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193
193화
열차가 도착한 것은 정확히 정오였다. 나인 호더에서 가장 높은 시계탑에서부터 묵직한 종소리가 도시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백작님, 저희 마차를 찾아오겠습니다.”
인파 사이로 빠져나간 밀런이 마차를 찾아오는 동안, 시더는 가판대에서 나인 호더에만 발행하는 신문을 샀다.
“무슨 내용 있어요?”
“뻔한 정치 얘기죠. 수상 각하께서 안팎으로 치이느라 고생이 많으시다, 그런 이야기.”
나라 안팎의 일로 식민지에 대한 지배력이 떨어지자, 여기저기서 파오룬이라는 거대한 과실을 노리는 손길을 뻗어 왔다.
파오룬 북부의 작은 땅을 차지하고 있던 듀랑과, 파오룬의 제후국으로서 현재도 자치권을 가진 칼린디 번국의 후계자를 확보한 티스비아가 손을 잡고 파오룬 총독부를 압박하고 있었다. 지금은 말뿐이지만, 군사적 움직임이 없으란 법도 없었다.
식민지 내에서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그것은 단순히 영토나 경제력의 문제가 아니라 패권의 문제였다.
지식인들이 식민지 지배권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동안, 다리아는 무엇을 했을까.
에이번데일에서는 특별한 소식이 닿지 않았다. 던전의 소식도 없었다. 전해진 거라곤 스털링 항구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시작된 몬스터 부산물 연구가 성과를 냈다는 정도의 이야기가 전부였다.
시더는 어느덧 기사를 다 읽고 광고란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에스페란사가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마법 용품 광고네요?”
“고객님을 위한 ‘특수한 자재 사용.’ ‘보장된 기능.’ 무슨 효과인지는 안 써 있네요. 자재도 안 써 있고. 이상한 광고예요.”
에스페란사는 그제야 그림의 물건을 유심히 보았다.
13년 전, 이제는 12년 전이 된 이 시기의 기술 수준은 대충 파악했다. 하지만 하필 1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함께 있었던 것이 시더 클라이번이었던 만큼, 에스페란사가 파악한 수준은 이 시대의 보편적인 기술 수준과 차이가 있었다.
‘뭐가 문제지?’
광고가 이상해서 주목한 건가? 하지만 광고 자체는 두루뭉술해도 그럴듯했다. 광고하는 품목이 문제였다.
“신사용 지팡이네요. 지팡이에 무슨 기능이 있어요?”
“없죠, 보통은.”
시더는 자기 지팡이로 땅을 두 번 두드려 보였다. 평범한 지팡이 같아 보이지만 버튼 한 번만 누르면 총으로 변한다. 들키면 총기 불법 개조죄로 잡혀가기 딱 좋은 물건이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시더 클라이번이 본인의 발명품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고, 일반적인 지팡이는 땅을 짚고 다니는 것 외에 별다른 기능이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그것은 신사 계급의 상징에 가까웠다. 고급 목재에 금과 은으로 장식한 손잡이를 가진 거추장스러운 장신구. 특이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동물의 뼈와 가죽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과시용 내지 수집용이었다.
‘마도구로 만들기에 적합한 물건이긴 하지.’
늘 손에 들고 다니는 물건이고, 지팡이 안에 검을 숨기는 등의 장치를 하는 것이 보편적이던 시대도 있었으니까.
“무기일까요?”
“글쎄요. 그건 불법인데. 차라리 사기 광고일 가능성이 더 클 것 같네요.”
사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인데, 묘하게 신경에 거슬렸다.
“모자 가게가 생각나요.”
그때는 소문과 유행이 결합한 형태였지만, 이번엔 확실하게 용도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특수한 자재 사용.’
에스페란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팡이니까 특수한 자재를 쓸 수도 있었다. 고급 목재라든지, 희귀 동물의 뼈라든지…….
그 때, 무언가 머릿속을 휙 스쳐 지나갔다. 구체화 된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확인해 보는 게 제일 빠르겠지.
