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178
178화
그렇게 된 일이었다.
코델리아는 김이 빠질 정도로 간단한 설명과 함께 거북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새까만 마력탄이 딱딱한 등껍질에 박혔다.
“뭐 하는 겁니까?”
“아, 진짜 안 맞네. 뭐 해요, 빨리 도와요!”
거북 괴물이 총에 맞고 고통에 몸부림칠수록 성당 건물이 무너지고, 다른 괴물들이 몰려들었다. 빨리 해치우는 게 최선이었다. 알라스테어가 코델리아의 팔꿈치를 잡아 치켜올렸다. 등껍질을 때리던 마력이 정확히 목덜미에 들어가자, 거북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터뜨렸다.
“맞췄다!”
“팔 각도를 유지하십시오.”
거북은 목숨이 질겼다. 무려 두 사람이 최신형 마력탄으로 급소를 노리는데도, 목이 덜렁덜렁해질 때까지도 도무지 쓰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천장은 이미 부서진 지 오래였고, 바닥도 지하의 천장재가 군데군데 드러날 만큼 파괴된 상태였다.
“탄알이 떨어졌어!”
“파이프를 써!”
퇴역 군인들은 깨진 파이프 오르간을 들고 괴물들과 맞섰다. 사실상 맨손으로 맞서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달리 방도가 없었다.
“거북이는 아직도 멀었어?”
“거의 다, 돼 갑니다!”
알라스테어가 소리쳤다. 하지만 자신할 수는 없었다.
“……에스페란사가 올까요?”
코델리아는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희망이 조금씩 꺾여 갔다. 그들이 던전 안에 갇혔을 줄은 꿈에도 모를 에스페란사가 제때 여기까지 와 줄 수 있을까? 보내 준다던 해군 부대는 왜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것일까. 오기는 하는 건가?
그나마 이 성당은 형체를 유지하고 있지만 성당 밖으로 보이는 길거리와 광장의 건물들은 그새 잔해만 남았다. 밖에 있던 사람들은 살아 있을까? 항구에 사람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호기롭게 지하에서 올라와 전장에 섰지만, 에스페란사가 저택 밖을 지켜 줄 때와 지금은 너무나도 달랐다. 용기를 마지막 부스러기까지 긁어모아도 뻣뻣하게 서서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전부였다.
아니야. 올 거야.
“알라스테어, 오겠죠?”
“올 겁니다.”
알라스테어의 목소리에도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의 미지근한 희망으로 온기를 채웠다.
“그래요. 우린 그때까지만 버티면 돼.”
코델리아는 다시금 다짐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에스페란사가 오기 전까진, 에스페란사의 역할을 맡아야 했다. 없는 힘까지 끌어 팔꿈치를 들어 올린 코델리아가 방아쇠를 꽉 눌렀다. 마치 에스페란사가 예전에 보여 줬던 것처럼. 총탄이 아니라 선처럼 길게 뻗은 마력이 거북의 몸을 꿰뚫었다.
마력은 빗나가 등껍질에 맞았지만, 탄알처럼 박혀 버리는 대신 등껍질 안까지 깊숙이 찌르고 있었다.
“어, 어어어……?”
“레이디 코델리아?”
“이, 이게 뭐죠?”
“제가 어떻게 압니까? 일단, 계속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엄호하겠습니다.”
알라스테어가 연주대 위로 기어오르려는 작은 괴물을 쏘아 떨어뜨리며 대답했다. 코델리아의 총 위에 표기된 붉은 빛이 점점 줄어들었다. 빠른 속도로 마력이 고갈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뭐지? 영문도 모른 채 방아쇠를 계속 당겼다.
끄르륵 소리를 내며 등 위의 가시를 휘두르던 거북의 다리가 무너졌다.
“지금이야! 어서 잡아!”
퇴역 군인들이 몸부림치는 거북의 다리를 밧줄로 감고 잡아당겼다. 거북은 마지막 발악을 하듯 몸을 뒤틀며 가시로 남은 기둥과 천장을 전부 부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거북의 움직임이 잦아들려는 순간, 뚫린 벽으로 장신의 남자가 날아 들어왔다. 거북의 가시 위에 자리를 잡은 남자가 500년 전의 기사들이나 쓸 것 같은 검을 거북의 목에 내리찍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어…….”
