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212
212화
다시 설리번 박사의 연구소.
쿵. 쿵. 거대한 괴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 속에서 끓인 물을 퍼붓는 보일러부터 정체 모를 액체를 담은 병이 덜컹거리는 장식장, 위협적으로 돌아가는 공구를 팔처럼 휘두르는 기계들.
‘이 정도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야.’
지금까지의 그 어떤 던전보다 작았고, 어렵다고 해도 깨지 못할 것은 아니다. 문제는 언제 깨느냐였지. 에스페란사는 침착하게 몸을 뒤로 물렸다. 등을 벽에 붙이고, 조준경에 눈을 댔다.
정면부터, 차근차근. 다가오지 못하도록.
기계에는 감정이 없었다. 다른 괴물들이 고통이나 공포를 느끼는 것과는 달리. 그래서 평범한 위협은 통하지 않는다. 팔 한 짝을 잘라낸다고 해도 다른 팔이 움직이는 속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한 번에 해치워야 한다. 쓰러진 기계들로 물리적인 벽을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탕. 첫발이 가장 앞줄에 있던 기계의 목을 꿰뚫었다. 그와 동시에 왼쪽에서 날카로운 쇳날이 날아왔다. 고개를 까닥여 피한 에스페란사는 총구를 옆으로 움직여 다음 목을 꿰뚫었다.
목 뒤에 박힌 마정석까지 완전히 파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양의 마력을 쏟아부어야 했다. 기계는 견고했고, 수십만 년 동안 마력을 품고 묻혀 있던 마정석은 웬만한 충격으로는 잘 깨지지 않았다.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내 입에 털어 넣은 에스페란사는 기계를 향해 빈 병을 던졌다. 유리병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깨졌다. 기계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갔지만 기계의 움직임은 아주 약간 느려졌을 뿐이다.
아직도 까마득히 많이 남았다.
등 뒤의 벽은 총탄과 마구잡이로 박힌 무기 때문에 난장판이었다. 심호흡을 하고 다시 조준을 맞추는 사이에도 무기가 급소를 꿰뚫을 기세로 날아와 자루가 벽에 닿을 정도로 깊이 박혔다. 엄청난 힘이다. 뒷목에 소름이 돋았다.
‘정확도가 낮아서 다행이야.’
반 정도는 빗나갔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정확도가 높았으면 벌써 몇 개 정도는 맞았을지도 모른다. 설리번 박사의 무기가 별 볼 일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 에스페란사는 첫 무기가 스쳐 지나간 귓불을 매만지며 몸을 낮추었다.
포션을 마셔서 급히 넘실거리며 차오르는 마력을 장총에 쏟아부었다. 금빛 총신 끝에 새파란 마력이 맺혔다.
공격 준비를 마친 기계를 최우선으로, 앞에 있는 기계부터 쓰러뜨렸다. 목이 터지고 손목이 날아갈 때마다 기계들이 삐그덕삐그덕 기괴한 소리를 냈다. 살아 있는 괴물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귀를 긁는 듯한 금속 소리도 공격의 일환인 것만 같았다. 오른쪽 벽으로 몸이 조금 기울었다.
그 순간, 정면으로 튀어나온 보일러 기계가 이쪽을 향해 끓는 물을 퍼부었다.
에스페란사는 하얗게 질렸다. 저건 마력탄으로는 어림도 없다. 제대로 막아내야 할 텐데, 마침 왼쪽에서도 커다란 망치를 까닥까닥 휘두르는 기계가 그림자를 드리웠다. 피할 곳이 없었다.
망치냐, 끓는 물이냐. 막는다면 둘 중 하나만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둘 중 어느 것도 판단이 안 섰다.
뜨거운 증기가 뺨에 닿고, 물그림자가 머리 위를 덮기까지의 짧은 순간, 전투로 뜨거워진 머리는 오직 빠르게 이 던전을 탈출하기 위한 결정을 내렸다. 그걸 위해서는 다소간의 부상도 감내할 만했다.
