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218
218화
“위험하지 않을까요?”
“시간을 조금만 주면 고용인들은 내보낼 수 있어요. 20분 정도.”
다리아를 붙잡아 놓고 시간을 끈다…….
“그건 가능해요.”
에이번데일 저택은 그들에게 훨씬 익숙한 지형이다. 오토마톤을 보조적으로 이용해서 원하는 곳으로 몰아가는 것도 저택에선 가능하다.
“어. 이거 되나?”
“다리아 혼자라면요.”
“둘이라도 사이러스랑 내가 하나씩 붙잡고 상대하면……. 몰아세우려면 나랑 사이러스가 둘 다 다리아한테 붙어야 할 수도 있겠는데. 그쪽 사이러스는 분명 당신을 찾으려 할 거고요.”
원한 때문이든, 전략 때문이든.
“난 시공간 기계를 지켜야죠.”
“아. 그렇지. 그럼 차라리 어린애는 빨리 전투 불능으로 만들고 다리아랑 싸우는 쪽으로?”
시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술한 계획이었지만 더 자세히 고민해 볼 시간이 없었다. 나머지는 적당히 임기응변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이 났나?”
템프턴 수상이 물었다. 전부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들은 여전히 출구로 향하는 갈림길에 서 있었다. 몇 번이나 끼어들려는 루이 왕자를 막았는지 수상의 커다란 손바닥은 침으로 젖어 있었다.
“저택으로 돌아갈 거예요.”
시더는 답이 없는 사이러스에게 한 번 더 통신을 보냈다. ‘귀가 계획.’ 템프턴은 루이 왕자를 끌고 출구에서 물러나며 말했다.
“나가서 왼쪽으로 두 번 꺾으면 보이는 공터에 증기 마차가 있네. 에이번데일, 자네 것도 찾자면 못 찾을 건 없겠지만, 내 걸 쓰게.”
다리아는 시더의 증기 마차가 어느 것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에스페란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한다.
“사이러스는 아직도 응답이 없어요?”
통신기를 확인해 본 시더가 고개를 저었다.
“답을 보낼 상황이 아닌 거겠죠.”
아예 해석을 못 했거나, 아직도 다리아와의 전투가 진행 중이거나, 고작 주머니 속의 통신기를 눌러서 진동을 보낼 수도 없을 만큼 다쳤거나.
에스페란사는 일단 후자의 추측은 접어두었다. 그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지금으로선.
“그럼 각하와 왕자 전하는 바로 폐하께서 계신 곳으로 이동하시고, 저희는 이쯤에서 헤어지는 걸로 해요.”
에스페란사는 인벤토리에서 몇 가지 장비를 꺼내 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된다면, 레이디 코델리아를 아세요?”
“마벨우드?”
“네. 코델리아 마벨우드가 아직 궁전에 있다면 돌아가라고 연락도 해 주시고요.”
에스페란사는 템프턴과 루이 왕자를 뒤로 보내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어거스텀 궁전은 거대했다. 한구석에선 값비싼 도자기와 수백 년 된 피아노를 때려 부수는 전투가 있었는데, 바깥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평소처럼 직원들과, 미리 표를 예매한 소수의 관광객들과, 기자들과, 이제는 그 의미가 상당히 퇴색된 ‘궁정’을 찾아오는 원로 귀족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입구에서 일상으로 이어지는 길 한가운데, 다리아가 서 있었다.
* * *
“여기도 없어!”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다리아는 슬슬 이 대치를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십 년은 더 먹은 듯한 동생을 완전히 제압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뻔히 보이는 이 지지부진한 시간 끌기에 더 당해줄 수도 없었다.
‘백작이 벌써 도망친 건 아니겠지.’
고심해서 깔았던 판이 엉망진창이 됐다.
다리아는 사이러스의 검을 거칠게 밀쳐냈다. 그리고 한 번에 끌어모을 수 있는 마력의 최대치를 사용해 복도를 반쯤 날려 버렸다.