다행은 다행인데……. 코델리아가 못내 찝찝한 얼굴로 알라스테어를 돌아보았다. 뭔가 터지려다 만 것처럼 개운하지가 못했다. 조금만 더 하면 해치우는 거였는데.
“사람들은 전부 탈출한 겁니까?”
“네, 아까 지하로…… 누구세요?”
물음을 무시해 버린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 지하로 가는 문을 열었다.
“이봐요, 바깥에 아직 몬스터가 많은데 멋대로 문을 열면 어떡해요?”
“곧 끝납니다. 남은 사람들은 해군 벙커로 이동하도록 하십시오. 해군이 엄호할 겁니다.”
정말이었다. 바깥에 해군 전투 부대가 도착해 있었다. 코델리아와 알라스테어는 부상을 입은 선원들과 퇴역 군인들을 수습해 짐 마차에 태우는 일을 도왔다.
“알라스테어.”
“아버지?”
마지막 부상자를 부축해 나오던 알라스테어는 던바틴 공작의 모습을 발견하고 눈을 비볐다.
“어쩌다 여기 들어오신 겁니까?”
“하나뿐인 아들이 말도 안 되는 재난에 엮였다는데 아비 된 몸으로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느냐?”
“……심려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아버지의 등장이 반갑고 고마운 것과는 별개로, 알라스테어는 아직 마벨우드와 던바틴 간의 문제를 잊지 않고 있었다. 코델리아가 그 일로 얼마나 모욕을 느꼈는지, 지금은 그를 용서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조금도 용서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알라스테어는 얼른 눈을 돌려 코델리아를 태운 짐 마차가 출발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아버지를 끌어안았다.
“다친 곳은 없어 보이는구나. 너도 해군 기지로 가는 게 좋겠다.”
“예. 아버지께서도 같이 가시죠.”
“아니, 곧 이 사태도 끝날 기미가 보이는구나. 나는 저 헌터라는 남자와 더 이야기해 봐야겠다.”
헌터?
알라스테어는 고개를 돌려 그들이 종일 상대했던 괴물의 목을 일격에 베어 버렸던 붉은 머리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구시대적인 대검을 들고도 총을 든 그 어떤 군인보다 놀라운 움직임으로 괴물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그의 검격이 푸른 빛을 내뿜는 것을 마지막으로, 광장을 뒤덮었던 괴물들이 전멸했다.
“사격 중지!”
“3구역 소탕 완료됐습니다.”
군인들의 외침을 끝으로 광장이 고요해졌다. 두 사람은 광장 한가운데 곧게 선 남자의 모습에 시선을 고정했다.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코델리아와 알라스테어가 기다리던 사람의 이름을.
에스페란사 헌터. 그리고 저 헌터라는 남자.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의문이 치솟았지만 지금은 그런 의문을 해소할 때가 아니었다. 알라스테어는 아버지가 이끄는 대로 짐 마차에 올랐다.
“아버지, 정말 같이 가지 않으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난 걱정 마라. 내 호위로 부대 하나가 통째로 붙었으니까.”
불안해하는 아들의 얼굴을 보던 공작은 지나가듯, 아까 렌프루 소령에게는 하지 못했던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알라스테어, 아까 너와 함께 있던 그 금발 숙녀는 누구냐?”
“예?”
“담력이 대단하더구나. 전투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총을 드는 것이 보통 아가씨가 아니던데. 이 사태가 무사히 끝나면 저택에 초대해 보는 것도 괜찮겠지. 출신이 괜찮다면…….”
그 말을 하는 던바틴 공작의 눈에 그 금발 아가씨에 대한 호감이 넘쳐흘렀다. 전투 중에도 느끼지 못한 답답함이 치밀어 올랐다.
“정말 모르십니까?”
던바틴 공작이 고개를 들었다. 주름진 얼굴에 의문이 서렸다. 알라스테어는 마벨우드 저택을 떠올렸다. 사교계의 추문으로부터 도망쳐 왔음을 인정하던 코델리아의 얼굴도. 그토록 큰 상처를 준 상대를 아버지는 기억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 얼마나, 얼마나…….
폐허 한가운데. 알라스테어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속이 꽉 막힌 듯 갑갑했다.
“코델리아 마벨우드잖습니까.”
