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220
220화
넓적한 검이 부딪쳤다. 사이러스는 몸을 뒤로 물렸다.
시더 클라이번은 두 사람을 서재로 유인하라고 했다. 의도가 무엇인지는 금세 알 수 있었다.
‘죽이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
승리가 확실해지고 황금 발톱을 빼앗으면 에스페란사는 후환을 없애기를 바랄 것이다. 사이러스는 형제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에스페란사가 원한다면 막을 수 없다. 그럴 염치도 없었다.
그런데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면…….
시더에게 사이러스를 배려할 의도는 조금도 없었겠지만, 그 방법이 어느 쪽에나 최선이었다.
‘성공한다면 말이지.’
“날 상대하면서 딴생각할 여유가 있나 보지?”
다리아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불시에 품 안으로 파고드는 검로가 날카로웠다. 마력이 시퍼렇게 서린 날이 비명을 질렀다.
“그 여잔 어디 있고 너 혼자야? 백작은? 전부 숨어 버린 건 아니겠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모골이 송연해지는 탄알이 대신했다. 2층 난간에서 날아온 탄알에 다리아는 눈을 부릅떴다.
“이런. 정말로 없네.”
에스페란사는 사이러스와 대치 중인 다리아를 난간 아래로 내려다보며 탄식을 터뜨렸다.
곤란하게 됐다. 그래도 장소가 연구실이고 그쪽 사이러스는 부상자인 만큼 시더가 쉽게 당하진 않겠지만……. 에스페란사는 다리아의 공격을 막으려는 사이러스를 향해 눈짓했다. 어쨌든 시더가 안전한 게 우선이다.
검을 거둔 사이러스가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에스페란사는 다리아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대신 다리아가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열이 잔뜩 오른 다리아는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단숨에 계단참에 도달했다.
다음 숨을 들이켰을 때, 다리아의 검날이 에스페란사의 총신을 쪼갤 듯이 내리찍고 있었다.
에스페란사는 총신의 각도를 약간 비틀어 검을 흘려보냈다. 총은 튼튼하지만 검을 상대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게다가 각도가 나쁘다. 꺾인 손목이 통증을 호소했다.
‘이걸 어쩌나……’
마력으로 밀어붙이는 방법도 있었지만 오늘은 이미 마력 소모가 꽤 컸다. 다리아가 황금 발톱을 사용할 때를 대비해 마력을 남겨둘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큰 보폭으로 뒤로 물러났다. 다리아는 곧장 따라붙었다. 그러나 에스페란사가 복도의 어느 지점을 밟은 순간, 벽에 작은 구멍이 열리고 총탄이 날아왔다. 마력탄이 아니라 진짜 총탄. 다리아의 검에 총탄이 우수수 박혔다 떨어졌다.
“뭐야, 이건?”
잠시 멈추더니 또다시 날아온다. 기묘하게 자신을 쫓아다니는 듯한 탄알을 피하기 위해 다리아는 방향을 바꾸어 달렸다. 그러다 보니 서재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진짜 토끼몰이잖아.’
에스페란사는 행여나 다리아가 갈림길에서 잘못된 방향을 고르지 않도록 몸으로 길을 막아섰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총성이 멎었다. 그러자 다리아는 허공에서 권총을 꺼냈다. 몸을 비틀어 정확히 이미 닫혀 버린 벽의 총구를 저격하는 데는 눈 한 번 깜박일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감탄스러운 솜씨다. 전투 중이 아니라면 박수라도 쳐 줬겠지만, 에스페란사는 잠깐 치솟은 흥미를 냉정하게 가라앉혔다.
총을 집어넣은 다리아가 에스페란사를 노려보았다.
“이런 게 또 있나 보지?”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자 다리아는 이를 악물었다. 에스페란사가 한숨과 함께 돌려 말했다.
“너도 했을 거 아냐. 안 그래?”
알현실이라는 구체적인 장소로 시더를 유인했던 걸 생각해 보면, 그곳에 아무 장치도 해 두지 않았을 리 없었다.
