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211
211화
“그럼 이제 어떡할 겁니까?”
“일단은…….”
다리아가 노리는 바는 뻔했다. 시공간 기계와 시더 클라이번, 둘을 떼어놓는다. 이건 사이러스의 존재를 의식한 결과다. 비록 그의 정체는 모르더라도 에스페란사 외에 또 다른 마법사가 있다는 사실은 스털링 사건으로 익히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러나 대단한 마법사건 헌터건 몸은 하나였고,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둘 중 하나밖에 지킬 수 없다.
반면 저쪽은 둘이니, 다리아가 자기 동생을 저택으로 보내고 자신은 시더를 공격한다면 둘 중 하나는 확실히 파괴할 수 있었다. 다만 이쪽 사이러스의 수준을 모르는 만큼 1대 1로 공격했을 때 도리어 당할 수도 있다는 단점도 있었다.
시더 클라이번과 시공간 기계 중 어느 쪽을 우선적으로 없애야 하는가? 물을 가치도 없는 질문이다. 그렇다면 굳이 전력을 분산시킬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선택의 문제겠지만…….
“사이러스.”
크라바트를 조인 시더가 서재 문을 열었다.
“다리아는 어떻게 할 것 같은가요?”
다행히 이번엔 부연 설명이 필요 없었다. 사이러스는 침음을 삼켰다.
“다리아라면, 확률 놀이는 안 할 겁니다.”
불확실한 만찬 대신 확실한 빵 한 조각. 명쾌하다. 죽이기 위한 계획. 오래 깔아둔 포석. 달리 선택할 리 없었다.
애석하게도, 죽어줄 생각은 없지만. 시더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적어도 아직은 아니지.’
“좋아요. 그럼 준비가 필요하겠군요.”
시더는 밀런을 호출했다. 옆방에 대기하고 있던 밀런은 사이러스를 왕성에 데려갈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사이러스는 어리둥절했지만 시더는 전부 알아들은 것 같았다.
“아버지 옷은 맞겠지. 적당히 구색만 맞춰 줘.”
그사이 마차는 정원을 가로질러 현관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윽고 마차 문이 열렸다. 흰 손이 안쪽에서부터 나타났다.
누구지?
군데군데 희끗한 흑발을 틀어 올린 중년의 귀부인이 내렸다. 사이러스가 침음을 삼켰다.
“쇼드니 공작부인.”
고작 전령으로 쓰기에는 지나치게 거물이었다.
“날 반드시 끌고 가겠다는 집념이 돋보이는 인선이군요. 럭스 부인, 테이트 양을 불러 주시고 마벨우드 남작가에도 연통을 넣어요. 최대한 빨리, 은밀하게 오시라고.”
“레이디 마벨우드 말씀이십니까? 아니면 레이디 코델리아께?”
“둘 다!”
마벨우드 남작의 이름이면 왕성에도 쉽게 드나들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쪽에 빚이 있고. 시더는 재빨리 코델리아 마벨우드에게 전할 쪽지를 휘갈겼다. 사실상 에스페란사에게 전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려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홀로 공작부인을 상대하던 하워드 집사가 겅중겅중 뛰어왔다. 주름진 얼굴에 근심이 서려 있었다.
“뭐라시던가?”
“폐하께서 급히 부르신다고 합니다.”
눈치를 살피던 노인이 덧붙였다.
“거절할 방도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씹듯이 중얼거린 시더는 곧장 응접실로 내려갔다.
응접실에 모셔진 쇼드니 공작부인이 시더를 보고 눈을 찡그렸다. 중후한 녹색 드레스와 냉랭한 표정. 정말 작정하고 온 게 틀림없다.
“잘 지낸 모양이군요, 로드 에이번데일.”
장갑 낀 손을 내민 공작부인은 젊은 백작이 그 손에 입을 맞추고 허리를 세울 때까지도 딱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레이디 쇼드니.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신지?”
“내 일이라면 무례를 사과드리겠지만, 오늘은 폐하의 명령을 받고 왔습니다. 폐하께서 급히 찾으십니다.”
“무슨 일로 찾으시는지는 아십니까?”
“모릅니다. 안다고 해도 폐하의 허가 없이 말씀드릴 수는 없고요. 하지만 에이번데일, 폐하께서 찾으시는데 이유가 중요한가요?”
시더는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 사지로 가라는 말을 잘도 하는군. 아무리 모르고 하는 말이라지만 정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급한 대로 템프턴 수상이라도 팔아 봐야지. 시더가 가까스로 미소를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
“애석하게도 오늘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의회에서…….”
“아무런 일정이 없다는 걸 모르고 왔을 것 같은가요?”
거절하면 끌어낼 태세였다. 어차피 안 간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전투의 무대가 어거스텀 궁전에서 에이번데일 저택으로 바뀌는 것뿐.
에스페란사는 무사할까? 어떤 방법으로든 발을 묶어놓았을 텐데. 생각나는 것이 없지는 않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 방법이 아니었다.
“좋습니다. 잠깐 기다리시죠.”
시더는 인사치레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 뒤에서 쇼드니 공작부인이 불쾌하다는 듯 헛기침을 했지만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최대한 늑장을 부려볼 셈이다.
느릿느릿 모자를 눌러쓰고 지팡이를 들었다. 에스페란사가 준 마정석까지 챙겼다. 이것만으로 다리아를 상대할 순 없겠지만, 없는 것보단 낫겠지.
선대 백작의 정장을 입은 사이러스가 불편한 듯 몸을 뒤틀며 나왔다. 그럭저럭 봐줄 만한 상태였다. 시더는 턱짓으로 그를 불렀다.
