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224
224화
머릿속이 멍했다. 웃고는 있지만 실감이 전혀 나지 않았다. 이게 끝인가? 정말로? 이렇게 끝난다고?
전투는 격렬했다. 그러나 끝이 나는 건 한순간이다. 다리아는 한마디 제대로 된 말도 해 보지 못하고 균열 사이로 끌려들어 갔다. 이제 손에 황금 발톱도 없으니 영영 돌아오지 못하겠지.
그리고 황금 발톱은 지금 에스페란사의 손 안에 있다. 사이러스가 가져온 고장 난 황금 발톱이 아니라, 시공간 기계의 완성에 반드시 필요한 진짜 황금 발톱이.
성취감 같은 건 없었다. 그저 끝날 것 같지 않던 퀘스트가 끝이 났다는 생각뿐. 분명 성공인데, 왠지 입맛이 썼다. 에스페란사는 눈을 감아 버렸다. 몸도 마음도 잔뜩 지쳐 녹초가 되어 있었다.
긴장이 풀리자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붉은 카펫에 뺨이 뭉개지도록 뉜 몸을 움직일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서서히 의식이 잠에 빠져들었다.
목욕도 술도 좋지만, 일단은 쉬고 싶었다.
* * *
연구실 천장을 뜯어내고 그 자리에 나타난 듯한 광경. 못해도 백 년, 어쩌면 백 오십 년은 족히 앞선 듯한 미래 도시의 모습.
탁한 청회색 건물들이 하늘을 찌를 듯하고, 그 높은 마천루 위로 흰 구름을 수놓는 비행 물체. 아래에는 증기 마차보다 훨씬 발전된 형태의 마차. 건물 높은 곳에 매달린 커다란 스크린과 눈앞에서 보는 듯 생생한 색의 화면.
시더는 그 모습을 전부, 똑똑히 눈에 새겨 두었다. 시기는 다르지만 에스페란사가 살아가던 세계의 모습이었다.
공간과 공간을 찢고 나타나 그로서는 영영 넘어가지 못할 세계를 잠시 보여 준 그 균열은, 에스페란사가 다리아를 밀어 넣고 황금 발톱에 마력 공급을 중지하자 곧 우그러지며 사라졌다.
시더의 시선이 바닥에 엎드린 에스페란사에게로 향했다. 분명 웃는 듯이 등이 오르내리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미동도 없다. 따끈따끈한 뺨과 늘어진 몸은 방금 전까지 도시 하나 분량의 마력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던 전사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평온했다.
정말로 끝이다.
눈앞으로 훌쩍 다가온 마지막을 곱씹으며, 시더는 에스페란사의 몸을 안아 올렸다.
“에이번데일.”
신음을 참는 듯 낮게 긁는 목소리가 시더를 불렀다.
아, 이 작자도 있었지. 일이 해결되면 알아서 사라져 주는 게 아니었다. 시더는 눈을 찡그렸다. 그 표정을 본 사이러스는 말을 아끼기로 했다.
“…아닙니다.”
“치료가 필요하겠군요.”
“알아서 할 수 있습니다.”
“알아서 하란 얘기였어요. 이야기는 나중에 하죠.”
구두 앞굽이 반쯤 쓰러진 사이러스의 옆구리를 툭 치고 지나갔다. 맞은 줄도 모른 채, 사이러스는 뻥 뚫린 하늘을 바라보았다.
“끝이구나.”
이곳의 사람들은 앞으로 던전이 뭔지, 헌터가 뭔지 모르고 살 수 있을 것이다. 오직 방문자들의 유희를 위해 피할 수 없는 재앙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만들어내는 세상 따윈 모르고 살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의 다리아는 좀 더 불행해지겠지만…… 그건 처음부터 감수하고 시작한 일이었다.
열린 문 너머, 해석 기관이 파괴된 시공간 기계를 바라본 사이러스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시더 클라이번이 저 해석 기관을 보수하고 시공간 기계에 황금 발톱을 연결시키기만 하면, 에스페란사는 떠난다.
