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243
외전1. 위험한 기차 여행 (14)
증거는 다 모았다.
광산 관리인들을 터는 건 어렵지 않다. 싹 다 고소해서 감옥에 넣어 버리면 그만이다. 문제는 이쪽이다.
귀족 작위가 아직은 제법 쓸 만한 세상. 뭐 하던 사람인지도 모를 남자 하나가 죽어 있을 뿐이고, 동물을 모아서 지하실에 가두는 건 범죄도 무엇도 아니다. 몬스터 시체를 사고파는 건 범죄였지만, 귀족 나리를 감옥에 가둘 만큼은 아니다. 기껏해야 벌금 몇 푼 내고 풀려날 것이다.
그러니까 반드시 인체 실험을 걸고 넘어져야 하는데, 증거는 실험일지와 한창 실험 중에 죽은 듯한 저 남자의 시체뿐이다. 돈을 좀 찔러넣으면 경찰 간부 선에서 묻힐 수도 있다.
“그 전에.”
에스페란사는 시더의 입술 위에 손가락을 얹고 가볍게 눌렀다. 눈빛이 엄격했다. 그르릉, 잠든 듯했던 동물들에게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들 역시 기척을 알아차린 것이다. 시더는 말없이 케인 건을 장전했다.
그러나 시더의 마력탄보다 에스페란사가 더 빨랐다. 미끄러지는 듯한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연구실 문 앞에 도달한 에스페란사는 가운을 입은 젊은 남자의 뒷덜미를 붙잡고 끌어냈다.
“당신들 뭐야!”
남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서 파웰?”
에스페란사가 짐짓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파웰이 몸을 푸드득 떨었다.
“당신들, 뭐, 뭐냐고. 누가 사주했어? 아니면…….”
“원한 살 곳이 많았을 텐데.”
일단 몇 대 때리고 시작해도 괜찮겠지.
군화의 발뒤꿈치가 파웰의 다리를 거칠게 걷어찼다. 손만 뻗으면 거대한 괴물도 두 동강 내는 무기를 꺼낼 수 있었지만, 에스페란사는 오직 손발만 써서 파웰을 곤죽으로 만들었다.
“한 대 때릴래요?”
“사양할게요.”
“그렇다면야.”
기절한 파웰을 질질 끌어 구석에 처박아 둔 에스페란사가 연구실 불을 켰다. 환해진 시야가 불편해 눈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래서, 여긴 어떻게 할까요?”
에스페란사가 신나게 아서 파웰을 괴롭히는 동안 시더도 구경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선뜻 답을 내놓았다.
“뭐, 적당히 이런 것 하나랑…….”
유리병 하나를 가리킨 시더가 아서 파웰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냈다.
“이렇게 같이 던져놓으면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오지 않겠어요? 준남작이 살해당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어쨌든 인근에 신문사 지사가 있으니 묻히는 걸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시더는 유리병을 열어 약물을 비워 냈다. 역겨운 냄새가 풍겼다.
병을 넘겨받아 인벤토리 안에 넣은 에스페란사의 시선이 우리에 갇힌 동물들에게로 향했다. 곧 사람들이 올 테니까…….
“쟤는 우리가 데려가야 할 것 같은데.”
제일 처음 눈이 마주쳤던 커다란 개가 아직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처 입은 꼬리가 흔들거렸다. 시더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답은 선선히 나왔다.
“한 마리 정도는 마차에 태울 수 있겠죠.”
전부 구할 수는 없다. 그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얼터 지구의 수많은 아이들을 구할 수 없었듯이.
하지만 잭 하나는 구할 수 있었다.
귀족의 자선은 위선이다. 하지만 그것도 없는 것보다 나았다. 하나라도 구하는 것이 구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에스페란사는 커다란 개를 끌어안고 출구로 앞서 걸어갔다. 후드 위에 핏물이 번졌다.
시더는 이제 마음 놓고 불을 켠 실험실 내부를 훑어보았다. 징그러운 공간이었다. 역시 살아 있는 것을 파헤치는 일은 재미없다. 그의 흥미는 복잡한 논리와 마법으로 움직이는 기계들의 세상에 있었다.
“빨리 나와요!”
재촉하는 목소리 뒤로 희미한 새벽하늘이 비쳤다. 물론 그의 가장 큰 흥미는 여전히 그의 마법사를 기쁘게 하는 데 있었다.
그러니 조만간 저택 뒤편의 숲에 동물농장 따위를 만들게 되더라도 그리 놀라지는 않을 것이다.
* * *
“어떻게 됐어요?”
글라일리 하우스 뒤편의 연구소에도 에이번데일 저택에 있던 것과 같은 마정석 검사 기계가 있었다.
시더는 가져온 희귀 마정석을 전부 검사했다. 양이 꽤 많아서 결과가 나오는 데 시간이 걸렸다. 에스페란사의 뺨에 기대감 어린 홍조가 올라 있었다.
애석하게도. 시더는 미소 어린 한마디로 그 기대감을 산산조각 냈다.
“실패예요.”
“아. 그래요.”
“쉽게 구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잖아요.”
위로하려고 한 말이었으나, 에스페란사는 시무룩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쉽게 구한 거 아니라고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날 오후쯤에는 리튼 주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그리고 다음 날, 오스던 최고의 신문사들이 일제히 같은 소식을 다루었다.
인체 실험. 그것도 인간의 몸에 괴물의 팔다리를 이식하는 끔찍한 실험.
