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234
외전1. 위험한 기차 여행 (5)
“서덜랜드 자작과 친해요?”
“저번에 퍼스 저택에서 한 번 만난 게 끝이에요.”
“흐음……. 그러고 보니, 좋은 신랑감들을 많이 알고 있군요.”
험프리 부인이 눈을 빛냈다.
“어머니도 참. 에스페란사, 흘려들어요. 전 이미 약혼자가 있어요.”
“언제 약혼했어요?”
“세 달 전에요!”
실비아는 드디어 결혼 시장에서 벗어난 것이 후련하다고 덧붙이며 에스페란사의 손을 잡아끌었다. 카운터에서 주문한 음료와 디저트를 가져온 에스페란사는 잠깐 시계를 확인했다.
‘심문하려면 삼십 분은 있어야 할 거고.’
이야기를 나눌 시간 정도는 있을 것 같다.
“어떤 사람인데요?”
“아서 파웰 준남작인데, 혹시 아시나요?”
“아뇨……. 못 뵌 것 같은데.”
처음 듣는다고는 말할 수 없어서 말끝을 흐리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험프리 부인이 바로 말을 이었다.
“리튼 인근에 영지가 있는데 제법 부유하고 풍요로운 곳이랍니다. 아마 로드 에이번데일은 아실지도 모르겠네요. 아, 맞아! 아서 경도 무슨 연구를 한다고 했는데, 그러니까 아실지도 몰라요. 저희는 여행이 끝나고 나면 그 댁에 머물 건데, 언제든 놀러 오세요.”
그리고 험프리 부인은 프레드릭 고든을 향해 여봐란듯이 미소를 지었다. 에스페란사는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잠깐만. 실비아 험프리의 약혼자, 연구자, 파웰 준남작…….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징그러운 키메라 연구를 했던 놈의 이름이 뭐더라. 얼굴은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데 이름은 도무지 떠올릴 수가 없었다.
실비아와 놈의 약혼은 지금보다 적어도 1년은 지난 후의 일이었으니 그놈은 아니겠지, 하면서도 귀족 연구자라는 점이 걸렸다. 온갖 분야를 다 통틀어 보아도 그런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래요? 남편이 알 만한 연구라면 마도 공학 쪽인가요?”
“그렇지는 않고요, 무슨 약물 연구를 한다고 했는데.”
약물 연구라. 그때 그놈은 대외적으로 무슨 연구를 하는 놈이었더라?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지도 10년 가까이 된 데다가, 사람에게 몬스터의 일부를 이식시킨다는 사안이 워낙 충격적이라 다른 것들이 희미했다. 어렴풋한 기억은 남아 있지만 범인이 원래 뭘 했는지 같은 세세한 기억까지 남아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떠보는 수밖에 없었다.
‘시더를 데려왔어야 했는데.’
암살자 심문을 에스페란사가 맡고 이쪽을 시더가 맡는 편이 좋았을 뻔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를 데리고 올 수도 없는 노릇이니, 할 수 있는 만큼 해 봐야지.
“약물 연구라. 그러면 밤에 잠은 좀 잘 자겠네요. 우리 집은 밤새도록 기계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방음재를 잔뜩 발라놓은 값비싼 연구실에서는 소음 한 톨 새어나가지 않았지만, 에스페란사는 그렇게 너스레를 떨어 보았다.
걸려들어라, 걸려들어라.
“꼭 그렇지도 않아요. 아서 경의 저택에는 실험동물들이 많아서, 밤엔 개나 고양이 소리 같은 게 나거든요. 가끔 그게 사람 소리처럼 들려서…….”
실비아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자 험프리 부인이 실비아의 팔을 확 낚아챘다.
“얘는, 괜한 말을 해! 레이디 에이번데일, 괘념치 말아요. 이 애가 겁이 많아서 그렇죠. 난 푹 잤는걸요.”
“잠귀가 밝으면 그럴 수 있죠. 근처에 사냥터가 있는 건 아니고요? 사냥터에서 나는 소리랑 겹쳐서 더 무섭게 들렸을 거예요.”
“그런 것 같아요.”
에스페란사가 모른 척 덮어 주자, 험프리 부인도 냉큼 대꾸했다. 아무리 부인의 드높은 기준에 차지 않는 약혼자라고는 해도, 일단 약혼 관계로 엮인 이상은 감싸 줄 필요가 있었다.
약혼이 파투 날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험프리 부인은 실비아의 팔을 꼬집으며 에스페란사의 표정을 살폈다.
아서 파웰은 젊고 부유한 귀족이라 그들이 찾을 수 있는 신랑감 중에는 가장 조건이 좋았지만,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었다. 혹시라도 흠이 있다면 결혼식까지 가기 전에 알아내야 한다. 금세기 최고의 마도 공학자인 에이번데일 백작의 부인이라면 그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불안감을 전부 짐작하면서도, 에스페란사는 모른 체 웃었다.
“아, 남편이 기다릴 것 같아서. 이만 이걸 가져가 봐야겠어요.”
디저트 접시를 들어 올린 에스페란사는 바텐더에게 음료를 두 잔 더 주문했다.
바텐더가 솜씨 좋게 음료를 제조하는 동안, 열차는 쉼 없이 달리고 있었다. 창밖 풍경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부인, 여기 있습니다.”
