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239
외전1. 위험한 기차 여행 (10)
에스페란사는 총을 꼭 붙들었다. 내부에서 마정석이 터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갈아 끼울 시간도 없어 바로 마력을 때려 부었다. 톱니바퀴가 버벅거렸다. 에스페란사는 마력을 더 불어넣어 억지로 부품을 돌렸다. 마력 줄기가 끊어지지 않도록.
뱀이 비명을 질렀다. 비명처럼 들렸다. 장기가 타들어 가는 고통에 거대한 몸뚱이가 펄떡거렸다. 입에서 피처럼 독이 쏟아졌다.
“으윽…….”
새까만 독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새까만 숨은 에스페란사의 뺨에 닿을 만큼 가까웠다. 방독면의 외피가 녹아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릴 수는 있었지만, 피할 수는 없었다. 지금 공격을 멈추면 다시 이런 기회는 없을 것이다.
피부로 독이 스며들고 있는지 정신이 혼탁해졌다. 몸을 한 뼘 띄우는 데 쓴 마력을 제외하면 할 수 있는 최대한을 총구에 쏟아붓고 있는지라,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 이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였다. 기관차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은. 검은 가죽 장갑에 감싸인 손이 방패를 집어 드는 것도 시야가 반쯤 가려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어떻게…….”
“전복될 일은 없으니 걱정 말아요.”
시더는 그렇게만 말했다.
이미 반쯤 부식된 방패를 앞에 세우고, 마지막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눈앞이 핑 돌만큼 많은 마력이 터져 나왔다.
‘효율이 나빠.’
이제야 투덜거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뱀의 움직임이 차츰 잦아들었다. 에스페란사는 천천히 총을 내렸다. 그리고 시더에게서 받아든 방패를 한 손에 든 채 다가갔다.
뱀의 사체, 아니, 벌써 사체라고 불러도 괜찮은 걸까? 에스페란사는 파이프라인을 박차고 뛰어올라 뱀의 머리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눈꺼풀을 억지로 벌려 그 안으로 총구를 집어넣었다. 쾅!
미동도 없었다.
좋아.
‘뱀의 사체’를 확인한 에스페란사가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피곤해 죽을 것 같아요.”
“마력을 이만큼 많이 소진한 게 오랜만이라 그래요.”
그러게. 이게 몇 년 만이더라. 시공간 기계를 작동시켰던 날 이후로는 처음인 것 같은데. 시더는 장갑을 벗어 던지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에스페란사의 땀에 젖은 이마를 닦아 주었다.
“죽을 것 같다….”
“어림도 없어요.”
“아, 왜요.”
시더의 타이 위에 이마를 비빈 에스페란사가 몸을 완전히 기댔다. 고작 전투 하나 끝났다고 기진맥진해서 어리광이라니, 스스로 나쁜 버릇이 들었다고 생각하면서도 고칠 생각은 없었다.
“도착하면 바로 욕조에 집어넣어 줄 테니까 조금만 참아요.”
“입욕제도 색깔 있는 걸로 넣어 줘요.”
“분부대로 하죠. 또?”
“저번에 와인 셀러에서 본 비싼 와인…….”
“그걸 노리고 있었군요. 왜 진작 안 꺼내 마시고.”
“아깝잖아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돌아오는 것도 익숙하다. 에스페란사는 키득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자, 그럼 이거 해체부터?”
“그래야겠네요. 다른 건 몰라도 이빨은 쓸만할 것 같은데.”
던전이란 것도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만큼, 몬스터 부산물도 허투루 버릴 수 없었다. 인벤토리에서 시더의 작업용 장갑을 꺼내 준 에스페란사가 독에 오랫동안 노출돼 앙상해진 검을 확인하고 혀를 찼다. 아까웠다.
“이거, 독 때문에 비싼 칼로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내 공구 상자에 쓸 만한 게 있을 거예요.”
에스페란사는 공구 상자를 통째로 꺼내 시더 쪽으로 밀어 주고, 스스로는 뒷골목에서 몇 푼에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싸구려 단검을 꺼내 뱀의 잇몸을 찍었다. 시더는 독샘을 맡았다. 두 사람 모두 이런 일에는 이골이 나 있었다.
에스페란사는 분리해 둔 부산물을 인벤토리에 넣어 두었다. 뱀의 사체는 다른 승객들과 협력해 바깥으로 밀어 버렸다. 몇몇은 불안한 듯 풀숲에 굴러떨어진 사체를 흘끔거렸다.
“저렇게 버려둬도 괜찮은가요?”
“보통은 괜찮죠.”
괜찮지 않은 건 이 기차의 상태였다. 호화열차를 표방했던 기차는 누더기가 되어 있었다. 굴러는 가겠지만, 중간에 객차가 분리될지도 모른다. 여태까지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는 게 천운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승무원 하나가 달려와 멀지 않은 곳에서 열차가 뒤따라오고 있으니 기차가 멈추면 충돌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기차는 너덜너덜한 꼴로도 어찌저찌 철길을 달릴 수 있었다. 운전대는 다시금 초보 기관사 에이번데일 백작에게 돌아갔지만,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다.