미친 과학자가 벌인 끔찍한 범죄는 이틀 만에 온 세상에 알려졌다. 덮을래야 덮을 수도 없었고, 파웰 준남작은 오스던 전 국민이 알게 된 비밀을 덮을 만큼 대단한 권력자도 아니었다.
혼란스러운 틈에 광산 관리인도 싹 갈아치웠다. 인체 실험에 비하면 횡령 정도야 가벼운 문제였다. 이 사건은 지역 신문에 한 문단짜리 기사로 실렸다.
다행인 점은, 그들이 이중장부까지 만들어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횡령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장부는 조잡했지만, 필요한 정보는 전부 있었다.
“좋은 소식도 있어요.”
쿠션에 푹 묻은 에스페란사의 뺨을 양손으로 들어 올린 시더가 말했다.
“뭔데요?”
여전히 시무룩한 얼굴이었다. 시더는 그 양 뺨과 입술에 입을 맞추고는 짧게 설명했다.
“셔스비가 장부를 뒤져 봤는데, 희귀 마정석 일부가 국외로 유출된 것 같다더군요.”
“그래요?”
“그리고 그중 하나는, 시공간 기계에 들어간 것과 아주 비슷한 형태였던 것 같아요.”
“정말로?”
“정말로.”
시더는 서랍에서 광산 관리인들이 정성껏 작성한 이중장부를 내밀었다. 자기들이 어떤 마정석을 몰래 팔아먹었는지 꽤 자세히도 기록해 두었다.
“직접 보기 전까진 알 수 없지만요.”
“바로 헤이븐리한테 연락할게요!”
벌떡 일어난 에스페란사가 책상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밀런 집사가 오토마톤에게 배달시킨 편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에스페란사는 먼저 루크 헤이븐리에게 보낼 지시서를 적었다. 그리고 쌓여 있는 편지들을 하나하나 뜯어 보았다.
중요한 내용인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초대장이었다. 두 개 빼고는 전부 불참할 예정이다. 두 사람은 바빴고, 사교보다 더 좋아하는 취미가 잔뜩 있었으므로. 그리고 남은 편지들은…….
붉은 밀랍으로 봉인한 편지를 들어 올린 에스페란사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채커리 남작으로부터의 초대장이었다. 남작은 이곳에서 꽤 먼 곳에 살고 있었지만, 노신사가 정성껏 쓴 편지를 전부 읽어 본 에스페란사는 잠시간의 고민 끝에 초대에 응하기로 했다.
들키지 않게 파오룬 출신 흉내 내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배려였다. 지금까지는 어물쩍 잘 살아왔지만, 요즘은 파오룬에서 돌아오는 사람이 많으니 그렇게 대충 넘어가기는 어렵겠지.
처음에는 거절하려고 했다. 열차에서 만난 남작은 예의를 아는 신사였지만, 파오룬에서도 그랬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작위를 가진 귀족이 식민지에서 15년이나 살 법한 이유로 떠오르는 것은 몇 개 없었다. 관료, 외교관, 군인, 사업가……. 얄팍한 도덕 관념으로도 굳이 시간을 내서 친분을 쌓고 싶은 종류의 인물들은 아니었다.
“남작은 언어학자예요.”
뒤에서 같이 편지를 읽던 시더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듯이 첨언했다. 언어학자라. 이쪽도 상당한 괴짜인 모양이다. 에스페란사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갈래요. 계속 식민지 출신 행세를 하려면 한 번쯤 진짜 거기서 살던 사람 이야기를 들어 볼 필요도 있고.”
“그간 너무 대충 넘어가긴 했죠. 다들 속는 척해 준 걸지도 몰라요.”
“아, 난 노력했어요.”
마지막 편지는 실비아 험프리로부터 온 것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감사 편지였다. 그날 밤의 혼란스러운 감정이 정리된 듯 차분한 어투가 실비아 험프리다웠다.
“역시 할 만한 일이라니까.”
비록 마정석을 찾지는 못했지만, 성과는 있었다. 그들의 짧은 기차 여행도 이만하면 성공적이었다.
“기차 여행을 한 번 더 가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럼 다음번엔 일주일 정도 잡고 가 볼까요?”
“아, 그리고 던전도 없고, 살인사건도 없어야 해요. 암살자도 없고.”
그게 보통의 기차 여행이겠지만.
“그런 여행은 심심할 텐데.”
“카드 게임을 해야죠. 기차에서 내릴 때쯤엔 내가 당신보다 더 잘할걸요.”
시더는 코웃음도 치지 않았다.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에스페란사는 항의하듯 시더의 어깨를 머리로 꾹꾹 누르다가, 다시 말했다.
“내가 더 잘할걸요.”
“아닐 텐데.”
이번엔 대꾸도 빨랐다. 의자에서 일어난 에스페란사가 책상에 걸터앉았다. 시더의 눈이 가늘어졌다. 맨 발끝이 시더의 무릎에 스쳤다.
“더 잘할걸요.”
“글쎄요.”
답이 조금 느려졌다. 시더가 치맛자락 아래로 드러난 발목을 쥐었다. 에스페란사는 다시 한번 고집스레 말했다.
“더 잘할걸요.”
“……그런 걸로 해요.”
에스페란사가 웃으며 시더의 목을 끌어당겼다. 책상 위에 가득 쌓여 있던 편지가 바닥으로 쏟아졌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