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238
외전1. 위험한 기차 여행 (9)
“포션 충분해요?”
“가져온 건 이미 털어 버린 지 오래고, 새로 제작한 포션은 있어요.”
몬스터 부산물을 재료로 하는 포션은 여전히 개발 중에 있었다. 당연히 최고의 마법 약학자들이 십수 년간 개발한 원래 포션만큼 효과가 좋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포션은 마법사가 아닌 일반인 대상으로는 효과가 반감된다.
에스페란사는 인벤토리에서 포션 병을 꺼내 한 병을 통째로 기관사의 상처 위에 부었다. 정신을 잃은 기관사가 그 와중에도 살이 봉합되고 장기가 차오르는 고통에 사지를 뒤틀었다.
에스페란사는 눈을 찡그렸다. 남의 고통에 익숙한 삶을 살고 있어도, 보기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 고통은 그나마 나은 축에 속했다. 적어도 좋아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거긴 두고, 이쪽 봐요.”
시더가 에스페란사를 끌어당겼다.
“아무래도 우리가 운전대를 잡아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말이 돼요?”
“말이 안 되지만, 어쩌겠어요.”
“난 뭘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도 전혀 모르겠는데……. 설마 나보고 잡으란 건 아니죠?”
시더는 대답 없이 계기판을 내려다보았다. 속도계는 여전히 오른쪽으로 젖혀진 채였고, 시야 끄트머리에 갈림길이 보였다. 에스페란사와 쓰러진 기관사를 번갈아 보던 그가 운전석에 앉았다.
“기차 몰 줄 알아요?”
“알 리가 있어요?”
“……몰라도 해 봐요! 내가 하는 것보단 낫겠지.”
그래도 사람이 몰라고 만들어 둔 것이니만큼, 대충 직관적으로 보이는 게 있었다. 시더는 레버 하나를 당겨 보았다. 기차 전체가 덜컹거렸다.
“윽!”
바닥이 기울자 재빨리 운전석 등받이를 잡은 에스페란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뭘 한 거예요?”
“모르겠어요. 일단, 기관사를 깨워 보도록 하죠.”
기관사는 겨우 눈만 뜰 수 있는 상태였다. 에스페란사는 그의 입에 진통제와 물을 넣어 주었다. 통증이 조금 줄어드는 듯, 바닥을 긁던 손이 멈추었다.
“괜찮아요? 운전은 하실 수 있겠어요?”
기관사가 고개를 저었다. 역시 안 되는 건가.
“그럼 제 남편이 운전을 할 텐데, 말로 조금 도와주실 순 있겠어요?”
눈이 흔들렸다.
“말로만 도와주시면 돼요. 저희는 경험이 없어서, 이대로 두면 기차가 탈선할지도 몰라요. 아까 보신 것 같은 괴물이 지금 열차 전체에 깔려 있어요.”
이를 악문 기관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페란사는 안도하며 몸을 돌렸다.
“난 앞쪽 칸에 가 있을게요. 몬스터가 안 넘어오게. 그리고 만약 몬스터가 여기 나타나면…….”
“소리라도 지를 테니 걱정 말아요.”
운전대를 쥔 시더가 말했다. 에스페란사는 고개를 굳게 끄덕였다. 역할 분담은 끝났다. 이제 최대한 빨리 보스 몬스터가 나타나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기관차 문을 열어 고정해 둔 에스페란사는 첫 번째 객차로 옮겨갔다. 시더가 소개해 준 포션 제작자는 몬스터를 유인하는 향도 만들어 주었다. 에스페란사는 망설임 없이 향을 꺼내 불을 붙였다.
“효과는 그닥이었던 것 같지만…….”
없는 것보단 낫다.
인큐버스가 휘젓고 간 객차는 스산했다. 죽음이 떠돌고 있는 것처럼. 음침한 유인향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파오란 냄새라도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천장에서 거대한 미노타우르스가 떨어졌다. 에스페란사는 몸을 낮추고 총을 조준했다.
미노타우르스. 키마이라, 크로코타, 펜리르, 기준도 없이 쏟아지는 괴물들. 에스페란사는 상태 창을 흘끔거렸다.
슬슬 나타날 때가 됐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마지막 괴물의 미간에 탄알을 박아넣은 순간이었다. 상태 창에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던전 보스, ‘요르문간드’가 나타났습니다!]커다란 진동이 일며 거대한 뱀이 열차를 관통했다. 거대한 머리가 객차를 꽉 채웠다. 끝이 어딘지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적어도 객차 대여섯 개에 걸쳐져 있는 것 같았다. 입에서 지독한 독이 흘러나왔다.
에스페란사는 재빨리 방패와 방독면을 꺼냈다. 벌써 독이 떨어진 바닥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빨리 끝내지 않으면 안 되겠어.’
물론 물러설 곳도 없었다. 쓴웃음을 지은 에스페란사는 한 손으로 총을 고쳐잡았다.
“커다란 게, 쏠 데는 많아서 좋네!”
노려야 할 곳은 분명하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독을 내뿜고 있는 입. 마력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렸다. 작은 기계음이 귀를 괴롭혔다. 마정석이 수용 한계에 달했다는 신호였다.
어쩔 수 없다.
거대한 뱀이 에스페란사를 향해 몸을 뒤틀었다. 뱀의 몸체에 맞았는지 먼발치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에스페란사는 몸을 뒤로 물리며 총을 난사했다.
