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191
191화
두 사람은 서둘러 저택으로 향했다.
거대한 가고일 석상을 지나, 작은 호수와 앙상한 겨울 가지가 있는 정원을 가로지르자 설명을 듣고 있는 한 무리의 관광객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속에 자연스레 끼어들었다가, 이윽고 그들이 부산스레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동안 다리아와 사이러스는 조용히 뒤로 빠졌다.
“서재가 제일 가능성이 높겠지?”
“그렇기는 한데.”
그러나 몰래 찾아가 본 서재는 넓기만 하고 실속이 없었다.
“백작이 쓰는 서재는 아닌 것 같아.”
여기가 백작이 개인적으로 쓰는 서재였다면, 이렇게 마도 공학과 관련된 서적은 하나도 없고 어디 인테리어 가게에서 산 것 같은 책들만 가득하진 않을 것이다. 이건 명백히 주로 쓰는 서재가 아니었다.
“이쪽으로 와 봐!”
다른 곳을 더 뒤져 볼까 하던 사이러스는 소리를 낮춘 다리아의 부름에 발코니로 향했다.
커튼으로 가려 둔 작은 발코니 너머로 커다란 숲이 보였다. 무성한 나뭇잎이 적잖이 떨어진 계절, 다른 때라면 나뭇잎에 가려 보이지 않았을 건물의 형체도 분명하게 보였다.
“숲 한가운데 저 정도로 번듯한 건물이라. 냄새가 나지?”
다리아가 씩 웃으며 먼저 발코니 아래로 몸을 던졌다. 창문을 닫은 사이러스도 다리아를 따라 숲길을 달렸다.
말보다도 빠른 걸음으로 숲길을 가로지른 그들의 앞에 저택 별관 정도 크기의 건물이 나타났다. 최근까지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있었다.
다리아는 입구로 곧장 걸어갔다. 사이러스는 주변을 맴돌다가 건물 동쪽의 빈 마구간에서 나인 호더의 의회 건물에나 설치되어 있을 것 같은 최첨단 온도 조절 설비를 발견하고 다리아를 불렀다.
“에이번데일이 쓰는 건물인 건 확실해 보이는데.”
다리아가 감탄을 터뜨렸다. 원래 세계에서 보던 것보다야 조잡했지만, 이 세계 기준으로 보면 적어도 십 년은 빠르다. 이런 걸 마구간에 툭 가져다 놓은 걸 보면 저 안에는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있겠지. 군침이 돌았다.
“들어갈 수 있을까?”
“어디 보자. 비밀번호를 입력하게 돼 있네. 잘못 입력하면 전기가 통하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목숨은 소중하니까, 이런 곳에서 날릴 필요는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신 비밀번호를 입력할 사람을 데리고 올걸.
“혹시 모르니까 신중하자. 그보다는 창문 쪽으로……. 창문도 막혀 있네.”
침음을 삼킨 다리아의 관심이 이 거대한 연구소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작은 폐건물로 향했다.
“저거라도 먼저 보자.”
폐건물이라면 대단한 잠금장치는 없겠지.
그러나 건물 뒤로 난 작은 길을 따라 걸으며 다리아는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 어째서일까? 에이번데일에 온 것도, 저 다 쓰러져 가는 건물을 본 것도 처음인데.
녹슨 경첩과 한 번 힘으로 연 적이 있는 듯한 자물쇠를 노려보던 다리아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새까만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리아는 손을 들어 흰빛을 내는 구체를 열 개 정도 만들어 냈다. 뒤늦게 따라 들어온 사이러스가 일곱 개를 더 추가하자, 음침한 폐건물은 마치 대낮처럼 밝아졌다.
반파된 기계가 건물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계의 한 가운데에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앙상한 신의 형상이 있었다. 무기를 잃어버린 신이.
그 앞에 선 다리아는 황금 발톱을 손에 쥐고, 들어 올렸다. 마치 퍼즐을 맞추듯 시야에서 기계로 된 신과 황금빛 날이 겹쳐진다.
무언가 들고 있었던 것처럼 주먹을 쥔 손 안에 황금 발톱……, 아니지. 다리아는 황금 발톱을 조금 더 높이 들어 올렸다. 신의 형상을 고려해 보면, 무기는 낫이다.
