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209
209화
에스페란사는 거침없이 설리번 박사의 연구소로 향했다. 13년 후에도 그의 연구소로 쓰이는 건물은 다소 외진 곳에 있었다. 시더 클라이번의 연구실처럼 훌륭하지는 않아도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었다.
이를테면, 괴짜 마도 공학자의 소양인 문 앞의 함정 같은 것.
돌을 주워 던지자, 문 앞에 새파란 빛이 번쩍였다. 역시나.
‘그냥 들어갔으면 통구이가 됐을지도 몰라.’
설리번 박사가 좋아하는 종류의 덫이다. 에스페란사는 혀를 찼다. 박사를 처음 만난 게 6년 전인가. 게임을 한 지 1년 정도 됐을 때였던 것 같은데.
사이러스의 소개로 만난 괴짜 마도 공학자는 실력이 좋았다. 묘하게 도덕심이 없는 캐릭터성이 다분히 전형적이기는 해도, 무기 개량이나 마도구 제작을 맡기기에는 이만한 인물이 없었다.
물론 그건 시더 클라이번이 죽었기 때문이지만.
어쨌든 박사는 지금보다 여섯 살은 더 많았을 텐데, 지금과 똑같은 종류의 트랩을 썼다. 걸리면 상당히 잔혹한 결과물이 나왔을 테지만, 해제 방법을 알기만 하면 별로 무서울 것도 없는 트랩이었다.
에스페란사는 긴 장총을 꺼냈다. 박사 본인이 혹시나 잊어버릴 것을 대비해 흰 조약돌로 꼭꼭 표시한 자리를 차례대로 누르기만 하면 된다. 원래는 직접 발로 밟아야 하지만, 만에 하나 틀릴 경우를 대비해 멀리서 마력만 쏘았다.
다행히 설리번 박사는 일관적인 인물이었다. 마력으로 정해진 위치를 누르자 쿠르릉, 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천천히 양옆으로 열렸다.
‘무슨 지하 궁전이라도 열리는 것 같은 소리네.’
이사 온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연구소 주제에. 에스페란사는 코웃음을 치며 아까 마력으로 눌러둔 자리만 밟아 문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가 어두컴컴했다.
사람은 없겠지. 있다고 해도 기절시키면 되고. 에스페란사는 마력으로 빛의 구를 띄웠다. 희끄무레한 빛이 늘어날수록 건물 내부가 조금씩 선명해졌다.
복도를 거침없이 걸어 안쪽의 연구실 문을 열어젖혔다.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빛에 내부가 환히 드러났다.
전형적인 마도 공학자의 연구실이었다. 정체 모를 형광빛 약물이 가득한 장식장이 한편에 있고 그 외에는 전부 공구, 톱니바퀴, 파이프, 스티뮬러와 마정석들. 특징적인 게 있다면 몬스터 부산물이 마치 13년 후의 세계에서 온 듯 잔뜩 쌓여 있다는 것 정도.
문턱을 넘어가려던 발이 우뚝 멈추었다.
“이상하다…….”
여기가 설리번 박사의 연구실인 것은 확실해 보였다. 박사가 직접 제작해 13년 후에도 꾸준히 쓰고 있는 몇몇 기계들을 보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도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시공간 기계는 어디에 있지?
연구소의 구조상 시공간 기계가 들어갈 만한 공간은 많지 않았다. 물론 에스페란사가 설리번을 만나기 전에 연구소를 한 번 수리했을 수도 있겠지만.
아니면, 지하인가?
증기기관을 사용하는 기계를 지하에서 개발하는 건 여러모로 좋은 선택이 아니다. 에스페란사는 연구소의 구조를 되새기며 보이는 문은 전부 열어 보았다. 없었다.
지하로 내려가 봐야 하나. 아래로 향하는 계단을 노려보던 에스페란사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삐걱대는 계단은 오랫동안 쓴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지하실 문은 닫혀 있었고, 손잡이에 누런 먼지가 쌓여 있었다. 여긴 아니라는 게 거의 확실해졌다.
에스페란사는 가죽 장갑을 낀 손을 들어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녹슨 경첩이 비명을 질렀다.
“그냥 창고잖아.”
기계를 보관하는 곳도 아니고, 식료품과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는 창고. 먼지와 거미줄, 찍찍거리는 쥐까지 완벽했다.
다른 통로도 없었다. 이게 끝이다.
에스페란사의 시선이 밀가루 포대와 과일잼 병에 닿았다. 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기가 관통하는 듯했다.
식료품을 보관하는 창고에 먼지가 쌓였다는 건 꽤 오래전부터 이 집에 사는 사람이 없었다는 뜻이다. 기계를 찾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설리번은 여기에 없었다. 처음부터 없었다.
함정이다.
창고 문을 열어젖혔다.
[던전 발생!]유형: 공방
등급: B
위험도: S
헌터님, 행운을 빕니다!
시야에 요란한 창이 떠올랐다. 에스페란사가 숨을 들이켰다. 던전, 그것도 위험도가 S급인 던전.
갇혔다.
다리아가 근처에서 보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기다린 것이다. 에스페란사가 제 발로 연구소에 들어올 때까지.
왜 여기서 기다렸을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도 금방 나왔다. 올 거란 걸 알았으니까!
‘루크 헤이븐리, 개자식.’
일부러 판을 깔았다. 놈이 아니었으면 연구소를 찾아올 생각도 안 했을 것이다. 언제부터 알았던 거지? 스털링 때인가?
그래, 에스페란사가 그들의 계획을 급습했으니까 그때부터 이쪽이 정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 같다. 그걸 역으로 이용해 함정을 판 것이다. 어쩌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유도한 것일지도 모르고.
어느 쪽이든 확실한 것은, 완전히 놀아났다는 것이다.
