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175
175화
신경질적인 미소를 지은 시더는 다시 한 번 총구를 비스듬히 하늘을 향해 겨누었다.
준장은 이를 갈았으나, 지금은 시더 클라이번에게 마법 무기가 있다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당황하지 않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사실도.
“이 상황이 그리 놀랍지 않은가 보군.”
“처음이 아니니까요. 그게 중요합니까?”
“중요하지. 자네 말을 신뢰해 볼 여지가 생기니까. 듀크 대위! 마력포를 개방하게! 총기도 전원 마법 총기로 전환하도록.”
우왕좌왕하던 병사들은 금방 자리를 되찾았다. 여전히 공포감이 내려앉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배가 흔들리고 거대한 무언가와 싸우는 것은 해군에게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게 상대의 전함이 아니라 거대한 촉수 괴물들이라고 해도 전쟁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에이번데일, 자넨 안전한 기계실로 가 있게.”
“어차피 죽으면 다 같이 죽습니다. 제가 있는 쪽이 승률이 좋을 텐데요.”
이런 상황에서 기계실이 안전하지도 않을 테고.
시더는 보란 듯이 가까운 괴물의 머리를 날려 버리며 말했다. 준장은 마뜩잖은 기색으로 인정했다.
“……자넨 군인으로서도 제법이었겠군.”
“전 마도 공학자로서 더 잘합니다. 돈 받고 일하는 게 체질에 맞지도 않고요. ”
빠른 총격과 함께 딱딱한 껍데기를 가진 괴물의 집게발이 날아갔다. 러스틴 준장이 입을 떡 벌렸다. 사격 솜씨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저 엄청난 마력량, 썰려 나가는 머리의 날카로운 단면.
“그 총, 개조한 건가?”
“만든 겁니다.”
자기 총을 뽑아 든 준장이 배 위로 기어 올라오는 작은 괴물들을 쏘아 떨어뜨리며 이를 악물었다.
“허가 없는 마법 무기의 제작은…….”
“불법이죠. 그런 걸로 절 잡아가기야 하겠습니까마는.”
뻔뻔스레 대답한 시더가 총에 여분 마정석을 밀어 넣었다. 태도는 능청스러웠지만, 총을 다시 장전하는 손끝은 조금 떨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마력 소진 속도가 빠르다. 인내심이 불붙은 심지처럼 타들어 갔다.
“……말을 말지. 엘페인 소위, 백작을 엄호하게. 어찌 됐든 민간인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목숨줄은 붙여 둬야 해.”
“예!”
거친 바닷바람과 배 높이만큼 높게 튀는 물보라에 코트와 모자가 젖었다. 시더는 묵직해진 코트를 던져 버린 뒤 몸을 낮추고 허공을 향해 조준했다. 길게 뻗어 나간 마력탄이 파도와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괴물의 머리에 명중했다.
이쪽 군함은 아직까지 큰 피해가 없었다. 갑판 위의 병사들 일부가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신속히 마력포를 배치한 덕에 괴물들의 주 공격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해적선 쪽은 상태가 훨씬 나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버틸 수 있을까?
“마력탄이 안 먹힙니다!”
“으악! 오, 오지 마!”
시더는 이를 악문 채 총구의 방향을 바꾸었다. 탕, 갑판에 올라왔던 바다 괴물이 사방에 살점과 진물을 뿌리며 터져 나갔다. 도망치다 엉켜 넘어진 병사들이 겨우 일어나는 모습을 확인한 시더는 등을 벽에 기대고 숨을 내쉬었다.
그가 던전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제대로 된 전투 훈련을 받지 않은 몸이었다. 며칠 간의 연구로 혹사당한 신체는 잠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전투 상황에 지쳐 있었다. 마정석은 부족하고, 마력포는 잔챙이들이나 겨우 떨쳐 낼 정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절망적이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 망망대해에서 패배는 곧 죽음이다. 쓸려 나가는 병사들을 보면서도, 시더 클라이번은 어렴풋한 확신이 들었다. 이렇게 죽을 리가 없다.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끝을 낼 수는 없었다. 그 시답잖은 편지 따위가 마지막 인사일 리가 없었다. 총을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에스페란사가 올 때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버틸 수 있다면, 승산이 있다.
“지금이다, 마력포 발사하면서 후퇴해!”
