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219
219화
“진짜 따라올 생각인가 봐요. 그래도 사람 많다고 공격은 안 하네.”
“시선을 끌까 봐 그런 거겠죠.”
시더는 구태여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속도를 조금 더 올렸다.
“마력 충분해요?”
“충분해요.”
그들은 규정 속도로 달리는 마차들 사이를 종횡무진 누비며 순식간에 세 블럭을 넘어갔다.
이윽고 어퍼 레인으로 넘어가는 사거리에 도착한 순간.
“빨간 불!”
부딪힌다! 에스페란사가 낮은 비명을 터뜨렸다. 시더는 이를 악물며 레버를 밀었다. 끝까지 젖혀진 속도계 바늘이 바들바들 떨리고, 마차가 총알처럼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와 동시에 창문 밖으로 긴 총신을 드러낸 에스페란사가 반대편에서 돌진하는 마차를 밀어냈다.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 마차에서 마부가 침을 뱉으며 욕하는 소리가 희미해졌다.
“엉뚱한 데서 죽을 뻔했어요.”
“설마요.”
시더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어퍼 레인으로 넘어오자 길거리에 다니는 증기 마차의 수가 확 줄었다. 그 말은, 다리아가 다시 접근하기 쉽다는 뜻이다. 에스페란사는 후드를 덮어쓰고 마차 위로 뛰어 올라갔다. 담장 위를 달리는 다리아와의 거리가 아까보다 훌쩍 가까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로를 쏘아 떨어뜨리기 위한 총성이 평화로운 어퍼 레인을 가득 채웠다. 혹시라도 시퍼렇게 날 선 마력탄이 그들의 저택에 떨어질까 겁이 난 이웃들이 재빨리 창문을 걸어 잠갔다.
“윽, 빨라요!”
길모퉁이를 도느라 한쪽으로 쏠린 몸이 휘청였다. 마력이 빗나가자 다리아는 순식간에 바로 앞까지 접근했다.
“다 왔어요.”
뒤로 돌아 있던 에스페란사는 저택의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익숙한 길에 진입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럼 이제 다리아를 잠시 붙잡아 둬야 했다.
“속도 조금만 줄여 줘요.”
시더가 부드럽게 속도를 낮추자 에스페란사는 발을 굴러 뛰어내렸다. 발이 지면에 닿기 전, 다른 저택의 담장 위에 올라서 있던 다리아의 하반신을 향해 총을 쏘았다. 귀청이 떨어질 듯한 총소리가 쉬지 않고 터져 나왔다.
“뛰면서 이런 정확도가 나오는 게 말이 돼?”
이를 악문 다리아가 무릎을 노린 마력탄을 겨우 쳐냈다. 도무지 공격할 타이밍을 잡을 수가 없었다. 갈수록 뒤로 밀려났다. 결국 담장 안쪽으로 몸을 날린 다리아가 거친 숨을 다잡았다.
에스페란사는 담장 안으로 따라가지는 않았다. 다리아를 아예 죽이거나 쫓아내려는 게 아니다. 적당히 갖고 놀아야 했다. 그러려면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솔직히 그 정도 여유는 없어.’
던전 하나를 혼자 몸으로 상대하고 거기서 저택까지, 저택에서 궁전까지 가서 궁전에서도 사이러스를 상대했다. 몸이 남아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포션을 마셔서 그나마 이만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다리아가 지친 만큼, 사실 그 이상으로 에스페란사도 기진맥진했다.
‘끝나면 목욕할 거야. 한두 시간쯤 퍼져 있을래. 그리고 잔뜩 먹고, 브랜디를 좀 마셔야겠어. 쓰레기처럼 만취해서 자야지.’
이 전투에서 승리하면 정말로 끝이다. 지친 몸을 생각하면 당장 그 끝으로 달려가고 싶다가도, 끝 너머에 있을 이별을 생각하면 몸이 닳도록 싸우고 싶기도 했다.
그 때, 등줄기가 섬뜩해졌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까닥였을 때, 귓가에 날붙이가 스쳐 지나갔다. 다리아와는 다른 방향이었다. 에스페란사는 시선을 다리아에게 고정한 채 천천히 몸을 뒤로 물렸다.