김이 풀풀 나는 물이 머리꼭지 위로 쏟아지려던 찰나, 에스페란사는 벽을 박차고 왼쪽, 자기보다 더 큰 망치를 향해 몸을 던졌다. 망치가 묵직하게 땅을 내리찍었다.
쾅! 바닥이 부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돌조각이 튀었다. 잠깐이지만 저택 전체가 울리는 것 같았다.
“으…….”
끓는 물이 콸콸 쏟아졌다. 짙게 젖은 바닥에서 김이 올라와 조준경이 뿌옇게 변했다. 에스페란사는 망치를 내리친 기수의 머리를 팔에 끼고 있었다. 손등이 벌겋게 부어오른 것 같았다.
고작 물방울이 튄 것만으로도 이렇게 되다니, 저걸 제대로 맞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 혀를 내두른 에스페란사가 머리 없는 기수의 몸통 위로 올라가 상황을 살폈다.
머릿속의 시계가 0초를 선언하기 전, 망치를 향해 몸을 날렸던 에스페란사는 그보다 더 위쪽, 커다란 망치를 쥔 작은 오토마톤을 향해 마력탄을 연사했다. 기수의 목이 날아갔다. 에스페란사가 황동으로 만든 머리를 잡아챔과 동시에 망치가 땅을 울렸다. 그 위로 쇠를 녹일 듯이 끓는 물이 쏟아진 것은 그다음이었다.
아직 기수 위에 서 있는 에스페란사의 마력이 커다란 보일러의 목 뒤편을 노렸다. 탕! 빠르고 미숙한 조준이었음에도 두꺼운 목의 정중앙을 정확히 꿰뚫은 것을 확인하고 총을 내렸다.
“됐나?”
한 손에 든 세검으로 암기를 쳐내며 무심코 중얼거렸다. 그리고 선 채로 작동을 멈춘 보일러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자, 에스페란사는 아예 적진으로 파고든 김에 종횡무진 기계 사이를 누비며 순식간에 기계 뒷목의 마정석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도축하는 기계처럼 기계의 급소를 꿰뚫으면서도, 이 작업이 한시라도 빨리 끝나길 바랐다.
기계와 뒤엉킨 인간이 몸을 높이 띄워 공중에서 기계의 정수리부터 바닥까지 꿰뚫었다. 착지하는 순간 몸을 크게 돌려 공구를 쳐내고, 달아오른 인두를 꼬챙이처럼 들고 찌르려는 기계의 손목을 부러뜨렸다.
‘끝이 없잖아.’
이제 그만 다른 곳으로 이동했으면 하는데, 기계들 사이에서 소문이라도 퍼지는 건지 왼쪽 복도의 괴물들을 아무리 쓰러뜨려도 끝이 나는 것 같지 않았다.
에스페란사는 이를 악물고 총신으로 기계를 쳐냈다. 이래서는 제시간에 나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잠깐 쉴 여유 따위는 바랄 수도 없었다.
2시 13분. 곁눈질로 시간을 확인한 에스페란사가 침음을 삼켰다.
‘빠듯한데.’
사이러스가 얼마나 버텨줄 수 있을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시라도 빨리. 빨리……. 조바심이 목 안을 긁어내리는 듯했다. 에스페란사의 움직임이 차츰 빨라졌다. 아까보다 조금 더 투박하지만 신속하게 목 뒤를 노렸다.
이제 왼쪽 복도의 괴물은 얼마 남지 않았다. 에스페란사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총구에 마력을 집중했다. 발길질로 기계가 내미는 무기를 떨쳐내며 목표물을 조준하는 데 집중했다.
작은 십자가가 원하는 위치에 맞아떨어지고, 마력을 가득 실은 탄알이 총구를 빠져나가기 직전이었다.
작동을 멈췄던 보일러의 내부 부품들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보일러 기계가 방향을 틀었다. 커다란 배 속 가득 끓인 물이 바로 머리 위에서 쏟아졌다. 괴물의 목 뒤를 조준하느라 정신이 없던 에스페란사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괴물은 이미 물을 붓고 있었다.
쾅!