시간의 신의 낫.
“이거다.”
꼭 들어맞았다. 입이 절로 벌어졌다. 이거다!
“하하하, 이거였어!”
역시 그렇게 된 거다. 시더 클라이번이 시공간 기계의 제작자였다. 그가 황금 발톱을 만들었고, 그가 다리아를 이 세계로 이끈 원흉이었다.
고맙다고 해야 할까?
다리아는 커다랗게 웃었다. 꼬인 상황이 불쾌하기만 했는데, 이건 아주 재밌게 됐다!
웃음소리가 작은 건물에 쩌렁쩌렁 울렸다. 사이러스는 그런 형제를 두려운 듯 바라보다가 시선을 옮겼다. 누런 먼지를 한 차례 닦아낸 듯한 마력 투입구에 짙은 핏물이 눌어붙어 있었다. 오래됐지만, 그래 봐야 몇 달 정도인 듯했다.
“얼마 전에 이 기계를 작동시키려고 한 적이 있었던 것 같아.”
“실패했겠지만. 주요 부품은 내 손 안에 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클라이번은 마도 공학자인데, 왜 되지도 않을 걸 시도한 거지?”
“……일리가 있어.”
다리아는 복잡하게 이어진 기계의 형상을 노려보았다. 본다고 알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세히 보니 일부분 정도는 작동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봤자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효과도 없겠지만.
어쨌든 조금이라도 작동이 된다면 연구할 가치가 있었다.
“이걸 가져가야겠어. 설리번 박사에게 가져다주면 알아서 하겠지. 놈이 시공간 기계 연구에 진전이 없다며 징징대는 것도 듣기 싫으니 말이야.”
“이 커다란 걸……?”
다리아는 황금 발톱을 쥐고 휘둘렀다. 자기 자신의 ‘인벤토리’를 여는 움직임이었다. 칸수가 정해져 있는 헌터들의 인벤토리와는 달리 황금 발톱으로 연 공간에는 제약이 없었다.
하나가 꽉 차면 다른 공간을 또 열면 된다. 그리고 지금 연 이 공간은 건물 하나를 가득 채운 기계장치가 넉넉하게 들어갈 정도로 거대했다.
사이러스와 다리아는 시공간 기계를 힘겹게 인벤토리 안에 넣었다. 입구가 작아 부분부분 해체하기는 했지만 재조립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기계가 없어지자 건물은 순식간에 휑해졌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부품들만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금 전까지 공간을 채우고 있던 기계의 잔상이 보이는 듯했다.
“시공간 기계…….”
과한 추측일까? 이 오래된 기계가 자신을 처음 이 세계로 이끌었던 바로 그 기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러나 이 장소에서 느끼는 기시감은 달리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기계가 이 세상에 둘이나 있을 리도 없었다. 다리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
정말 죽어야겠다 생각한 순간 일어났던 기적 아닌 기적. 어둑한 숲속과 괴물의 손아귀에서 ‘발톱’처럼 번쩍이던 황금빛. 죽어가는 남자의 신음성.
그래, 그게 여기였다. 다리아를 이 세계로 데리고 온 것은 분명 이 기계였다. 고난의 대가처럼 손에 들어온 황금 발톱은 이 기계에서 떨어져나온 부품이었을 뿐이다.
혹시 또 다른 ‘사이러스’도 이 기계를 통해 온 걸까?
다리아는 눈을 떴다.
기상천외한 발명품들을 가지고 있었다던 그 ‘사이러스.’
빈 공간을 노려보던 다리아가 사이러스를 돌아보았다. 이 장소는 모든 걸 명료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다.
그자가 쓴 건 이 기계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세계를 넘나들 수 있다면 말이야, 시간을 넘나드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겠지. 안 그래?”
“타임머신 이야기야?”
“타임머신. 그래. 타임머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시공간 기계가 못할 거라고 단정할 수도 없지. 우리가 가진 이 황금 발톱만으로는 어렵겠지만 말이야.”
“그럴 수도 있겠지.”
사이러스는 의심 없이 대답했다. 다리아가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 퍼즐이 짜 맞춰지는 순간의 희열이 등줄기를 짜릿하게 했다.
