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195
195화
“온 지 얼마 안 됐네. 요즘엔 새로운 게 있나?”
“아무렴요. 얼마 전 스털링 사건 기억하십니까? 거기서 나온 괴물들 가죽이랑 뼈를 가공해서 쓰면 마도구 효과가 훨씬 좋아진다고 합니다. 아예 기존 기계와는 다른 방식으로도 쓸 수 있다는데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뒷얘기는 마도 공학자인 시더 클라이번의 흥미에 맞추어 꺼낸 이야기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시더는 그 이야기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스털링 사건이 터지기 1년 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괴물 가죽이라. 그런 게 정말로 유통이 되고 있다고?”
“그럼요. 절 못 믿으십니까? 제가 그래도 믿을 만한 사람한테 납품을 받고 있습니다. 보시면 아실 겁니다. 동물 가죽이나 뼈와는 전혀 다릅니다.”
정말로 그랬다. 가죽의 부드러움이나 염색이 용이하다거나 하는 부분을 제하고, 오직 마력 투과율만 봐도 일반 동물 가죽에 비해 대단히 좋은 재료였다. 자세한 것은 더 연구를 해봐야겠지만.
예전에 트롤 가죽을 발견했던 진열장을 구경하던 에스페란사도 똑같이 생각했다. 동물 가죽에 비하면 상당히 좋은 재료였다. 그리고 절대 스털링에서 나온 건 아니었다.
스털링 항구에 나타난 몬스터들은 전부 수생종이었으니까.
미끈미끈한 바다뱀, 연체동물과 갑각류 괴물들. 수생종에도 부산물은 있지만, 에스페란사도 그런 걸 챙기지 못했을 정도로 정신없는 던전에서 다른 사람들이라고 괴물을 해체해 볼 여유가 있었을 리 없었다. 그 부산물이라는 게 이런 종류도 아니었고.
어차피 그 던전엔 수생종 몬스터만 나온다는 건 일반인들은 모르는 사실이다. 몇 장 없는 사진에 찍히지 않은 다른 괴물이 있다고 거짓말하면 되니까.
즉, 다리아는 다른 던전을 만들어 가죽을 공급하면서 스털링에서 나온 물건이라고 팔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오래 갈 거짓말은 아니다. 결국 다른 던전을 하나라도 더 공개해야 할 텐데……. ‘몬스터 사태’인가? 메모리얼 파크?
그럴지도 모른다. 이 시기쯤이면 몬스터 사태를 일으킬 계획도 이미 수립이 되어 있을 테고, 변수가 있다고 한들 이제 와서 장소를 바꿀 필요도 없을 테니까.
“자넨 내가 만만해 보이나?”
“예?”
에스페란사가 잘 가공된 몬스터 가죽 사이에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반대쪽에선 다소 험악한 소리가 오갔다. 언성이 높아지자 눈을 크게 뜬 에스페란사는 시더가 사장을 세 치 혀로 쥐고 흔드는 모습을 구경했다.
시더를 걱정해서는 아니었다.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기더라도 사장 하나 정도는 알아서 하겠지. 그냥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했다.
“당시 던전에서 나온 부산물 종류라면 이미 핀리에서 연구가 끝났네. 이건 다른 거고. 그 정도도 구분 못 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지?”
사장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단순히 숨기던 사실이 들켜서 놀란 것 같지는 않았다.
분명 아는 것이 없지는 않았을 텐데, 확실히 아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이윽고 사장이 비굴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어떻게 백작님을 속이겠습니까. 확실한 정보가 아니라 말씀을 못 드렸던 거지요. 하하, 잠시 이쪽으로.”
가게 안에는 두 사람 외에도 완성된 마도구를 구경하는 손님이 서너 명 정도 더 있었다. 지금부터 할 얘기는 비밀 유지가 관건이었으므로, 사장은 일그러진 미소를 애써 유지한 채 시더를 안쪽 방으로 이끌었다. 에스페란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대화 내용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새 마도구들을 구경했다.
