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231
외전1. 위험한 기차 여행 (2)
“규칙은 다 외웠잖아요?”
시더는 되물으면서도 순순히 서랍에서 카드를 꺼냈다.
“코델리아랑 해 봤는데 서로 아는 규칙이 다르더라고요. 내가 잘못 외운 건가 해서요.”
“당연히 레이디 코델리아가 잘못 아는 거죠.”
에스페란사는 키득거리며 몸을 바로 세웠다. 쿠션을 끌어안고, 게임기를 치운 탁자 위에 카드를 펼쳐놓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이것도 저기 게임기에 넣으면 안 돼요? 어려운가?”
“어렵진 않아요.”
말이 끝나자마자 대답한 시더가 잠시 카드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카드를 손으로 쥐지 않고 하는 카드 게임에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아, 카드 게임에도 철학이 있어요?”
시더는 능숙하게 카드를 섞었다. 말이 잠시 끊겼다.
“그럼요. 카드 게임으로 저택 하나를 날린 분의 아들인데.”
“진짜요? 어, 어머니 쪽이? 진짜 날렸어요?”
“걱정 말아요. 바로 날 호출해서 되찾아 오셨으니까. 글라일리 하우스는 무사해요.”
내기 게임에 글라일리 하우스를 걸었다고? 그래놓고 졌어?
가볍게 말하고 있지만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에이번데일 백작이 에이번데일에서 저택 없이 나앉을 뻔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진짜 대단하신 분이네.”
“담대하신 분이죠.”
“생산성 있는 취미는 갖지 못하셨지만?”
그 말에 시더가 숨죽여 웃었다.
“뭐, 운이 좋을 때는 판돈의 두세 배쯤 벌어 오시기도 했어요. 여하튼, 이런 복잡한 게임에 관심을 가지는 걸 보니.”
제일 윗줄의 카드를 뒤집어놓은 시더가 물었다.
“요즘 심심한 모양이죠?”
에스페란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정곡이었다.
몇 달간 던전도 없었고, 잭과 코델리아, 왕자와 공주의 사격 교사 일도 안정을 찾았다. 시더의 연구는 천천히 결과를 내고 있었지만 에스페란사가 듣고 알 정도는 아니었다. 당분간은 파오룬으로부터 들어오는 마정석도 없을 테고, 그럼 연구 속도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이곳에 남기로 결정한 후의 2년 가운데서도 손꼽히게 평화로운 날들이었다.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소소하게 새로운 관심사를 찾고 싶어지기는 했다.
“새로운 취미로 카드 게임이라,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네요.”
“난 돈 안 걸어요.”
“돈은 얼마를 걸든 상관없고, 우리 집은 내버려 뒀으면 좋겠네요. 자. 여기 봐요.”
“이거 말고, 딴 거 가르쳐 줘요.”
2인용으로 카드를 세팅하던 시더의 손이 멎었다.
“그럼 어떤 걸 배우고 싶으신가요, 레이디 에이번데일?”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호칭에 입술을 오므리자, 시더는 천연덕스레 고개를 기울였다. ‘맞잖아요?’ 하고 되묻듯이. 에스페란사는 혀를 찼다.
“도박꾼들한테서 저택을 따온 방법이요.”
“아, 그거. 실망스러울 텐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시더는 카드를 정리해 다시 섞었다.
“그럼 종목을 바꿔야겠군요. 정말 별것 아닌데. 오랜만이라, 연습 게임 한 번만 할게요.”
긴 손가락이 카드를 부드럽게 펼쳤다. 에스페란사는 시더가 이끄는 대로 더듬더듬 카드를 쥐고 시키는 대로 내밀었다.
“왼쪽, 열어 줘요.”
에스페란사는 시더가 시키는 대로 자기 패를 내밀었다. 다시 시더의 차례가 돌아왔다.
“가운데. 열어 줘요.”
그렇게 몇 번이 반복됐다. 시키는 대로 점수를 내고 있는 건 에스페란사뿐이고, 시더는 처음과 똑같은 상태로 카드만 넘기고 있는 꼴이었다.
“계속 덱만 열면 점수는 언제 내요?”
“점수는 당신이 내고 있잖아요?”
설마 상대가 이따위로 게임을 해서 어영부영 저택을 따냈단 소리는 아니겠지?
시더는 기어이 덱을 마지막까지 열어 보았다. 그의 앞에 있는 카드는 빈약했다. 에스페란사는 자리가 부족해 탁자 위에 올려두었던 책을 옆으로 치웠을 정도였는데도.
그러나 다음 판이 되자 판도가 확실히 달라졌다. 시더는 세 턴에 한 번꼴로만 카드를 뒤집었고, 뒤집었을 땐 반드시 점수를 냈다.
“어? 아깐 잭보다도 못하더니.”
“연습 게임이었으니까요. 당신이 이번 판에 저택을 걸었으면 우린 내쫓겼겠죠.”
“아, 안 건다니까요. 누굴 도박꾼으로 알아. 그래서 비법이 뭔데요?”
“아직 모르겠어요? 그럼 한 판 더 해 봐요.”
시더는 카드를 다시 모아서 섞었다. 세 번째 판도 비슷하게 흘러갔다. 그리고 네 번째 판에 이르렀을 때, 에스페란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섞는 방법이 이상했다.
“그게 뭐예요?”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교묘하다. 동체 시력이 좋은 에스페란사가 아니었다면 알아차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뭔가가 이상했다. 뭔가……. 확실하진 않지만.
“그런 식으로 섞어도 돼요?”
“당연히 안 되죠.”