머리 쓰는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왜 수수께끼 풀이에 열광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바로 이런 쾌감 때문이구나.
“아까 그 여자가 만난 ‘사이러스’가 미래의 너일 가능성은? 이상한 발명품들도 있고, 체격도 더 컸다고 하고, 너와 이름과 얼굴까지 전부 똑같은 ‘사이러스.’라면.”
그래, 그가 사용한 기계는 이 낡은 기계가 아니다. 그는 그들이 앞으로 만들 시공간 기계를 통해 과거로 돌아온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왜 그런 짓을 하겠어?”
“그거야 나도 모르지.”
짐작할 수 있는 건, 사이러스가 굳이 그런 짓을 하게 된 동기가 다리아에게 이롭지는 않으리란 것이다.
“어쨌든 에이번데일 백작과도 아는 사이고. 백작 옆에는 그 여자가 있지. 미래의 너와 아는 사이인 게 백작이 아니라 그 여자일 수도 있겠지?”
“그렇다는 건 그 여자도?”
그 소름 끼치게 강하던 여자. 그들을 마치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듯 훤히 꿰뚫어 보던 여자.
사이러스도 깨달았다. 그 여자는 그를 알고 있었다.
“그래. 그런 것 같아.”
둘 다 미래에서 온 거라면.
“스털링 항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도 납득이 가지. 애초에 대단한 정보망 따위가 있었던 게 아닌 거야.”
괜히 루크 헤이븐리만 족쳤다. 다리아는 깔깔 웃었다. 유쾌하기 그지없었다.
“이거 아주 마음에 드는 전개인데? 이젠 우리가 놈들이 뭘 아는지, 뭘 원하는지 알고 있고, 놈들은 우리가 그걸 알고 있다는 걸 모르잖아. 방금 전까지는 정반대였는데!”
세상에. 이렇게나 멋진 일이 다 있나. 다리아는 한참 동안 웃었다. 목이 쉬어 터지도록 웃다가, 한순간 뚝 그쳤다.
“계획을 전부 바꿀 순 없어.”
아주 치밀하진 않아도 나름대로의 체계가 있는 계획이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순 없었다.
대신, 시간을 앞당길 수는 있다. 안심하고 있을 때 뒤통수를 쳐야지. 물론 바꿔도 되는 부분들은 조금씩 바꾸고 말이다.
“할 일이 많아지겠어. 그런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좋을 만하지. 설리번 박사가 얼마 만에 이걸 복구할 수 있을까? 할 수는 있겠지?”
다리아는 잠시 생각했다. 아마 가능하기는 할 것이다. 미래의 사이러스와 그 빌어먹을 여자가 같이 돌아온 것을 보면. 그러나 그게 언제쯤일까?
능숙하게 두 사람을 밀어붙이던 괴물 같은 무력. 그런 것은 한두 해 훈련해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아까 사이러스를 알아본 여자가 미래의 그와 지금의 그를 혼동한 것을 보면 지금으로부터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나진 않은 것 같았다.
만약 그 여자가 이 기계를 통해 이쪽 세계에 왔다가 과거로 이동한 것이 맞다면, 그들은 빠른 시간 내에 시공간 기계의 완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이렇게 된 거 빨리 진행하는 게 낫겠어. 어차피 스털링 문제도 있으니까.”
스털링에서 일어난 일은 결국 덮어버릴 수 없는 수준까지 커졌다. 이제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면 모두 괴물과 던전의 존재를 알았다.
생각했던 시기보다 이르기는 하지만 계획과 완전히 어긋나는 일은 아니었다. 그들에겐 앞으로의 계획을 실현할 수 있는 힘도 있었다. 서두르면 적당히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끌고 갈 수 있을 것이다.
미래의 ‘사이러스’를 보아하니 그들의 미래는 꽤나 성공적인 것 같다. 다리아는 기분 좋게 폐건물에서 나가는 사이러스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넌 배신한 모양이지만.’
까득 이를 갈며 걸어 나온 다리아가 문득 나무 그늘 아래 멈춰 섰다. 아, 잊을 뻔했다.
“증거를 없애야지.”
이윽고 거대한 불꽃이 숲을 휘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