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17
17화
시커먼 라이딩 후드 밑에 드레스 자락과 구두 대신 시커먼 가죽 군화가 드러나자, 고양이를 본 쥐 떼처럼 뒷골목의 건달과 소매치기들도 여기저기로 숨었다. 에스페란사는 나름대로 청정한 거리를 걸으며 맵으로 위치를 확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저기 있다.
에스페란사는 잔상만 겨우 보일 정도로 움직였다. 소매치기를 했는지 누가 봐도 자기 것이 아닌 주머니를 품에 갈무리하고 걸어가던 잭이 흠칫했다. 시커먼 것이 지나간 것 같은데.
“잘못 봤나?”
“아니?”
“으아아아악!”
벌러덩 엉덩방아를 찧은 잭은 그 와중에도 자기 몸을 살피는 대신 돈주머니를 끌어안고 있었다. 조금 미안해졌다. 원해서 이런 일을 하는 건 아닐 텐데.
“날 잊어버리진 않았겠지?”
“누구, 헉.”
잭은 주저앉은 채 숨을 들이켰다. 사신처럼 시커먼 후드 아래에는 해골 대신 고운 숙녀의 얼굴이 있었다. 잭의 시선이 선명한 분홍빛 입술에 꽂혔다. 저 입술이 웃던 모습을 기억했다. 어떻게 잊겠는가? 자다가도 불쑥 튀어나와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곤 하는데.
“벌써 잊어버렸어?”
“아, 아뇨. 안 잊어버렸어요!”
잊어버렸다고 하면 도저히 잊을 수 없게 뇌리에 단단히 새겨 줄 것 같았다. 잭은 엉덩이를 뒤로 슬금슬금 빼며 대답했다. 그마저도 후드 아래에서 오른발이 쑥 내밀어지자 굳은 것처럼 멈추었다. 서른두 명의 장정을 단숨에 해치운 여자다. 절대 도망갈 수 없다.
“내 얘기, 누구한테 하고 다닌 것 아니지?”
“안 했어요. 진짜예요. 안 했어요!”
“그럼 됐어. 일어나지그래.”
시커먼 후드와 대비해 더욱 창백해 보이는 손을 내민 에스페란사가 잡으란 듯 턱짓했다. 잭이 덜덜 떨며 더러운 손을 내밀었다.
“잡으면, 더, 더러워질 텐데.”
“괜찮아. 그게 신경 쓰이면 여기까지 안 왔지.”
그 말도 맞는 말이었다. 적어도 허튼 말을 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지르는 검격에 군더더기가 없었듯.
잭의 마르고 작은 손이 에스페란사의 손 위에 얹어졌다. 에스페란사는 힘을 주어 잭을 일으키고, 아이가 중심을 잡고 초라한 멜빵 바지를 터는 것까지 기다려주었다.
“네게 부탁이 있어.”
“……그때 그거요?”
“응. 정보상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지?”
“어디 있는지는 알지만, 위치만 알아요. 정말이에요.”
‘잭의 쪽지’에는 정보상들끼리 지키는 원칙들이 나와 있었다. 기본적인 것들을 지키면 적어도 쫓겨나거나 공격당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다음부터는 돈이 결정한다.
그리고 에스페란사는 돈이 꽤 많았다.
“어떤 정보상으로 안내해 드릴까요?”
여전히 겁이 나는지 손을 꼼지락거리던 아이가 물었다.
“정보상에도 종류가 있나?”
사실 에스페란사는 직접 정보상을 이용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신문팔이 잭이 안내해 주던 대로 갔었고, 충분한 정보를 얻었다. 한 번 뚫고 나면 잭을 통해서 연락을 받았다.
“‘이런’ 쪽은 취급하는 사람이 따로 있거든요.”
아이가 손가락으로 목을 그으며 혀를 삐죽 내밀고 눈을 뒤집어 깠다.
‘대체 얘가 날 어떻게 본 거지?’
안 물어봐도 뻔하긴 하다. 에스페란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잭, 네가 그립다…….
“그런 거 아니니까, 평범한 정보상으로 안내해.”
“앗, 넵.”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나갔는지 뻣뻣한 걸음으로 앞장섰다.
