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222
222화
화면을 올려다보던 그가 이를 악물었다.
이런 경우를 알고는 있었다. 관련된 논문도 몇 개 읽었다. 하지만 직접 본 건 처음이다.
“무슨 일이에요?”
다리아를 확 밀쳐낸 에스페란사가 거리를 벌리며 외쳤다.
“과충전된 마력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마력의 파동성 때문에 인근의 분리된 장치와 동화되는 현상…이에요.”
“그게 뭔데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설명을 다 떼고 요점만 놓고 보면 어려운 얘기는 아니었다. 황금 발톱과 시공간 기계가 동화되었다는 말이다.
그럼 설마 다리아가 시공간 기계를 조종할 수도 있는 건가? 등줄기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종종 있는 일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럼 해결해본 적 있어요?”
“내 기계에선 이런 일 안 일어나요.”
시더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시공간 기계를 올려다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장담한 것이 무색하게 지금 일어나고 있었다.
서로 다른 기계면 또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떨어져 있던 머리와 팔다리가 합쳐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엉킨 마력을 분리시키는 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떼어내려면 시간이 좀 걸려요.”
“늦으면, 어떻게 돼요?”
“저택째로 시간여행이라도 하게 되겠죠.”
정말 끔찍한 이야기다. 맞은편에 있던 다리아도 설핏 눈을 찡그렸다. 그런 결말은 아무도 원하지 않았다.
“들었지? 저쪽 건드릴 생각은 하지도 마.”
에스페란사가 사납게 말했다. 다리아는 코웃음으로 답했다.
“흥, 겁나나 보지?”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당황한 것은 다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애써 마력을 끊었음에도 이미 빨려 들어간 양이 상당했다. 시공간 기계는 제멋대로 작동을 시작했다.
피가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만 들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마력이 넘쳐나는 저 여자를 상대할 때 이런 일이 생기다니, 운도 지지리도 없지.
아니다. 운은 늘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한 번도 운이 좋았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빠져나갈 방법은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빨리 끝내는 수밖에 없어.’
끝까지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미래의 자신에게 제압당한 동생을 향해 눈짓을 하자, 사이러스가 웅크린 몸의 근육을 부풀렸다. 그가 할 일은 조용히 고통을 참으며 때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거리를 두고 대치하고 있던 두 사람이 다시 부딪쳤다. 팔다리가 얽혔다 떨어진다. 날붙이가 사나운 소리를 내며 스쳤다. 뛰어오르고, 구르고, 의자를 내던졌다. 서재는 삽시간에 난장판이 됐다. 연구실로 통하는 문을 밀어젖히고는, 한 덩어리나 다름없이 굴러 들어갔다.
등이 책상에 부딪혔다. 재빨리 몸을 일으킨 두 사람은 실험실 탁자를 가운데 두고 대치했다.
기계 부품이 돌아가는 소리를 제외하면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조심스레 발을 떼고, 다음 일격을 준비했다.
그 때, 다리아가 처음으로 황금 발톱을 휘둘렀다. 에스페란사는 재빨리 테이블을 뛰어넘었다. 검을 세워 횡으로 긋는 날을 막았다.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지?”
잔뜩 긴장한 것이 무색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머리 위에서 늑대와 사자를 얼기설기 붙여놓은 형태의 괴물이 이를 드러냈다. 에스페란사는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러 괴물의 이를 부러뜨리고 급소를 찔렀다.
‘이렇게 세밀한 조종도 가능한 거였어?’
애초에 이런 게 가능했다면 왜 지금까지 평범한 무기를 들고 싸운 거지? 그 답은 다리아를 돌아보고 나서야 짐작할 수 있었다. 마력이 훅 빠져나갔는지 괴물과 싸운 에스페란사보다도 더 지친 얼굴이었다.
에스페란사는 연구실 벽에 기댄 채 괴물의 시체에서 검을 빼냈다. 피가 카펫에 뚝뚝 떨어졌다. 거친 숨이 쏟아졌다.
아, 지친다.
쉴 곳도 없고, 계속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했다. 던전은 최단기간에 돌파한 데다, 그 이후로도 신경이 팽팽하게 당겨진 채로 뛰고 싸웠다. 유일하게 긴장을 풀었던 건 음악실에서 시더를 만났을 때뿐이었다.
마력은 아직 남아 있다. 체력도 적지만 아직 싸울 만은 했다. 가장 먼저 한계를 호소한 건 정신력이었다. 하지만 아직 버텨야 했다. 여기서 무너지면 다리아는 그들 모두를 죽일 것이다. 에스페란사는 미끌거리는 손을 바지에 닦아내고 검을 힘주어 쥐었다.
그 때였다. 다리아가 다시 황금 발톱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큰 괴물이 나타났다. 쨍그랑! 긴 꼬리가 실험용 테이블 위의 유리병을 휘감아 던졌다.
“하, 정말 되잖아!”
에스페란사가 달려드는 괴물을 해치우는 동안, 다리아는 황금 발톱을 꽉 쥐었다.
마력은 상당히 많이 잡아먹었지만, 평소라면 할 수 없었던 세밀한 조종이 가능했다. 몇 번 소환해 본 괴물이라 해도 이렇게까지 작은 범위 설정으로 딱 한 마리만 꺼내는 건 어림도 없던 일이었다.
