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202
202화
뼈가 앙상하던 시공간 기계가 조금씩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추었다. 뼈가 앙상하던 나무 위에 푸른 새순이 돋아났다. 3월 초의 나인 호더에는 여전히 겨울바람이 불었지만, 시간은 속일 수가 없는 법이다.
사이러스는 소도시의 정보상이 거처를 옮긴 듯하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정보가 끊겼다는 뜻이다.
없애도 또다시 나타나는 초보자용 던전 공략을 멈추자 몬스터 부산물 유통에 속도가 붙었다. 주요 일간지에 광고가 실리기 시작했고, 사교계 유명인사들이 주문 제작한 마도구를 들고 나타났다.
도덕적 비난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새로운 것에 대한 열광이 더 컸다. 시더 클라이번에게도 몬스터 부산물로 마도구를 제작해 줄 것을 요청하는 의뢰서가 몇 장 들어왔고, 그는 전부 거절했다.
새로운 바람이 부는 3월.
검은 증기 마차가 어퍼 레인을 가로질렀다. 에이번데일 백작가의 마차는 아니었다. 그러나 커튼 안쪽에서 얼핏 금빛 머리카락이 스쳤다.
마차는 있을지도 모를 추격을 따돌리듯 번화가를 빙빙 돌다가 수상 관저로 향했다.
관저에 도착하기 직전, 에스페란사가 창문을 슬쩍 열었다.
“어때요?”
푸릇푸릇한 잎새가 돋아나기 시작한 정원과 그 끝에 세워진 저택. 고풍스럽지만 이 거대한 오스던 제국을 다스리는 수상의 거처라기엔 소박했다.
대문부터 저택 현관까지 뻥 뚫린 정원에는 산책하는 비서관 두어 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대문 밖이 보안을 통과하기 위해 줄지어 선 증기 마차로 붐비는 것과는 대조되는 풍경이었다.
“삼엄하네요. 물 샐 틈도 없겠는데요.”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각지대랄 게 없는 촘촘한 경비였다. 에스페란사는 내심 감탄했다.
“그런데 수상 관저가 원래 이렇게 경비가 삼엄하던가? 이런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 걸로 알았는데요.”
“맞아요. 하지만 지금은 각하의 입지도 그리 좋지 않으니까요.”
아. 해적 일이 있었지.
해적으로부터 스털링 항구 사건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템프턴 내각에 결코 유리하지 않았다. 이를 틈탄 불미스러운 시도도 몇 번 있었다. 당연히 경비가 삼엄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부터 저택에 잠입해야 하는 에스페란사에겐 썩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바로 서재까지 갈 수 있으려나…….”
“못 하겠어요?”
“못 하겠다곤 안 했어요.”
좀 늦어질 수도 있다는 거지. 에스페란사는 입술을 동그랗게 말고 삐죽거렸다.
“서두를 필요는 없어요. 시간을 끄는 것 정돈 할 수 있어요.”
“시간을 끌지 말고 그냥 알아서 협상해요.”
“내 능력 이상의 것을 하겠다고 말할 순 없죠.”
저런 말을 하면서도 오만해 보일 수 있는 건 정말 능력이다. 에스페란사는 보란 듯이 혀를 찼다.
맨 앞줄의 차가 보안을 통과했다. 에스페란사는 슬슬 나갈 준비를 하면서 문득 물었다.
“그런데 왜 처음부터 수상을 찾아올 생각을 하진 않은 거예요?”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방법은 아니라서요. 지금은 시기가 괜찮지만요.”
스털링 사건과 몬스터 부산물의 보급으로 인해 정계의 흐름도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수상에게서 협조를 이끌어내기에 적합한 시기가 있다면 지금일 것이다.
“흐음.”
에스페란사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면 이러나저러나 협상이 성공할 가능성이 꽤 높다는 거잖아? 애초에 약점을 잡을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에스페란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손을 흔드는 시더를 흘겼다. 그러나 더 말을 얹지는 않았다.
