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233
외전1. 위험한 기차 여행 (4)
“추적당할 거라고 생각 안 하고 벌인 일인 것 같긴 하지만……. 사 주는 사람이 있나 보죠.”
“그것도 아마 고정적인 고객일 거예요.”
그렇다면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암시장이야 출처 세탁용일 테고. 그러다 소문이 돌아 버린 걸 보면 그 솜씨가 깔끔하진 못했던 모양이지만.
“혹시 빼돌린 사람들도 고객이 누군지 모르는 건 아니겠죠? 암시장을 통했으니까.”
그 말에 시더가 눈을 찡그렸다.
“아. 그건 최악의 가정인데. 그보단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야겠군요.”
하긴, 지금 이러쿵저러쿵 논해 봐야 소용없었다. 에스페란사는 창틀에 턱을 괴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갔는데, 이미 다 도망쳤고 아무런 증거도 없으면 어떡하지…….”
“그럼 헤이븐리가 고생하는 거죠.”
“아, 맞다. 부려먹을 사람이 있었지.”
키득거리던 에스페란사가 문득 시더를 돌아보았다.
“이거 약간 당신한테 못된 게 옮은 것 같아요.”
“당신은 원래 그랬어요.”
“아닐 텐데.”
“내 기억력을 못 믿어요?”
“기억력은 믿어요. 가치판단을 못 믿는 거지.”
“애석하군요.”
시더는 전혀 애석하지 않은 어투로 대꾸했다. 그러자 에스페란사는 발끝으로 그의 구둣발 안쪽을 꾹 눌렀다. 손을 뻗은 시더가 에스페란사의 콧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식당칸에 근사한 디저트를 만드는 오토마톤이 있는 기차를 굳이 골라 왔는데도?”
에스페란사의 눈이 동그래졌다. 오토마톤이 디저트를 만든다고? 콧등을 간지럽히던 시더의 손을 붙들어 내리고는, 그 위를 자기 손으로 덮어 도닥였다.
아니. 아니지.
기차를 골라 온 거라고?
“표가 없어서 그런 거 아니었어요?”
겹쳐졌던 손이 뒤집혔다. 아래를 향한 손등에 가위표를 그린 시더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세상에 ‘표가 없어서’는 없어요. 매표소에서 구할 수 있느냐, 웃돈을 주고 구해야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손끝으로 가볍게 슥 긋는 감각이 선명했다. 에스페란사는 천천히 손을 말아쥐었다.
“아하……. 가 볼래요.”
“같이 가요?”
“아뇨. 가지고 올게요.”
시더는 빙그레 웃으며 에스페란사의 모자를 가져와 리본을 묶어 주었다. 검은 가죽에 감싸인 손이 턱 끝을 가볍게 스치고 지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동시에 소음기를 단 총에서 마력탄이 터져 나왔다. 에스페란사의 발소리가 천천히 멀어졌다.
누가 암살자 따위를 보냈는지 알아보는 건 시더의 몫이었다.
* * *
암살자의 몸이 축 늘어지자, 에스페란사는 그를 내버려 두고 망설임 없이 식당칸으로 향했다.
이 열차엔 식당칸이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기관차와 가까운 앞쪽에 있었고, 다른 하나는 그로부터 뒤로 객차 열 개를 지나야 도달할 수 있었다. 에스페란사의 객실은 그 열 개의 객차 중 뒤쪽 식당칸에서 두 칸 떨어진 객차에 있었으므로, 뒤쪽으로 가는 것이 빨랐다. 어차피 오토마톤은 어느 쪽에나 있을 테니까.
한참 걷고 나서야 에스페란사는 객차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에 도착했다. 통로를 지키고 서 있던 승무원이 친절하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부인. 어디로 가십니까?”
“식당칸에요.”
“그러시군요. 저희 열차에는 훌륭한 바텐더와 오토마톤 쇼콜라티에가 항시 대기하고 있습니다. 즐거운 여행 되시기 바랍니다.”
승무원이 모자를 벗고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했다. 에스페란사는 고개를 까닥였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아, 5번 객실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던데. 앓는 소리 같은 거. 확인 좀 해 줄래요?”
“예,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승무원이 5번 객실로 들어가자, 열린 문이 통로를 완전히 가렸다. 에스페란사는 시더가 남아 있는 12번 객실의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를 확인한 후 다음 객차로 넘어갔다.
마벨우드로 가는 기차에서도 암살자를 만났던 것 같은데. 돌고 돌아 몇 년 만에 또다시 기차에서 암살자를 만나다니.
‘그나저나, 누굴까?’
희귀 마정석을 무작위로 긁어모으다 보니 원한 산 곳이 적지 않았다. 이번에 계약을 맺은 업체의 경쟁 업체일 수도 있고, 템프턴 수상의 정적일 수도 있고…….
뭐, 심문은 시더가 알아서 하겠지. 에스페란사는 그저 디저트 두 접시를 객실에 가져가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조금 더 가벼워진 걸음으로 식당칸에 들어섰다.
널찍한 객차 전체가 식당칸이었다. 벽 한쪽에는 온갖 종류의 술을 전시해둔 바가 있었고, 그 앞에 선 오토마톤 쇼콜라티에가 화려한 솜씨로 똑같은 초콜릿 디저트를 찍어내고 있었다.
‘거의 공장이잖아?’
