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168
168화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에 애니가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
“어, 이거 소리가 나는 거였나? 어떻게 쓰는 거죠?”
“호텔 관리실과 연결되어 있을 텐데요.”
코델리아도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러나 쓰는 방법을 모르기는 이쪽도 매한가지였다. 여행을 가도 늘 하녀를 대동하고 친척 집에 머무르던 코델리아는 아주 어릴 때 빼고는 호텔을 이용해 본 적이 없었다.
“옆에 설명이 있는데. 그러니까 눌러야 되는 게 이건가?”
발판에 발을 얹은 코델리아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악, 악, 누르지 마세요! 호, 혹시 모르잖아요.”
“대체 뭣들 하는 거예요?”
결국 벨 소리를 참다못한 에스페란사가 다가왔다. 어찌나 시끄러운지 생각을 이어 갈 수가 없었다.
여전히 쩌렁쩌렁 소리를 내고 있는 기계는 거대한 호출기나 다름없었다. 파이프라인을 통해 1층과 연결되어 있었고, 뭔가 신호가 도착하면 소리가 나는 형태인 것 같았다. 에스페란사는 고개를 망설임 없이 레버를 당기고 옆에 걸려 있던 수신기를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1201호 고객님. 관리실에서 연락드립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수신기 안쪽의 직원이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쉽게도 이쪽에서는 목소리를 전달할 수 없는 구조였다. 코델리아와 애니가 눈을 반짝이며 에스페란사가 연락을 받는 모습을 구경했다. 잠시 후 수신기를 내려놓은 에스페란사가 레버를 원위치시켰다.
“이런 걸 써 본 적 있어요? 어쩜 그렇게 능숙해요?”
써 본 적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 시대에선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최첨단 기술이지만, 13년 후의 오스던 호텔만 해도 이것보다 훨씬 세련된 기계를 사용했다. 그 13년 후의 기술조차도 원래 세계에서 쓰는 인터폰이나 전화기보다는 훨씬 복잡하고 조잡한 형태였다. 시대와 기술력의 차이가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어쨌든, 기계 사용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대단한 숙련자가 아니라도 이 정도는 짐작하기 마련이다. 설령 휴대폰으로 퍼즐 게임이나 하는 수준이라고 해도.
에스페란사는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고는 애니가 정성스레 걸어 놓은 겉옷을 몸에 걸쳤다.
“내려가 봐야겠어요.”
“무슨 일이 있어요?”
코델리아가 동그란 눈으로 물었다.
“밀런이 와 있대요.”
“밀런 씨가요? 아가씨 기분도 안 좋으신데, 왜 온 거람? 아가씨, 제가 대신 다녀올까요?”
“고맙지만 됐어. 내가 다녀올게.”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왔는지, 자세한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밀런은 대체로 무심하고 정해진 선을 넘지 않는 사람이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할 리가 없었다. 그러니 구태여 거리가 꽤 있는 호텔까지 찾아올 경우의 수는 하나뿐이었다.
복도로 달려 나간 에스페란사는 승강기가 올라오는 시간을 기다리다 못해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다. 잠시 망설이던 애니가 뒤따라 방을 나섰다. 같이 나가려던 코델리아는 에스페란사가 거의 미끄러지듯이 계단을 내려가는 걸 보고 포기했다. 애니처럼 늦게나마 계단으로 뒤따라 갈 엄두도 나지 않았고, 승강기를 기다려 1층에 도착할 때쯤이면 이미 에스페란사는 할 일을 끝내고 방에 돌아와 있을 것 같았다.
머리칼이 붕 떴다 가라앉았다. 7층에서 내려가던 승강기 문이 열림과 동시에 에스페란사가 1층 바닥을 밟았다. 호텔 로비에는 젊은 신사처럼 단정히 차려입은 밀런이 서 있었다. 몇 시간 만에 다시 보는 것임에도 태도에 머쓱함이 전혀 없었다.
“다시 뵙습니다, 에스페란사 아가씨.”
“무슨 일 있어?”
인사도 무시하고 대뜸 튀어나온 질문에 밀런은 이마를 찡그렸다.
“무슨 일이라니요?”
아무 일도 없는데 네가 올 리가 없잖으냐는 얼굴로 팔짱을 낀 에스페란사가 턱짓했다. 밀런은 그만 그 모습에 오래 모신 주인을 겹쳐 보는 무례한 짓을 하고 말았다. 애써 생각을 숨긴 채, 그는 품 안에서 봉투를 꺼냈다.
“백작님께서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무슨 사택인가 하는 곳, 여기서 마차로 기껏해야 20분인데.”
밀런은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그렇습니다.”
그래, 시종을 추궁해 봐야 뭘 어쩌겠는가? 거리가 그렇게 짧은데도 시종을 대신 보낼 만큼 시더 클라이번이 에스페란사가 꼴도 보기 싫은가 보지. 에스페란사는 체념한 채로 시더가 보냈다는 봉투를 받아 조심히 열었다.
편지라기에는 짧았다.
