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204
204화
사이러스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이쪽입니다.”
에이번데일 백작의 무뚝뚝한 시종이 그를 연구실 앞까지 안내했다. 문틈으로 뚝딱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거 켜지는 거 맞아요?”
“아마도요?”
“폭발하거나 그런 일은……”
“설마요.”
시더 클라이번이 잠깐 말을 멈추었다가 덧붙였다.
“가끔 그런 경우가 있긴 하죠. 큰일은 없었어요.”
“장난해요?”
“다치진 않을 거예요. 잘못하면 마력 회로가 꼬여서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쯤에서 사이러스는 문을 두드렸다. 웃음 섞인 투닥거림이 뚝 끊겼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황동빛 기계였다. 톱니바퀴와 파이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해석기관을 중앙에 두는 일반적인 기계장치와 달리 양 끝과 중앙부에 총 네 개의 해석기관을 설치해 두었다. 제어반은 기계를 외면하듯 먼발치에, 기계를 마주 보는 형태였다. 그리고 기계 한가운데에는 문이 달린 작은 공간이 있었다. 이동 장치였다.
시간의 신과 그 낫을 형상화해 마치 신이 만든 기계와도 같았던 이전과는 달리 전반적으로 밋밋한 형태였다.
‘그런 사치를 부릴 여유가 없었겠지.’
시간적 여유든, 심적 여유든.
그것까지는 그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사이러스는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중앙부가 없는데 작동이 됩니까?”
“어디까지나 시험작동이니까요. 전체를 다 할 수는 없고, 일부분만 작동시켜 볼 겁니다. 추가적인 헌혈이 필요하겠군요.”
사이러스는 말없이 팔을 걷었다. 배려 따위 없는 두꺼운 바늘이 거침없이 살을 찔렀다. 곧 팔뚝만 한 병이 가득 찼다. 시더는 피가 찰랑거리는 병을 들어 올리며 입꼬리를 느슨하게 풀었다.
“마법사의 신체라는 건 편리하군요. 피를 한 번에 이렇게 많이 뽑아도 멀쩡하고.”
“멀쩡하진 않습니다만.”
“걸어 다닐 수 있으면 됐죠. 에스페란사, 좀 도와줄래요?”
혈액이 가득 담긴 커다란 병 두 개, 마력 증폭기, 변환기, 마정석과 마력 측정기. 설치가 전부 끝났을 때, 측정기에는 무려 천만 토트라는 마력량이 찍혀 있었다.
사이러스는 약간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저 엄청난 마력으로도 움직일 수 있는 건 고작 기계의 일부뿐이었다. 비유하자면 사람 몸에서 팔 하나 정도.
“준비됐어요.”
시더 클라이번은 커다란 기계를 등진 채 레버를 당겼다. 기계가 들썩거렸다. 혈액으로 꽉 채운 병에서부터 특별히 제련된 거대한 마정석으로 마력이 빨려 들어갔다. 톱니바퀴가 거칠게 돌기 시작했다. 흰 증기가 환풍구를 통해 빠져나갔다.
새까맣던 화면에 모랫빛이 돌았다.
“켜졌다!”
시더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화면을 꽉 메운 숫자와 문자가 다 읽을 틈도 없이 위로 밀려났다. 그리고 덜컹거리던 기계가 멈추었을 때, 화면 위로 자릿수만 열 개에 달하는 숫자가 떠올랐다.
뺨이 굳은 시더가 제어반과 연결된 타자기에 무언가를 입력했다. 기계가 다시 움직였다. 해석기관이 차르륵 소리를 내며 바뀐 가정을 포함한 연산을 시작했다.
숫자가 줄어들었다.
“왜 그래요? 성공한 거 아니에요?”
굳은 얼굴을 곁눈질하던 에스페란사가 걱정스레 물었다.
“……맞아요.”
시더는 여전히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대답했다.
“정말로 중앙부만 완성하면 끝나겠군요.”
중앙부의 역할은 ‘이동’이다. 사실상 이 기계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이었다.
이동할 위치를 특정하고, 필요한 마력을 계산하고, 경로를 탐색하는 작업까지는 인간의 힘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이동만은 특수한 마정석과 마정석의 기능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특수한 구조의 기계가 필요했다.
“사이러스. 당신의 ‘황금 발톱’을 먼저 보도록 하죠.”
이제야.