마치 남이 연산을 대신해 주는 것 같았다. 다리아는 그것이 시공간 기계의 해석기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리아는 은은한 금빛을 띠는 날붙이를 다른 손으로 쓸어 보았다. 시공간 기계, 정말 탐난다. 그 제작자도 물론. 한 편으로 만들 수 있었으면 더할 나위 없었을 것이다.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오만한 눈빛. 이 장난감 세계의 부품일 뿐인 주제에 그런 눈빛을 하다니. 그러나 그 눈은 저 여자 앞에서는 누그러졌다. 저 여자를 위해서는 시공간 기계를 만들어 주었다.
왜 가장 좋은 것은 늘 가질 수 없는 곳에 있는지. 욕지거리가 나올 정도로 억울하기도 했다.
가장 좋은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다리아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좋은 것들은 전부 그랬다. 시궁창 한구석, 걸레짝이 된 딱딱한 빵 한 주먹만 다리아의 것이었다.
그래도 상관없다. 오늘 저 오만한 눈을 부숴 버릴 테니까. 저 여자를 죽이고, 백작을 죽이고, 시공간 기계는 빼앗는다.
방해꾼 없이 완벽하게 이 땅을 완벽하게 지배하고, 완벽하게 이용할 것이다. 돈을 잔뜩 벌고, 빚도 다 갚고, 볕이 드는 집에서 살 것이다. 그걸 위해서라면 가짜 사람 따윈 백만 명도 죽일 수 있었다.
아니, 진짜라도 상관없다.
‘저 여자 없이 백작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저 여자는, 마력 없인 아무것도 아니야.’
마침 좋은 무대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마력 동화니 어쩌니 하는 어려운 이야기는 잘 모르지만 바로 지금 해야 할 일은 알고 있었다.
“사이러스! 당장 이쪽으로 와!”
사이러스는 웅크렸던 몸을 확 일으켜 세웠다. 그와 동시에 팔을 뒤로 뻗어 방심하고 있던 미래의 자신을 단검으로 찔렀다. 늑골 사이로 깊게 찔러넣은 검을 비틀어 빼낸 소년은 다리아를 향해 달려갔다.
“큭!”
말이 채 나오지 않았다. 커다란 몸이 쓰러졌다. 시야에 어린 자기 자신의 무기질적인 눈이 눈앞에 계속 어른거렸다. 영혼이 죽은 사람 같았지. 자기 얼굴인데도 일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난 저런 얼굴로 살아왔나? 우리 일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이곳의 난 영원히 저런 얼굴로 살아갈까?’
손끝이 바닥을 거칠게 긁었다. 에스페란사가 두 사람을 상대하기는 힘들 텐데,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나 몸에 힘이 완전히 풀렸다.
‘저쪽은 한동안 전투 불능이겠군.’
곁눈짓으로 상황을 파악한 다리아가 테이블 위로 올라갔다. 유리 파편이 밟혀 발바닥이 쓰라려도 개의치 않았다. 황금 발톱의 날붙이가 허공을 그었다. 시공간을 찢어낸다.
막 괴물을 해치운 에스페란사가 그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천장이 새까맣게 뚫렸다. 주먹만 한 크기였던 검은 구멍은 다리아가 금빛 날로 찢어낼수록 더 커졌다. 어마어마한 마력이 쏟아지는 듯했다.
“무슨 짓을……”
돌아가려는 건가? 아니다. 스털링 항구에서 두 사람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는 이렇지 않았다. 이건 이전과는 다르다. 이건, 후퇴가 아니다.
“물러나요. 어서!”
시더가 외치는 소리에 에스페란사는 재빨리 구멍에서 멀어졌다.
시공간 기계에 연결된 해석기관은 이제 통제가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시더는 제어반에서 손을 떼어내고 고개를 들었다. 구멍은 깊이를 모르게 검었다. 빛을 던져 넣어도 저 어둠에 덮여 버릴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이지?”
아니, 지금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왼손으로 권총을 쥔 에스페란사가 다리아의 손목을 겨누었다. 무슨 의도인지는 몰라도 지금 당장 멈춰야 한다.
탕, 탕! 거의 조준도 없이 빠르게 쏘아진 마력탄을 황급히 피한 다리아가 이를 갈았다. 잘못 맞았으면 팔이 떨어질 뻔했다. 푹 파인 팔뚝을 대충 손으로 누른 채 황금 발톱을 구멍 안쪽으로 더 깊이 찔러넣었다.
젠장. 괴물을 하나 더 만들어 놓았어야 했는데. 저 여자한테 공격할 틈을 줘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어쩌지? 사이러스는 지금 저 에스페란사를 홀로 상대할 형편이 못 된다.
그걸 아는지 에스페란사의 총알은 여유롭게 다리아를 몰아넣고 있었다. 탕! 이번엔 종아리 살을 뚫고 지나갔다. 지혈도 할 수 없었다. 빌어먹을.
“사이러스, 최대한 막아. 막기만 해. 그리고 내가 신호하면, 알지?”
“응.”
사이러스가 방패를 들고 에스페란사의 총을 막는 동안, 다리아는 마력을 최대한 쏟아부었다. 연산을 직접 할 필요가 없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에스페란사의 시선이 빈틈을 찾느라 바삐 움직였다. 사이러스가 엄호하고 있으니 총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저게 제대로 완성되게 둘 수는 없다.
땅을 박차고 오른 에스페란사가 사이러스의 얼굴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탕, 탕탕! 순식간에 수십 발이 발사됐다. 애써 버티던 방패가 뚫렸다. 에스페란사는 허공에서 사이러스의 방패를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지금이야!”
뒷목이 오싹해졌다. 갈고리 같은 손이 에스페란사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눈앞에는.
푸른 하늘. 그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 회색 도로와 도로를 가득 채운 자동차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