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22
22화
험프리 하우스.
젊은 험프리 부인은 초대장에 대한 답신을 확인하다가 깜짝 놀랐다.
“어머나!”
“왜 그러세요?”
빈 찻잔에 차를 따라 주던 하녀가 물었다. 험프리 부인은 놀라서 파오란 궐련을 찻잔에 털고 말았다.
“깜짝이야. 이거 버리고 다시 해 오렴.”
하녀가 찻잔을 가지고 나간 사이, 험프리 부인은 몇 번이고 답신을 다시 읽었다. 형식을 지켜 쓴 글이라 몇 번을 다시 읽어도 특별할 건 없었다. 하지만 험프리 부인은 감명받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에이번데일 백작이 우리 파티에 참석하겠다니.”
파티라고는 정말 꼭 가야 할 곳에만 얼굴을 내밀었다가 꼭 있어야 하는 시간이 지나면 쌩 사라져 버리는 버릇없는 청년이었다. 노신사와 노부인들은 최소한의 예의만 지키는 그 행태를 못마땅해했고, 중년층은 그래도 에이번데일과 친하게 지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계산하며 그에게 말이라도 한마디 더 붙여 보려고 했다. 그리고 청년층은…….
아직 자신이 청년층에 속한다고 믿는 험프리 부인이 생각했다.
청년층은 표가 좀 갈린다. 어떤 쪽에서는 그의 무례함을 성토하는 반면, 어떤 쪽에서는 환호한다. 환호하는 쪽도 물론 이유가 두 가지로 갈린다. 하나는 마도 공학자 시더 클라이번에게, 또 하나는 잘생긴 청년 백작 에이번데일에게 환호하는 것이니까.
“어느 쪽이든, 이런 인물은 참석하는 것만으로 파티의 격이 올라가지.”
기분 좋게 뇌까리던 험프리 부인은 다시 답신을 읽어 보았다.
“피후견인이라고?”
그런 얘기를 들은 적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노동으로 빌어먹는 계층에서나 겨우 돌던 이야기였지만, 무릇 사교계에서는 그런 자들에게도 귀를 열어 둘 필요가 있으니까 말이다.
“아직 어디에서도 얼굴을 비춘 적이 없고.”
그 에이번데일이 피후견인, 그것도 어엿한 숙녀를 소개하러 나온다, 라. 꼼짝없이 하루 종일 파티장에 붙잡혀 있어야 할 것이다. 험프리 부인은 키득대며 펜을 들었다. 그리고 잔디깎이 오토마톤을 광고하는 카탈로그에 기분 좋게 서명했다.
* * *
“대단한 파티네요.”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우스꽝스럽지 않을 정도로만 화려하게 치장한 에스페란사와 정말 예의만 지킬 정도로 갖춰 입은 시더가 마차에서 내리자, 잔디깎이 오토마톤이 철컥거리며 돌아다니는 정원이 나타났다.
험프리 경은 13년 후에도 꽤 부자였지만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나비넥타이를 맨 토끼 모양 오토마톤이 폴짝거리며 잔디를 깎았다. 정원을 다듬는 모습 같은 것을 손님들 앞에서 보여 줄 리가 없다. 이건 새 오토마톤을 자랑하려고 일부러 꺼내 놓은 것이다.
‘졸부 느낌도 여전하고.’
솔직한 생각이었다. 험프리에 대한 사감도 있었지만.
“가든 파티라길래, 당연히 야외라고 생각했어요.”
“요즘 유행이라더군요.”
기껏해야 차양을 치고 치르는 파티를 생각했다. 그런데 험프리가에서 내놓은 것은 무려 온실이었다. 널따란 온실은 파티장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 잔디를 깔아 놓은 바닥에 오솔길처럼 길을 내놓은 것만 빼면.
요정의 숲처럼 나무가 드리운 무대 위에서 오페라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정말 드물게 좋은 파티예요.”
깃털 부채를 쥔 부인이 감탄했다.
그럴 만했다. 온실의 천장까지 타고 오른 덩굴. 주렁주렁 열린 꽃송이. 꽃향기보다 진한 술 향기. 미소년 형태의 오토마톤이 삐걱삐걱 돌아다니며 시중을 들었다. 올림포스 신들의 파티를 재현하려는 노력이 보이는 것 같았다.
“저 오토마톤은 이 분위기에 좀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시중 것이 다 그렇죠.”