시더 클라이번은 사이러스가 곤란해하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황금 발톱의 해체를 도와주지 않았었다. 이제 시한폭탄을 들고 다니는 기분으로 다니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기쁜 것과 별개로, 여기서는 안 된다.
“왜 그래? 무슨 문제 있어?”
“장소를 옮겼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잘못해서 저번처럼 던전이 생기기라도 하면…….”
아, 그렇지. 사람은 어떻게든 지킬 수 있지만, 시공간 기계가 던전에 휩쓸리면 안 되니까.
두 사람은 그 말에 동의했지만, 그렇다고 그 위험한 물건을 들고 저택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다. 그들은 잠깐의 의논 끝에 1층 응접실로 자리를 옮겼다.
에스페란사는 낫의 날이라기보다는 긴 뿔이나 송곳니, 혹은 발톱처럼 생긴 황금빛 몸체를 바라보았다. 시더는 탁자 위에 올려둔 그것을 열어 볼 생각이 없는 것처럼 몸체 위를 쓸기만 했다.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겠다.
“그걸 다루다가 문제가 생기더라도 나 혼자 이상한 곳에 떨어지진 않을걸요? 다 같이 떨어지면 몰라도. 그럼 상관없잖아요.”
“상관없지는 않죠.”
그렇게 대꾸하긴 했으나 시더는 낮게 웃었다. 그러고는 황금 발톱을 열었다.
잘 만든 시계와 같이 정교한 내부를 바라보던 시더가 짓씹듯 중얼거렸다. 야만인들.
“정말이지, 사람을 이렇게 썼으면 진작에 죽었을 거예요.”
닳아빠진 부품을 몇 번이고 갈아 끼운 흔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정석 자체의 마모는 피할 수 없었던 것이 눈에 선했다. 마도구를 이따위로 쓰는 인간들의 손에서 얼마나 혹사당했는지, 황금 발톱이 파업을 선언하고 폭주한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떡할 거예요?”
“할 수 있다고 했잖아요.”
시더는 탁자 아래에서 공구 상자를 꺼냈다. 사이러스가 대체 공구 상자가 왜 거기서 나오냐는 듯 에스페란사를 돌아보았지만, 에스페란사도 처음 보는 것이라 해 줄 말이 없었다.
시계 부품처럼 작은 부품을 다루기 위한 공구를 꺼낸 시더는 빠른 손놀림으로 황금 발톱의 핵심인 중앙 제어 장치의 나사를 풀었다.
“와…….”
나사의 순서, 부품의 순서, 일순간도 고민하지 않았다. 피아니스트가 건반을 누르듯이 정교했다. 부품 위에 빨간 불이 두 번 깜박거렸다가 완전히 꺼졌다. 시더는 곧 몇 개의 부품을 빼냈다.
여기까지는 13년 후의 다른 마도 공학자들도 해낸 일이었다. 중앙 제어 장치를 분리해내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었다. 그 앞을 서성대던 사이러스는 마정석에서 마력이 샐 때마다 마치 얻어맞은 것처럼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나 시더는 예상했던 것처럼 빠르게 마력 흐름을 끊고 부품을 분리해 냈다. 그렇게 중앙 장치 주변 부품 몇 개를 떼어내더니 문득 고개를 들었다.
“에스페란사, 저 덩치가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게 정신 사나우니 데리고 나가 줄래요?”
“무슨 일 나면 안 되니까 근처에 있을게요.”
응접실 안에서 시더를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자수 아니면 게임 정도였다. 두 사람 모두 자수에는 흥미가 없는 고로 규칙만 겨우 아는 체스판에 앉아서 열 살짜리도 지루해할 게임을 꾸역꾸역 했다.
와중에 에스페란사에게 연속으로 두 번이나 진 사이러스가 슬슬 다른 종목을 찾아보려던 때였다.
쾅. 마치 마력이 폭발하는 듯한 소리에 에스페란사는 재빨리 총을 꺼냈다. 매캐한 연기가 나는 방향을 향해 총구를 겨눈 채로 다급히 물었다.
“괜찮아요? 다쳤어요?”
“멀쩡해요.”
한 박자 늦게 대답이 돌아왔다. 연기가 가시자, 눈가가 발갛게 달아오른 시더가 손에 쥔 것을 흔들어 보였다.
마정석이다.
“성공했어요?”
“네. 그러니까 총은 집어넣는 게 좋겠네요.”