‘왜 쟤가 먼저 와?’
우리 쪽 사이러스는 뭐하고! 시야 구석에 앳된 얼굴의 사이러스가 나타나자 에스페란사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래도 아주 불리한 상황은 아니다. 저쪽은 움직일 수는 있다고 해도 다리 상태가 나쁠 테니까, 큰 전력은 아니다. 지친 몸으로 멀쩡한 사이러스까지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이 정도라면 해 볼 만했다.
두 자루의 검이 양쪽에서 쇄도했다. 에스페란사는 하나는 피하고 하나는 흘렸다. 방어 동작이 매끄럽게 공격으로 이어졌다. 가만히 서서 검로를 계산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쉴 새 없이 뛰고 부딪혀야 했다. 고민하기보다는 몰입해야 한다.
―전부 나갔어요. 이제 들어와요.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시더의 통신이 몰입감을 깨뜨렸다. 에스페란사는 숨을 몰아쉬었다. 집중이 깨지는 게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건 밀리는 게 아니다. 밀리는 척하는 거지. 두 사람과 번갈아 합을 주고받으며 에스페란사는 천천히 뒷걸음질을 했다.
―아. 당신은 서재로.
뭐라고? 잠시 집중이 깨졌다.
“윽!”
몬스터 따위완 비교도 할 수 없이 강력한 마력이었다. 꽤 깊게 찢어진 살갗이 따가웠다.
에스페란사는 상처를 무시하고 몰아치는 공격을 흘려보냈다. 이런 건 포션을 먹으면 금방 낫는다. 그보단 시더에게서 더 이상 답이 오지 않는 게 더 신경 쓰인다.
‘그래. 언제까지 이런 데서 힘을 뺄 수는 없지.’
다리아의 얼굴은 열에 잔뜩 달아올라 있었다. 여기까지 쫓아온 것만 봐도 상황 판단력이 떨어진 게 분명했다. 사이러스 쪽은 잘 모르겠지만, 부상을 제대로 치료하지도 못하고 전투에 끌려 나왔으니 역시 그리 온전한 상태는 아닌 것 같다.
그럼 차라리 좀 더 쉬운 길로 가볼까.
생각과 동시에 몸을 돌린 에스페란사가 저택 쪽으로 뛰었다. 먹히면 좋고, 안 먹히면 어쩔 수 없는 거다.
“대놓고 유인하는데. 어쩔 거야?”
검을 내려놓은 사이러스가 물었다. 다리아는 씩씩 숨을 몰아쉬었다.
“당연히 쫓아가야지. 어차피 여기선 오래 못 싸워.”
사방은 장애물투성이. 말 한마디 잘못하면 호외가 뜨는 촉새 지구. 전장을 바꾸자는 에스페란사의 제안은 자기 쪽에 아주 유리한 것만 빼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니, 나쁘더라도 상관없다.
“시공간 기계가 거기 있잖아. 어차피 가야 돼.”
사이러스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다리아는 오늘 해결 봐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이 전투에서.
그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다리아는 에스페란사가 들어간 저택으로 뛰어들었다.
‘만일의 상황에는 ‘황금 발톱’이 있으니까…….’
사이러스도 불안한 마음을 애써 억누른 채 따라갔다. 허벅지에 불이 붙은 듯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이건 실재하는 고통이 아니다. 이건 허상이다. 이 세계가 그렇듯이.
문은 열려 있었다.
* * *
이 저택이 이렇게 고요할 수도 있었던가? 웅장한 홀 위로 1년 전, 무릎까지 자라난 풀을 헤치고 들어왔던 먼지 쌓인 폐가가 겹쳐졌다.
방금 전까지 풋맨이 대기하고 있었을 현관, 하녀들이 바삐 오갔을 응접실, 계단, 부엌. 사람만 그대로 증발한 듯했다. 적막한 홀을 가로지르는 발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시야 한 편에 ‘에이번데일 백작의 저택’이 떠오르고, 시간에 바랜 카펫을 밟아 올라가던 때처럼 에스페란사는 계단을 올랐다. 경계를 끌어올려 조심스럽던 그때와는 달리, 이제 이 저택이 집처럼 익숙하다. 빠른 걸음으로 서재로 향했다.