여기 처음 방문했던 건 고작 1년 전이다. 그때 트롤 가죽 하나를 발견하고 흥분했던 기억이 분명히 있는데, 지금은 가죽의 절반이 몬스터 가죽이다. 마도구에도 몬스터 가죽이나 뼈를 쓰고 있었다.
‘질이 좋은 것 같지는 않은데.’
마력 투과율 같은 것까지 제대로 알아보려면 연구를 해야겠지만, 딱 봐도 대단한 몬스터의 가죽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스털링 항구에서 온 것일 리가 없었다.
에스페란사는 이런 허접한 가죽을 만져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당연히 무슨 몬스터 가죽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딱 봐도 비실비실할 것 같았다.
‘이거 완전히…… 총만 쥐여 주면 코델리아도 잡을 수 있겠는데?’
그런 가죽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이 그런 가죽이었다. 발로 툭 치면 죽을 것 같은 하급 몬스터의 것.
에스페란사는 어제 본 남자의 지팡이 손잡이를 장식한 가죽을 떠올려 보았다. 그건 이것보단 질이 좋아 보였다. 그건 아마 상당히 강한 몬스터의 가죽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좋은 가죽과 나쁜 가죽을 동시에 유통하고 있단 말이다.
‘왜 굳이……?’
별 귀찮은 짓을 다 한다. 에스페란사는 여전히 다리아의 생각을 가늠할 수 없었다. 가죽이 이 가게에만 유통되진 않을 테니 전체 유통량을 생각하면 하루 종일 던전에서 둘이 몬스터만 죽이고 있어도 부족한데.
설마 진짜 둘이 그러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럼 던전만 찾으면 되는 건가?
아니지. 지금까지 벌여놓은 일의 양을 생각할 때 다리아가 그렇게 한가할 리가 없다. 그럼 대체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어디부터 찾아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시더가 기계를 완성하는 동안 에스페란사와 사이러스는 다리아를 찾아서 황금 발톱을 빼앗아야 한다.
역시 루크 헤이븐리를 찾아가 보는 수밖에 없나?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에스페란사.”
어깨를 감싸는 손의 무게에 생각이 뚝 멎었다.
“얘기는 다 끝냈어요?”
“그런 셈이죠. 자세한 얘기는 집에 가서 하도록 하고……. 갖고 싶은 것 있어요?”
말 그대로 갖고 싶은 걸 물어보는 건 아닐 테고. 에스페란사는 매대에 걸린 가죽 중에 절반 정도를 골라냈다.
“이거 전부요.”
시더는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려 사장을 불렀다. 가죽을 가져가서 포장하던 사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괴물 가죽만 기가 막히게 골랐네.’
하긴 저 에이번데일이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니 평범할 리가 없다. 장사꾼의 날카로운 시선이 두 사람을 훑었다. 허리를 감싼 팔이나, 코끝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나누는 들리지 않는 대화.
‘보통 사이가 아니로군.’
뭐, 그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귀족 나리의 연애사 따위야.
“포장 끝났습니다. 백작님, 그럼 말씀하신 건은 전달해 두겠습니다.”
“뭘 전달해요?”
포장된 가죽을 마부 테일러에게 맡긴 시더는 수표책에 무언가를 짧게 휘갈겨 쓰고는 에스페란사의 어깨를 당겨 귓가에 속삭였다.
“공급책이 따로 있는 걸 확인했어요. 고급 가죽과 하급 가죽을 취급하는 사람이 다른 것 같은데, 어느 쪽을 확인해 보고 싶어요?”
“둘 다는 안 돼요?”
“그렇게까지 하면 의심받죠.”
공급책을 굳이 만나려 하는 부분에서부터 의심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그건 시더가 어떻게든 변명했을 테고.
최대한 신속하게, 들키지 않고 뒤를 밟으려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겠지. 아쉽지만, 선택을 해야 한다면 답은 간단했다. 아마 시더도 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급 가죽이요.”
