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에스페란사가 서재를 떠난 후, 시더는 연구실 안쪽으로 들어가 시공간 기계의 레버를 당겼다. 단지 켜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양의 마력이 소모됐다.
에스페란사를 원래 세계로 보내기 위해서는 사람 둘을 털어내고도 추가적인 마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시기의 세계로 보내는 데는 훨씬 적은 마력이면 충분했다. 다리아는 혼자서도 오갈 수 있는 정도였다.
‘그래도 마력이 부족하기는 한데.’
마력 측정기의 붉은 바늘을 올려다보던 시더가 책상 위에 둔 제어반을 집어 들었다.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문제는 없다.
마침 마력 주머니가 제 발로 걸어오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벌컥, 서재의 육중한 문이 열렸다. 아직 스물도 되지 않아 보이는 어린 얼굴의 사이러스가 제 몸의 반만 한 거대한 검을 들고 들어왔다. 그의 시선이 널찍한 서재 안쪽의 연구실, 그 맞은편의 문 안쪽에 서 있는 시더에게 정확히 닿았다.
“백작.”
겨우 움직일 수만 있게 미봉한 다리를 질질 끌고 나타났으나 사이러스는 여유로웠다. 시더의 왼손에 들린 총을 보고도 그랬다. 그에게는 백작이 총을 쏘는 것보다 자기 검이 그의 목을 꿰뚫는 게 더 빠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썩 틀린 확신은 아니었다. 마력을 둘둘 감은 마법사를 단신으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 걸 바란 적도 없다.
그러나.
쾅!
여긴 그의 연구실이다.
바닥에서 솟아난 송곳이 발바닥을 파고들었다. 사이러스는 재빨리 몸을 굴렀다. 피 묻은 송곳이 서슬 퍼런 빛을 내고 있었다. 착지한 위치에도 송곳이 솟아났다. 바닥에서 튀어나오는 송곳은 검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당황한 사이러스의 이마, 어깨, 양 허벅지와 등에 붉은빛이 쏘아졌다. 벽에 설치된 총구가 붉은빛을 향해 탄알을 쏘았다.
바닥엔 송곳, 허공엔 다섯 대의 총. 거대한 체격에 비해 탄력 있는 몸이 송곳 위에 선 채로 몸을 비틀어 탄알을 피했다. 그리고 검을 들어 올린 순간.
천장에서 그물이 내려왔다. 온몸을 푹 덮은 그물이 살갗을 파고들 듯이 꽉 조였다. 사이러스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몸을 뒤틀며 그물을 쥐어뜯었다. 그러나 제대로 힘을 실어보기도 전에 그물에 닿은 마력이 뚝 끊겨 버렸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파란 마력이 감돌고 있었지만, 마력으로 그물을 뜯을 수는 없었다.
‘절연체…….’
낭패다. 이런 걸 준비했을 줄이야.
그사이 서서히 움직인 붉은 빛이 다시 사이러스의 몸을 비추었다. 철컥, 소리와 함께 총구가 움직였다.
그 모습을 시더는 연구실 안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만이 그가 사이러스에게 가지는 일말의 관심을 드러냈다.
이 저택으로 적을 유인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우면서 아무런 대비도 해 두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활용도가 떨어지는 함정이기는 하지만, 다친 사이러스를 상대하기에는 충분했다.
“윽!”
힘겨운 신음과 함께 그물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날카로운 실이 손바닥 살갗을 베고 지나갔다. 불길한 예감이 든 시더가 재빨리 총을 들어 사이러스를 겨누었다.
그물이 너덜너덜하게 찢겨 있었다. 마력 없이 오직 손힘으로 저지른 짓이었다. 사이러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만신창이였지만, 그는 마치 입력한 명령을 수행하는 오토마톤처럼 검을 들었다. 탕, 탕! 양쪽 어깨에 불이 일었다.
