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171
171화
“대체 무슨 일인가!”
러스틴 준장의 노한 목소리가 항구를 쩌렁쩌렁 울렸다. 병사 하나가 황급히 달려와 경례를 붙였다.
“오토마톤 설치 중에 오류가 생겼습니다. 접합부가 터지는 바람에, 급히 점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뭐라고? 오토마톤이 터져?”
“그게 아니라, 터진 부분은 접합부인데 아무래도 설치 과정에서 문제가…….”
병사는 혼신의 힘을 다해 설명했으나 준장은 전혀 듣고 있지 않은 듯했다.
“에이번데일!”
준장이 안 보는 사이 마차에 올라타려던 시더가 한숨을 내쉬었다. 망했군.
“그리 잘난 체하더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그 가슴팍의 훈장이 부끄러울 지경이군!”
시더의 가슴팍에는 아무런 훈장도 달려 있지 않았다. 그러나 시더 클라이번이 ‘녹슨 검의 훈장’ 수훈자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훈장을 달고 있지 않아도, 그 무게는 늘 왼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시더는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
준장이 이 시점에 왜 느닷없이 훈장을 언급했을까? 불 보듯 뻔했다. 준장의 자랑스러운 마도 공학자 아들에게는 없는 훈장이니까.
아, 남의 열등감은 정말이지 성가시기 짝이 없다.
마치 그 생각을 읽은 것처럼 벌게진 얼굴의 준장이 발을 굴렀다.
“자네가 벌인 일이니 자네가 수습하게!”
사방에는 무장한 해군들이 가득하고 맞은편은 바다였다. 불꽃 튀는 준장의 눈이 당장이라도 총을 뽑아 들 듯했다. 시더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천천히 배 안으로 향했다.
문득 등줄기가 서늘했다. 시더가 고개를 돌렸다. 뒤따라 배에 올라타던 준장이 눈을 부라렸다.
“뭔가?”
“아닙니다.”
시더는 입술을 다문 채 관제실로 향했다.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빨리 일을 해결하고 배에서 내리는 수밖에 없다.
그의 오토마톤이 잘못되었을 리는 없었다. 멍청한 군인들이 설치하다가 실수했겠지. 다른 때라면 러스틴 준장을 부하들 앞에서 농락하는 것으로 분을 풀었겠지만 그럴 시간도 없었다. 시더는 다시 한 번 회중시계를 확인하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두어 걸음 만에 관제실 중간에 도달한 그는 품 안에서 꺼낸 스티뮬러로 접합부를 확인했다.
“역시나. 군인이면 뇌에도 화약이 드는 건지.”
“그렇게 잘났으면……!”
발끈하는 장교 하나를 다른 장교가 붙잡아 말렸다. 시더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공구는?”
“여, 여기 있습니다.”
어린 병사가 내민 공구 상자를 받아 든 시더는 진단을 마치고 터진 부분을 제거했다.
장갑 낀 손 위에 터진 부품을 올려 둔 시더가 기계와 부품을 번갈아 보다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맞지도 않는 파이프를 억지로 끼워 넣어 놓고 내 탓을 한 건가요?”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마력 누출에 의한 폭발 사고입니다. 사유는 크기가 다른 파이프를…… 보시다시피.”
떨어져 나온 부품을 확인한 장교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필립스!”
장교의 고성에 어리버리해 보이는 병사가 달려와 허리를 꾸벅꾸벅 숙였다.
“누가 봐도 지름이 다르잖아!”
“그게, 막상 끼워 보니 들어가서, 뻑뻑해서 안 들어갔던 건 줄 알고…….”
“마력 누출이라니, 잘못하면 우리 다 죽을 뻔했다고. 알아?”
시더는 손에 집히는 헝겊으로 재를 털어 냈다. 군 내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처벌은 군인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그는 아까의 폭발로 인해 고장 난 부품 몇 개만 고쳐서 기계를 작동시키면 된다.
눈이 아플 정도로 작은 부품들에 집중하는 사이 관제실에 사람이 오가고 출항을 준비하는 소리도 귓가에서 멀어졌다. 내부 폭발 방지용으로 연결이 차단된 부품들을 확인해 열어 두고 다시 작동시켰다.
시더의 어깨까지 오는 높이의 오토마톤과, 그에 연결된 기계 장치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증기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발밑의 진동이 강해졌다. 사방의 기계가 마력을 전달받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팔짱을 끼고 기계에 달린 전구가 깜박이는 모습을 한참 지켜보았다. 손바닥만 한 화면이 지지직, 소리를 내며 버벅이다가 이윽고 선명한 지도를 띄웠다.
