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174
174화
주변 사람들이 코델리아를 달래며 남자의 팔을 붙잡아 말렸다. 코델리아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지금은 서로 협동하는 편이 좋다는 걸 그들도 알고 있었다.
“이 녀석이 요즘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그럽니다. 이해하십시오. 일은 우리가 같이 데려가서 시키겠습니다.”
“피곤하신 모양이죠? 그럼 조금 쉬시다 시작하시면 되죠. 하지만 언제 괴물들이 여기까지 올지 모르니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코델리아가 고개를 돌렸다.
“밖에 괴물이 없는지만 확인하시고 얼른 들여보내 주세요. 아직까지 여유가 있으니까요. 깁슨 부인과 메리 양이 지하에 가 봤는데 먹을 것도 충분하대요.”
“언제까지 사람을 받을 수는 없잖습니까?”
“주교님께선 최대한 받으라는 입장이세요. 아무리 힘들어도 사람이 괴물에게 먹히도록 둘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먹는다고요?”
아차. 코델리아는 눈을 굴리며 말했다.
“괴물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리고 준비가 되면 되도록 전부 지하로 내려가는 게 좋겠어요. 1층을 지킬 사람들 몇 명만 두고요.”
알라스테어는 어느덧 코델리아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며 감탄했다.
코델리아는 퇴역 군인 출신의 남자 둘과 알라스테어를 1층에 세워 뒀다. 근처의 음식점 주인과 직원들에게 식량 관리를 부탁했고, 수도관이 무사할 때 미리 그릇과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는 일도 그들이 맡았다. 선원들은 꼭대기 층에 보내서 망보기와 수성전을 맡겼다. 다행히 그들은 구식 총도 가지고 있었다.
밀러 씨와 건장한 아들들은 성당 의자를 치워서 널찍한 자리를 만들었고, 장갑 가게 주인과 재봉사들, 애니는 노숙자들의 보호소로 이용되던 강당에서 이불과 옷가지를 가져와 휴식 자리와 붕대를 만들었다. 사람들이 각자의 짐 가방에서 여분 옷 몇 개를 꺼내 주었고, 애니는 자기 반짇고리를 내놓았다.
성당 건물에 들어온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나름대로 그럴듯한 대피소의 구색을 갖춰 가고 있었다.
알라스테어는 밀러 씨의 아들들과 함께 의자를 옮기다가 새로 들어온 사람들의 손을 붙잡고 대화를 나누는 코델리아를 바라보았다.
새로 온 사람일수록 온몸이 피와 땀으로 범벅되어 있었지만, 코델리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마벨우드에서와 달리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인데도 행동 하나하나에 망설임이 없었다. 코델리아 마벨우드가 위기 상황에 필요한 일체의 교육을 받지 않았음은 너무나도 명백한데 말이다.
타고난 것일까, 아니면 던전을 아는 사람으로서의 책임감일까? 어느 쪽이든 존경스러운 일이다.
그때, 알라스테어의 시선이 꽉 틀어쥐어 하얗게 질린 주먹에 닿았다. 소매 아래로 끝이 드러난 주먹이 바들바들 떨리다가, 치맛자락에 손바닥을 닦아 내길 반복했다.
머릿속에 문득 어떤 생각, 혹은 감정이 빛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코델리아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알라스테어 렌프루, 잠깐 와 봐요.”
그의 팔을 잡아끄는 코델리아의 얼굴은 더없이 괜찮아 보였다. 알라스테어는 이 소녀가 이토록 큰 짐을 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디 코델리아, 괜찮은 겁니까?”
코델리아는 알라스테어의 시선을 따라 축축해진 손바닥을 내려다보다가 멋쩍게 웃었다.
“아직은요.”
“남은 일은 제가 마저 하겠습니다. 레이디 코델리아는 지하에서 쉬십시오.”
코델리아는 오묘한 얼굴로 알라스테어를 올려다보았다.
“……그럼 부탁할게요. 로드 스털링도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다른 건 얼추 해결이 됐으니, 저쪽에 앉은 신사분과 이야기를 해 봤으면 좋겠어요. 항구에 있다가 겨우 여기까지 온 것 같은데 뭘 봤는지 말을 안 해 주네요.”