물론 에스페란사는 잭을 다 믿지는 않았다. 지금도 썩 수상한 게, 제 패거리가 있는 쪽으로 안내해서 공격하려 들 수도 있다. 그러면? 다 죽이고 나오면 된다. 그때까지도 거짓말을 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보지 뭐.
저번엔 죽이진 않았지만 기왕이면 죽이지 않고 해결하고 싶었던 것이지, 죽일 줄 몰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헌터로 사는 것은 죽음을 등에 업고 사는 것이다. 뜨거운 핏물이 몸에 튀고, 눈에 빛이 꺼져 가는 모습을 수도 없이 보았다. 무뎌질 만큼 수도 없이. 모두 가짜일 뿐이지만. 지금 눈앞의 이 광경처럼.
강렬한 보라색 눈이 문득 흐려졌다.
앞장선 잭은 덜덜 떨면서 걸음을 옮겼다. 살기를 갈무리하고는 있어도, 예민한 소매치기 소년은 그 잔상을 느끼고 긴장했다.
오토마톤보다 더 삐걱거리는 걸음으로 걷는 소년과 발소리는커녕 발자국 하나 남지 않은 채 소년을 따라가는 시커먼 후드.
남들에게 줄 관심 없이, 자기의 하루 벌이가 중요한 빈민가 사람들조차 한마디씩 수군댈 정도로 기묘한 조합이었다. 그들 중 반은 검은 후드의 존재를 인식조차 못하면서 흘끔거렸다.
“어이, 잭. 너 괜찮냐?”
“괘, 괜찮아요.”
목이 졸린 것처럼 대답한 소년은 다시 앞만 보고 걸었다. 무시당한 것 같아 주먹을 들어 올리려던 남자는 시커먼 후드를 보고 흠칫해서 손을 내렸다.
“여기예요.”
의외로 상당히 번듯한 건물이었다. 얼터 지구의 건물이니 낡고 허름한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에스페란사가 신문팔이 잭의 안내를 따라 처음 찾아갔던 정보상은 시끌시끌한 바였는데, 이곳은 쥐새끼 한 마리 얼씬할 것 같지 않게 조용했다.
정보상은 보안이 생명일 텐데 이런 곳에서 일해도 되나?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끼이익. 귀곡성 같은 소리를 내며 열린 문 안쪽은 무저갱처럼 검었다.
“잭이구나.”
잭이 흠칫 떨며, 무려 에스페란사의 뒤로 숨었다.
그보다 대체 어디서 말하는 거지? 에스페란사는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으며 한 걸음 더 들어갔다.
“저, 저는 이제 가 봐도 돼요?”
눈이 가늘어졌다. 얘를 믿어도 되나?
“기다리지 그러니. 손님의 용건이 끝나고 나면 데려다드려야지. 길을 잃으시면 안 되니까.”
“네, 네.”
“들어오세요. 홍차라도 드시겠어요?”
나긋나긋한 말투. 그러나 귀족들의 권태로운 나긋함과는 다르다. 의무적인 친절을 한 겹 덮어쓴…….
‘콜센터?’
딱 그런 느낌이다. 잭을 대하는 목소리는 억지로 보육원 봉사를 나온 어른 같았고, 에스페란사를 대할 땐 콜센터 직원 같다. 어느 쪽이든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반갑습니다.”
어둑한 곳에 조명이 켜졌다. 마도 공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이 시대에 아직도 기름을 쓰는 가난한 곳. 기름 태우는 냄새가 지독했다. 그러나 공간은 정갈하다.
새까만 단발을 한 갈색 로브의 남자가 걸어 나왔다. 건물 안쪽의 방에서부터.
다시 말해, 문이 열렸을 때 잭과 에스페란사를 볼 수 없는 위치. 목소리가 들린 곳과 그가 실제로 있었던 곳도 다르다.
‘마도구를 쓰는군.’
반대편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척 신비감 조성이나 하는 데 쓸 마도구도 있는 작자가, 범죄가 들끓는 지역에서 가난한 척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정말이지 믿을 만한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다. 13년 후에 거래했던 바텐더 모습의 정보상과는 전혀 달랐다. 물씬 위험한 느낌이 들었다.
“누추하지만, 들어오시길.”