마력탄은 반 정도 튕겨져 나왔고, 반 정도는 비늘에 검게 그을린 흔적을 남겼다.
이런 식으로 해서는 하루 종일 싸워도 승산이 없었다. 뱀은 열차의 문보다 조금 더 굵은 몸을 뒤틀며 열심히 열차를 깨부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뒤의 객차가 부서질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안전은 당연히 담보할 수 없다.
날카로운 송곳니 사이에서 시커먼 독이 새어 나와 바닥을 녹이고, 점점 에스페란사의 앞으로 다가왔다. 에스페란사는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방법이…….’
아무리 단단한 비늘을 가졌어도 입 안은 무를 테니 입 안을 공격하면 된다. 하지만 놈도 그걸 아는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잇새로 새어 나오는 독만으로도 벌써 객차 바닥은 눅눅했고, 파이프와 기계 구조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독은 에스페란사의 발 바로 앞까지 흘러들었다.
‘아니면 눈?’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눈꺼풀을 감기만 하면 강철 같은 비늘이 눈을 보호할 테니까. 게다가 눈이 먼다고 한들 뱀이 죽는 건 아니다.
마력 낭비야.
단호하게 결론을 내린 에스페란사는 총을 바투 고쳐잡았다.
그 때였다. 뱀이 입을 크게 벌리며 몸부림쳤다. 콰광, 천장을 치는 거대한 머리 위로 꺼진 조명이 산산이 부서져 떨어지고, 긴 몸통이 들썩이는 대로 벽이 죽 뜯어졌다. 종이처럼 찢어진 벽 사이로 햇빛이 쏟아졌다. 눈을 잠시 찡그린 사이, 벌어졌던 뱀의 입이 다물렸다.
방금 그건 뭐였지?
에스페란사는 위협 사격으로 뱀의 움직임을 견제하며 생각했다. 여전히 진정이 되지 않았는지 뱀은 몸을 위협적으로 꿈틀거렸다.
다시 한 번만 입을 벌리면 좋을 텐데.
머릿속으로 아까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분명 굉장히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 고통은 에스페란사가 준 게 아니다. 아마도…. 아마도…….
“아까 한 거 한 번 더 해요!”
최대한 크게 소리 질렀다. 들렸는지는 모르겠다. 당장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래도 이 방법 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다.
방패를 대충 던져 버린 에스페란사는 인벤토리에서 기다란 장검을 꺼냈다. 검집을 다시 집어넣고, 눈앞에 세워 들었다. 검신이 길고 뾰족하고, 무엇보다 두꺼웠다. 에스페란사가 가진 것 중 가장 두꺼운 검이었다. 그만큼 무거워서, 몸의 중심이 미묘하게 뒤틀렸다.
요르문간드는 영리했다. 거대한 뱀이 에스페란사의 발치를 노리고 쇄도했다. 에스페란사는 재빨리 벽에 몸을 기댔다.
뱀의 독니는 에스페란사의 키만큼 길었고, 끝에서 시커먼 물이 떨어졌다. 치맛자락에 튄 독 때문에 치마가 부식됐다. 여행 기분을 낸답시고 챙겨입은 가벼운 패티코트가 이때만은 도움이 됐다. 독이 피부에 닿으면 어떤 느낌일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에스페란사의 총탄은 거대한 뱀의 비늘에 생채기도 내지 못했다. 탕, 탕, 몇 발이 더 쏘아졌지만, 비늘은 조금 더 그을렸을 뿐, 멀쩡했다. 하지만 왠지 다른 객실에서 한 공격에는 반응을 보였다. 짐작하기로는 그쪽 비늘에 상처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그걸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를 악문 에스페란사가 타이밍을 기다렸다. 기왕이면 뱀의 몸체가 일직선일 때가 좋다. 그리고 에스페란사가 그 바로 앞에 서 있을 때.
뱀의 몸부림 한 번에 복도와 객실을 막던 한 겹 벽이 우르르 무너졌다. 에스페란사는 무너지는 벽을 피해 뱀의 몸을 뛰어넘었다.
“윽!”
쿵, 미끄러운 비늘을 잘못 짚어 굴러떨어졌다. 바닥에 거칠게 부딪힌 몸이 쓰라렸지만, 아픔을 곱씹을 시간이 없었다. 몸을 일으킨 에스페란사는 뱀의 눈을 향해 총탄을 발사했다.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마력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뱀이 천천히 물러났다.
이 근처는 바닥이 전부 녹아 설 곳이 없었다. 부식된 바닥 아래로 드러난 파이프라인에 발을 디딘 에스페란사가 숨을 죽였다. 뱀의 긴 몸통이 만족스러울 만큼 곧은 직선을 이룰 때까지.
“지금!”
터져 나온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컸다. 에스페란사조차 자기 목소리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객차를 쩌렁쩌렁 울렸다. 이만하면 반드시 들렸을 것이다. 들렸어야 하는데…….
사아아아! 뱀의 아가리가 벌어졌다. 몸이 마구 뒤틀렸다. 중심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차체가 덜컹거렸다. 에스페란사는 아예 몸을 띄웠다. 그리고 뱀의 입에 검을 세로로 꽂았다. 벌어진 입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요르문간드의 독이 검을 부식시키기 시작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총 내부의 부품이 마구 돌아갔다. 방아쇠를 쥔 손에도 느껴질 정도로 거친 진동.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마력이었다.
긴 마력의 줄기가 뱀의 목구멍을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