“제가 얘기해 보겠습니다.”
“얘기 끝나면 말해 줘요.”
그리고 아주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코델리아의 손끝이 가볍게 등을 툭 밀듯이 두드렸다. 알라스테어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애써 잔상으로 남은 감각을 무시하며 예의 신사에게로 향했다.
“스털링 백작 아니신가!”
남자는 아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반가운 얼굴은 아니었다. 쓸데없이 목소리는 커서, 커다란 성당 건물에 쩌렁쩌렁 울렸다.
“백작이라고?”
“저 청년인가 봐. 스털링 백작이면 던바틴 공작의 아들이잖아?”
시선이 집중됐다. 관습적으로 스털링 백작이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그 작위는 공식적으로 아버지인 던바틴 공작의 것이다. 게다가 알라스테어는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되지 않았기에, 스털링 시에는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안심했건만, 탈마인 출신인 기자가 여기 있을 줄이야. 그저 평범한 귀족 청년인 듯이 묻어가려고 했던 알라스테어는 짜증스레 한숨을 내쉬었다.
“목소리 낮추십시오, 예이츠 씨.”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시오? 하하, 여기서 보게 될 줄 몰랐소. 아까 그 예쁜 숙녀분과는 어떤 사이요?”
“당신이 알 바 아니잖습니까.”
싸구려 가십지의 기자인 예이츠는 낡은 사진기를 달깍거리며 씩 웃었다. 말투며 태도에 불량스러운 티가 났다. 알라스테어는 튀어나오려는 경멸의 말을 애써 억눌렀다.
“그런 얘기 말고, 지금 진짜 도움이 되는 얘기를 해 봅시다. 당신도 여기서 살아 나가고 싶을 것 아닙니까? 아까 그 아가씨, 코델리아 양에게 안 해 준 말이 뭡니까?”
“별건 아니오. 난 항구에서부터 운 좋게 살아남았으니까 괴물들도 좀 봤고 사진도 찍었지. 해군은 벌써 투입됐더군. 여기까진 그 아가씨도 알고 있고, 내가 숨긴 건…….”
뜸을 들이던 예이츠가 손가락으로 바깥을 가리켰다.
“이제 괴물들이 이 광장까지 도착했다는 부분이지.”
쾅! 그 말과 거의 동시에 건물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성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알라스테어는 창문으로 다가갔다. 광장 반대편에서, 집게발을 가진, 사람보다 조금 더 큰 괴물들이 보였다. 집게발에 꿰뚫린 사람의 비명, 집기가 부서지는 소리. 피가 고인 웅덩이를 짓밟는 괴물의 발. 현실감이 밀려들었다.
“전부 지하로 들어가요, 어서!”
마벨우드 때와는 다르다. 그보다 훨씬 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이 거대한 재앙 아래, 무력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버티는 것뿐이었다. 그게 얼마나 갈까?
알라스테어는 실패를 예감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걱정 마십시오. 곧 군인들이 투입될 겁니다. 우리는 그때까지만 버티면 됩니다.”
“신사분이 스털링 백작이라고 했죠? 그럼 군인들이 구하러 오겠죠?”
그가 여기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는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겁니다.”
코델리아가 걱정스레 그를 돌아보다가, 지하로 내려갔다. 입 모양으로 전한 말에 굳었던 알라스테어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번졌다.
‘조금만 버티면 에스페란사가 올 거예요.’
알라스테어는 퇴역 군인들과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다. 괴물의 키보다 더 높은 창문 틈으로 총구를 내민 그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날숨에 공포감이 조금씩 밀려났다.
군인들이 올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에스페란사는 올 것이다. 조금 늦더라도, 확실하게. 그리고 그것이 지금 그들이 가진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때까지 이 문을 사수해야 한다.
괴물의 거대한 집게발이 문을 쾅 두드렸다. 알라스테어의 총구가 까만 마력을 뿜었다.
* * *
한편 머나먼 바다 위의 군함도 민간인들과 비슷한 난관에 처해 있었다.
파오룬 해적들의 배가 공격을 시작했을 때, 러스틴 준장은 여유로웠다. 상황은 불리했지만, 정식 군사 훈련을 받지도 않은 자들이 모는 군함 따위는 두렵지 않았다.