행방을 감춰? 누가 누구한테? 이 인간은 편지를 쓰면 유독 양심이 증발하는 것 같다. 에스페란사는 자리에 없는 시더 대신 밀런을 한번 노려보고 다시 편지로 시선을 내렸다.
다음 문장은 마음의 준비도 없이 들이닥쳤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 꼴도 보기 싫어서 떠났는데 예상치 못한 시점에 마주쳤으니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에스페란사는 괜스레 더 스스로를 혹독하게 몰아붙이며 입술을 다물었다. 눈이 그 문장에서 막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 억지로 시선을 끌어내렸다.
영영 안 보겠단 말은 아니었다. 그러지 않을 거란 건 알고 있었지만, 내심의 불안감이 조금 가라앉았다.
에스페란사는 이마를 일그러뜨렸다. 우는지 웃는지 모를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머, 아가씨……?”
이제 막 1층으로 내려온 애니가 벌어진 입을 가리며 에스페란사를 불렀다. 에스페란사는 호텔 관리실로 달려가 펜과 종이를 빌렸다. 호텔 로고가 박힌 따분한 종이 쪼가리에 대충 글을 휘갈겼다. 시더 클라이번의 편지가 짧지만 그래도 편지의 형태를 갖추었던 것에 비해 에스페란사의 것은 메모에 가까웠다.
잉크가 마르자마자 대충 접은 종이를 가지고 나왔다.
그사이 애니와 뭔가 속닥거리던 밀런은 종이를 건네받자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너 저 사람이랑 무슨 말 했니?”
“그냥 안부 인사였어요. 평범하고 정상적인 안부 인사요.”
“밀런이랑? 안부 인사?”
에스페란사에게는 평범하고 정상적인 안부 인사 따위를 건넨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고용인들하고 있을 때는 또 다른가? 하기야, 밀런의 태도 따위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에스페란사는 손안에 남은 편지를 내려다보았다.
잠깐만.
황급히 다시 편지를 펼쳤다.
혹시 이 의뢰가, 정찰용 오토마톤인가?
만약 그렇다면, 조금 성급하게나마 결론을 낼 수 있다. 시더가 오토마톤을 다 만들면 군함이 출항한다. 그리고 군함이 파오룬 해적들의 배와 만나면, 던전이 나타나 그들 전부를 삼킬 것이다.
그 말은, 던전이 나타나는 때를 이쪽에서 정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 * *
밀런은 바쁘게 호텔과 도노반 중령의 사택을 오갔다. 이럴 거면 그냥 두 분이 만나시는 게 어떻겠냐는 충심에서 우러나는 조언을 드리기도 했으나, 오만하기 짝이 없는 백작은 시종의 충심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 먼지 풀풀 날리는 사택 내의 서재를 연구실 삼은 시더 클라이번은 편지를 받고 답장을 쓸 때가 아니면 연구실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밀런은 편지를 전하러 가면서 하녀들에게 식사를 만들어 놓도록 지시하고, 답장을 받아 오면서 만들어 놓은 식사를 답장과 함께 들이밀었다. 시더는 일과에 식사 시간을 비워 두지 않았으므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물만 마시고 연구에 몰두했을 것이다.
‘이렇게라도 연구실 밖으로 나오는 게 낫기는 하지.’
밀런은 달갑잖은 마음으로 자신의 소임을 받아들였다.
“또? 쉬는 시간도 없겠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잠시 돌아왔던 에스페란사가 마뜩잖은 얼굴로 밀런을 맞이했다. 그러나 귀찮음이 묻어나는 표정과는 달리 밀런의 손에서 시더의 편지를 빼앗는 움직임은 경쾌했다.
서너 걸음 뒤에서 따라오던 코델리아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내저었다. 알라스테어와 그가 샤프롱 겸으로 데려온 알라스테어의 사촌 부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주는 코델리아의 목소리는 명백히 김이 빠져 있었다.
“저렇다니까요. 흥, 나랑 여행을 온 건지, 로드 에이번데일이랑 여행을 온 건지. 만나지도 않으면서 하루에 몇 번씩, 저게 무슨 짓이람!”
차마 동조해 주지 못한 알라스테어가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현명한 반응이었다. 알라스테어가 코델리아의 불평에 동조해 에스페란사의 행동을 비판했다면 코델리아를 언짢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스페란사는 편지 봉투를 뜯느라 정신이 없었다. 처음 받은 편지 봉투보다 훨씬 질 좋은 종이로 만든 봉투가 거침없이 뜯겨 나갔다.
첫 편지를 주고받은 이후, 그들은 고작 증기 마차로 20분 거리에서 불쌍한 시종을 우편배달부 삼아 수시로 편지를 주고받고 있었다. 사실상은 쪽지에 가까웠다. 그들 사이에 팩스라도 있었다면 쉬지도 않고 종이가 뽑혀 나와 산처럼 쌓였을 것이다.
무심코 덧붙인 추신 한 줄. 여기서부터 치졸한 다툼이 이어졌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이번 편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