바깥이 번잡한 틈을 타 마차 밖으로 몸을 빼내고, 저택으로 순식간에 잠입했다. 정원수 그림자를 안으로 몸을 숨기며 에스페란사는 속으로 혀를 찼다.
‘심술이야, 뭐야.’
시더 클라이번의 심리는 짐작이 잘 가지 않았다. 좋은 뜻인지 나쁜 뜻인지도. 얼마 전이었다면 다 뜻이 있겠지, 하고 넘어가겠지만…. 요즘은 간혹 뾰족한 심사를 숨기지 않아서. 단순한 심술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시더가 에스페란사를 위험하게 만들 리 없다는 건 확실하다.
심술이더라도, 까짓거 좀 받아줘도 되지. 에스페란사는 작은 분수대를 지나쳐 열어둔 작은 창문 안으로 몸을 통과시켰다.
그와 동시에 에이번데일 백작의 마차도 대문을 통과했다.
“로드 에이번데일, 여기서 기다리시면 각하께서 내려오실 겁니다.”
상원 의원이 아니라 일반인 신분으로 초대받은 상태라는 것을 명확히 하는 호칭. 시더는 개의치 않고 미소를 지었다.
수상 관저의 차는 그럭저럭이었다. 귀족적인 취미에 관심을 두지 않는 수상답게, 딱 트집을 잡히지 않을 정도.
그런 그가 후작의 차남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본인이 숨기지 않는데도.
시더는 아주 어릴 적 수상을 만난 기억이 있었다. 정말로 아주 어릴 적, 10살보다 0살에 가까운 나이였을 때.
당시 아버지의 학교 후배이자 정계의 신인이었던 레이먼드 템프턴은 어린 시더를 위해 따분한 선물을 한 아름 안고 와서는, 어떻게든 어린애 관심을 끌어보려 애를 쓰다 돌아갔다.
그 선물은 아마 지금도 창고 한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와는 그보다 깊은 인연이 있다지만, 시더와는 그것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작위와 상원 의원 직위를 물려받은 시더는 별 망설임 없이 레이먼드 템프턴의 거수기 노릇을 해 왔다.
어차피 정치에는 관심 없다. 레이먼드 템프턴은 적어도 멍청한 소리는 하지 않는다. 템프턴을 따라가면 적어도 그의 표가 엉뚱한 곳에서 썩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동시에 권력자에게 착실히 빚을 쌓아놓는 행위이기도 했다. 템프턴은 수상이 되었고, 입지가 흔들린 지금까지도 이 나라 최고의 권력자였다.
찻잔을 내려놓았다. 잔 받침이 뒤뚱거리는 소리에 시더가 이마를 찡그렸다.
“미안하게 됐어, 찻잔에는 취미가 없어서.”
“괜찮습니다.”
문고리를 붙잡고 선 키 큰 남자가 멀리서 찻잔을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좋은 찻잔은 아니더라도, 손님에게 이런 것을 내오면 못 쓰지.”
그러면서도 바꿔오란 지시를 내리지는 않았다.
그는 큰 보폭으로 걸어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아마 똑같이 균형이 맞지 않을 잔 받침 위에 잔을 두고 차를 따랐다.
맑은 수색을 바라보며 시더는 방금까지의 행동에 어떤 질책의 의미가 섞여 있는지를 고민했다.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완전한 환영의 의미도 아니었다. 템프턴의 불만은 이해했다.
“에이번데일. 내 거수기 노릇은 그만둔 줄 알았는데.”
이 문제였겠지. 마정석 광산 일로 던바틴까지 간 것이 수상의 심기를 거스른 것이다. 그 일로 적잖은 곤욕을 치렀을 테니까. 시더는 여유롭게 웃었다.
“앞으로도 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번 일은 각하께서 저를 공격하신 거죠. 제가 각하를 공격한 게 아니라.”
