할 수 있는 양도 적었다. 운행해 봤자 손해였다.
마정석이 아예 부족해지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큰 문제는 돈이었다. 당장 국영 시설들과 정부 청사들, 공기 청정 비행선과 전국을 누비는 증기기관차를 대체 무슨 돈으로 돌릴 것인가? 적어도 식민지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제국이라는 오명을 써서는 안 되지 않나?
그래서 내각에서 급하게 논의 중인 것이 마정석 광산의 국유화였다. 물론 일시적인 것이고 보상도 해 줄 거라고 했지만, 마정석 품귀 현상으로 인해 천정부지로 치솟을 값에 비하면 반값이나 제대로 쳐 줄까.
“다른 영주들은 그렇다 쳐도, 에이번데일은 자기 영지 광산에서 나는 희귀 마정석을 연구용으로 납품받고 있었을 테니 그 문제도 남아 있겠지요.”
켄드릭이 내키지 않는 듯 털어놓은 말에 에스페란사의 머리도 오랜만에 맹렬한 회전을 시작했다.
에이번데일 시 외곽의 광산. 거기서 ‘황금 발톱’의 재료가 된 마정석이 발견되었다. 만약 그러한 마정석이 또 존재한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도 바로 그곳이다.
그걸 국가가 빼앗아 간단 말이지.
누구 맘대로.
“그런데 식량이 더 중요하지 않아요? 왜 마정석부터예요?”
“음식은 다른 것으로 대체가 되니까요.”
과연 그럴까? 에스페란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지만 그 이상의 대답이 나올 것 같진 않았다.
“아무튼, 드릴 말씀은 이걸로 끝입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정보는 전부 드렸으니 이런 위험한 거리에 드나들진 마십시오. 저도 일이 아니라면 굳이 발걸음하고 싶은 곳은 아닙니다.”
“아까 말한 아동 납치 사건 얘기도 이 문제와 관련이 있나요?”
“흔한 인신매매 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만, 숙녀분이 아셔야 할 일은 아닙니다.”
관련이 없다면, 구태여 캐물을 필요는 없었다.
“하나만 더 물어도 될까요?”
“말씀하십시오.”
켄드릭은 내키지 않는 얼굴로 그렇게 대답했다. 에스페란사는 그의 얼굴에서 과거에 보이던 철없는 열정이 씻겨 내려간 것을 확인하고 전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펄즈베리 후작의 아드님이신데 어떻게 펄즈베리 자작인가요? 같은 영지에 작위가 두 개인 건가요?”
잔뜩 긴장했던 켄드릭의 얼굴이 멍청해졌다.
“아…… 간단히 말하자면 백 년 전 기재 오류 때문인데, 나름대로 역사가 돼서 그대로 두는 중입니다.”
역시 별거 아니었군.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켄드릭은 정말 내키지 않는 태도로 말끝을 끌었다.
“예, 뭐, 그러십시오.”
“본인이 좋아하는 여자보다 안 좋아하는 여자한테 더 인기가 많은 편이지 않나요?”
“……예? 잠시만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미스 헌터!”
에스페란사는 어깨를 으쓱이며 켄드릭을 지나쳐 갔다. 순식간에 골목 사이로 사라져 버린 에스페란사를 따라 뛰어가던 켄드릭이 귀신 들린 듯한 얼굴로 멈춰 섰다.
“어디로 간 거지?”
그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 에스페란사를 찾아 골목을 뒤지는 대신 털레털레 증기 마차로 돌아왔다. 다른 숙녀였다면 몰라도, 에스페란사는 위험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모로 수상한 숙녀였다.
나름대로 진지하고 열정적인 관심이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도 언제까지 신분도 불확실하고 평판이랄 것도 없는 숙녀에게 구애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후견인인 에이번데일의 미온적인 태도도 영향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어쨌든 잘한 선택이다. 저 숙녀는 레이디 펄즈베리가 되어 줄 것 같지도 않았고, 그는 금방 다시 열정을 퍼부을 만한 좋은 숙녀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어떻게 알았지?”
얼마 전에 춤을 신청했던 어떤 아가씨에게 정확히 같은 말을 들었던 켄드릭은 머리를 긁적였다.
* * *
저택으로 돌아온 에스페란사는 다시 생각에 빠졌다.
켄드릭에게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시더가 다리아의 일에 휩쓸린 것 같았다.
파오룬의 무장 독립운동 단체는 주로 소수로 움직일 수 있는 요인 암살이나 해상에서의 게릴라전을 선호한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 이상의 자본도 무력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최신식 군함을 가진 오스던 해군을 상대로 해상을 봉쇄할 힘이 갑자기 어디서 났을까?
공작이 보냈던 편지가 떠올랐다. 다리아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파오룬 해적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오스던 정계에 큰 파란이 일었다. 의회가 내각을 불신임한 것이다. 템프턴 수상은 책임을 지고 의원직에서도 사퇴했다. 그 이후로 정계가 어떻게 돌아갔는지, 파오룬 합병의 일등 공신인 레이먼드 템프턴을 정계에서 물러나게 한 사건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다만 에스페란사가 확실히 아는 건, 수년 후에 템프턴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시기가 대략 헌터들의 등장 시기와 맞물린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다리아로서도 슬슬 왕실 길들이기를 끝낼 때가 되었다. 에드먼드 새턴의 얼굴이 오색 빛으로 너덜너덜한 것을 보니 지금쯤 여왕의 정신 상태도 멀쩡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리아는 왕실을 이용하고 싶은 것뿐 무작정 괴롭히고 싶은 건 아닐 테니, 이제 당근을 던져 줄 때가 되었지.
