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28
28화
“펄즈베리 자작님. 제가 위험한 것 같으세요?”
“예? 물론입니다!”
“진짜로?”
그제야 켄드릭은 멀뚱거리며 에스페란사를 바라보았다. 무장 상태는 아니었지만, 소매치기가 군침을 흘리며 달려들 것 같이 호화로운 켄드릭의 모습에 비해 새까만 후드를 뒤집어쓴 에스페란사는, 이 거리에 스며들다 못해 꽤 위험한 인물로 보이는 상태였다. 그저 콩깍지가 낀 놈의 눈에 그것이 한발 늦게 들어왔을 뿐이었다.
“전 만날 사람이 있어서. 돌아가세요.”
“하, 하지만. 미스 에스페란사 헌터. 여긴 얼터 지구와 너무 가깝습니다. 제가 에스코트하게 해 주십시오.”
켄드릭이 곰 같은 덩치를 비비 꼬며 말했다. 사람에 따라 저런 걸 귀엽게 보는 경우도 있겠지만, 에스페란사는 아니었다. 곰은 사냥해야지, 귀엽다니. 귀여워하는 건 토끼나 여우 정도면 충분하다. 시커먼 곰이라니.
“알고 왔어요. 그런데 자작님, 설마.”
에스페란사는 어떻게 그런 야만적이고 끔찍하고 차마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겠냐는 듯이 물었다.
“절 미행하신 건가요?”
“아, 아아, 아닙니다!”
부정을 할 거면 좀 믿을 만하게 하든가. 슬쩍 뒤로 물러나며 확언했다.
“자작님, 전 이런 걸 싫어해요. 누가 제 행동을 제약하고, 걱정이란 명목으로 옴짝달싹 못 하게 하고, 하고 싶은 걸 막고, 그걸 ‘숙녀다운’ 거라고 포장하고.”
켄드릭이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는 게 좋겠어요.”
그러나 이 남자는 의외로 강적이었다. 새빨개진 얼굴로 딸꾹질을 하면서도, 물러나지 않았다.
“수, 숙녀분이 이런 곳에 홀로 계시다니요. 미스 헌터의 드높은 평판에 누가 될 겁니다. 이 일은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제가 에스코트라도 하게 해 주십시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백작의 피후견인인 숙녀가 대체 이런 빈민가에 뭘 하러 왔는지 궁금해하는 티가 났다. 호기심은 어쩔 수 없다. 이 자리에 켄드릭이 아니라 누가 있었더라도 그랬을 테니까. 에스페란사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마음대로 하세요. 다만, 어디까지나 에스코트예요.”
“예, 예!”
“그 말은, 제가 어딜 들어가더라도 따라 들어오시면 안 된다는 뜻이죠.”
켄드릭의 얼굴이 하얘졌다. 물론 에스코트는 그런 의미가 아니지만, 에스페란사는 제멋대로였다. 이게 그나마 양보한 선이라는 것을 아는 켄드릭은 대체 파오룬은 어떤 땅이길래 숙녀가 이렇게 위험 지역을 막 돌아다니게 되었는지 고찰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페란사는 그대로 약속한 빵집으로 향했다. 미리 예고해 놓은 까닭에 잭이 나와 있었다.
“오늘치 빵은 먹었니?”
“……아직요. 그런데 저 사람, 아니, 나리는요?”
“신경 쓰지 마.”
그러나 신경을 끄기엔 너무 거대한 크기였다. 에스페란사의 거의 두 배는 될 것 같은 근육질 체구. 그 체구를 꽉 감싼 질 좋은 코트와 높은 실크 햇 아래에서 희번덕거리는 눈. 무엇보다 험악한 저 얼굴. 밤에 만나면 무서울 것 같은 저 곰 같은 얼굴.
“널 죽이기야 하겠니.”
“힉!”
잭이 슬금슬금 에스페란사의 뒤로 숨었다. 시커먼 후드에 가려져 스산하기는 에스페란사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몇 번 봤다고 친근해졌는지 곧잘 후드 뒤로 숨어 고개만 빼꼼 내밀었다.
“미스,”
“쉿!”
정보상도 알고 있는 이름일 테니 이미 잭도 들어 알 수는 있지만, 일단 숨기는 데까지는 숨겨 볼 생각이었다. 잭이 후드를 꼭 쥐며 흠칫거렸다.