준장이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배가 뒤로 물러났다.
“됐다!”
“조금만 더, 조금만……!”
그러나 배가 격전지에서 충분히 떨어지기 전, 깊은 바닷속에서부터 바다뱀이 나타났다. 그저 수면 바깥으로 고개를 내미는 것만으로 주변의 배들을 전부 폭삭 젖어 버리게 할 정도로 거대했다. 시야를 가득 채운 꼬리를 휘두르자, 순식간에 해적선 한 척이 뒤집혔다. 괴물의 피와 살점이 떠다니는 바다 위로 해적들이 쏟아졌다. 방금 전까지 싸우던 적이었지만, 사람이 산 채로 먹히는 광경은 끔찍했다. 구역질하는 어린 병사들을 선임들이 일으켜 세웠다.
“더 뒤로!”
장교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굴뚝에서 흰 증기가 하늘을 뒤덮도록 뿜어져 나왔지만, 배는 묶인 것처럼 좀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젠장,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준장님, 배가 움직이질 않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저 압도적으로 거대한 바다뱀과 정면으로 싸워야 한다는 뜻인가? 준장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렸다. 뱀은 이 군함보다도 더 컸고, 물고기처럼 미끈하고 시커먼 비늘을 갖고 있었다. 가시가 잔뜩 박힌 거대한 꼬리와 빛마저 삼켜 버린 듯 깜깜한 아가리. 그 어떤 열악한 전투 상황에서도 저런 것을 상대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도망칠 곳 따윈 없었다. 준장은 빠른 걸음으로 뱃머리로 나아갔다.
“마력포를 전부 뱀 쪽으로 돌려라! 예비 포도 배치해!”
턱없이 부족하다. 시더는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대포보다 성능이 좀 더 나은 그의 총으로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는데, 마력포는 예비 포까지 해도 고작 여섯 문. 지켜야 할 배는 너무 크고, 대적해야 할 적은 더욱 크다. 사실 그가 보기에 이 바다 괴물들은 지금까지 대적해 왔던 괴물들에 비해 방어력이 어림잡아 두 배 정도 높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걸 안다고 당장 별다른 대책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시더가 마정석을 총 안에 밀어 넣는 것과 동시에, 영혼까지 끌어쓰는 듯 우렁찬 장교의 목소리가 명령했다.
“발포!”
칙칙하고 미끄러운 비늘 위로 마력포가 쏟아졌다. 여섯 문의 대포가 쉴새 없이 마력을 터뜨렸다. 용이 괴성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눈이 아릴 정도로 빛나던 마력이 사그라들었을 때, 그들은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상처 하나 없잖아!”
“어, 어떡합니까? 준장님!”
“일단 후퇴. 후퇴한다! 최대한 놈의 사정거리에 닿지 않게 해!”
그러나 배가 제대로 움직이기도 전에, 분노한 뱀이 배를 향해 입을 크게 벌리며 다가왔다. 사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새빨간 혀와 시커먼 목구멍이 모두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먹히는 건가?
그러나 그다음 순간, 새파랗게 빛나는 날이 뱀의 목을 갈랐다.
쿵.
떨어진 뱀의 목이 배 난간에 부딪히며 군함이 크게 휘청였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있던 병사들이 다시 엉켜 넘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굽이 단단한 군화는 핏물이 굳은 난간 위에 퉁, 가벼운 소리와 함께 섰다. 바닷바람이 하나로 묶은 긴 머리채를 거칠게 헝클어뜨렸다. 준장은 눈을 의심했다.
거대한 낫을 든, 젊은 여자였다.
“누구지……?”
비현실적으로 선명한 눈동자를 가늘게 뜬 채 준장을 흘끔 내려다보던 여자가 고개를 휙 돌려 바다를 바라보았다. 조금의 호의도 없는 목소리가 대답했다.
“구해 주러 온 사람.”
총을 치켜든 에스페란사가 무너지는 바다뱀 사체 뒤의 새까만 괴물을 명중시켰다. 해적선을 공격하려던 괴물이 몸을 뒤틀었다. 몇 발을 더 급소에 명중시키고 나서야 괴물을 해치울 수 있었다.
화기의 성능이 확연히 떨어졌다. 에스페란사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원거리 공격은 총기만 한 것이 없다. 마력량을 늘리는 수밖에. 조준경을 세우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지휘관이지?”