시더가 빙그레 웃으며 카드 덱을 내려놓고 부채꼴로 펼쳤다. 세 장을 뽑아 뒤집으니 차례대로 1, 2, 3이 나왔다.
“사기꾼.”
에스페란사가 조용히 불평했다.
“난 어렸잖아요. 어린애 카드 섞는 방식이 좀 이상하다고 트집 잡으면 좋은 어른이 못 되죠. 진짜 도박꾼도 아니고, 이건 어디까지나 유흥이니까.”
“그럼 당신이 안 섞을 때는요?”
“뒷면을 외웠으니 상관없어요. 이건 어디까지나 보험이고.”
“무슨 게임을 이런 식으로 해요?”
“그래서 보여 준 적 없잖아요. 평생 카드만 갖고 논 한량들을 상대로 내가 저택을 돌려받을 방법이 달리 뭐가 있겠어요?”
그거야 그렇긴 한데. 에스페란사는 웅얼거리며 카드를 내려다보았다. 속임수란 걸 알게 되니 흥미가 식었다. 대단한 필승법이 있는 줄 알았는데.
“카드는 손으로 해야 된다는 것도 이런 뜻이었어요? 나한테 이런 속임수를 쓰려고?”
안 그래도 이기면서!
“설마요. 안 그래도 이기는데.”
“그걸 당신 입으로 말하면 안 되죠.”
“사실이잖아요.”
“아, 시끄러워요.”
에스페란사는 카드를 대충 내려놓고 소파 위로 다리를 구겨 넣었다. 시더는 가볍게 혀를 차면서도 카드를 정리했다.
“숙녀분, 암시장 다녀온 이야기나 해 줘요.”
“아. 아. 맞다. 까먹을 뻔했다. 음, 그러니까.”
갈리스턴 공작에게서 루크 헤이븐리의 신병을 인도받은 에스페란사는 그를 이리저리 잘 써먹고 있었다.
파오룬에서의 1차 철수로 인해 오스던 내 마정석 수급이 어려워질 거라는 정보를 입수하자, 바로 그를 이용해 이미 시장에 나온 희귀 마정석을 사들였다. 그중 대부분은 그들의 연구와 관련 없는 것을 확인하고 되팔았는데, 그 과정에서도 헤이븐리의 도움을 받았다.
직접 암시장에 나가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안 파는 게 없다던데, 정말 그렇더라고요. 난 깊숙하게 들어가 보진 않았지만 암살 거래도 거기서 하는 것 같았고. 희귀 마정석을 몇 개 찾았는데, 이미 우리가 되판 것들이었어요.”
“아, 저런.”
“헤이븐리 말로는 현재 유통되는 희귀 마정석은 거의 우리 손에 들어왔던 물건일 거라던데요. 이제는 진짜 수집가 쪽을 뒤져 보거나 새로 나오는 마정석을 기다려야 한대요.”
“전국에 있는 마정석 광산에 다 말해 뒀는데도 아직 성과가 없는 걸 보면 더 기다려야겠군요.”
“아마도 그렇겠죠. 뭐, 쉽지 않을 건 예상했으니까.”
그리고 예상했음에도 이곳에 남았다. 어쩌면 영영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였고,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할 법한 생각을 하고 있는 얼굴이네요.”
턱을 괸 시더가 비스듬히 미소를 지었다. 에스페란사는 눈을 굴렸다. 맞는데, 맞다고 인정하고 싶진 않았다.
“몰라도 돼요.”
“알 것 같은데.”
눈을 흘기자, 시더는 낮게 웃으며 한 수 접어주었다.
“좋아요. 당신이 다 옳아요.”
“그렇죠. 왜냐면 당신은 바보니까.”
“……내가 왜요?”
에스페란사가 무슨 말을 하든 다 들어줄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던 시더가 멈칫했다. 평생 바보 소리를 들어볼 일이 없었던 그는 의외로 이런 말에 약했다.
아예 근거도 없는 소리라면 열등감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겠지만, 오늘 에스페란사에겐 근거가 있었다.
“내가 암시장에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알아요? 리튼의 광산에서 희귀 마정석이 나왔는데, 그걸 뒤에서 몰래 빼돌려서 파는 사람들이 있대요.”
서재 안에 묵직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시더는 잠시 눈을 찌푸리다 물었다.
“설마 내 광산?”
“왜 아니겠어요. 누가 그렇게 자기 광산 관리를 못 했는지, 뒤에서 희귀 마정석이 줄줄 새 나가는데도 눈치도 못 채고.”
“레이디 에이번데일, 당신 광산이기도 해요.”
시더가 바보 소리에 약하듯 그 호칭에 약한 에스페란사는 발끝으로 소파를 툭툭, 불만스레 건드렸다.
“그러니까, 이참에 확인을 좀 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에이번데일로 내려가자는 말이죠?”
“어때요?”
“난 언제나 당신 의견을 따르죠.”
웃기고 있네. 코웃음을 친 에스페란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서 짐이나 싸야겠어요.”
“잊은 것 없어요?”
문고리를 쥐었던 에스페란사가 천천히 발을 끌며 소파로 돌아왔다. 그리고 천천히 허리를 숙여 시더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금빛 속눈썹이 가볍게 떨리는 것을 두 눈으로 바라보면서.
걸음은 느렸지만 입맞춤은 길었다. 커다란 손이 옆얼굴을 살짝 쥐고 당겼다. 뺨에 닿았던 입술이 미끄러졌다.
“앉아요.”
그러나 잠시 숨이 트였을 때, 에스페란사의 시야에는 높은 천장이 가득 차 있었다. 소파 아래로 머리칼이 늘어졌다. 어이가 없어서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