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32
32화
“이런 것 처음 보세요?”
코델리아가 오히려 되물었다.
“에이번데일 저택엔 되게 많을 줄 알았는데. 오토마톤이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하고, 정원도 돌볼 줄 알았어요. 우리끼리 하는 말이지만, 로드 에이번데일 본인이 오토마톤인 건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다니까요.”
“본인은 모르겠고, 집안일은 다 사람들이 해요.”
“그래요? 우리 집도 간단한 건 오토마톤이 하는데. 편지 분류 같은 거요. 서재까지 편지를 가져다주는 것도 그렇고. 편하거든요. 아, 저기 봐요! 저게 새로 나온 거래요.”
그랜드 피아노에 앉은 오토마톤이 유명한 민요를 연주한다. 신사처럼 차려입은 오토마톤의 등 뒤에 커다란 태엽이 달려 있었는데, 누가 돌려주지 않아도 자동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연주가 끝나자 오토마톤은 삐걱삐걱 일어나서 삐걱삐걱 허리를 숙여 절했고, 진열대로 돌아가자 태엽이 멈췄다. 진열대에 붙은 계기판도 0을 가리키고 있었다.
“멋지네요! 연주는 별로였지만.”
오토마톤이 돌아가서 서 있는 진열대에는 가격표와 함께 설명이 붙어 있었는데, 연주 가능한 곳이 열 곡 정도 있었다. 그리고 가격표에 붙은 0의 개수는…….
“비싸다, 이런 걸 누가 살까요?”
“좋은 연주보다 연주하는 오토마톤이 보고 싶은 사람이 사겠죠.”
그리고 그런 사람이 아주 많았다. 에스페란사는 늘어선 예약 줄을 가리켰다. 다른 소비를 줄여서라도 새로운 오토마톤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저쪽은 주방에서 쓰는 기계들일 걸요. 험프리 저택에도 꽃 모양 얼음을 만드는 냉장고? 냉동고가 있어요.”
냉장고가 이때부터 상용화되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 밖에도 많았다. 온갖 가전은 물론, 마법 가방이나 마법 서류파일 등 편의용품, 타자기와 팩스, 만년필 등이 기능별로 분류되어 있었다.
의수나 의족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몸의 일부분만 있는 오토마톤은 퇴역 군인들을 위해 특별가에 판매되고 있었다. 이른바 ‘용사의 상징’이라는 마케팅이었다.
“이거 로드 에이번데일이 만드신 거예요.”
이 가게에서 그 사람 이름이 안 나올 리 없다고 생각하긴 했다.
어린아이들이 많은 곳에는 곤충이나 동물, 증기 마차를 정교하게 본떠 만든 태엽 인형들이 있었다. 흔한 봉제 인형조차 팔을 흔드는 것이 당연한 가게였다.
에스페란사는 대충 신상품이라고 스티커를 붙인 항목들을 살펴 두었다. 나중에 시더가 물으면 이런 게 있었다고 말은 해야 했다.
“에스페란사, 이거 어때요?”
코델리아가 유심히 보고 있는 것은 사진기였다. 황동으로 된 몸체에 렌즈가 길게 빠져 있고, 복잡한 다이얼이 달려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조작법이 꽤 복잡할 것 같았다.
“새로 나온 거래요. 무려 색깔까지 그대로 찍어 주는 사진기래요!”
안 그래도 옆에 광고판이 붙어 있었다.
그간 만들어 오던 사진기를 죄다 죽은 사진 찍는 폐품으로 매도해 버리는 솜씨가 대단했다.
“그거 아세요? 이걸 만든 사람은 러스틴 박사란 발명가인데요, 본인이 클라이번 박사의 라이벌이라 하고 다닌대요. 로드 에이번데일한테 들으신 거 없으세요?”
“……라이벌이요?”
시더 클라이번한테 그런 게 있다고? 그 천상천하 유아독존에게?
“금시초문인데요.”
“아,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사실, 고작 색깔 있는 사진기 갖고 로드 에이번데일에 비할 순 없는 거죠. 로드 에이번데일은 최초로 오토마톤을 만든 사람인데요.”
“아, 그래요?”