목소리를 낮춘 에스페란사는 쿵쿵 불안하게 뛰는 심장을 심호흡으로 잠재우며 빠르게 제복 위의 계급장을 확인했다.
“준장? 높으신 분이 나왔네. 전부 마력포로 전환해서 대응해. 이 던전은 공중에서 출현하는 몬스터가 없으니 바다만 조심하면 되지만, 배에 구멍이 뚫리면 끝이야. 총을 수면 아래로 내려서 위협 사격을 하는 걸 잊지 마. 연속 두 번, 적어도 5분에 한 번씩.”
대답을 듣기도 전에 발을 한 번 굴린 에스페란사가 괴물들이 쏟아지는 바다 위로 몸을 던졌다.
“잠깐만!”
러스틴 준장이 뒤늦게 붙잡으려 했으나 옷자락조차 스치지 못했다.
거대한 날이 푸른 궤적을 그리며 괴물의 머리를 잘랐다. 그러고도 다섯 개의 머리와 열두 개의 다리가 남아 있었다. 늑대를 닮은 머리가 송곳니를 세운 채 달려들었다. 휘두르는 다리를 피하며 남은 머리를 베어 나가는 손길이 능숙했다. 능숙함에서 오는 쾌감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치밀어 오르는 쾌감을 누르는 이상한 불안감 또한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이유를 알 수가 없었지만, 기묘한 예감이 들었다. 뭔가 놓치고 있다. 뭔가……. 대체 뭐지?
에스페란사는 괴물의 가슴 중앙을 가르며 이를 악물었다. 비늘이 쩍 갈라지며 핏물이 쏟아졌다. 바닷물에 푹 젖어 묵직해진 머리칼과 옷을 털어 내며 생각도 함께 털어 냈다. 고민할 필요 없다. 어차피 지금은 할 일을 해야 할 뿐이니까.
다시 전장을 향해 정신을 집중한 에스페란사는 낫을 휘두르며 바다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쾅. 쾅. 정신없이 쏟아지는 대포를 피해 해적선 쪽으로 향했다. 통칭해서 크라켄이라고 불리는 두족류 형태의 괴물이 해적선을 공격하고 있었다.
에스페란사의 낫은 거침없이 자기 몸보다 커다란 다리를 잘라 냈다. 시린 빛이 나는 낫 끝에 끈적거리는 진물이 고여 뚝뚝 떨어졌다. 아직도 다리 여덟 개가 남았다. 에스페란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래서 수중 던전이 싫어.’
수면 위아래를 오가느라 싸늘하게 식은 몸 때문에 충분히 전투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 총기를 다룰 때와 달리 낫을 쓸 때는 몸을 크게 움직여야 하는데, 물에 젖어 몸이 무거워진 탓에 원하는 각도를 맞추려면 더 많은 힘을 써야 했다. 자연히 더 빨리 지쳤다. 이런 제한을 선호하는 변태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에스페란사처럼 총기를 주로 사용하는 헌터들은 수중 던전을 꺼리는 게 보통이었다. 꺼리다 보니 경험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선택권이 없다.
“으아아악!”
“저리 가! 저리 가!”
해적선 쪽은 군함보다 상황이 나빴다. 정식 군사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라 위기 대처 능력이 떨어졌고, 아까의 전투 때문에 마력을 많이 소비했다. 무역선을 탈취해서 얻은 마력석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은 숫자도 많았다. 마력 소비 속도도 당연히 더 빨랐다.
파오룬과 오스던의 해상 전투의 승패는 에스페란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오히려 콧대 높은 오스던 놈들 따위 확 져 버렸으면 싶기도 했다. 그러니 이성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해적선 쪽을 우선하는 게 맞았다. 에스페란사는 왠지 모르게 군함 쪽으로 돌아가려는 시선을 다잡은 채 권총으로 크라켄을 도발했다. 촉수 위에 선 발을 굴러 몸을 높이 띄운 순간, 괴물의 텅 빈 눈이 에스페란사를 향했다.
그르르르, 끓는 소리를 낸 거대한 바다 괴물이 몸을 돌렸다. 해적선과 군함 사이의 빈 바다. 에스페란사의 몸을 휘감은 촉수가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아주 깊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