“죄, 죄송합니다.”
“에스코트하러 오신 것 아니셨나요?”
처음 만날 때도 아주 다정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약간 짜증까지 섞여 있었다. 켄드릭이 구애의 일환으로 이 에스코트를 자청한 것이었다면 대단히 잘못 생각한 것이다. 에스페란사는 그가 아예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를 더 좋아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어, 어디로 가십니까?”
“여기요.”
에스페란사는 빵집을 가리켰다.
“잭, 오늘은 두 개 먹어도 돼. 내가 살 테니까.”
“진짜요?”
잭이 반색하며 빵집으로 뛰어들어갔다. 물론 젠트리 이상의 숙녀가 들어갈 만한 곳은 아니었지만, 에스페란사도 지금은 딱히 숙녀로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빵집 주인이 꺼릴 만한 인물은 켄드릭이었다.
“자작님께서는 들어오면 영업에 방해만 될 테니 밖에 계세요.”
“하지만…….”
“약속하셨잖아요.”
켄드릭은 어물거리며 말을 피했다. 에스페란사는 신경 쓰지 않고 빵집으로 들어갔다.
“잭이냐? 얼른 먹고 가라.”
빵집 주인은 매일 나타나는 소년을 신경 쓰지 않고 신문을 읽는 데 집중했다. 에스페란사는 그 모습을 보고 빵집 주인이 친절하게 굴지는 않았어도 잭에게 빵을 주는 일을 거르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잭이 빵 두 개를 골라 가지고 왔다. 빵집 주인이 대번에 눈을 부라렸다.
“한 개만이라고 했잖아? 저번에 두 개 준 건 맞고 돌아다니길래 그런 거고, 오늘은 안 돼!”
“오늘 건 따로 계산할 테니 그냥 주게.”
빵집 주인은 켄드릭을 본 잭처럼 힉, 숨을 들이켰다. 에스페란사는 그 날 그 모습 그대로였다. 장비는 그게 좋다. 빨지 않아도 인벤토리에 넣었다 빼면 새것처럼 변하니까.
값을 치르고, 다음 달 잭이 먹을 빵의 값까지 다 낸 에스페란사가 소리를 낮춰 물었다. 켄드릭은 여전히 바깥에서 눈치를 보며 빵집 안쪽을 흘끔거리고 있었다.
“여기 뒷문 있나?”
“예?”
“뒷문 있냐고. 몰래 빠져나갈 테니까, 저 밖에 있는 신사분이 들어와서 물으면 아까 나가는 거 못 봤냐고 말하게.”
“제, 제가 어떻게 신사분을 속입니까요?”
에스페란사는 두말 않고 지폐를 밀어 주었다. 빵집 주인은 냉큼 그걸 챙겨 넣었다.
“이쪽입니다.”
켄드릭의 시선이 이쪽에서 떨어졌을 때, 에스페란사는 기민하게 움직였다. 어리둥절한 잭이 본능적으로 입 안에 남은 빵을 다 털어 넣었다. 다람쥐처럼 빵빵하게 차오른 볼을 우물거리며 뒤따르는 잭을 한 팔로 들어 올린 에스페란사는 빵집의 뒷문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켄드릭은 10분 후, 견디지 못하고 빵집 문을 열어젖혔다. 에스페란사에게 경멸당할 각오까지 했건만, 빵집 안엔 투실투실한 주인만이 멀뚱히 앉아 있었다.
빵집 주인은 에스페란사보다 연기 실력이 훨씬 좋았다. 켄드릭은 젠장, 하고 발을 굴렀지만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숙녀를 찾을 방도는 없었다.
“얼터 지구…… 들어가 봐야 하나?”
그와 동시에 멀리, 시계탑에서 네 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났다.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
“에이번데일이 알면 큰일 나겠군.”
그 에이번데일은 숙녀의 일탈을 조금도 염려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모르는 켄드릭은 이걸 어떻게 말한담, 하고 신사답지 않게 머리를 벅벅 긁었다.
* * *
에스페란사는 잭을 들고 무사히 얼터 지구까지 들어왔다. 잭을 내려놓자, 소년은 시뻘게진 얼굴로 바지를 탁탁 털었다.