목숨을 걸고 달려온 것에 비해 허무하도록 손쉬운 끝이었다.
* * *
피곤하다. 몸이 물에 잠긴 것처럼 무거웠다. 옅게 남은 통증이 따끔거리고, 눈꺼풀이 딱 달라붙은 것처럼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잠에 취한 의식이 깰 듯 말 듯 깜박거렸다.
왜 이렇게 피곤하지……?
아, 어제 전투가 있었지. 의식을 감싸고 있던 얇은 막이 툭 깨어지는 것 같았다. 그랬지.
황금 발톱. 균열. 시공간 기계. 전투. 수상. 비밀통로. 던전. 함정.
이제 다 끝났지.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토록 평범한 끝이라니.
눈을 비벼서 억지로 일어났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 평범한 아침이다. 모든 게 끝났는데도.
“일어났군요.”
침대 발치에 놓인 안락의자. 푹 파묻혀 있어 눈치채지 못했다. 에스페란사로선 읽을 엄두도 나지 않는 두꺼운 책을 내려놓은 시더가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으레 지어 주던 웃음을 보여 주었다.
“몇 시예요?”
“아침이에요. 여섯 시.”
일찍도 일어났네. 잠깐 입술을 삐죽이던 에스페란사가 문득 몸을 휙 일으켰다.
아침 여섯 시에 시더 클라이번이 깨어 있다고?
“안 잤어요?”
시더는 빙그레 웃었다. 정말 밤을 새운 모양이다. 에스페란사는 가늘어진 눈으로 시더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시선을 피하며 엉뚱한 소리를 했다.
“의사가 다녀갔어요. 잠든 것뿐이라고 하긴 했지만.”
“아, 네.”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요.”
상처는 괜찮았다. 깊게 찔린 것도 있었지만 포션을 마시게 했으니 약을 잘 바르고 쉬면 금방 나을 것들이었다. 문제는 하루 종일 지속된 전투로 인한 피로감이었다.
그리고 에스페란사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균열의 인력에 정통으로 노출된 것이 어떤 영향이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하면서도 불안했던 건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에스페란사는 하룻밤 만에 일어났다. 시더는 어젯밤 그의 머릿속에 지나갔던 수많은 생각들을 한 마디도 내지 않을 것이다.
에스페란사는 탁자 위에 놓인 시더의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몸을 살폈다. 포션으로 치료했는지 전투의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깨끗한 흰 잠옷을 내려다보던 에스페란사가 문득 물었다.
“좀 우스운 질문이긴 한데, 내 옷이랑 목욕은……”
시더는 별걸 다 신경 쓴다는 듯한 얼굴로 순순히 대답했다.
“옷은 럭스 부인, 목욕은 테이트 양이 알아서 했죠. 내가 한 건 저 물수건 정도예요.”
그제야 에스페란사는 침대 위에 널브러진 물수건의 존재를 깨달았다. 아마도 벌떡 일어나면서 떨어진 것 같았다. 물기가 반쯤 말라 있었다. 물을 적신 지 꽤 된 것 같았다. 그렇다는 건.
“밤새도록 거기 앉아 있었어요?”
“그렇다고 했잖아요.”
아니. 시더는 밤을 새웠다고만 했다. 그건 시더 클라이번에겐 종종 있는 일이었다.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하지만 여기, 아무것도 없는 작은 탁자 앞에 앉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밤시간을 보내는 건……. 이 고요한 방에서, 깨지 않는 에스페란사 옆에 앉아서 그는 홀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러나 물어볼 수는 없었다.
에스페란사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맨발에 닿는 카펫이 부드럽게 뭉그러졌다. 느린 걸음으로 다가가자 시더는 고개만 들어 눈을 맞추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에스페란사는 그냥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시더의 손이 에스페란사의 등을 덮었다.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끝이라는 안도감, 허무감. 실체가 된 이별에 대한 두려움. 두 사람이 하나인 것처럼 느낄 수 있는 감정들.
커튼이 안쪽으로 휘날렸다. 채찍질하듯 머리칼을 휙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차가웠다. 갑자기 정신이 확 들었다. 에스페란사는 몸을 바로 세우며 물었다.