“됐다!”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린 장교가 입을 막았다. 공구를 정리하고 나가려던 시더가 문득 멈춰 섰다.
발밑의 흔들림이 멎지 않았다.
기계의 진동은 그가 누구보다 잘 알았다. 부팅이 완료되면 진동도 안정된다. 그 증거로 관제실 내의 기계에선 더 이상 작동을 알리는 진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흔들림의 근원은? 답은 하나뿐이다. 온몸의 피가 싹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관제실 바깥으로 뛰쳐나온 시더는 성큼성큼 계단을 올랐다. 새파란 바다 위로 흰 햇빛이 비단길처럼 미끄러졌다. 적막한 항구가 벌써 닿지 않을 만큼 멀어졌다.
“대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러스틴 준장을 발견한 그는 당장 나이 든 장군의 멱살을 쥘 기세로 따져 물었다.
“로드 에이번데일, 준장님께 뭐 하는 겁니까?”
장교들이 달려들어 그를 떼어 냈다. 러스틴 준장은 모자 아래로 주름진 이마를 꾹꾹 누르며 느긋하게 대답했다.
“뭐가 문젠가? 자네가 늦길래 먼저 출발했네. 고작 정찰선이야.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아 도착할 걸세.”
“지금 그걸 말이라고……!”
“애초에 자네 실수로 출발이 늦어진 게 아닌가. 무슨 일정이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자네의 개인적인 약속 때문에 군의 일을 미룰 수는 없네. 시종이 항구에 남아 있으니 그쪽엔 어련히 전달하지 않겠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도 에스페란사는 시더가 무사히 코델리아 일행과 만난 줄 알 것이다. 그리고 이 배는…….
시더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까맣게 모르는 듯이 잔잔한 물결을 내려다보았다. 맘 같아서는 구명보트라도 내달라고 하고 싶지만, 그런 요청이 저 뻣뻣한 늙은이에게 먹힐 리가 없다.
혀끝까지 튀어나온 험한 말을 애써 눌러 담은 시더는 지팡이를 고쳐 잡았다. 유사시엔 이것밖에 믿을 것이 없었다. 그들의 계획은 이 군함까지 안전하게 구해 내는 것이었지만, 일이 그렇게 만만하게 흘러갈 리가 없었다.
완전히 어긋나 버렸다. 이를 악문 시더가 눈치 없이 맑은 하늘을 노려보았다. 곧 아가리를 벌리고 괴물을 쏟아 낼 하늘을.
“준장, 함포를 준비하십시오.”
지금은 할 수 있는 걸 하는 수밖에 없었다.
* * *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솟은 바위 위.
몸에 달라붙는 가죽 바지 위에 검은 후드를 두른 여자는 울퉁불퉁한 바위의 일부분처럼 보였다. 긴 총을 든 채 끝없는 수평선을 응시했다. 한쪽 눈에 걸친 모노클이 시야를 확 당겼다.
“이거 안 맞는데……?”
결국 망원경으로 돌아왔다. 후드 안쪽에 숨겨진 날개가 등을 눌렀다. 에스페란사는 불편한 자세를 고치며 황동빛 망원경을 조작했다. 초점을 맞춰 또렷해진 렌즈 너머, 수평선 끄트머리에 걸쳐진 배가 보였다.
본토에서 가까운 바다를 정찰하는 배치고는 규모가 상당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일반적인 정찰선이 아니라 먼바다를 정찰하는 커다란 군함이 동원된 것이다.
‘적어도 한 대 맞았다고 바로 가라앉진 않겠지.’
에스페란사는 심드렁히 생각하며 마력을 끌어 올렸다. 총 내부의 부품이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쿵쿵거리던 심장 박동이 평온을 찾는 것 같았다.
이미 먼 바다에 있는 배는 위치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추측하건대 항구와 파오룬 해적들의 근거지 중간쯤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곧…….
아니나 다를까 금세 수평선 너머에서 여러 척의 작은 배들이 정찰선을 향해 진열을 갖추어 다가왔다. 에스페란사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배 위로 뿜어져 나오는 증기와 왠지 먼 거리에서도 들리는 것 같은 폭발음. 왠지 모르게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쩐지 신경이 그리로 끌어 당겨지는 것 같았다.
집중하자.
