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역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글쎄요. 30분은 더 가야 되겠는데요…….”
스털링 시의 번화가는 그리 넓지 않았을뿐더러, 호텔은 역에서 가까운 편이었다. 30분이면 지나치게 오래 걸리는 것이다. 코델리아가 알라스테어를 밀고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세상에.”
도로의 절반이 통제된 상태였고, 남은 절반은 증기 마차와 일반 마차가 뒤섞여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빽빽이 막힌 길에서 마차는 잠깐 가다가 서기를 반복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 길이 원래 통행량이 많습니다. 도로를 통제하는 건 아마 행사 때문일 테고요. 무슨 행사인진 모르겠습니다만, 드문 일은 아닙니다.”
코델리아는 불안한 낯을 감추지 못한 채 자리에 앉았다.
“차라리 돌아갈까요?”
마부가 묻는 말에, 알라스테어는 코델리아를 돌아보았다. 코델리아는 잠시의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갈림길에서 마차는 작은 길로 빠졌다. 세 사람이 타고 있는 마차는 6인승 증기 마차로 규모가 상당해서 좁은 길로는 갈 수 없었다. 넓은 길을 찾아가다 보니,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도 굽이굽이 돌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일단 마차가 멈추지 않는다는 것에 만족했지만, 점점 어지러워졌다.
“원래 이렇게 돌아요?”
“아마도 일방통행 때문에…….”
알라스테어는 멋쩍은 얼굴로 말했다.
“일방통행이요? 설마 방금 그 거리가 전부 다요?”
“이쪽 거리가 대체로 그렇습니다.”
“그럼 혹시, 우리 꽤 멀리 온 것 아닌가요?”
불안해진 코델리아가 마차 창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마차는 지체한 시간을 맞추려는 듯이 거침없이 길을 내달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건물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는 건물이 하나도 없는 낯선 길이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럼 여기가, 여기가 어딘데요? 로드 스털링!”
“잠깐 마차를 멈춰 세워 보게!”
말은 하지 않았으나, 알라스테어도 조금씩 불안해지고 있던 차였다. 코델리아의 질문이 그의 불안감에 불을 붙인 격이었다. 티를 내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마부를 부르는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마부는 영문도 모른 채, 가까운 큰길로 나가 마차를 멈춰 세웠다. 김이 빠지듯 증기가 굴뚝 위로 빠져나갔다. 알라스테어는 마차가 멈추자마자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뒤이어 내린 코델리아와 애니도 주변을 둘러보았다.
낯선 풍경이었다. 던바틴 특유의 짙은 벽을 가진 건물들은 스털링에서 머무는 내내 지겹도록 보아 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아는 곳은 아니었다. 길 너머로 보이는 널따란 광장과 커다란 성당 건물만이 그나마 특이해 보였다.
“와 본 적 없는 곳이네요. 로드 스털링, 여기가 어디인가요?”
“마빈 광장입니다. 저기, 바로 저 성당이 바로 성 마빈 성당이고요. 그러니까 여긴.”
말문이 막힌 알라스테어가 더듬거렸다. 두 사람이 그의 대답이 늦어질수록 불안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목이 막힌 것처럼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항구입니다.”
그 말이 끝나자, 비로소 코끝에 비릿한 바다 냄새가 맴도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항구는 보이지도 않는데도. 다가올 피 냄새를 미리 맡은 것만 같았다.
코델리아는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힘주어 물었다.
“……어떻게 된 거죠?”
알라스테어는 품 안에서 지도를 꺼내려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은 이유를 일일이 설명할 때가 아니었다.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헨슨! 당장 마차를 돌리게!”
“예?”