“왜 그래?”
“저, 저를 그렇게! 달랑 들고……!”
“가볍더라. 빵 하나가 끼니로 부족하긴 하지.”
“가볍지 않거든요!”
잭이 빽 소리를 질렀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에스페란사가 잭을 괴롭히지 않고, 빵까지 사 줬다고는 하지만 그 호의가 언제까지 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잭은 못마땅한 기분을 숨기며 얌전히 말을 고쳤다.
“……됐어요.”
“빵 말고는 식사 구하기가 어렵니? 아니면 들켰어?”
“그건 아니에요.”
깡마른 아이의 다리를 본 에스페란사가 혀를 찼다. 얘를 좀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다고 뒷골목에서 구제해 주기에는 에스페란사 자신 역시 남의 집에 얹혀사는 처지인 데다, 당분간은 뒷골목 소년인 잭이 필요한 것이니 그럴 수 없었다.
“당분간은 두고 보자. 자, 이제 날 정보상한테 안내해 줘.”
“저번에 그 사람이요?”
“응.”
에스페란사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수신기를 위로 던지고 받기를 반복하며 잭을 따라갔다.
모퉁이를 돌아 정보상 건물 앞에 섰다. 에스페란사는 눈을 가늘게 떴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들어오십시오.”
분명 아까까지는 인기척이 없었는데, 정말 기다렸다는 듯이 나왔다.
전혀 그래 보이지 않지만 저 남자, 기척을 읽나?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에스페란사는 가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 따라 들어갔다.
진짜 학자인 시더보다도 더 전형적인 학자풍에,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가 저번의 그 소파로 안내했다. 에스페란사는 자리에 앉아 수신기를 건네주었다.
“대단히 시끄럽더군요.”
“알람의 목적에 충실하도록 설계했답니다. 혹시 곤혹스러운 일이 있으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에스페란사는 눈썹을 까닥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정보상은 눈을 내리뜨고 에스페란사의 맞은편에 앉았다.
여전히 허름한 실내다. 하지만 정갈했고, 이런 곳에서 흔히 들릴 법한 찍찍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선생’이 두툼한 종이 파일을 내밀었다. 에스페란사는 앉은 자리에서 종이를 넘겨 훑어보았다. 한 사건 당 한두 페이지 정도로 간결하게 정리한 문서였다.
요청한 대로 전국적으로 조사했는지 사건의 수가 꽤 많았다. 그중엔 마벨우드의 이름도 보였다. 하지만 허수가 대부분일 것이다. 가져가서 걸러 봐야지.
“이거, 일일이 타자기로 쳤어요?”
“예?”
“선생이 직접?”
“……그렇습니다.”
“고생하셨겠네.”
저 어딘가 음험하고 위험해 보이는 선생이 타자기 앞에 앉아 정보를 하나하나 입력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자. 에스페란사는 소리 내 웃지 않았다. 웃음소리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
잭이었다. 킥킥대던 소년은 시선이 모이자 소년은 사탕이라도 훔쳐 먹은 아이처럼 눈을 피했다. 에스페란사는 선생과 눈이 마주치자 후드 아래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선명한 장밋빛 입술이 호선을 그리는 모습을 본 선생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선생은 음험한 분위기를 풍겨 에스페란사를 위협했고, 에스페란사는 의도적으로 그것을 흐트러뜨렸다. 한 방씩 주고받았으니 공평하다.
‘고객에 대한 예의는 영 못 배워 먹은 인간이네.’
“값을 치러 주시기 바랍니다.”
“얼마랬죠?”
“5만 테롯입니다.”
에스페란사는 가방에 넣어둔 정확히 5만 테롯어치의 현금을 꺼내 주었다. 잭이 또다시 군침을 흘렸지만, 저번과 마찬가지로 손도 대지 못했다. 물론 사실은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에스페란사의 마법 가방에도 마찬가지였다.
“사냥꾼은 못 찾았나요?”
“찾는 중입니다.”
“흠.”
선생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러나 촛불이 일렁이자 그의 옆얼굴은 일그러진 것처럼 보였다.
“후보자를 추리는 작업 중입니다. 아무쪼록, 빠른 시일 내에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그건 그렇게 하도록 하고. 추가적인 의뢰를 하나 할게요. 이건 최대한 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