그러자 시더는 수표를 뜯어 에스페란사에게 보여 주었다. 금액을 적어야 할 자리에 깔끔한 필체로 적힌 한 줄. 같은 답이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알면 물어보지나 말지. 에스페란사는 혀를 차면서도 입술 끝을 말아 올렸다.
* * *
짧은 나들이가 끝난 후 저택으로 돌아온 시더는 연구실에 틀어박혔다. 홀로 노닥거리던 에스페란사는 사장이 수표책 밑으로 깔아준 종이쪽지를 다시 한번 펼쳐보았다.
가죽을 유통한다는 인물들은 질이 나쁜 쪽에 속했다. 음지와 양지 사이 어딘가에 발을 걸쳐두고 있는.
이것도 다리아가 선택한 거라면 괜찮은 선택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의 역할은 헌터들의 직거래 시장으로 대체될 것이다. 기업가나 정부와는 달리 이들에게 방어 수단이라곤 무력밖에 없는데, 마법사인 헌터들을 뒷골목 깡패들의 알량한 무력으로 상대한다니, 결말이 뻔했다.
하지만 임시직이라곤 해도 깡패들을 쓰겠단 발상은 에스페란사라면 절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머리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아니고…….
‘아니어야지.’
그보다는 선택지를 떠올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인데, 이런 건 아무래도 경험이 좌우하게 되어 있다.
에스페란사는 현실에서 음지의 인물들과 엮여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다리아는 그런 사람들이 익숙할지도 모른다.
에스페란사는 다리아가 어떤 사람인지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궁금하지도 않았다. 사실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할 일을 할 때였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새까만 후드를 뒤집어쓴 에스페란사는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목적지는 얼터 지구. 허름한 아파트 2층. 한때 돌팔이 의사가 살았던 곳.
이곳이 가죽 공급책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 * *
얼터 지구의 짙은 그늘 사이를 빠르게 통과한 에스페란사는 가벼운 도움닫기와 함께 뛰어올라 창틀에 매달렸다. 그리고 그네를 타듯 창틀을 붙잡고 흔들리다 휙 날았다.
소리 없이 창틀 위에 착지한 뒤, 닦은 지 10년쯤 된 듯한 창문 너머로 안쪽을 확인했다.
좁고 어둑한 방이었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나는 듯했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에스페란사는 조심스레 창문을 열었다.
덜컥, 소리가 났다. 잠금장치가 걸려 있었다.
에스페란사는 잠시 고민하다가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흙바닥에서 돌을 주워 와 창문을 깨뜨렸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요란한데도 문을 열어 내다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설령 무슨 일이 있더라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다소 씁쓸한 일이긴 하지만, 이럴 때는 도움이 됐다. 에스페란사는 깨진 유리를 밟지 않게 조심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을 밟자 먼지가 훅 올라왔다. 재채기가 나올 것 같아 입을 틀어막은 에스페란사는 해진 커튼을 더욱 꼼꼼히 닫았다. 외부에서 드나든 흔적이 남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신중히 움직인 발끝에 부드러운 무언가가 닿았다. 바닥에 성의 없이 던져놓은 가죽이 가득했다. 몬스터 가죽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에스페란사는 어깨 위의 노란 먼지를 털어내며 널브러진 가죽을 밟지 않도록 조심히 움직였다. 발자국을 남겨선 안 된다. 그건 단서가 되니까.
눈이 적응되자 어두운 실내가 어렴풋이 보였다. 예전에 잭의 빈민가 친구와 함께 방문했을 때와 비슷했다. 돌팔이 의사 행세를 하던 설리번 박사의 책꽂이와 책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떠날 때 책도 거의 남겨두고 간 듯했다.
에스페란사는 책장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책꽂이에 있는 건 대체로 의학 서적이었다. 몇 가지는 척 봐도 돌팔이나 읽을 것 같았다.
‘설마 진짜 이거 갖고 진료를 하지는 않았겠지?’
슬그머니 드는 불길한 생각을 억누르며 조금 더 훑어보았지만 별다른 것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