마부는 어리둥절하며 슬쩍 불을 붙였던 담배를 대충 비벼 껐다.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이쪽 길이 제일 빠른데요. 일방통행이라 마차를 돌리려면 한참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낭패였다. 알라스테어와 코델리아가 서로를 마주 보고 동시에 생각했다. 마부가 길을 돌아가겠다고 했을 때부터 항구 근처로는 가지 말라고 일러 줬어야 했다. 딱 그 한마디만 했더라면, 지금 같은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마부에게 사정을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지 못했던 것이 패착이었다.
‘에스페란사라면,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텐데.’
그러나 지금은 자책하는 것조차 시간 낭비였다. 창백해진 애니가 얼른 마차 문을 열어젖혔다.
“코델리아 아가씨, 얼른 타세요!”
“헨슨, 서두르게. 여기서 벗어나야 해. 역엔 늦어도 상관없으니 항구 반대 방향으로!”
“예?”
“묻지 말고! 빨리!”
알라스테어 렌프루는 좀처럼 화를 내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고성을 터뜨리는 모습은 스털링 백작 저택에서 10년을 일한 마부도 처음 보았다. 마부는 얼떨떨한 얼굴로 마차에 올라탔다.
돌아가기 위해서는 큰길을 돌아야 한다. 마차가 항구와 평행하게 큰길을 달리는 동안, 창문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던 애니가 비명을 질렀다.
“밖에, 하늘을 보세요……!”
하늘이 짙어졌다. 갇히는 기분이 든다. 먼 하늘 위로 투명한 반원형의 벽이 드리우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냥 호텔에서 로드 에이번데일을 기다릴걸. 이럴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스털링에 오지 말걸. 이럴 줄 알았다면…….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알라스테어가 코델리아의 손등을 손으로 덮으며 마부를 재촉했다.
“더 빨리, 헨슨, 더 빨리 가게!”
그러나 마차는 이미 바퀴가 빠질 정도로 덜컹거리고 있었다. 이러다 정말로 넘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앞서가던 마차들이 하나둘 멈춰 섰다. 마부들이 마차에서 내려와 허공을 더듬고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의 마차 역시 그 끝에 도달했다.
퉁.
기묘한 일이었다. 무언가에 부딪힌 느낌은 이렇게 또렷한데, 반동이 없었다. 튕겨 나가는 대신, 마차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바퀴만 열없이 굴렀다.
“백작님, 마차는 멀쩡한데 이상하게 앞으로 나가지지가 않습니다!”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헨슨의 목소리가 냉엄한 선고를 내렸다.
그들은 던전 안에 갇힌 것이다. 그러나 이전과는 달리, 그들의 곁에는 에스페란사가 없었다.
깊은 바다에서부터 괴물들이 거대한 다리를 뻗으며 기어 올라왔다. 강철로 만든 배들이 무너졌다. 기다란 촉수가 배를 꿰뚫었다. 항구 노동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괴물들이 끊임없이 뭍으로 올라왔다. 그중 몇은 물 밖에서 숨을 쉬지 못해 괴로워하며 몸부림치다가 제풀에 죽기도 했다. 그러나 죽기 전까지 질식의 고통으로 몸부림치던 거대한 다리에 얻어맞고 꿰뚫려 죽은 시체가 항구를 뒤덮었다.
그리고 물 밖에서도 숨을 쉴 수 있는 괴물들은 항구를 벗어나 먹잇감을 찾기 시작했다. 쿵, 쿵, 멀리서 어렴풋이 비명과 괴물의 포효 소리가 들렸다. 작게 들리는데도, 귀가 아플 정도였다.
“성당으로 들어가요. 베이스 캠프, 베이스 캠프가 필요하다고 했어요. 다들, 어서!”
“아가씨, 뭐 아는 게 있소?”
마차 창문을 내린 노신사가 코델리아를 향해 물었다. 코델리아는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하지만 뭔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니까, 튼튼한 건물에 모여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어차피 도망갈 수도 없으니까요. 어르신께서도 같이 가시겠어요?”