왼쪽 어깨를 관통한 것은 시더의 탄환이다. 그러나 검을 든 오른쪽 어깨를 스치듯 찢은 총알은 등 뒤에서 온 것이었다.
“늦었군요.”
문밖에 서 있던 사이러스가 숨을 몰아쉬었다.
넓은 보폭으로 성큼성큼 다가온 그는 자기와 똑같지만 조금 더 어린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전투의 흔적이 여실한 몸. 그러나 여전히 눈빛은 살아 있었다. 온건하다 못해 무심해 보이던 소년의 눈에서 뚜렷한 반감을 읽은 사이러스는 어린 자신을 향해 몸을 낮추었다.
“너는…….”
스스로를 ‘너’라고 칭하는 이질적인 기분에 잠시 멈칫한 순간, 어린 사이러스는 미래의 자신을 향해 침을 뱉었다.
“피붙이를 배신하는 짐승 새끼. 난 절대, 너처럼은 안 될 거야.”
“그러길 빈다.”
어린 자신에게 진심으로 행운을 빌어 준 그는 곧 그의 목덜미를 쥐어 들었다. 마치 짐승이 새끼를 옮기는 듯한 모양새였다.
“주사기를 주십시오.”
시더는 가늘어진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러나 의심 없이 그에게 주사기를 꺼내 주었다. 사이러스는 투박한 손길로 사이러스의 굳은 몸에서 피를 뽑아냈다. 핏기가 가실수록 눈빛이 더 형형해졌다.
시더는 어린 마법사의 피가 든 병을 받아 마력 추출기에 연결했다. 커다란 방을 가득 채운 기계의 왼쪽부터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톱니바퀴가 덜덜 굴러가며 연산이 시작됐다. 시더는 빈 카드를 넣어 연산을 초기화시켰다.
“됐습니까?”
“됐어요. 이제 기다릴 일만 남았군요.”
미래의 자신에게 제압당한 사이러스가 끙끙 소리를 내며 부상당한 몸을 뒤틀었다.
“몸에 나쁠 텐데, 그건.”
마치 장난치는 동생을 나무라듯 말한 청년이 자기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냈다. 그러다 흠칫 눈치를 살폈다.
“……다 먹이진 않을 겁니다.”
버튼을 눌러 함정을 전부 집어넣은 시더가 고개를 들었다.
“안 물어봤어요.”
머쓱해진 사이러스는 포션 병을 따서 반만 어린 자신의 몸에 부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아예 자기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총에 완전히 꿰뚫렸던 팔에 서서히 살이 돋아났다. 하지만 움직일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통증도 그대로였다. 정신을 잃을 수도 없게 반만 회복시키다니,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완전히 제압당한 어린 사이러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를 잡은 손은 우악스럽고 압도적이었다. 이 세계에서는 단 한 번, 음악실에서 에스페란사의 총 아래 누워있을 때만 느꼈던 공포감이 다시 다리를 기어오르는 듯했다.
“놔, 이거 놔!”
송곳 없이 멀끔해진 바닥을 밟는 구두 굽 소리가 느리게 가까워졌다. 작업용 장갑을 낀 손이 배려 없이 얼굴을 쥐었다. 냉랭한 회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사이러스는 순간 솜털이 쭈뼛 섰다. 그리고 그 사실에 못내 수치스러워졌다.
에스페란사나 미래의 사이러스와는 다르다. ‘저것’은 그가 다리아와 함께 볏짚 인형처럼 쉽게 죽였던 그 수없는 것들과 같은 인간이다. 진짜는 아니다. 그러나 방금 그는 그 가짜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모멸적이다.
“몇 살이나 됐죠?”
그가 무슨 감정을 느끼든 시더는 개의치 않았다. 어린 사이러스가 그를 멸시하듯, 그도 이 어린 살인자를 멸시했다. 이런 시선은 익숙하다. 그러나 여기선 아니다. 소년의 이가 딱딱 부딪혔다.
답한 건 어른 쪽이었다.