얼른 몸을 굴린 에스페란사의 어깨에 둔탁한 통증이 느껴졌다. 발밑에 고인 뜨거운 물이 신발을 두드렸다. 머리가 멍했다.
누군가 머릿속에서 ‘피해!’ 하고 외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움직임보다 괴물이 빨랐다. 몸이 떠밀리듯 밀려나 기대 있던 장식장에 부딪혔다. 찌르르한 어깨의 통증과 동시에 반쯤 열린 장식장 문에서부터 흘러내린 약물이 팔에 떨어졌다.
살갗 안쪽을 깊게 찌르는 듯한 통증에 에스페란사가 팔을 감싸 쥐었다. 하지만 몸을 일으켰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문제가 없지만……. 통증을 무시하고 팔을 접었다 편 에스페란사가 인상을 찡그린 채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다음 순간, 에스페란사는 정면의 복도를 향해 구슬 폭탄을 던졌다.
괴물들 사이로 떨어진 폭탄이 터졌다. 펑, 펑, 귀를 아프게 때리는 소리와 열기가 상당했다. 공격이 잠시 멈춘 사이 에스페란사는 다시 물을 가득 채우며 끓이고 있는 보일러 기계의 목을 완전히 터뜨려 버렸다.
산산조각 난 황동을 밟고 선 에스페란사가 다시 총을 치켜들었다. 무차별적인 총격에 따라 몸에서 마력이 급격하게 빠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던전 보스, ‘???’이 나타났습니다!] [보스의 위치가 맵에 표시됩니다.]무시하고 있던 상태창이 정신없이 깜박거렸다. 에스페란사의 시선이 상태창 옆에 붙은 시계로 향했다. 눈앞이 하얘졌다.
2시 34분.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 이러다 정말로 늦을지도 모른다. 배 위에서 보았던 그 처참한 모습을 다시 볼 수는 없었다.
다른 때라면 다양한 기계형 몬스터들과의 전투를 즐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빨리 끝내고 이 던전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시더가 괜찮은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보스 먼저.’
에스페란사는 욱신거리는 몸을 이끌고 맵을 따라 보스가 있는 방으로 달려갔다.
문을 열기 전, 에스페란사는 던전의 특징을 복기했다.
보스 몬스터는 다른 몬스터들과 마찬가지로 기계일 것이다. 아마도 이 안에서 가장 강력하고 견고한 기계겠지. 시공간 기계가 이 저택 안에 있었다면 보스로 맞닥뜨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끔찍한 일은 없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위험도가 위험도인 만큼 다른 어떤 게 나오더라도 만만찮을 게 분명했다. 문고리를 비틀며 상태창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보스 몬스터의 이름이 없었다. 이름이 알려진 기계는 아닌 모양이었다.
장총을 고쳐잡은 에스페란사가 문을 열었다.
가구 하나 없는 빈방이었다. 정체가 짐작도 가지 않는 기계들과 공구 상자가 가득했다.
에스페란사의 시선이 방 가운데의 보스 몬스터에게로 향했다. 일반적인 황동이 아니라 다른 금속으로 만들어진 듯한 기계는 설리번 박사가 뜯어놓았는지 내부가 드러나 있었다. 부품이 부딪치는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문외한의 눈으로 보기에도 걸작에 가까운 정교함이었다.
“설리번이 저런 것도 만들었었나?”
에스페란사는 설리번 박사의 발명품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기계의 매끄러운 움직임이 계속 눈에 걸렸다. 단순하지만 투박하지 않고, 모든 연결점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구조. 마치 바느질 자국이 없는 옷처럼. 13년 후에 본 그의 발명품도 저토록 완성도가 높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경계를 세우면서도 드러난 내부 구조를 살피던 에스페란사가 탄성을 터뜨렸다.
‘설리번이 만든 게 아니야.’
왜 여기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정체 모를 기계의 제작자가 시더라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회로의 정교함과 높은 완성도는 설리번의 손에서 나올 수준이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거대한 기계의 옆구리로 추정되는 위치에 찍힌 시더 클라이번의 서명. 확실한 증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