에스페란사가 장갑 낀 손을 내밀어 잔을 받으려던 순간이었다. 덜컹, 하는 진동이 일며 잔에 채웠던 음료가 흘러넘쳤다. 흰 실크 장갑이 축축하게 젖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숙녀분. 제 실수입니다. 음료는 얼른 다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일단 이걸…… 숙녀분?”
에스페란사는 잔을 쥐었던 손 모양 그대로 멈춰 있었다. 열차가 달리면서 난 진동이 아니었다.
그 예상을 확인시켜 주듯, 팔목을 감싼 팔찌가 열렸다.
‘던전이다.’
에스페란사는 실크 장갑을 벗어 던지고, 모자와 구두도 벗어서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대신 군화로 갈아신었다. 실비아가 화들짝 놀라 자기 몸으로 에스페란사를 가렸다.
“에스페란사? 뭐 하는 거예요? 숙녀가 발을 보이다니……!”
“사격할 줄 알아요?”
말꼬리가 잘렸는데도 화를 낼 수 없었다. 마주친 눈빛이 형형했다. 신발 끈을 묶느라 몸을 굽힌 상태로도 에스페란사는 서 있는 실비아를 압도했다. 실비아는 입술을 달싹이며 대꾸했다.
“장난삼아 쏴 본 적은 있어요. 하지만 잘 쏜다고는…….”
“그거면 됐어요. 이건 당신이 써요.”
“권총? 이걸 갖고 탄 거예요?”
“험프리 부인. 받으세요.”
그 질문을 무시한 에스페란사는 험프리 부인에게도 총을 나눠 주었다.
“마법 무기니까 낭비하지 말아요. 마력이 떨어지면 없느니만 못해요. 일단 이것, 이것들…….”
“잠깐만요, 부인! 열차 내에 무기 반입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쏟아지는 무기를 본 웨이터들이 허옇게 질려서 뛰쳐나왔다.
“죽기 싫으면 말 들어요.”
덜컹.
차체가 크게 흔들렸다. 평범한 진동과는 달랐다. 마치 무언가가 내부에서 열차를 한쪽으로 미는 듯한 묵직하고 큰 움직임이었다. 숲을 비추던 창문이 휘청이며 새파란 하늘을 가득 담았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꺄아악!”
자리에서 일어났던 몇몇 숙녀가 중심을 잃고 주저앉았다. 여자들뿐만이 아니었다. 겨우 중심을 잡는 데 성공한 프레드릭 고든이 창문으로 달려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차장을 찾아가 봐야겠어요!”
한 귀부인이 용맹하게 주장했다. 그 말을 반박하듯 에스페란사는 몸을 휙 돌렸다.
“지금부터, 식당칸으로 통하는 양쪽 문을 사수해요. 사람은 열어 주되, 사람이 아닌 다른 것이 통과하지 못하도록. 이곳에서 나가지도, 밖에서 들어오지도 못하도록.”
“무슨 소리예요? 에스페란사, 알아듣게 설명을……!”
“스털링 항구의 재난이 이 기차에도 나타났다는 뜻이에요.”
작지 않은 식당칸 여기저기서 숨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때 모르고 칭얼거리는 어린아이를 다독이는 어느 부인의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다.
던전은 대체로 몇 달에 한 번꼴로, 자주 나타날 때는 달포에 한 번꼴로 나타났다. 그 범위는 오스던 전역이었고, 에스페란사 혼자 몸으로 전부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던전 탐지기가 오작동하는 경우, 작동을 확인하고 달려갔지만 이미 늦은 경우.
그러니, 다리아가 지배하는 ‘황금 발톱’ 속의 오스던과 같은 정도는 아니지만 이 사람들도 전부 던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알고는 있었다.
“로드 서덜랜드. 여기에서 군인 출신이나 사격 실력이 좋은 사람들, 그리고 던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양쪽 문을 지키도록 하세요. 무기는…… 사실 많은 건 아닌데.”
설마하니 다른 곳도 아니고 열차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까맣게 몰랐다. 인벤토리 안에 있던 무기들 중 꽤 많은 수는 점검 때문에 놓고 왔다. 오늘은 다른 때와 달리 무기가 조금 부족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단 총은 두 자루만 더 줄게요. 그리고 낫이나 도끼 같은 것도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바닥이 쿵, 울렸다. 문밖에서 으르릉, 하고 괴물이 울부짖는 소리가 나더니 문을 거칠게 들이받았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모두가 입을 꽉 막고 있었다.
“조용히 하고 있어요. 안전수칙은 전부 알고 있죠?”
“알겠습니다. 그런데 레이디 에이번데일께선…….”
많은 의문이 함축된 물음이었다. 에스페란사는 그중 하나만 답했다.
“남편을 찾으러 가 봐야죠.”
인벤토리에서 긴 총을 꺼냈다. 황금빛 총신이 반짝였다. 눈앞에 낯익은 알림창이 떠올랐다. 꽤 오랜만이다.
[던전 발생!]유형: ???
등급: B
위험도: A
헌터님, 행운을 빕니다!
식당칸 문을 활짝 열었다. 좁은 복도를 메운 커다란 멧돼지 형태의 괴물과 맞닥뜨린 순간, 총이 새파란 마력을 뿜어냈다.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