“어머. 처음 들어요? 파오룬에 있었으니 모를 수도 있지만, 로드 에이번데일이 말씀 안 해 주세요?”
“우리가 그렇게 자기 얘기를 자세히 할 사이는 아니라…….”
“농담도 참. 어, 저거 봐요!”
방금 전까지는 사진기를 살 기세더니, 또 금방 관심이 옮겨 갔다. 에스페란사가 어리둥절하는 사이 코델리아는 축음기에 넣을 음반 몇 개를 샀다. 그리고 날아다니는 배 모양 장식품도.
‘오토마톤 얘기는 더 안 할 건가?’
에스페란사는 코델리아가 관심을 잃은 사진기를 샀다. 에이번데일 이름을 대니 점원들이 반색하며 댁까지 보내드리겠다고 했다. 사진기에 별 관심은 없었지만, 이런 데 나왔으니 하나쯤 사 가면 좋을 것 같았다.
“레이디 코델리아 아니십니까?”
계산을 하고 나올 때쯤 막 들어왔는지 두리번거리던 신사 하나가 반색하고 다가왔다. 코델리아는 불편한 기색으로 눈을 살짝 돌렸다. 못 보고 못 들은 것처럼.
“아는 사람이에요?”
코델리아가 얼굴을 가리고 질색했다.
“아, 너무 싫어요.”
“그럼 저쪽으로 가요.”
에스페란사가 코델리아의 팔짱을 끼고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코델리아가 눈을 반짝이며 에스페란사를 올려다보았다.
무릎을 살짝 굽혀서 키를 낮추자 그들의 모습은 곧 인파에 가려졌다. 애초에 이 거리에서 알아본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얼마나 집요하면.
코델리아는 마치 허공에 뜬 것 같은 기분으로 에스페란사를 따라갔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거추장스러운 드레스를 입고 사람 사이를 뚫고 나가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에스페란사는 마치 사람이 없는 것처럼 길을 뚫고 갔고, 그 뒤를 따르기만 하면 됐다. 남의 뒤를 따르는 것이 이렇게나 자연스러운 적이 있던가?
‘신기해……’
“에스페란사, 저쪽으로. 저쪽에 카페가 있어요.”
에스페란사는 코델리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모퉁이를 돌았다. 신사는 코델리아의 이름을 부르며 찾다가, 곧 포기하고 사라졌다.
“원래도 들어오려고 했던 카페이긴 한데, 어쩌다 보니 더 일찍 들어와 버렸네요. 마이튼 홀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예요.”
“그럴 만하네요. 밖이 한눈에 보여요.”
3층의 창가 자리에 앉자 바닥에 가득 깔린 투명한 타일, 층층이 자리한 테라스와 마이튼 홀 내부에서 운행하는 빨간 트램이 보였다. 커다란 간판 대신 파는 물건과 가게의 로고를 그린 녹색 깃발을 내건 것이 마이튼 홀 내부 가게들의 특징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장관이었다.
그야말로 오스던, 나인 호더의 부와 기술력을 집약해 놓은 결정체였다.
“여기서 제일 놀라운 건 뭔지 아세요?”
에스페란사가 고개를 돌리자, 키가 늘씬하게 큰 웨이터가 고개를 숙였다. 코델리아가 자기 장난감을 자랑하는 아이처럼 팔을 벌렸다.
“점원이 전부 오토마톤이에요.”
그야말로 왕실에서나 할 수 있을 법한 사치였다.
‘아니, 아니지.’
보수의 끝판왕인 왕실에서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 에이번데일 저택보다도 더 모든 일에 빡빡하게 실제 사람을 갈아 넣는 것이 왕실의 법도. 사람을 안 써도 될 일에까지 사람을 쓰는 방식으로 재력과 권력을 과시한다.
쓸데없는 일에도 오토마톤을 쓰는 쪽과 비교해 어느 쪽이 더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둘 다 공평하게 재수 없었다.
“뭐 드실래요?”
“추천하는 거 아무거나요. 이거 어떻게 쓰는 거예요?”
오토마톤은 고개를 숙였다 든 이후 미동도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드리운 그림자가 좀 부담스러웠다.
“별거 아니에요. 음료 추천 같은 건 안 해 주고, 음…….”