이를 악문 에스페란사가 지하실 문을 닫고 단숨에 1층까지 뛰어 올라갔다. 이럴 시간이 없었다. 한 손에 든 장총에 마력을 가득 부었다. 차르르륵, 내부의 부품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크기가 작다고 해도 혼자서 공략하려면 최소 두세 시간은 걸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공략에 실패할 리는 없다. 그걸 다리아가 모를까? 스털링 항구에서 직접 부딪혀 보고도?
몇 달에 걸쳐 완성한 덫. 이 덫의 목적은 에스페란사가 아니다.
‘찢어놓은 거야. 내가 여기 있으면, 시더는 혼자니까. 아니, 사이러스가 있다고 해도 2대1이니까…….’
큰일이다. 에스페란사는 달려오는 몬스터를 조준경 너머로 노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에스페란사는 던전에 가두는 것으로 끝났지만, 시더는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좋은 기회가 왔는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리 만무하다.
죽이려는 것이다.
‘안 돼!’
뒷목에 소름이 돋았다. 황동빛 괴물을 향해 마력을 조준했다. 괴물은 복도를 꽉 채울 만큼 컸고, 무거운 몸에 비해 날렵했다. 그리고 최악인 것은,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에스페란사는 고개를 젖혀 괴물이 쏘아대는 칼날을 피했다. 몸을 낮추고, 발을 쿵쾅거리며 걸어오는 괴물의 하반신을 노렸다. 허벅지, 종아리, 그리고 발목에 한 발씩. 탕탕탕! 정확한 조준으로 연사했다.
관통했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구멍이 뚫린 채로, 속도만 조금 느려진 괴물이 입을 열었다. 깊고 검은 목구멍이 맹수의 울음 대신 기계 부품이 부딪치는 듯한 소리를 내며 칼날을 쏟아냈다.
“으으……”
뭐야, 이건! 다치면 좀 느려져야 하는 것 아닌가?
에스페란사는 기겁하며 몸을 물렸다. 괴물의 공격은 쿨타임이 짧았다. 가까운 문을 열어젖혀 방패 삼은 채 숨을 골랐다. 거의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언제 던전을 공략하고, 언제 시더에게 간단 말인가? 사이러스가 과거의 자기 자신과 다리아를 상대로 시더를 보호하면서 얼마나 버텨줄 수 있을까.
칼날이 목덜미를 스쳐 지나갔다. 에스페란사는 따끔한 목을 쥐고 괴물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발 늦게, 깨달음이 몰려왔다.
저 몬스터, 처음 보는 게 아니었다.
익숙하다 싶을 정도로 자주는 아니었지만, 분명 본 적이 있었다. 심지어 저 몬스터가 나온 던전을 타임 어택으로 공략한 적도 있었다.
‘똑같진 않지만, 비슷한 종류야.’
이 시점에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종류였다. 저건 2년 전에 업데이트된 던전에서 처음 등장한 몬스터니까.
19세기 스팀펑크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던 만큼 황금 발톱에는 수많은 공방들이 있었다. 장비, 무기, 마도구, 마정석, 오토마톤 전문 공방까지. 그런 곳에서 던전이 발생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던전 유형으로서의 ‘공방’이 업데이트 된 것은 고작 2년 전.
그 특징은…… 공방 안의 물건들이 몬스터화 되어 공격한다는 것.
이 연구소에 비록 시공간 기계는 없지만 다른 발명품들은 있었다. 방 안 가득히 쌓여 있던 기계들이 지금쯤 괴물이 되어 움직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눈앞의 몬스터도 마찬가지다.
두꺼운 문에 칼날이 빼곡히 박혔다. 당장이라도 문을 뚫고 나올 듯했다. 몬스터가 육중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에스페란사는 못 쓰게 된 문을 두고 뒷걸음질로 서서히 움직였다.
공방식 던전은 솔직히 말해서 실패한 콘텐츠였다. 기괴하고 위협적인 분위기와 스팀펑크라는 배경을 살리기에는 좋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까. 바로 공략법만 알면 전투가 아주 단순해진다는 것.
‘분명히 게시판에 떠도는 공략법이 있었는데.’
입술이 비뚜름히 올라갔다. 머리를 쓴다고 한 게 도리어 제 발등을 찍을 줄은 몰랐겠지?
다리아가 간과한 게 있다면, 에스페란사가 알고 있는 것을 피해 머리를 짜내 봐야 자기 머릿속에서 나오는 건 다 고만고만하다는 것이다. 과거의 다리아가 힘겹게 떠올릴 만한 생각은 미래의 다리아도 똑같이 할 수 있었다.
에스페란사가 알 만한 걸 피해가려고 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정확히 에스페란사가 경험해 본 던전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다.
에스페란사는 복도의 문을 전부 열었다. 아무리 강한 헌터라도 잠시의 방심으로 부상을 입을 수 있다. 생각할 시간을 벌려면 방패가 필요했다. 이 녀석은 칼날이지만 다음 녀석은 총알을 날릴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높은 위험성에 비해 의외로 공략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기억이 안 나는 게 문제지.’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기분이다. 제일 중요한 게 기억이 안 나다니! 사방을 경계하면서도 에스페란사는 끊임없이 머릿속을 뒤적였다.
네 장의 문짝은 쏟아지는 칼날에 갈기갈기 찢겼다. 이대로라면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 생각을, 생각을 해내야 한다.
무턱대고 부딪혀서 얻을 수 있는 승리라면 고민하지 않겠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었다. 즐길 시간 따윈 없다. 좀 더 빠르게, 지름길을 만들어서라도 뚫고 가야 한다.
바다 위에서 죽어가는 시더를 발견하는 것과 같은 일은, 다신 있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