먼지바람 틈으로 비틀거리는 사이러스의 윤곽을 확인한 다리아가 바로 뒤돌아 달렸다. 적어도 포션을 마시고 회복할 시간은 벌었다.
복도를 가로지르며 보이는 방이란 방은 전부 들어가 봤지만 백작은커녕 사이러스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왕실 직원들을 피해 계단을 내려온 다리아가 이윽고 고요한 음악실 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카펫에 시커멓게 눌어붙은 흥건한 피와 그 위에 창백한 얼굴로 쓰러진 동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서늘했다.
“사이러스.”
손끝이 움찔거렸다. 대답할 기력도 없는 것이다. 다리아는 떨리는 발걸음으로 카펫을 짓누르며 다가갔다. 피가 멎지 않은 상처 위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입 벌려.”
마력이 제대로 관통했다. 넓적다리뼈 가운데를 깨끗하게 찢어놓았다. 포션 한 병으로 완치하는 건 어림도 없었다. 게다가 오늘 이미 한 번 포션을 마셨으니까……. 이 포션은 몬스터 부산물로 만든 것인 데다 독성을 빼는 연구의 진행이 늦은 탓에 자주 마실 수는 없었다.
다리아는 갈색 병 하나를 사이러스의 입에 물려 주었다. 핏기없는 입술에 힘이 들어갔다. 목젖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다리아가 시선을 내렸다. 진짜 고통은 이제부터였다.
살점이 채워지고 뼈가 붙는다. 찢어진 근육이 회복되는 과정은 허벅지가 뚫릴 때의 고통을 느리게 되감는 것 같았다. 사이러스는 힘겹게 숨을 헐떡였다. 다리아가 그의 젖은 이마에 수건을 문질렀다.
“전부 치료하기엔 무리야. 더 싸울 수 있겠어?”
“조금 쉬면.”
그럼 먼저 움직여야겠군. 다리아는 흔적을 찾으려는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음악실을 거친 건 틀림 없는데. 다음 순간 시선이 창문을 향했다. 저기로 나간 건 아니겠지? 보는 사람도 많을 텐데.
“저 액자. 저기로 갔어.”
사이러스가 앓는 목소리로 말했다. 힘없는 손끝이 가리키는 액자는 과연 사람 하나가 통과할 만한 크기였다.
“비밀통로가 있었네. 여왕은 그걸 우리한테 말 안 했고.”
“몰랐을 수도 있지.”
과연? 이 경우엔 모른 것도 잘못이다. 다리아는 액자를 신경질적으로 열어젖혔다.
“통로가 꽤 큰데. 이거 설마 궁전 전체에? 백작도 이걸로 도망친 게 틀림없어. 지금껏 못 찾은 이유가 이거였군.”
“이 상처도…… 백작이.”
힘겹게 말을 꺼낸 사이러스가 거친 숨을 토해냈다.
“둘이 벌써 만났단 말이지. 정말로 되는 일이 없네.”
어떻게 일이 이렇게 꼬일 수가 있지? 그 던전은 고작 두어 시간 만에 해결될 것이 아니었는데! 구상하는 데 투자한 시간과 아낌없이 쏟아부은 마력이 아까울 지경이다.
하지만 물러설 수도 없었다. 이번 같은 기회는 다시 없을 것이다.
“사이러스. 쉬다가 천천히 따라와.”
머릿속이 혼탁한데도 몸은 날렵하게 움직였다. 잘못된 구조로도 어찌저찌 굴러가는 기계처럼.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납득할 수가 없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잘 살고 싶다는 게 잘못인가? 죄악으로 가득 찬 땅, 핏줄 하나로 먹고사는 놈들이 피를 빨아먹는 건 괜찮고 나는 안 돼?
잘못하고 있다고? 실패할 거라고? 왜?
좀 더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신용이 없어 고리대만 잔뜩 쌓였는데도 다달이 나오는 병원비. 폭력, 범죄, 가난. 가난. 출구 없는 가난.