“내 평생에 기차를 몰아볼 일이 있을 줄이야.”
한탄 같았지만, 그런 것치고 시더는 제법 즐거워 보였다. 아까도 기관사가 누르라고 한 적 없는 버튼을 괜히 눌러보는 걸 봤다.
“뭐, 좋은 경험 했다고 쳐요.”
바깥은 무슨 일이나 있었냐는 듯이 평화로웠다. 기차는 그 평화로운 풍경 한가운데를 가르고 달렸다.
한참을 달린 끝에, 시야 구석에 기차역과 높은 시계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에이번데일 역이었다.
“아, 다행이다.”
에스페란사는 익숙한 풍경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근처 역이 하필 에이번데일이라 망정이지, 다른 곳이었다면 마차로 갈아타고 한밤중까지 달려야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멈추면 됩니다. 기차가 완전히 멈출 때까지 이걸 계속 당기고 있어야 합니다.”
시더는 기관사의 지시에 따라 레버를 당겼다. 기차가 천천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에스페란사가 그 손 위에 손을 얹고 힘을 보태자, 열차가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급정거했다.
“이게 아닌가?”
“맞긴 한데…….”
당초 멈춰야 하는 위치에 한참 못 미쳤다. 열차를 기다리던 역무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느닷없는 상황에 기차역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수송 마차가 역 앞을 꽉 채우고 환자들을 시립병원으로 보냈다. 철도회사 이사와 기자들, 보험회사 직원들과 시장까지 잔뜩 몰려들었다.
“부탁해요.”
사람 떼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그 인파를 발견한 시더가 속삭였다. 에스페란사는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머리가……!”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머리를 짚은 에스페란사가 몸을 푹 꺾었다.
“숙녀가 겪기에 좋은 일은 아니지요, 보시다시피. 허락해 주신다면 이만 들어가 볼까 합니다.”
신사 숙녀 운운하는 이들의 역할 놀이 같은 편견은 이럴 때나 도움이 된다. 에스페란사는 쓴웃음을 지으며 시더의 팔에 몸을 완전히 기댔다.
그 때, 익숙한 사람들이 기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 맞다!
던전 때문에 완전히 잊을 뻔했던 문제가 떠올랐다. 에스페란사는 재빨리 시더의 손목을 손끝으로 두드렸다. 그걸 발견한 누군가가 입을 열려고 할 때, 시더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반쯤 열린 입이 다물렸다.
시더는 그대로 에스페란사가 가리킨 방향을 확인했다.
“험프리 부인, 미스 험프리.”
모녀는 다행히 다친 곳 없이 조용히 빠져나가던 중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사람이 몰린 탓에 좋은 숙소를 구하려면 지금 가야 했으나, 시선이 몰리자 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약속이 없으시다면 식사라도 함께하시는 게 어떨까요?”
덧붙인 말이 없었으므로 당연히 잘 곳도 준비해 주는 것이었다. 험프리 부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어머나, 그럴까요? 폐가 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네요.”
“그럴 리가요. 아내의 친구는 제 친구이기도 합니다. 편히 머물다 가시죠.”
결혼하더니 별 낯간지러운 말도 다 하네, 하는 얼굴을 채 숨기지 못한 험프리 부인이 즐거운 얼굴로 마차에 올랐다. 실비아 험프리가 걱정스러운 듯 부축받으며 걷는 에스페란사를 흘끔거렸다.
마차에 올라타자, 에스페란사가 몸을 바로 세웠다.
“어머, 괜찮아요?”
“처음부터 괜찮았어요.”
실비아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코델리아가 말하던 게 이거였군요.”
무슨 말을 했는지 확실히는 몰라도 대충 짐작이 갔다.
먼저 소식이 전해진 터라, 글라일리 하우스의 고용인들은 바로 온수를 쓸 수 있도록 준비해 두었다. 험프리 모녀는 반색하며 손뼉을 쳤다. 그들도 적잖이 피곤할 것이다.
“세상에, 예쁜 옷이 걸레짝이 됐네!”
글라일리 하우스의 하녀들이 울상을 지었다. 에스페란사는 민망해져서 눈만 물 밖에 내놓은 채 데구르르 굴렸다.
“다친 데는 없으세요?”
“다칠 게 뭐가 있어.”
“기차 사고가 났다면서요!”
“그렇긴 한데…….”
“물론 부인께선 괴물도 피해가실 분이시긴 하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어린 하녀가 구멍 난 드레스를 아까운 듯 손끝으로 훑었다.
“망가진 거라 민망하긴 한데, 갖고 싶으면 가져가서 리본이라도 만들어 써.”
“그래도 돼요? 감사합니다!”
애니가 봤다면 어디 거절 한마디를 안 한다고 혀를 찼을 것이다.
에스페란사는 따끈따끈해진 몸을 침대에 뉘었다. 차가운 이불에 감싸여 정신이 드는 듯했던 것도 잠시, 잠기운이 밀려들었다.
‘할 일이 있었는데…….’
그러나 생각만 했을 뿐, 몸이 무거워서 움직이기가 싫었다. 에스페란사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내일 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