코델리아는 황동을 두른 메뉴판의 다이얼을 돌렸다. 홍차 종류 위주로 스무 가지 가량의 음료와, 이름이 거창한 디저트류가 빼곡했다. 이름에 붙은 다이얼을 돌려 개수를 표시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식으로 하고, 메뉴판을 돌려주는 거죠. 그럼 갖다 줄 거예요.”
“그럼 저 웨이터는 그냥 메뉴판 가져다주는 용도예요? 쓸모없네요.”
코델리아는 키득거렸다.
“그게 바로 사치의 묘미죠. 쓸데없는 걸 쓸데없이 비싼 값으로 쓰는 것.”
말에서 냉소가 느껴졌다.
“그걸 잘 하는 사람이 훌륭한 상류층인 거고요. 그러니까 이런 가게도 잘 되는 거죠. 물론, 전 이 가게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한 번쯤 와 볼 만하죠. 특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에 오토마톤을 둘 생각도 못 하지만, 여기선 음료값만 내면 볼 수 있으니까요.”
그 음료값이 일반 사람들의 하루 치 식사값 정도는 된다는 걸 제외하면 말이다. 에스페란사는 망설임 없이 에이번데일의 이름으로 값을 달아 놓았다. 에스페란사가 가진 지폐의 양은 한정되어 있으니 이런 데 낭비할 수는 없었다.
음료가 나오자 대화가 끊어졌다. 고요한 웨이터가 음료를 세팅해 주고 인사한 뒤 사라졌다.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지만 이 값을 주고 먹을 이유는 없는 음료를 삼킨 에스페란사가 물었다.
“마벨우드에 초대하겠다고 하셨죠? 사교계 시즌인데 괜찮으시겠어요?”
설마하니 시즌이 다 끝난 후에 초대하겠다는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머지않은 시일 내에’라고 적혀 있었으니까. 그리고 코델리아는 꽤 성격이 급하다. 귀족답게 느긋이 약속을 잡을 법도 한데 바로 ‘내일 만나요!’ 하고 보낸 걸 보면 불 보듯 뻔했다.
“네, 할머니께서 제가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이번 시즌은 쉬어도 좋다고 하셨어요.”
“으음.”
거짓말이군.
한 시즌을 늦추면 다음 시즌에선 별 소득 없이 한 살을 더 먹어야 할 텐데, 그렇게 둘 리가 없었다. 게다가 갑자기 시즌 중간에 영지로 돌아가 버리면 구설수에 오르기 좋았다.
“그래서 가는 길에 같이 가자는 말이죠?”
“네. 로드 에이번데일도 같이 오실 거죠?”
반사적으로 ‘그 사람은 왜요?’ 하고 대답하려던 에스페란사가 헛기침을 했다. 그때 분명 그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마도요? 물어보긴 해야겠지만요. 의회 일도 있으시고 하니.”
“의회 일이라니, 그분이 의회 일을 안 하시는 건 나인 호더 사람 중 모르는 사람이 없는걸요.”
집주인의 무책임함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인가 보다. 새삼 놀라울 것도 없었다. 괴짜가 집 안에서만 괴짜면 괴짜가 아니지.
“뭐어…….”
“그거 아세요? 로드 리페일리의 둘째 딸인 레이디 클라우디아 리페일리가 로드 에이번데일을 좋아하는 건 우리 나이 또래에선 꽤 유명한 이야기거든요.”
우리 나이 또래라니. 그 불길한 어감은 또 뭐람.
“하지만 로드 에이번데일은 코델리아 나이 또래가 아니잖아요?”
“열 살 차이도 안 나고, 무엇보다 영지를 가진 백작인데 그게 무슨 상관이겠어요?”
“아, 단점이 상쇄가 된다?”
코델리아는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듯 에스페란사를 빤히 보다가, 이내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아무튼, 레이디 클라우디아가 에스페란사, 당신 험담을 좀 했었어요.”
“피후견인이라서요?”
“누가 봐도 단순한 피후견인 같지는 않았으니까요. 게다가 피후견인 제도라는 게…… 그리고 당신의 나이가…….”
말을 하다 말고 흐린 코델리아가 빙그레 웃었다. ‘다 알죠?’ 하는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