머리에 그럴듯하게 흰 머릿수건을 씌워 놓았지만, 유리알 같은 눈동자는 아무런 기능도 없을 것이다. 원래 모양만 그럴듯하게 만드는 거라고 시더가 말해 준 적이 있었다.
내부의 톱니바퀴가 전부 드러난 팔이 정교하게 움직였다. 녹인 초콜릿을 식히고, 틀에 넣고, 그 위에 다른 페이스트를 바르고, 장식을 올리고, 색이 다른 초콜릿으로 복잡한 문양을 만들어 붙인다.
“와!”
카운터를 붙잡고 조마조마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년이 감탄을 터뜨리며 초콜릿을 받아들었다. 반바지에 흰 타이즈를 신은 소년은 어머니로 보이는 귀부인에게 달려갔다.
곧이어 그 뒤에 줄 서 있던 젊은 여자가 초콜릿을 받아 들고 몸을 돌렸다.
“어머!”
“실비아. 오랜만이네요.”
“세상에, 당신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초콜릿을 얼른 테이블에 내려놓은 실비아 험프리가 에스페란사를 끌어안았다. 실비아는 이 느닷없는 만남이 즐거운 듯, 에스페란사를 놓아 주고 나서도 한참 ‘어머, 어머.’ 하며 들뜬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에스페란사, 잘 지냈어요?”
“나야 늘 잘 지내죠. 당신은요? 영지로 돌아가는 중이에요?”
“아뇨!”
명랑하게 말한 순간, 나른한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실비아, 목소리를 낮춰야지.”
“아. 험프리 부인.”
“오랜만이에요, 레이디 에이번데일. 백작께서는?”
“객실에요.”
“어머, 숙녀를 혼자 보내다니?”
딸과 목소리도 감탄사도 똑같은 귀부인이 눈을 찡긋했다. 다 태운 파오란 궐련이 재떨이 안에 수북했다. 파오란도 비싸질 텐데……. 에스페란사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제가 카드 게임에서 졌어요.”
“이럴 땐 져 주는 게 미덕인데, 신사들이란.”
“안 그래도, 온 김에 몰래 하나 더 먹으려고요.”
오토마톤 앞에 설치된 메뉴판에서 초콜릿 디저트 두 개를 누르고, 바텐더에게 가벼운 음료를 부탁한 에스페란사는 오토마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다시 험프리 부인에게로 눈을 돌렸다.
“역시나, 레이디 에이번데일은 쇼콜라티에 오토마톤 따윈 신경도 안 쓰는군요? 하기사, 남편이 금세기 최고의 마도 공학자인데 고작 저런 장난감 놀음 같은 게 눈에 차겠어요!”
목소리가 너무 컸다. 제지하려던 에스페란사는 험프리 부인이 주변 사람들 들으라고 한 말인 줄을 알고 한숨을 내쉬었다. 실비아가 사죄의 웃음을 지었다. 험프리 부인은 대체로 유쾌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허영심이 많은 게 흠이었다.
“레이디 에이번데일?”
반대편 테이블에서 성큼성큼 다가온 신사 하나가 허리를 숙였다. 얼떨결에 손을 내준 에스페란사는 가볍게 입 맞추고 떨어지는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아는 얼굴이었다.
“저번에 이모님 저택에서 뵌 이후로는 처음 뵙는군요. 아, 저는 프레드릭 고든입니다.”
“서덜랜드 자작이시군요.”
험프리 부인이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좋은 신랑감이었으나, 실비아와는 나이 차이가 있었다.
“저번에 보여 주신 사격 실력은 정말 인상 깊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에이번데일과 함께 저희 컨트리하우스에도 방문하시지 않겠습니까?”
“당분간은 어려울 것 같네요. 바쁜 일이 있어서.”
프레드릭 고든은 매우 아쉬워했으나 산뜻하게 물러났다. 에스페란사는 애매한 웃음으로 그를 보냈다. 차마 저 순수한 호의에 대고 시더가 그를 조금 싫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원래부터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나이 차이는 좀 있지만 프레드릭 고든은 시더와 동문이었고, 퍼스 저택에서 만났을 때는 다 같이 모여서 게임을 하기도 했다. 그때까지는 시더도 그를 꺼리는 기색이 없었다.
안 그래도 에스페란사는 그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프레드릭 고든과는 꽤 잘 지내지 않았냐고. 시더는 이렇게 답했다.
‘그 멍청이가 당신에게 관심을 갖기 전까지는 그랬죠.’
엄격한 레이디 퍼스의 조카인 서덜랜드 자작이 남의 부인에게 불쾌한 관심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다만 퍼스 저택에 초대되었던 사람들끼리 가벼운 사격 대회를 열었던 것이 문제였다.
거기엔 식민지 전쟁 당시 복역했던 장교들도 여럿 있었고, 사격 클럽에서 한가락 하던 신사도 있었다. 그리고 레이디 퍼스는 그 내기에 작고한 로드 퍼스의 수집품 중 하나였던 희귀 마정석을 걸었다.
에스페란사는 그게 갖고 싶었다.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내기 이후로 프레드릭 고든은 에스페란사를 볼 때마다 사격 이야기만 해 댔다. 퍼스 저택에서 떠나는 날까지 내내.
그러니까 저 남자가 관심을 가진 것은 에스페란사가 아니라 대단한 사격 선수인 것이다. 시더도 그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그런 내막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