에스페란사의 시선이 아까보다 조금 한산해진 기차역 내부를 훑었다. 벤치에 앉은 신사들, 기차표를 들고 돌아다니는 신사들 사이에서 비슷한 모양의 지팡이들이 보였다. 수는 적지만 하나같이 부유해 보이는 외양이다.
기차역 내부를 샅샅이 훑던 에스페란사의 눈이 곧 적당한 대상을 찾아냈다.
“11시 방향의 담배 가게. 갈색 프록코트, 금갈색 머리. 보여요? 사진에 있는 지팡이랑 똑같이 생기지 않았어요?”
남자는 찾는 담배가 없는지 담배 가게 직원에게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그런다고 없는 담배가 생기지는 않는 법. 씩씩대는 남자를 관찰하던 시더가 빙그레 웃었다.
“그래 보이네요. 그럼 확인을 해 볼까요.”
시더는 남자가 대거리를 하는 담배 가게 근처로 다가갔다. 느긋한 걸음에는 의심할 구석이 없었다. 에스페란사는 픽 웃으며 따라갔다.
그사이 시더는 줄을 서듯 남자로부터 두어 걸음 뒤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한참 성질을 부리던 남자가 휙 돌아서서 큰 걸음을 내디딘 순간, 그 발 앞에 자기 지팡이를 슬쩍 내밀었다.
“으악!”
꼴사납게 넘어지며 남자가 눈을 질끈 감았다. 거금을 들여 마련한 지팡이가 손에서 빠져나갔다.
그러나 지팡이가 기차역 바닥에 뒹구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대신 머리 위에서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저기, 괜찮으세요?”
무릎을 조금 굽힌 숙녀가 지팡이를 내밀었다. 실크 장갑을 낀 손가락이 늘씬하고 몸 선을 휘감은 벨벳 드레스의 광택이 우아했다.
남자가 황급히 몸을 일으키며 지팡이를 받아들었다. 숙녀의 손은 떨어지기 싫은 것처럼 조금 끈적하게 지팡이 위를 쥐었다가 담백하게 떨어져 나갔다.
왠지 입 안이 마르는 것 같아 남자는 눈을 굴렸다. 그리고 자신이 숙녀 앞에서 넘어지는 망신을 당했다는 사실을 되새기고 나서야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다.
“아, 저. 감사합니다.”
잠긴 목소리로 겨우 대답한 남자가 조금 더 말을 붙여 보려던 순간, 다른 남자가 숙녀의 팔꿈치를 잡아당겼다.
“실례했군요. 다친 곳은 없습니까?”
전혀 사과 같지 않은 사과였다. 뭐라 쏘아붙여 주려던 남자는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필이면 여기서 드잡이해서 좋을 게 없는 상대였다.
“멀쩡합니다. 그럼, 이만.”
그래도 기분이 상한 티를 숨길 수는 없었는지 남자는 지팡이로 땅을 쿵쿵 짚으며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시더가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 저런 놈들 머릿속에 있는 것이야 뻔했다. 물론 그는 그런 이야기를 구태여 입 밖에 꺼내지는 않았다. 대신 고개를 돌려 물었다.
“어때요?”
“무기는 아니에요. 잠깐 만져본 거라 확실하진 않지만, 안쪽에 기계가 잔뜩 들어 있는데 무겁진 않은 느낌이었어요. 마력도 티 안 나게 조금 넣어 봤는데 큰 차이는…… 잘 모르겠네요.”
그렇다고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할 순 없었다. 기능은 알아내지 못했어도 다른 쪽은 확인했으니까. 에스페란사는 손 안에 감기던 가죽의 감촉을 되새기며 입을 열었다.
“몬스터 가죽을 썼어요. 확실히.”
“……일이 이렇게 되는군요?”
대외적인 수급처는 스털링 항구일 테지만, 실제로 수급하는 던전은 따로 있겠지.
하지만 사이러스와 다리아는 새해가 되기 전까지 이 세계에 드나들지 못했을 텐데, 그동안의 가죽 수급은 어떻게 해결했지? 아니, 애초에 이런 물건들이 언제부터 유통되기 시작한 거지?