돈을 벌고 싶다. 잘 살고 싶어. 그럴 수 있다면 그 누구도 짓밟고 올라설 수 있다.
‘어차피 여기 이것들은 우리랑 같은 인간도 아니잖아. 좀 이용하면 어때.’
아니, 아직 이용해 보지도 못했다! 이런 무모한 계획에 투자를 결정한 괴짜가 준 얼마 안 되는 투자금이 그들이 실질적으로 얻은 전부였다. 과실을 얻지도 못했는데.
이곳이 망가지면 어때. 좀 죽으면 어때. 그게 세상이 다리아를 짓누른 방식이었다. 어린 동생을 끌고 그 숨 막히는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걸 밟고 올라간다 한들 그게 비난받을 일인가.
나를 짓밟은 그 모든 것들은 아무도 멈춰 주지 않았으면서.
다리아는 검을 고쳐 쥐었다. 이건 더 이상 실리를 위한 싸움이 아니었다. 옳다는 것을 증명받기 위한 결투였다.
비밀통로의 출구는 몰라도 그들이 향할 곳이 어디인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마차를 찾고 있을 것이다.
창문을 통해 2층에서 바로 정원으로 뛰어내려 달렸다. 경악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등 뒤에 따라붙었으나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 * *
통로 출구가 닫혔다. 시더는 수상의 증기 마차로 향했다. 그를 뒤쫓는 다리아의 다리를 향해 새파란 마력탄이 쏟아졌다.
다리아는 가까스로 몸을 굴러 피했다. 다리에 생채기가 났으나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몸을 일으켰을 때 이미 백작은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고, 다리아의 눈앞에는 금빛 총구가 번뜩이고 있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속이 끓어올랐다. 저 여자가 모든 걸 망쳤다. 그전까진 모든 게 순조로웠는데. 다리아는 신경질적으로 이를 맞부딪혔다.
야수처럼 달려드는 다리아를 에스페란사는 총을 가로로 세워 막아냈다. 증기 마차에 시동이 걸렸다. 굴뚝에 연기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이윽고 마차는 잔디밭을 가로질러 정원 한가운데의 길을 무자비하게 달렸다.
에스페란사는 달려드는 다리아의 다리를 걷어차고 몸을 통째로 엎어 쳤다. 사실 제대로 된 맨손 격투 경험은 거의 없었다. 아주 어릴 때라면 모를까. 그래도 보고 들은 걸로 이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다리아가 벌떡 몸을 일으켰을 때, 에스페란사는 이미 달리는 증기 마차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마차가 정문을 통과했다. 다리아가 이를 악물고 따라붙었다. 두 다리만으로 달리는 증기 마차를 따라잡기도 쉽지 않았지만, 그 증기 마차를 타고 멀어지면서도 정확하게 다리아의 팔목을 노리는 탄알이 더 큰 문제였다. 가까이 접근하지도 못할 정도로 빽빽하게 마력탄을 쏘아댄다.
다리아는 방패를 꺼내 마력을 흘리며 조금씩 가까이 접근했다. 그러나 한 발 한 발이 어찌나 강력한지 방패를 쥔 손목과 팔이 덜덜 떨렸다.
“계속 쫓아오는데요?”
정말로 올 줄은 몰랐다. 사실 계획을 짜면서도 쫓아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따금 가까워지는 다리아의 얼굴을 보면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다른 때에도 지능적인 쪽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다리아는 악에 받친 것 같았다.
“일단 번화가 쪽으로 갈 거예요. 안으로 들어가요.”
시더가 모자를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게 눌러쓰며 말했다. 에스페란사는 길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 창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리아가 멈칫한 사이 그들은 쏟아지는 증기 마차들 사이로 숨어들었다.
수상의 마차가 평범하게 생겨서 망정이지, 시더의 증기 마차였다면 진작에 따라잡혔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