수상의 낯이 조금 흐려졌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적으로는 지인의 아들, 어릴 때부터 봐 왔던 상대였다. 공적으로는 드물게 협상 없이 얻을 수 있는 상원의 한 표였다. 수상은 자신이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양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낮은 목소리가 대답했다. 시더는 때뚝이는 잔 받침을 손끝으로 툭 건드리며 말했다. 덜그럭. 신경에 거슬리는 소리가 났다.
“제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양보할 수 없는 일.”
“네게 그런 것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선대 백작께서 기뻐하시겠군.”
아버지를 떠올리자 시더는 쓴웃음을 지었다. 애써 잊으려고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된 지 몇 달 지나지 않았다. 편안히 들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다만 지금은 감상에 빠질 틈이 없었다. 웃음기가 조금 더 진해졌다.
“이해해 드리죠. 한 번 정도는. 어차피 타격도 없었으니까요.”
뼈아픈 실패를 떠올린 수상의 입술이 굳어졌다. 그러나 이내 능숙하게 표정을 감췄다.
그는 숱한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의 자리를 차지한 자였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일로 전전긍긍하는 것은 무의미하단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럴 시간에 다음을 대비해야지.
“그래서, 오늘의 용건은?”
결코 작지 않은 용건일 것이다. 몇 년 동안 씨를 뿌린 밭에 추수를 하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
“두 번은 실패하지 않도록 도와드릴 겸, 그간의 빚을 받을까 합니다.”
“내 두 번째 실패라. 물론 두 번 실패할 생각은 없지. 에이번데일, 알고 있는 게 있는 모양이지?”
웃는 얼굴인데도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은 압박감이 있었다. 갈리스턴 앞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던 시더 클라이번이지만, 템프턴 수상과 수 싸움을 하는 순간에는 손바닥 안쪽이 뜨끈했다.
그는 한쪽 귀에 꽂은 통신기로 에스페란사의 위치를 가늠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 같다. 손끝으로 통신기를 가볍게 두 번 두드렸다. 신호를 알아들었는지, 투덜거리는 소리가 났다. 긴장이 조금 풀렸다.
템프턴 수상은 느긋하게 찻잔을 비웠다. 시선은 여전히 시더에게 고정한 채였다. 무슨 말을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만약 스털링 항구에서 일어난 일이 일상이 된다면 어떨까요?”
역시 동요하지 않는다. 대체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지? 다리아가 템프턴에게 접근했을 리는 없을 텐데.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겠지.”
“매일, 많게는 수십 건씩이라면요?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요.”
눈가가 주름지도록 찡그린 수상은 시더의 눈에 눈을 맞추었다. 마치 속을 읽어내듯이. 그리고 희미하게 웃었다.
“폐하께서 연루된 일이로구나.”
“알고 계셨지 않습니까?”
“짐작은 했지.”
하지만 확답을 듣는 것은 또 다른 기분인 것이다. 수상이 침음을 삼켰다. 딱하게도, 해리엇. 가시밭길로 가는군. 기쁘지 않았다.
“허황된 이야기 같지만 스털링 항구에서의 일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겠지. 하지만 에이번데일, 그걸 네가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라면, 증명해야 할 거다.”
시더는 마른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귓가에 기계를 톡톡 건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순 공기의 흐름이 뒤바뀐 것이 느껴졌다. 에스페란사와 함께 지내면서 기감이 예민해진 탓일지도 모른다. 별의별 험한 일을 다 겪었으니.
“각하, 경호원이 많군요.”
수상은 몸을 등받이에 완전히 기댄 채로 대답했다.
“노리는 사람이 많은 몸인지라. 네가 이해해.”
“이해합니다. 하지만 필요 없으실 겁니다.”
그 말과 동시에 창밖으로부터 세찬 겨울바람이 들어왔다. 두꺼운 겨울 커튼이 부풀었다.
‘분명 창문은 잠겨 있었는데.’
모든 경계가 그곳으로 쏠리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이윽고 한껏 둥글게 부풀었던 커튼을 양옆으로 젖히며 검은 후드를 걸친 여자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