“놈들의 대포도 우리 전함과 사정거리가 같으니 조심해야지. 화약도 마력도 부족할 테니 놈들이 대포를 소모하게 둬.”
시더는 준장과 멀지 않은 곳에 서서, 전투가 벌어지는 바다 반대편, 보이지 않는 육지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 뭐라도 있나?”
“곧 생길 겁니다.”
시더는 오른쪽 눈에 모노클을 착용하며 대답했다. 모노클 안쪽의 시야에서 새파란 마력이 불꽃처럼 부딪치는 것이 보였다. 무의식적으로 올라간 입꼬리를 매만지다가, 헛웃음을 지었다. 상황이 상황인데도 반가움 따위를 느끼다니. 어지간히 제정신이 아닌 게 틀림없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에스페란사의 등장과 전투의 시작은 위험 그 자체였다. 오늘의 전투로 에스페란사가 저 두 사람을 제압하고 황금 발톱을 얻는 결과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저들과의 전투에서 에스페란사가 질 것 같지는 않지만, 조금이라도 밀리면 그들은 틈을 비집고 기어코 던전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이 계획을 이야기했을 때는, 그 자신이 이 배 위에 올라와 있으리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돼 버렸지.’
유감스러울 따름이다. 시더는 모노클을 대충 주머니 안에 욱여넣었다.
그 모습을 언짢은 눈으로 쳐다보던 러스틴 준장이 그를 손끝으로 불렀다.
“에이번데일. 내부 기계가 마력 고갈이라는데, 확인해 보고 오게.”
“고장도 아니고 마력 고갈 따위를 말입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 바쁘잖나. 자넨 한가하고.”
시더는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준장은 완강했다. 대포가 터져 물이 튀는 바다 위를 확인한 시더는 곧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혹여나 눈먼 폭격에 맞기라도 할까 걱정이 됐던 모양이다. 그러게 수습도 안 될 고집은 부리지 말았어야지. 보란 듯이 혀를 찬 그는 기계실로 내려갔다.
준장의 고집은, 늘 타이밍이 나빴다. 다른 때였다면 그저 마음에 안 드는 젊은이를 골탕먹이는 정도에서 끝났을 일이 민간인인 귀족을 해전에 끌어들이는 결과를 낳았다.
그 민간인을 기계실로 내려보낸 결정도 마찬가지였다. 보통의 해전이었다면 시더 클라이번은 안전하게 기계실에서 시간을 죽였을 테고, 군함은 무사히 해적 소굴을 빠져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시더가 기계실에서 마정석을 새로 끼우는 지루한 작업에 동원된 동안, 하늘이 거대한 마력의 결계에 뒤덮이고, 세 명의 마법사들이 뒤엉키던 전투가 어처구니없이 끝이 났다. 동시에 깊은 바닷속에서부터 신화생물 같은 괴물들이 고개를 쳐들고 군함을 들이받았다. 쿵. 선체가 흔들렸다.
“이건 또 뭐야!”
세계 최강의 해군은 순식간에 오합지졸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적들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서로를 향한 폭격이 멈추었다. 그러나 바다 생물을 얼기설기 붙여 놓은 것 같은 흉측한 꼴의 괴물들은 피아를 가리지 않고 공격을 퍼부었다.
거대한 군함이 휘청거렸다. 군인들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 각자 근처의 난간에 매달려야 했다. 조준도 없이 쏜 대포가 괴물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지금 어디로 쏘는 거냐! 다들 정신 차려!”
러스틴 준장이 커다랗게 소리를 질렀다. 그 목소리에 병사들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았다. 준장은 혀를 차며 마력포를 확인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때, 그의 모자 위로 날카로운 총격이 지나갔다. 군함을 향해 쇄도하던 촉수 하나가 잘려 나갔다.
“놈들에게 일반적인 화약 무기는 안 통합니다. 마력포는 얼마나 있습니까?”
마치 총을 쏜 적 따윈 없었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기계실에서 올라온 시더가 물었다.
“……4문뿐이네. 예비포가 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겠지.”
대답을 마친 준장이 눈을 부라렸다.
“자네, 총은 언제부터 갖고 있었나?”
“처음부터요. 괴물 말고도 쏘고 싶은 게 있었지만 참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