“빌어먹을 년, 내 건 써 보지도 못했다고!”
“그거야 네 능력 부족이지.”
실핏줄이 터진 눈이 에스페란사를 휙 올려다보았다. 방금 무언가가 다리아를 제대로 건드린 것 같았다.
“‘능력 부족.’ 웃기지 마.”
목을 울리는 듯 낮은 소리에 순간 흠칫했다. 즉각 총 대신 들어 올린 검에 푸른 예기가 서렸다. 언제 공격이 들어와도 막을 수 있도록.
그리고 에스페란사는 검을 세우자마자 빈틈을 벌리듯이 쏟아지는 검격을 받아쳐야 했다. 매끄러운 카펫 위의 발이 점점 뒤로 밀렸다. 에스페란사는 다음 기계가 대기하는 위치를 머릿속으로 셈하며 최대한 공격을 흘리고 막는 데 주력했다.
쇠 긁는 소리에 정신이 어지러웠다. 중간에 몇 번 더 등장한 오토마톤은 다리아가 단숨에 처리했다. 그러면서도 에스페란사를 공격하는 데 머뭇거림이 없었다.
강하고 능숙하다.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을까? 에스페란사처럼 원래부터 몸으로 하는 일에 능했을까? 게임 속에서 만났다면 먼저 말을 걸어 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앞의 이 사람은 약탈자일 뿐이다. 죄책감도 없이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였고, 죽일 계획을 세우고, 그걸 놀이로 만들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판다. 이 강력함도 오직 그걸 위한 수단이다.
머릿속이 차가워졌다. 에스페란사는 검의 각도를 조금 비틀었다. 다리아의 검이 품 안으로 들어온 순간, 몸을 옆으로 물리고 빠르게 빈틈을 파고들었다. 팔 안쪽이 시큰해지는 것과 동시에 다리아의 허리를 길게 베었다.
“윽……”
반사적인 신음을 삼킨 다리아가 옆구리를 쥐었다. 손에 피가 배어 나왔다. 꽤 깊은 상처였다.
다리아가 쓰는 검법은, 다소 거칠게 말하면 근본이 없다. 실전 위주의 용병술에 가깝게 느껴진다. 무서운 기세와 압도적인 마력 활용으로 보완하고 있지만, 에스페란사는 그런 강점이 통하지 않는 드문 상대였다. 검이 살갗을 찢는 순간 다리아도 그 사실을 깨달았다.
젠장. 험악하게 뇌까린 다리아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내가 잘못된 게 아니야. 난 실패하지 않을 거야. 아직 아무것도 얻지 못했는데, 여기서 멈출 수는 없어.
“네가 날 막을 수 있을 리 없어.”
그래서는 안 돼. 그래서는 안 된다고.
낮은 속삭임이 귓가를 긁었다. 그 강박적인 목소리. 방금 전에도 이런 반응이었다. 무언가 잡힐 듯 말 듯 했다.
양쪽 모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음에도 전투는 끊어짐이 없었다. 검이 다시 부딪친 순간, 에스페란사가 불쑥 물었다.
“왜?”
다리아는 필사적으로 팔을 휘둘렀다. 우악스런 힘을 힘겹게 막아내며 덧붙였다.
“내가 왜 널 못 막는데? 네가 강해서?”
“넌 내 모조품일 뿐이야! 내가 만든 시스템으로 도배를 하고, 날 이기겠다고?”
폭풍처럼 몰아치는 검격이 에스페란사를 뒤로, 뒤로 밀었다. 에스페란사는 저택의 구조를 머릿속으로 가늠했다. 서재에 가까워졌다.
“네가 나한테 팔았으니까 내 거지. 돈 벌려고 하는 일이잖아? 사람도 잔뜩 죽이고, 죽으라고 괴물 구덩이에 밀어 넣고. 스털링에서만 수십 명은 죽였나? 수백 명? 파인먼트 하우스에서는? 이게 다가 아닐 텐데.”