스스로를 향해 되뇌며 총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한낮의 짧은 그림자가 발밑에 고였다. 내리쬐는 볕이 뜨거웠다. 에스페란사는 미끄러운 손을 바지에 닦고 조준경에 눈을 댔다.
순간 모든 소음이 빨려 들어간 것 같은 정적. 그리고 다음 순간, 항구에 연결해 둔 던전 추적기가 한 박자 늦게 울리기 시작했다.
높은 허공에 짧은 머리칼의 여자가 나타났다. 바다 위를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여자의 머리칼은 구름처럼 흰빛, 몸에 걸친 옷가지는 가벼웠다. 바다 위로 쏟아지는 햇빛이 흰 머리칼 위에 반짝이는 고리를 만들었고, 모조 보석 같이 쨍한 눈동자가 설핏 발밑을 훑었다.
발밑의 거대한 군함과, 그를 둘러싼 보다 작은 배들. 오가는 총격, 연기와 뱃고동. 다리아는 그 모든 것을 관조하듯 내려다보다 입술 끝을 비틀어 올렸다.
휘어진 금빛 날을 쥔 손이 천천히 허공을 갈랐다. 그 움직임을 따라 공간이 찢어지던 순간.
“악!”
날카로운 총격이 손을 정확히 노리고 들어왔다. 다리아는 황급히 팔을 휘둘러 피했다. 손목을 스쳐 간 것은 총알 따위가 아니었다. 분명히 마력이었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먼 거리를 단숨에 일직선으로 꿰뚫은 마력. 제대로 맞았다면 지금쯤 다리아의 손은 바다 위를 떠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 여자다.’
마법사. 헌터.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그 여자였다. 다리아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다음 순간 다시 한 번 새파란 마력이, 이번엔 뺨을 스쳤다.
“어디야! 나와!”
마력 방향을 확인한 다리아가 마치 맹금류처럼 바다를 향해 급강했다. 후드를 벗어 던진 에스페란사도 뛰어올라 받아쳤다. 팽팽한 마력이 맞닿아 서로를 밀어내며 긁다가, 견디지 못하고 커다란 파열음을 내며 흩어졌다.
마력이 총구를 뜨겁게 달구었다. 직선으로 뻗은 마력이 이번에는 위에서 다리아를 향해 내리꽂혔다. 다리아가 이를 악물며 사납게 물었다.
“왜 방해하는 건데! 우리한테 원한 있어?”
“알 것 없어.”
원한이야 많지.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 없었던 에스페란사는 쏘아붙이듯 대답하며 다리아를 향해 총을 난사했다. 피하려야 피할 수가 없었다. 손목이 너덜너덜했다. 황금 발톱을 놓치지 않은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야, 뭐 해? 쏴!”
다리아가 악을 쓰며 에스페란사의 마력을 쳐 냈다. 마력에 지져진 손목을 쥐고 헐떡거렸다. 다음 것까지 쳐 낼 자신은 없었다.
“날개, 저놈의 날개부터 쏘라고!”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에스페란사는 고개를 옆으로 피했다. 귓바퀴 옆으로 마력이 날아들었다. 사이러스였다. 에스페란사가 아는 것보다 조금 앳되고 더 오만한 사이러스. 다리아가 뒤로 물러나고, 사이러스가 에스페란사를 상대할 생각인 것이다.
‘사격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고.’
냉정한 평가와 함께, 허공에서 거리를 벌렸다. 지금의 저 남자는 옛 동료조차 아니었다. 시더를 죽일 계획을 가진 적일 뿐이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손에 망설임은 없었다. 탕! 사이러스는 쇄도하는 마력을 피하고 방패로 비껴 쳐 내며 순식간에 지근거리로 다가왔다. 끼이익, 마력탄에 긁힌 방패에서 쇠 날이 부딪히는 듯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방패 반대편 손에 쥔 대검이 에스페란사의 어깨를 향해 날아들었다.
2 대 1의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어려울 건 없었다. 상대는 사이러스다. 에스페란사가 약 7년간 수없이 함께 싸워 온 사이러스. 그의 패턴 정도는 눈 감고도 훤했다.
진짜 검날보다 살벌한 검압이 어깻죽지를 찢어 놓을 듯 다가온 순간, 에스페란사는 그의 검을 피해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새파란 총구가 사이러스의 배를 찍어 올렸다.
“으윽!”
당장이라도 터져나갈 듯한 마력이 서린 총구로 얻어맞은 사이러스가 주저앉자, 에스페란사는 그를 지나쳐 바로 다리아에게 마력탄을 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