가죽 소파는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고, 앉자마자 푹 꺼졌다. 그래도 남자의 창백한 얼굴은 면구한 티도 없었다. 에스페란사도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잭만 눈치를 슬슬 봤다.
“너도 이리 앉아.”
에스페란사가 권한 이후에야 겨우 소파 끄트머리에 앉았다. 아이는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은 듯, 남자가 끓여 오는 홍차에는 눈도 주지 않았다.
이가 나간 찻잔과 싸구려 잎일 게 분명한 홍차. 티 푸드도 없다. 가난은 이런 것이라고 전시하는 듯했다. 그러나 개수를 채워 찻잔을 가지고 있었고 차를 따르는 그의 자세도 흔들림이 없었다. 다기를 달그락거리긴 했지만 움직임에 절도가 있었다. 교육받았다기보다는, 원래부터 몸을 쓰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군인? 이 골목에는 암살자 쪽이 더 잘 어울리는지도.
“이름이 뭔가요?”
“정보상은 익명이 원칙입니다, 손님.”
“직책이라도 상관없어요.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해서 묻는 거예요.”
“그렇다면 ‘선생’이라고 부르시지요.”
슬그머니 드러내는 인정 욕구. 마치 어디가 그의 약점인지 찔러주는 것 같다. 하지만 진짜로 그런 게 약점일 리 없지. 닳고 닳은 헌터로서의 직감이 말했다. 잭은 정말 만만치 않은 인물에게로 인도해 줬다.
얼마나 위험하든, 맡은 일만 잘하면 되지만.
“좋아요. 선생, 난 정보를 사러 왔어요.”
“어떤 것을 원하십니까?”
“전국의 어떤 정보든 구해 줄 수 있어요?”
“오스던 본토, 식민지까지 가능합니다. 식민지는 추가 요금이 붙습니다만.”
“식민지까지는 필요 없어요. 내가 원하는 건, 이런 가죽을 구하는 사냥꾼이에요. 이게 첫 번째.”
에스페란사는 파우치에서 작게 잘라 온 가죽을 꺼내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 본 선생의 얼굴이 미세하게 변했다.
“귀한 것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우연히 얻었죠. 아무튼 첫 번째로 원하는 건 그거예요. 두 번째는.”
순간 램프 불빛이 일렁거렸다. 어둑한 방 안에서 그림자가 진 선생의 얼굴 한쪽이 마치 녹아내린 것처럼 보였다. 그에 반해 반대편 얼굴은 탐미적인 오토마톤의 얼굴처럼 매끈했다. 날카로운 콧대를 사이에 둔 서로 다른 얼굴. 그 경계를 가로지르는 입술이 새빨갛다.
야누스.
본능이 경고를 보냈다. 이자는 위험해.
“두 번째로, 사람이 한꺼번에 많이 죽은 사건을 있는 대로 찾아주세요.”
“살인 사건?”
선생이 속삭였다. 학자처럼 단정한 목소리로. 어쩐지 흥미로워하는 것 같았다.
“한 마을 사람들이 통째로 죽었다든가. 전염병으로 인한 것이든, 뭐든 상관없어요. 범인이 밝혀진 것만 빼고.”
“아주 광범위하군요. 광부들이 단체로 매몰되는 일이나 공장이 무너져서 인부들이 죽는 일은 적지 않습니다.”
“일단 가능한 만큼 다 알고 싶네요. 최근…… 1년간의 정보로.”
“알겠습니다.”
선생이 서랍에서 주사위처럼 생긴 것을 꺼냈다.
“가져가시면 됩니다. 머물고 계신 저택의 주인분이 만든 것처럼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만, 정보가 마련되면 연락이 갈 겁니다. 그때 다시 방문해 주십시오.”
선생은 에스페란사가 어디에 사는지도 알고 있었다. 빈민가에 왔을 때 봤나? 아무리 같은 후드라지만 이건 흔한 옷이다. 속에 입은 옷이 이렇게 다른데 완벽하게 성장했던 그때의 숙녀를 연상했을 리는 없다. 가장 가까이서 본 잭도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었다.
반대로 말하면, 이 정보상의 능력은 믿을 만하다.
“좋아요.”
“선금은 5만 테롯입니다.”
처음 이곳에 떨어진 날 밤 죽어라 분류했던 지폐를 파우치에서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