다리아의 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가득했다. 에스페란사 역시 상처를 꽤 입었지만, 다리아보다는 양호했다. 그 잔뜩 상처 입은 몸을 휘두르며 다리아는 발악하듯 소리쳤다.
“이 세상이 진짜로 보여? 여긴 가짜고, 걔들은 진짜 사람도 아니야. 그런 걸로 돈 좀 버는 게 뭐가 어때서? 내가 이용하는 게 뭐가 어때서?”
“네가 무슨 자격으로?”
사람이 재앙에 찢겨나가는 모습, 뇌가 텅 비어버리는 그 끔찍한 현장. 그런 걸 수도 없이 만들어 놓고, ‘돈 좀 버는 게 뭐가 어때서?’ 정말 그게 전부인가?
능숙한 검사에, 강력한 마법사, 여왕을 꼭두각시처럼 부리는 배후자의 천박하기 짝이 없는 민낯이다. 에스페란사는 치밀어오르는 혐오감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다리아의 뺨이 새하얗게 질렸다.
“경멸하지 마!”
비명이었다, 그건. 에스페란사는 차갑게 눈을 내리떴다.
다리아는 고개를 마구 휘저었다. 잔뜩 쉰 목소리로 목이 터질 듯이 비명을 질렀다.
“네가 뭘 알아? 네가, 너야말로, 무슨 자격으로? 난 한 번도 다음 끼니를 걱정하지 않는 삶을 살아본 적이 없어. 장기를 떼어 팔아도 못 갚는 빚은 알아? 꽃밭에서 자랐을 게 뻔한 네가 감히 나를 판단해?”
핏발 선 눈동자가 당장이라도 에스페란사를 물어뜯을 것만 같았다.
에스페란사는 입술을 굳게 깨물었다. 사이러스가 돈을 벌고 싶어서 게임을 만들었다고 했을 때, 에스페란사는 그것보단 나은 상황을 생각했다. 두 천재가 차고에 들어앉아 컴퓨터를 발명하는 것 같은, 그런 모습. 그러나 마주한 현실은 더 지독했다.
경멸하지 마. 동정도 하지 마. 죽여버릴 거야.
다리아의 눈이 새파란 빛으로 흔들렸다. 거친 손이 허공을 휘저어 금빛 날을 꺼냈다. 짐승의 긴 발톱처럼 휘어진 것이 마력을 머금고 부르르 떨렸다. 에스페란사는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다리아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것도 아니고, 그 불행이 죄를 정당화하는 것도 아니다. 다리아는 그 힘을 다른 방법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에스페란사는 그 모든 말을 입 안으로 삼켰다.
무슨 말을 해도 의미가 없었다. 가르치듯 하는 몇 마디 말로 다리아가 평생 지고 산 삶의 무게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다리아가 파괴한 것들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이제 와 생각을 바꾸지도 않을 것이다. 비난하는 것은 쉽지만…….
“좋아. 널 평가하진 않을 거야. 네가 잘못됐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방해하기 때문에 막는 거야. 이런 거라면 너도 억울하진 않겠지.”
다리아는 그저 짐승처럼 눈동자를 번뜩이며 숨을 색색 내쉬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에스페란사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인 것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하나였다.
‘온다.’
‘황금 발톱’ 내부의 부품이 덜그럭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스페란사는 다리아가 황금 발톱을 완전히 작동시키기 전에 검을 들어 거칠게 몰아붙였다
다리아는 황금 발톱을 들어 검을 막았다. 그러나 버티지 못하고 뒤로 쭉 밀려났다. 커다란 문에 등이 닿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게 제대로 켜지면 저 여자를 끝내버릴 거니까. 마력이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그 때였다. 문이 열리고, 다리아는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에스페란사의 검이 황금 발톱을 거칠게 긁었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전투가 장소만 옮겨서 다시 진행되려던 찰나였다. 발밑에 묵직한 진동이 느껴졌다. 서재 깊숙한 곳으로부터 시작한 진동이 이윽고 저택 전체를 뒤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