“이만하면 구색은 갖춘 셈이군요.”
“정장 정도는 나도 있습니다만.”
“시기가 안 맞잖아요. 전위적인 것보단 고리타분한 게 낫죠.”
사실 정장 따윈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이러스가 빨간 줄무늬 바지를 입고 간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돌려보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눈에 띄지 않는 편이 낫다.
“중요한 건, 지금 사지로 들어가고 있다는 거예요. 그들이 어디서부터 공격할까요? 정문 앞? 정원? 복도?”
“알현실일 겁니다.”
사이러스가 단정적으로 말했다. 다리아에겐 그게 가장 편할 것이다. 일단 보는 눈이 없을 테니까.
“당신의 그 예상까지 예상했다면요? 우리 정보가 어디에서 샜는지도 모르는 상황인데요.”
“그것까지 고려해서 알현실인 겁니다.”
자세한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시더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의 기색을 살폈다.
뭐, 좋다.
“그렇다면, 어거스텀 궁전에 들어가는 모습을 모두에게 보이고, 궁전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탈출해야겠군요. 이 나이에 숨바꼭질이라니.”
쇼드니 공작부인이 또다시 재촉하기 전에, 시더는 얼른 종이를 한 장 찢어 쪽지를 적었다.
“밀런, 이건 수상 각하께. 뒷문으로, 지금 당장 가.”
시간을 벌 수 있는 건 뭐든지 이용해야 한다.
“테이트 양. 에스페란사가 돌아오면 최대한 빨리 어거스텀 궁전으로 오라고 전해 줘요. 운신이 편한 드레스를 준비해 두도록 하고.”
애니가 에스페란사의 방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가 할 수 있는 준비는 전부 끝났다. 이제 그들의 목숨은 에스페란사가 언제 돌아오느냐에 달렸다고 봐도 좋았다.
2시 15분.
모자 아래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드러난 입술이 호를 그렸다.
“그럼, 암살당하러 가 볼까요?”
제정신이 아니야. 사이러스는 질색하며 따라 나왔다.
* * *
문을 열고 나가자, 쇼드니 공작부인이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서 있었다. 공작부인의 시선이 곧 붉은 머리를 한 사이러스에게로 꽂혔다.
“저 청년은?”
공작부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게 확실하군. 시더는 공작부인을 조금 덜 아프게 기절시키기로 결정하며 미소로 답했다.
“새 시종입니다.”
“처음 듣는군요.”
“오늘 처음 들어왔으니까요.”
굉장히 수상한 대답이었지만, 시종이 되는 데 자격증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사지로 향하는 새까만 마차가 덜컹덜컹 대로를 가로질렀다. 날은 이상할 정도로 맑았다. 거대한 비행선이 태양을 가리며 낮게 지나갔다. 길도 막히지 않고, 마차를 멈춰 세울 만한 어떤 사고도 벌어지지 않았다.
시더는 차라리 대로 한복판에서 마차를 부숴볼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적어도 왕성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얌전히 있는 쪽을 택했다. 번화가는 왕성보다 그들에게 더 불리할지도 모른다. 다리아가 죄 없는 일반인을 죽이는 데 거리낌이 없다는 것은 확실하니까.
마차가 어거스텀 궁전에 도착했다. 검문도 없이 빠르게 입구를 통과해 바로 정원을 가로질러 갔다.
“이쪽으로.”
커다란 문이 열렸다. 천장이 높은 홀이 드러났다. 쿵. 문 닫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적으로, 궁전의 공기가 바뀌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기가 목 뒤를 감쌌다. 사방에서 주시당하는 것 같다.
사이러스는 그 위협을 시더보다 더 기민하게 느끼는 듯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주먹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적이 나타나면 언제든 그 손에 검을 쥘 수 있도록.
아무것도 모르는 쇼드니 공작부인이 계단 쪽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다른 때보다 더 굽이굽이 들어가는 길이 깊숙한 뱀의 아가리로 인도하는 듯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사람이 줄어들었고, 알현실 바로 아래층 복도에 이르러서는 주위가 완전히 고요했다. 계단 앞에 선 공작부인이 다시 한번 주의를 주었다.
“폐하께선 알현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시겠지만 다시 말씀드리자면 내게 한 것처럼 폐하께도 무례하게 행동해서는 안 될 겁니다.”
“물론이지요.”
만날 일도 없을 것이다. 겁쟁이 여왕과 대공이 어느 방에 처박혀 서로 끌어안고 덜덜 떨고 있지나 않으면 다행인 일이지.
사이러스가 조용히, 시더에게만 들릴 정도의 크기로 중얼거렸다.
“알현실 안에 세 명입니다.”
먼저 공작부인을 처리해야겠다.
계단참에서 공작부인이 소리 없이 쓰러졌다. 시더는 공작부인을 바르게 뉘었다. 카펫이 그리 깨끗하진 않겠지만 별수 없었다. 나중에 적당히 사과 선물이라도 보내는 수밖에는.
여기서 살아남는다면 말이다.
“들어갈 겁니까?”
그럴 리가.
그러나 온 길을 되돌아갈 순 없었다. 들키지 않기 위해서 여기까지 따라온 건데, 같은 길로 돌아가면 분명히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람이 없는 길로 가야 할 텐데. 시더는 품 안에서 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2시 47분.
시선이 반대편 길에 닿은 순간이었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것이 귓불을 스치고 지나갔다. 시더가 고개를 돌렸다.
“여기까지 와 놓고 돌아가려고?”
소리도 없이 활짝 열린 알현실 문. 그리고 그 앞에 선 다리아가 씩 웃었다. 그와 동시에 손에 들린 권총이 새파란 열을 내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