“열여섯입니다.”
“소년병이로군요.”
그렇다 한들 새삼 딱하지는 않았다. 그의 세계엔 더 어리고 더 비참한 아이들이 자갈처럼 깔려 있었다.
“가능하면 어른부터 던져 넣도록 하죠.”
나이를 물어본 이유는 그게 전부라는 듯, 시더는 미련 없이 손을 털고 일어났다.
부품에 낀 먼지를 솔로 털어내고, 레버를 당겼다. 시공간 기계가 전부 켜졌다. 이제 필요한 건 중앙부의 장치. 바로 ‘황금 발톱’뿐이었다.
눈앞에 훌쩍 다가온 끝. 시더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왔다.”
어느 쪽인지 모를 사이러스가 나직이 속삭였다. 검이 부딪히는 소리와 뭔가를 외치는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그 날카로운 소리는 시공간 기계가 바삐 돌아가는 소리에 묻혀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순식간이었다. 엎치락뒤치락하던 전투가 끊어지고, 문이 열리고, 다리아가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그 손에 들린 황금 발톱이 마력을 가득 머금고 빛을 냈다.
됐다.
그러나 그 생각을 비웃듯 이변이 발생했다. 발밑이 울리며 시공간 기계가 멋대로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 * *
열린 서재 문으로 두 사람이 엉키듯 들이닥쳤다. 검과 황금 발톱이 부딪치며 마력이 사방으로 튀었다. 사이러스는 어린 자기 자신을 끌고 계단 뒤쪽으로 몸을 피했다. 완전히 제압당한 소년에게서 숨죽인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황금 발톱은 검에 비해 사정거리가 짧았다. 몸 안쪽까지 깊이 파고드는 공격에 다리아가 순식간에 뒤로 밀렸다. 등이 딱딱한 책장에 부딪혔다. 그러나 무딘 아픔을 무시한 채 팔에 힘을 주어 에스페란사를 떨쳐냈다.
‘조금만 더…….’
살벌한 두 쌍의 눈이 같은 생각으로 번뜩였다.
다리아는 황금 발톱을 왼손에 고쳐 들었다. 마력을 불어넣느라 벽까지 밀려났지만 상관없었다. 황금 발톱의 예열이 끝나면 뒤집을 수 있다. 쉽지는 않지만, 조금만 더 버티면……!
그러나 예열이 반 정도 완료되었을 때, 다리아는 이변을 알아챘다. 이상할 정도로 빨려 들어가는 마력. 뭔가, 석연치 않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는데.
“뭐야, 이건?”
다리아가 멈칫한 순간, 손목을 향해 쇄도하던 에스페란사의 검이 긴 자상을 냈다. 그와 동시에 황금 발톱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젖은 손에 힘을 주는 다리아의 기색에서 석연치 않은 점을 읽어낸 건 거의 본능이었다.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발이 아플 정도로 덜덜 떨리는 바닥과 금속 부품이 맞부딪히는 소리. 흰 증기가 눈 앞을 가릴 정도로 뿜어져 나온다. 그제야 이 공간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을 감지한 에스페란사가 다리아의 등 뒤를 확인했다.
책장 옆에 난 문으로 연구실 안쪽이 보였다. 기계가 덜그럭거리고, 시범 작동을 했을 때만 켜졌던 붉은 불빛이 들어와 있었다.
처음 서재로 들어왔을 때부터 낯선 진동과 기계 소리들이 신경 쓰였지만, 전부 계획 안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공간 기계를 사용할 거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점점 강해진 진동은 이젠 숫제 집을 무너뜨릴 것 같았다. 사람들을 미리 내보낸 게 다행이었다.
그 때, 진동이 뚝 멎더니 기계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 젠장. 에스페란사, 당장 물러나요!”
시더가 제어반 앞으로 달려갔다. 다급히 무언가를 조작하기 시작했지만, 새까만 글자가 가득한 화면은 깜박거리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