‘……맞나?’
그 혈통주의로 꽁꽁 뭉친 집단은 좀 재수 없긴 했다. 아무튼.
그럼 다리아는 왜 템프턴 수상을 실각시키려고 하는가? 단지 왕실 때문에?
거기서 생각이 막다른 길에 부딪혔다. 수년 후에 다시 불러들일 거면서, 굳이. 차라리 깔끔하게 죽이려고 한 것도 아니고, 구태여 이 세계의 방식으로 그를 몰아낼 이유가 없었다. 왕실에 공을 돌리려고? 왕실은 이 일련의 사태에 자기들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들키면 안 되는 입장이다. 아니면 반대로 약점을 잡으려고? 이제 와서 약점을 또 잡을 이유가 없지.
시더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제 그 역시 에스페란사가 숨기던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에스페란사는 시더가 결론을 내는 방식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알았더라도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고민 끝에 에스페란사는 침대에서 일어나 시더의 서재로 향했다.
작은 등불 하나만 들고 들어간 서재에서는 냉기가 풍겼다. 사람이 오래 머물지 않았던 공간 특유의 냉기. 에스페란사는 시더가 늘 앉던 안락의자에 몸을 묻었다. 2층까지 빼곡히 꽂힌 책들이 머리 위로 당장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잠긴 연구실 문을 바라보던 에스페란사는 인벤토리에서 꺼낸 시더의 편지를 한 손에 꽉 쥐었다.
지금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다리아가 저지르는 모든 일들의 목적이 게임을 만들어서 돈을 버는 것이라고 생각해 보자.
머릿속에서 시더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묻는 것 같았다. ‘그런 세상을 만들 때 템프턴 수상 같은 인물이 도움이 될까요?’
아니지.
게임을 만들기 좋도록 오스던을 적당히 재구성할 때 템프턴처럼 다루기 힘든 인물이 권력을 쥐고 있으면 곤란할 것이다. 왕실 말을 잘 듣는 조금 멍청하고 순종적인 인사를 데려다 꽂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웬만해서는 템프턴 내각의 지지율은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그래서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귀가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이건 전부 에스페란사의 추측일 뿐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같이 고민해 줄 사람이 있으면 좋을 텐데. 시답잖은 말장난과, 웃음과, 체온과, 조금 헤매더라도 답으로 이끌어 주는 손이 있으면 좋을 텐데.
에스페란사는 멍하니 무릎을 모은 채로 눈만 깜박였다.
혼자 생각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쉽지 않았다. 이곳에 떨어진 후로 에스페란사는 크고 작은 일을 모두 시더와 함께 나누었다. 시더의 커다란 서재를 차 내음으로 가득 채우며. 그러나 지금 이 서재에는 메마른 냉기뿐이다.
틀린 추측을 던지더라도 바로잡아 줄 사람, 눈앞이 깜깜하도록 곤란한 상황에도 붙잡아 줄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없다는 것.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에스페란사는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 눈을 감았다.
그 후 며칠 동안은 몸이 축 가라앉은 상태였다. 냉골에서 잠든 탓에 감기라도 걸린 건지, 이상할 정도로 무기력했다. 헌터의 몸이 감기 따위에 앓을 리 없건만.
생활 루틴을 지킬 필요성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멍하니 앉아서 시더의 편지를 읽고 괜한 분노를 키우다가, 세상에 버림받은 것처럼 서러워지기도 했다. 이 저택 안에서도 갈 곳이 없어서 방 안을 맴돌았다.
‘할 일이 없는 걸 어떡해.’
시더의 행방을 찾는 일은 정보상에게 맡겨 둔 상태고 지금 에스페란사가 가진 정보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었다.
……변명을 해 보아도, 결국 기분 탓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할 일이 없다고 정말로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에스페란사는 다소 수척해진 얼굴로 비틀비틀 문을 열었다. 날씨가 좋은 날이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가자 엉망진창이던 기분이 조금 들떴다.
그렇다. 벌써 겨울이었다.
잠깐만. 좋아할 일이 아닌가? 에스페란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홀 끝에서 바쁜 발소리가 다가왔다.
“어머, 아가씨. 일어나셨네요? 몸은 좀 괜찮으세요?”
럭스 부인이 반색하며 다가왔다. 손에 든 창고 열쇠가 짤랑거렸다. 에스페란사는 머쓱하게 뺨을 쓸며 웃어 보였다.
“그냥 감기였어요. 괜찮아요. 괜한 걱정을 끼쳐서 어떡하죠?”
“별말씀을 다 하세요! 살이 쪽 빠지신 것 좀 보세요. 백작님이 보셨으면 얼마나 기가 막히셨을까?”
그 인간이 있었으면 살이 빠질 일이 없었겠지.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다친 데는 없으려나…….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겉으로는 그냥 웃었다. 그러자 럭스 부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역시 두 분 사이에 뭐가 있기는 있군요? 그럴 줄 알았어요. 늙은이 눈은 못 속이죠.”
한 달만 일찍 이야기했으면 좀 더 기쁘게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입 안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