‘이것까지 그 날이랑 똑같네.’
그 날, 이 문을 열었을 때 세상이 바뀌던 기억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에스페란사는 문고리를 비틀어 열었다. 이번에는 세상이 뒤바뀌지 않았다. 대신 익숙한 서재의 향기, 나무와 종이, 잉크의 향이 몸을 감쌌다.
“왔군요.”
이 저택의 주인이 몸을 돌렸다. 흰 뺨에 닿은 햇살이 눈부셨다. 긴 금발 위에 빛이 둥글게 고였다. 경계심 없이 애정만 담은 눈동자가 조금 짓궂게 반짝였다.
회상에 차분해졌던 심장이 조급히 뛰었다.
“갑자기 왜 부른 거예요? 걔들이 이 집을 돌아다니게 두려고요?”
“그쪽은 막고 있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아. 사이러스가 도착했군. 에스페란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작 말해 줬으면 좋았겠지만.
그럼 시더가 에스페란사를 여기까지 부른 이유는…….
“다리아를 여기로 몰아넣으려고요?”
다른 곳도 많은데 굳이 서재로?
“조금의 희생은, 감수해야죠.”
시더는 눈을 찡그렸다. 2층까지 빼곡히 가득 찬 책을 보는 시선에 아쉬움이 넘실거렸다.
“일단은 이렇게 하도록 하고.”
그가 책상 위의 레버를 당기자 책장 위 칸에서부터 나무 덮개가 내려와 책장을 가렸다. 마력을 실은 총탄에 맞으면 단단한 나무라도 금방 뚫릴 테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어느덧 에스페란사의 시선은 연구실로 이어지는 문에 닿아 있었다. 연구실 안쪽에는 시공간 기계가 있다. 왜 여기일까?
거의 완성된 시공간 기계. 다리아를 유인하려는 목적.
“설마, 써 보게요?”
주어가 없어도 시더는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한 번도 실제로 작동시켜 보지 않았잖아요? 이론적으로는 하자가 없지만 실제로는 어떨지 확인할 필요가 있죠.”
어차피 죽이려고 했었다. 죽일 바에는 이게 나을지도 모른다. 원래 세계로 돌려보낼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이다.
“좋아요, 그럼 난 손님을 마중하러 가 볼게요.”
“이쪽으로 유인하기 쉽도록 오토마톤을 작동시켜 뒀어요. 갑자기 진로를 바꾸지만 않으면 성공할 거예요.”
에스페란사는 시더가 책상 위에 올려둔 제어반을 흘끔 보았다.
그러고 보니 전에 한 번 저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 줬던 적이 있다. 저택에 방어용 오토마톤을 배치한 게 언제라고 했더라. 열여섯 살?
“당신, 솔직히 좀 신났죠?”
“조금?”
시더는 어깨를 으쓱였다. 에스페란사는 픽 웃었다. 조금이라도 즐길 부분이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일 수도 있는 만큼 혹독하고 필사적인 전투가 될 것이다. 패배하면 죽음, 승리하면 이별이다.
에스페란사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시더의 뺨을 붙잡고 까치발을 들어 입을 맞추었다. 감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길게 끌지는 않았다.
“둘 다 잡아두려고 노력하겠지만 이미 늦었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몸을 돌린 에스페란사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만약에 그쪽 사이러스가 먼저 여기로 오면.”
“오면?”
시더가 웃음기 서린 목소리로 되물었다.
“죽여 버려요.”
“저런. 힘닿는 대로 해 보죠.”
문이 닫혔다. 시더의 입술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는 아직 온기가 남은 입술 위에 엄지를 잠시 얹어 두었다가 몸을 돌렸다.
장난 같이 지나간 말이지만, 확실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에스페란사가 가진 살인에 대한 거부감을 이해한다. 그런 것으로 발목을 잡고 싶진 않았다. 에스페란사가 남는다면, 그건 순수하게 스스로의 의지로 내린 결정이어야 한다.
……과연 그런가?
‘실은, 이유가 뭐든 남아 주는 편이 좋지.’
시더는 쓰게 웃으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다. 이런 얼굴은 끝까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