고작 두어 달 사이의 일이었다.
일전의 모자 가게가 사교계의 유행으로 자리를 잡았을 때는 미신에 가까운 소문에 기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것은 달랐다. 대놓고 마도구로 홍보했고, 기능과 자재를 자랑하고 있었다. 과연 그 자재가 무엇인지 이 지팡이의 주인들이 모르고 있을까?
실체를 모르는 던전에 대한 공포는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에이번데일이 그랬듯 나인 호더 사람들의 얼굴에서 그 재난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공포가 가라앉은 자리를 새로운 자재에 대한 호기심이 채운다면? 사업가들은 손이 빠르고, 유행은 들불처럼 빠르게 번진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그 일련의 자연스런 현상 뒤에는 의도가 있었다. 다리아가 하는 일의 의도란 뻔한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었다. 어쨌든 황금 발톱을 얻기 위해선 다리아를 끌어내야 하니까.
“마법 용품 가게에 가 봐야겠어요.”
하나하나 차근차근, 그러나 신속해질 필요가 있었다.
* * *
오랜만에 돌아온 나인 호더의 에이번데일 저택은 시더 없이 왔을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하워드 집사와 럭스 부인이 밝은 미소로 맞이하는 저택. 첫날 몸을 풀었던 욕조에서 김이 올라왔다.
목욕 후에 피로가 풀린 몸을 침대에 던지다시피 한 에스페란사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숨을 내쉬었다.
처음 이 침대에 누웠을 때, 에스페란사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왜 여기에 있는지, 이 세상은 무엇인지, 자신은 무엇인지.
그로부터 꼬박 1년이 지난 지금, 수많은 사실들이 밝혀졌고, 세상이 한 번 뒤집힐 만큼의 변화들이 쌓였다. 이제 에스페란사는 목표가 있고, 의지할 사람도 있었다. 해야 할 일도,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고 있다.
돌아가기까지 정말로 고작 한 발짝. 그런데 묘하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듯한 기분이다.
에이번데일에 있는 동안 나인 호더의 소식에 귀를 닫아 두지는 않았다. 하지만 거리가 있고 정보원도 없는 상태로 저택에 앉아 조간신문만으로 상황을 알아보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사이러스도 다리아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발이 묶였다.
시더는 신문조차 보지 않고 연구에 집중했다. 지나가듯 해 준 말로는 마정석 종류만 열 개가 넘게 필요하고, 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제련해야 된다고 했다.
제련된 마정석에 기계 부품을 맞추는 기초적인 작업부터, 큰 틀을 잡으면서 연구소를 폐쇄하고 보안 체계를 고치는 데도 시간을 써야 했다. 그야말로 시간을 초단위로 쪼개 써야 했으니 그는 다른 데 돌릴 정신이 없었다.
에스페란사도 새벽까지 옆에서 간단한 작업들을 도왔다. 손이 모자라 중반부터는 밀런까지 동원됐다.
‘둘다 별로 도움은 안 됐겠지만…….’
그렇게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나인 호더로 돌아왔다. 이제 시더는 연구를 마저 끝마칠 것이다. 한 번 만들어 본 기계를 다시 만드는 작업이니 완성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 핵심 부품인 황금 발톱만 있으면 정말로 시간문제였다.
그러니까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 다리아를 찾아서 황금 발톱을 얻고 기계를 완성시켜서 돌아가는 것까지. 에스페란사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민할 것도 없는 문제였다. 오히려 이전에는 더욱 답이 확실했던 문제다.
모든 불확실한 문제들의 답을 밝혀내 왔던 1년 동안 언제나 당연하게 여겼던 것은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의문점들을 풀어낸 지금은 오히려 알 수 없어졌다. 의문 없이 당연시했던 사실에 불쑥 의심이 끼어들었다.
돌아가야만 하나? 왜?
에스페란사는 고개를 저어 의심을 털어냈다.
당연히 돌아가야지. 스물일곱 해 동안 쌓아온 인생이, 피붙이와 친구들이 전부 거기 있으니까.
눈을 꽉 감고 애써 잠을 청했다.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 따윈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