노신사는 마차 안의 부인에게 말을 전하는 것 같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마차들 몇몇은 코델리아를 따라왔다. 시간이 많았다면 따라오지 않는 마차들을 설득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들의 목숨도 위험했다. 알라스테어가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우리는 짐 가방이 있어요. 성당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별달리 가진 게 없을 테니 우리를 내쫓진 않겠죠. 먹을 게 좀 있었으면 좋겠네요.”
코델리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벨우드 때와는 모든 게 너무 다르다.
길 건너의 세인트 마빈 성당에 도착한 그들은 문을 두드렸다. 창문을 통해 뒤에 괴물을 달고 온 게 아니란 것을 확인한 사람들이 문을 열어 주었다.
“얼른 들어와요, 아가씨. 짐 가방이 있네요!”
“든 건 없지만요.”
알라스테어가 노부부의 짐 가방을 내려 주었다. 뒤따르던 합승 마차에서 내린 사람들도 짐을 내렸다.
결연한 얼굴로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코델리아를 붙잡은 애니가 귓가에 속삭였다.
“아가씨, 총 갖고 있단 얘기는 하지 마세요.”
잠시 놀랐던 코델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라스테어라면 모를까 두 사람은 총을 제대로 쓸 줄도 모른다. 총기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총을 쓸 줄 아는 사람에게 넘기라는 압박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총은 두 사람의 유일한 호신 수단이다.
주머니 속 총의 존재감을 확인하며 성당 안으로 들어간 코델리아는 제일 먼저 책임자인 주교를 만났다. 어디 교구 주교님, 교회에 기부를 많이 하시는 어느 부인 이야기를 하면서 순식간에 처음 보는 스털링 교구 주교와 친해진 코델리아는, 곧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성당의 시설들을 마음껏 써도 좋다는 주교의 허락을 받아 냈다.
코델리아 마벨우드는 그 상황을 영리하게 이용했다. 마치 주교의 대리인인 것처럼 사람들을 찾아가 부탁했다.
“밀러 씨, 아드님들과 다른 분들을 데리고 굴뚝을 좀 막아 주시겠어요? 창문도 전부 닫아 주시고요. 통풍구도 보이는 대로 막아 주셨으면 해요.”
“그거야 어렵지 않지요.”
“감사합니다! 주교님께서도 밀러 씨와 가족분들을 위해 기도해 주실 거예요.”
대가족을 이끌고 들어와 있던 밀러 씨가 건장한 아들들과 함께 다른 남자들을 몇 이끌고 갔다. 마벨우드에서와 달리 이곳에서 코델리아는 그저 어리고 부유한 숙녀에 불과했기 때문에,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주교의 부탁을 빙자해 일거리를 배정해야 했다.
성당 내에 들어와 있던 사람들은 대체로 근처에 있던 음식점 주인과 직원들, 손님들, 마부들이었다. 이후에 마차를 이끌고 들어온 신사 숙녀들도 있었지만, 수가 많지 않았다.
코델리아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정중하지만 굽신거리지 않는 말투를 사용했고, 사람들은 대체로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내심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 누구 하나가 나서서 책임을 지고 대표를 맡아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10대 숙녀는 썩 믿음직스럽지 못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물론 모두가 같은 마음인 것은 아니었다.
“싫은데? 아가씨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제 부탁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서로 돕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언제 괴물들이 이 근처까지 들어올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들어오든지 말든지, 내가 왜 아가씨 말을 들어야 하냐고!”
대낮부터 술에 취해 얼굴이 벌게진 남자가 솥뚜껑 같은 손을 휘둘렀다. 알라스테어가 재빨리 그 앞을 막아섰다. 이럴 때면 간이 두 배는 커지는 코델리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알라스테어 렌프루, 그 팔 내려놔요. 아저씨, 좋은 말로 할 때 잘 생각해 보세요. 여기가 언제까지 안전할 것 같아요? 저 괴물들이 사라지기는 할까요? 아저씨가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아저씨가 위험에 처했을 때 누가 도와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