* * *
거대한 크라켄이 에스페란사의 몸을 휘감고 바닷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군함 위의 사람들이 생각한 것과 달리 에스페란사는 여유로웠다.
수중 전투는 익숙하지 않다. 화기를 다룰 수 없다는 것도 큰 약점이다. 하지만 숨을 못 쉬는 건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머메이드 드레스를 입을 걸 그랬나.’
머메이드 드레스는 이름 그대로 수중 전투를 매우 용이하게 만들어 주는 장비였지만, 전투 시의 불편함을 감수할 정도의 가치는 없었다. 에스페란사는 대신 인벤토리에서 독특한 색의 마정석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바다에서 발견된 마정석이라고 했는데, 무슨 원리인진 모르지만 한 시간 정도는 견딜 수 있었다. 호흡기를 가지고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다.
새파란 마력이 서린 낫을 휘두르자, 크라켄의 다리가 잘려 나갔다. 발로 물살을 헤치고, 그 반동으로 몸을 둥글게 굴리며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가 솟구치며 매서운 공격을 막아 냈다.
요동치는 물결에 한참 먼 곳까지 밀려났다가 날개의 동력만으로 접근했다. 바다 밑에서 슬금슬금 올라오는 다른 몬스터들을 쳐 내면서 크라켄의 굵직한 다리 위에 올라탔다. 위기감을 느낀 크라켄은 에스페란사를 떨쳐 내기 위해 다리를 마구 휘둘렀다.
그대로 베어 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초보적인 전투 방식이다. 시간이 많았다면 그런 사치를 부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까부터 신경을 거슬리게 하던 이상한 불안감이 마음에 걸렸다.
‘그 많은 다리 중 하나 잃어 봤자지. 그보다는.’
언제까지 다리 베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에스페란사는 뼈 없이 물컹한 다리에 매달렸다. 팔다리로 촉수를 꽉 감싸고, 휘두르는 힘이 충분히 강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괴물의 빛 없이 새까만 눈동자에 분노의 불꽃이 튀었을 때, 깊은 바닷속에서 물의 저항을 이겨 내고 다리를 크게 휘둘렀을 때, 에스페란사는 그 반동을 이용해 크라켄의 머리에 착지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남은 마력을 한 조각 뚝 떼어 내 괴물의 머리를 깊게 찔렀다.
굵은 마력의 줄기가 머리통부터 다리 끝까지 관통했다. 촉수를 사방으로 뻗으며 몸을 쥐어짜고 뒤틀던 괴물은 차츰 힘이 빠졌다. 에스페란사는 깊은 바다의 중심에서 왕처럼 버티고 있던 괴물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사체를 수습해서 가져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필요하지도 않고, 그럴 시간도 없었다. 에스페란사는 물에 젖은 날개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물속에서 조금 천천히 돌아가던 부품들이 충분한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하자, 괴물의 사체를 구름판 삼아 높이 뛰었다. 물의 저항이 팔다리를 옭아매는 듯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는 입 안의 마정석 없이도 숨을 쉴 수 있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푹 젖어 무거운 몸의 물기를 털어 낸 에스페란사가 달려드는 괴물의 촉수를 낫으로 잘라 냈다. 섬처럼 우뚝 솟은 괴물의 머리 위에 올라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걸까. 이제는 거의 보지 않게 된 알림 창을 곁눈질하며 시간을 짐작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꽤 많이 흐른 것 같다. 에스페란사는 반쯤 무너진 해적선들과, 그런 대로 차분히 대응하고 있지만 상황이 나쁘기는 마찬가지인 군함을 번갈아 보았다.
양쪽 모두, 에스페란사가 말해 준 대응 방법에 충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하는 중이었다. 던전 전투에 익숙해진 13년 후의 군대와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지. 빨리 끝내는 것 말곤 답이 없겠어.’
무심히 생각을 이어 가던 에스페란사의 시선이 군함의 갑판 위에서 멎었다.
불안감.
전투 내내 심장 한구석을 갉작거리던 그 시커먼 예감의 실체가 드러났다.
금빛 머리칼과, 지쳤음에도 우아함이 드러나는 외모, 벽에 기대앉아 있어도 늘씬하게 길쭉한 체격. 착각일 리가 없었다. 눈앞이 아찔했다.
“왜, 왜 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