“아, 맞다. 황금 발톱은 어디다 뒀지? 혹시 봤어요? 인벤토리에 넣었나?”
기억이 맞다면 분명 마지막까지 손에 쥐고 있었는데. 그게 없으면 이 고생을 한 이유가 없는데. 설마 싶은 생각에 얼굴이 흐려지자, 시더가 픽 웃었다. 손가락이 놀리듯 코끝을 톡 건드렸다.
“연구실에 뒀어요.”
“아. 다행이네요.”
“가 볼래요?”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어제, 세상이 뜯겨나가는 전투가 있었는데 이 세상은 너무 변한 게 없었다. 확인을 하고 싶었다. 이제 끝났다는 확인.
시더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앞장섰다.
복도를 걸어가며, 에스페란사는 저택의 분위기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 끝난 전투 때문은 아닐 거고.
“왜들 저러지?”
“가 보면 알아요.”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직접 보라고 말하듯.
닫힌 문 앞. 문고리를 쥐려던 에스페란사가 멈칫했다. 붉은 기가 도는 나무문 위에 깊은 자상이 남아 있었다. 어제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아마 기억이 맞다면.
“이거, 내가 한 건가 봐요.”
“그럴 것 같았어요.”
시더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에스페란사는 눈을 찡그렸다. 시더는 매일, 이 문을 열 때마다 이 상처를 보게 될 것이다. 에스페란사가 떠난다고 해도 이건 남아 있겠지.
“문을 고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글쎄요. 난 견딜 만해요.”
단지 문 얘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에스페란사가 함축된 뜻을 전달했을 때 시더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적은 없었으니까.
괜찮다면 괜찮은 거겠지. 에스페란사는 아까보다 조금 더 빠르게 뛰는 심장께를 내리누르며 걸음을 옮겼다.
전투의 흔적으로 난장판이 되었던 서재. 각양각색의 책등이 보였다. 넘어졌던 가구들도 제대로 서 있었다. 부서진 가구 몇 개는 자리에서 없어지거나 다른 가구로 대체된 듯했다. 에스페란사가 좋아하던 소파는 아직 남아 있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시더는 열쇠를 꺼내 연구실 문을 열었다. 한 번도 잠가놓은 적이 없었던 문인데. 소파에 익숙한 모양대로 쿠션을 올려두던 에스페란사는 처음 보는 열쇠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왜 문을 잠가 뒀어요?”
대답 대신 시더는 문을 열어젖혔다.
차마 여기까지는 복구하지 못한 듯, 무너지고 깨진 것만 겨우 수습해둔 연구실. 들어낸 가구와 실험도구 때문에 황량했다.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밝다.
밝다고?
휭, 차가운 바람이 머리칼을 쓸고 지나갔다. 마치 창문이 열려 있는 것처럼……. 아니.
고개를 들어 올린 에스페란사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지붕이 없네요.”
“어제 일로 깨끗이 날아간 모양이에요.”
시더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웃으며 대꾸했다.
“지금 이게 웃을 일이에요? 연구실에 지붕이 없으면 어떡해요?”
“수리업자를 불러 뒀어요. 물론 며칠은 걸릴 테고, 그동안은 연구도 어렵겠죠. 당신으로선 아쉽겠지만.”
“하나도 안 아쉬워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했다.
시더는 여전히 시선을 앞에 고정한 채, 어딘가 묘한 어투로 말했다. 기쁘다기에는 떨떠름한 쪽에 가깝지만 싫지는 않은 것 같았다.
“다행이네요.”
시공간 기계가 있던 방은 무사했다. 에스페란사는 비어 있던 자리에 금빛 날이 자리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기계는 방 하나를 꽉 채울 정도로 거대했다. 시간의 신과 낫을 형상화했던 중앙부, 시더는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그 압도적인 형상을 버리고 캡슐 형태의 공간을 추가했다. 황금 발톱도 시간의 신의 손이 아니라 캡슐 위에 정말 발톱처럼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