총을 대충 허공에 던져넣은 에스페란사가 성큼 다가왔다. 정말로 성공한 것이다. 사이러스가 수많은 학자들을 모아서 수년간 시도했으나 실패한 일을 고작 두어 시간 만에.
사이러스의 손끝이 움찔거렸다. 다행스러우면서도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았다. 그는 멍하니 시더와 에스페란사가 마정석을 처리하는 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그럼 그건 이제 어떡해요? 그거 가만히 두면….”
“마력이 닿으면 안 되죠. 기계가 없으니 던전처럼 커다란 걸 불러오진 못하겠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도 이미 생각을 해둔 듯 명쾌한 해결책이 나왔다.
“에스페란사. 저번에 파인먼트 하우스의 던전에서 가지고 왔던 절연체 아직 갖고 있죠?”
단순한 방법이다. 마력이 통하는 게 문제라면 막아 버리면 되는 것이다. 에스페란사가 절연체 상자를 내밀자 시더는 상자에 마정석을 집어넣고 닫아 버렸다.
“이걸로 충분한 거 맞아요?”
시더는 어깨를 으쓱였다. 동물 가죽보다 몬스터 가죽이 마력 전달에 더 뛰어나다. 이 세상의 인간보다 다른 세상의 인간이 마력을 다루는 데 더 뛰어나다. 같은 이치로, 던전에서 발견된 절연체만큼 마력을 차단하는 성능이 탁월한 것은 없었다.
“이걸로 안 된다면 다른 방법은 없어요.”
에스페란사는 뚜껑이 잘 닫혔는지 확인한 뒤, 상자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손끝에서 상자가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던 사이러스가 꽉 막혀 있던 숨을 터뜨렸다.
정말로 끝이다. 오래도록 그를 괴롭혀왔던 문제가 이토록 간단하게. 시더를 돌아보자, 그는 좀전의 위험을 이미 다 잊은 것처럼 덤덤한 얼굴로 마정석 없는 황금 발톱을 원래대로 복구하고 있었다. 마치 동영상을 뒤로 감는 것처럼 해체한 것을 원위치에 순서대로 돌려놓는 것이, 부품의 위치를 전부 외운 듯했다.
“어떻게 한 거예요?”
“어려운 건 아니었어요. 아마 다른 사람들도 방법만 알았으면 금방 했을 거예요. 방법을 몰랐던 건 그 사람들이 제작자가 아니기 때문이었고.”
쉽게 말하면 논리체계를 한 번 꼬아서 간단한 분리 방법을 숨겨둔 것이었다. 에스페란사는 고개를 끄덕이긴 했으나 이해하지는 못했다.
“중간에 부품이 많이 바뀌었길래 걱정했죠. 구조도 수정됐으면 내 방식대로 분리를 할 수 없었을 테니까. 그랬으면 정말로 저택에서 던전을 봤을 거예요.”
“위험했던 거 아니에요?”
“구조가 안 바뀌었으니까 괜찮아요. 부품이 바뀌긴 했지만……. 미래의 마도 공학자들은 제법 보수적이더군요.”
시더는 목적을 이루고도 그다지 탐탁지 않은 듯이 덧붙였다.
기계 구조를 복구하는 데 걸린 시간은 해체하는 데 걸린 시간의 반밖에 되지 않았다. 가운데 마정석이 없는 것을 제외하면 중앙 제어 장치까지 완벽하게 아까와 똑같았다.
“이걸 왜 복구한 겁니까?”
사이러스가 뒤늦게 물었다. 시더는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기계를 닫으며 대답했다.
“혹시 필요해질지도 모르잖아요? 이대로는 위험하지도 않고. 자.”
얼떨결에 황금 발톱을 받아든 에스페란사는 사이러스를 흘끔거리며 인벤토리로 손을 뻗었다.
‘이래도 되나?’
지금 사이러스가 가져온 걸 하나씩 빼앗아 오는 것 같은데.
하지만 사이러스는 일단 황금 발톱의 해체에 성공했다는데 정신이 팔려서인지 에스페란사가 기계를 가져가든 말든 조금도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원래 시더가 만든 기계였으니까, 하고 아무도 듣지 않는 변명을 되뇐 에스페란사가 인벤토리에서 빈손을 쓱 빼냈다. 떨떠름한 얼굴을 발견한 시더가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공범의 웃음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에스페란사도 조금 웃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