에스페란사가 작게 속삭였고, 시더는 코웃음 치며 대답했다. 이런 말도 험프리 부인에게 실례가 되므로, 그들의 대화는 아주 조용히 이루어졌다.
“에이번데일, 자네가 웬일로 이런 자리에 왔나?”
잘 빼입은 신사 하나가 시더에게 말을 걸었다. 시더는 보란 듯이 에스페란사가 붙든 팔을 내밀어 보였다.
“약혼녀이신가?”
“엄연히 말하면 피후견인이지.”
예의상, 신사가 먼저 스스로를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미스. 조지 바이런입니다.”
“에스페란사 헌터입니다, 바이런 씨.”
남자가 에스페란사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미스 헌터, 춤을 청해도 괜찮을까요?”
시더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줄 알았지,’ 하는 얼굴이라 에스페란사는 그를 흘끔거렸다.
“에이번데일, 설마 내가 자네 피후견인과 춤 한 곡 추는 것도 못 하게 막진 않겠지?”
공공연한 애인이나 약혼자가 있는 경우에도 춤을 못 추게 할 수는 없었다. 특정한 상대를 막을 수는 있어도.
“에스페란사는 오늘 사교계에 처음 나왔네. 샤프롱이 있으면 좋았겠지만, 보다시피. 귀부인들께 안내해 주면 좋겠는데.”
“……그럼 댄스카드를 주시지요. 순서를 뒤로 빼면 되지요.”
바이런은 포기하지 않았다. 에스페란사는 결국 열 줄 중 여덟 번째에 조지 바이런의 이름이 적히는 것을 보고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춤을 거절해도 괜찮아요?”
“당신도 파티가 처음은 아니잖아요? 당연히 거절해도 괜찮죠.”
“그치만 그때는, 제가 무슨 소리를 해도 괜찮았거든요.”
사교계란 곳에 소개된 헌터가 에스페란사 혼자뿐만도 아니었다. 헌터와 일반인들이 적당히 섞인 사교계에서, 헌터의 거절은 명확한 거절로 여겨졌다. 헌터 협회는 헌터를 강력하게 비호했고, 즉각적인 무력행사를 할 수 있는 헌터를 상대로 시비를 걸 수 있을 리 없었다.
“여기선 그러면 안 돼요.”
“그 정도는 알아요.”
부드러운 멜로디가 흐르는 파티장. 시더는 에스페란사를 이 파티의 호스티스인 험프리 부인에게 안내했다.
“어머나, 왔군요. 내가 바빠서 온 줄도 몰랐네요.”
바쁠 만했다. 험프리 부인은 오토마톤 카탈로그를 주변 귀부인들과 공유하느라 한창이었으니까. 분명 정원에 놓아둔 잔디깎이 오토마톤을 자랑했을 것이다.
“에이번데일 백작, 옆의 아가씨를 소개해 주지 않겠어요?”
“그러지요. 제 피후견인인 미스 에스페란사 헌터입니다. 부친과 함께 파오룬에 살다가 귀국했지요.”
“부친께서는?”
“작고하셨답니다.”
“어머,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험프리 부인.”
험프리 부인은 괜한 실언을 한 것은 아닌지 염려했다.
“정말 괜찮으니, 숙녀분을 소개해드릴 만한 고명한 귀부인께 안내해 주시는 건 어떨까요?”
사과가 끝없이 이어지려는 것을 끊은 시더가 말했다. 험프리 부인이 짝 손뼉을 쳤다.
“그래요, 그게 좋겠어요. 마침 참석하신 분들이 꽤 많아요. 누가 좋을까요? 레이디 쇼드니? 레이디 랭카스터? 레이디 퍼스? 스탠리 부인? 마벨우드 남작님? 머레이 백작님?”
당연히 마벨우드 남작이지.
“레이디 퍼스가 좋겠군요.”
“어머, 그렇겠네요.”
예상과 다른 시더의 말에 에스페란사가 뭐라 하기도 전에, 험프리 부인은 그들을 레이디 퍼스에게로 안내했다. 노부인들이 앉은 탁자는 시끌시끌했다. 그 가운데에서 가장 나이 들고, 그럼에도 가장 정정해 보이는 노부인이 레이디 퍼스였다.
“이게 웬일인가, 에이번데일!”
레이디 퍼스가 크게 웃으며 시더를 반겼다.
“난 자네가 파티장에 들어오면 죽는 병이라도 걸린 줄 알았지!”
“그럴 리가요.”
“내 파티에 오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뭐, 보아하니 이번 파티에는 의도가 있는 듯하지만. 그래, 미스 헌터?”
“반갑습니다, 부인.”
“난 레이디 퍼스라고 부르게. 반갑군. 보아하니 벌써부터 댄스카드에 이름이 있는데. 에이번데일, 자네가 피후견인의 춤을 차지한 건가? 이 아가씨는 아직 인사할 데가 많을 텐데.”
돌연 엄격해진 태도에 에스페란사가 내리깐 눈을 굴렸다.
“제가 아니라 바이런의 소행입니다.”
시더는 자기에게 불리한 오해를 조금도 두고 보지 않았다.
“바이런, 그자의 소행이었군. 그 집안 남자들은 백 보 밖에서도 미인을 찾아낸단 말이야. 미스 헌터, 바이런이 달라붙거든 가차 없이 떼어 내게나.”
“맞아, 맞아. 바이런 씨는 별로 예의 바른 인종은 못 되니까 말이에요.”
같이 있던 럼버트 부인도 기분 좋게 말했다.
“바이런 씨는 평판이 안 좋군요?”
“꼭 그런 건 아니에요. 하지만 미혼인 아가씨들에겐, 아무래도 좋은 선택은 아니죠.”
“바이런 같은 한량과는 어울리는 게 아니야. 에이번데일, 자네의 피후견인을 잘 감시해야겠군. 저기, 저 승냥이 떼들을 보라고.”
무시무시한 노부인들이 있는 쪽은 필사적으로 피하던 신사 무리들이 이쪽을 흘끔거리고 있었다.
“백작, 신경 쓰게. 파티를 즐길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사교계가 처음인 데다, 아는 사람도 없는 아가씨라면 마땅히 백작이 신경 써야죠. 하지만 내 생각엔 백작이 저 신사들을 상대하고, 우리가 아가씨를 소개해 주는 편이 나을 것 같아요.”
“호오?”
“백작도 아는 사람이 없긴 마찬가지잖아요, 앨리스. 자, 미스 헌터. 어떻게 생각해요?”
에스페란사는 남자들 틈바구니로 가기 싫어 눈썹을 찡그린 시더와 귀부인들을 번갈아 보았다. 시더는 ‘배신하지 말아요’ 하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
결정은 빨랐다. 망설임도 없었다.
“부인들께서 신경 써 주시는데, 당연히 감사하죠.”
“하하하, 좋은 생각이야, 미스 헌터. 에이번데일, 뭐 하고 있나? 자네의 친애하는 동문들에게 가 봐.”
시더는 정말 싫은 얼굴로 와인 바 쪽으로 향했다. 신사들이 금세 그를 붙잡고 뭐라뭐라 떠들기 시작했다.
“저 머저리들. 에이번데일이 잘하는 게 딱 하나 있다면 머저리들과 거리를 두는 거지.”
“발명도 잘하시긴 해요.”
에스페란사가 멀뚱히 덧붙였다.
“그건…… 그래, 그건 인정해야지. 하지만 그 얘길 하는 게 아니잖나! 사회적으론 영 쓸모없는 인간이란 말이야.”
그래도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재워 주는 물주의 욕에 동참할 수는 없어서 에스페란사는 가만히 있었다. 레이디 퍼스가 웃으며 말했다.
“노인들이 떠들 때는 진심으로 욕하는 건 아니네. 애먼 아가씨 치마 들추고 다니는 작자들이나, 하루가 멀다 하고 오페라 가수 집을 전전하는 작자들이나. 그런 놈들에 비하면 썩 건전하지.”
“너무 건전하다 못해 좀 위험하긴 하지만요. 우리가 중매를 서겠다는 건 아니지만, 미스 헌터, 에이번데일이 관심을 보이는 숙녀는 없던가요? 아니, 숙녀가 아니라도.”
레이디 퍼스가 눈치를 주었지만 럼버트 부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더 클라이번에게 여자? 숙녀고 아니고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아니, 애초에 여자와 남자를 가릴 문제도 아니다. 에스페란사가 콧잔등을 찡그리며 말했다.
“로드 에이번데일은…… 톱니바퀴를 좋아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