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33
33화
“아무튼 리페일리 백작님이 허락해 주실 리도 없으니 어차피 그른 일 아니겠어요? 혹시나 심술을 부리거든 왜 그러는지는 알아두세요.”
말이 끝날 때를 기다려 다가온 웨이터 오토마톤이 다가와 케이크 접시를 내려놓았다. 하는 일이라곤 이것뿐이니 이거라도 잘 해야 하긴 하겠지만 오토마톤은 세팅을 정말 잘했다. 에스페란사는 각이 깔끔하게 선 세팅을 보고 감탄했다.
이미 그것이 익숙한지 눈길도 주지 않고 장식이 화려한 케이크에 포크를 찔러 넣으며, 코델리아는 다시 마벨우드 얘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혹시 누가 묻더라도 마벨우드에 간다는 말은 안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건 어렵지 않지만, 왜요?”
오늘 내내 활기찼던 코델리아의 어깨가 내려앉았다. 풀죽은 채 케이크를 푹푹 찔러대며 말했다.
“솔직한 말로, 지금 마벨우드에 굳이 오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을걸요.”
마벨우드에서 일어난 사건의 경과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법관인 켄드릭조차 개괄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고, 던바틴과의 파혼으로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것 정도만 알려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갈 이유는 없는 것이다.
어쩌면 뇌리에 남은 일말의 불안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비행선을 띄워 세계를 일주일 만에 왕복할 수 있는 시대에도 미신은 사람을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로드 에이번데일과 에스페란사가 다녀가면 그런 소문도 잦아들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어요. 어느 쪽으로든. 그러니 할머니도 허락하신 거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에스페란사는 안전할 거잖아요?”
주먹질하는 시늉을 하던 코델리아가 키득거렸다. 난도질해 놓은 케이크를 옆으로 슥 밀어 놓으면서. 에스페란사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 날은, 적어도 그 날은 코델리아도 의문을 가질 생각을 못 했을 것이다. 큰일이 있었으니 놀라기도 했을 테고, 피곤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다음 날, 또 그다음 날에는, 의문을 갖지 않았을까?
‘숙녀’여야 할 에스페란사 헌터가 어떻게 그런 무력을 가졌는지. 왜 총기를, 그것도 마력탄을 끼운 총기를 앞에 두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지.
“어머, 그거야 당연하죠. 에스페란사, 파오룬에서 왔잖아요?”
불길한데.
“파오룬 사람들은 다 무예의 고수들이라면서요? 에스페란사도 새벽부터 일어나서 명상하나요?”
아하하. 에스페란사가 어설프게 웃었다. 이걸, 선입견이 나를 살렸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그 사람들이 오스던 사람한테도 그런 걸 가르쳐 주나요? 은둔하는 무예의 달인 같은 사람한테 배운 것 아니에요?”
“……승마 모임 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주말 체육 정도? 아니면 조기축구회? 코델리아가 진짜 파오룬 사람을 만나기라도 하는 날엔 이 거짓말을 열 배로 돌려받을 것 같긴 했다.
“굉장히 흔한가 보네요. 멋지다. 저도 여행을 가 보고 싶은데…… 결혼하고나 가라잖아요. 가더라도 식민지까지는 꿈도 꾸지 말라고. 에스페란사, 식민지라고 그렇게 위험하진 않죠?”
“네에, 뭐. 거기도 사람 사는 데고.”
저번에 했던 변명을 대충 비슷하게 주워섬기며 대답했다. 공기처럼 스며들어 있는 제국주의를 피할 수가 없다.
“마벨우드로 내려가기 전에, 한번 저희 티 파티에 오지 않으실래요? 저번에 봤던 루신다, 실비아, 글로리아 같은 애들이 올 거예요. 몇 명 더 추가되긴 하지만 전부 미혼 숙녀고요. 카드 게임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파오룬 얘기도 해 주시면 좋고요.”
파오룬 얘기는 비슷하게라도 꾸며 낼 재주가 없는 에스페란사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사했다.
“로드 에이번데일의 연구를 돕고 있어서요. 시간을 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마벨우드로 가려면 지금 하는 연구를 마무리 지어야 하니까, 당분간은 저도 바빠질 거예요.”
“아, 그렇군요. 그 생각을 못 했어요.”
다행히 코델리아는 금방 납득했다. 누구처럼 끈질기게 캐묻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래서 언제 내려갈 거라고 했죠?”
“그 얘길 안 했던가요?”
코델리아가 방긋 웃으며 긴 금발을 쓸어내렸다.
“일주일 후요.”
정말, 코델리아는 성격이 급하다. 아주.
* * *
“일주일? 무리예요. 아무리 당겨도 2주는 여유가 필요해요. 휴가도 내야 하고, 준비도 필요하고.”
“역시 그렇겠죠? 그럼 따로 가면 되죠.”
시더가 눈을 깜박였다. 기계 안쪽에 끼우려던 톱니바퀴가 빗나가 깡, 소리를 냈다.
“당신이랑 나랑?”
“무슨 소리예요? 당연히 우리랑 코델리아지.”
“그거라면 좋은 생각이에요. 레이디 코델리아까지 붙어 있으면 좁고, 불편하고, 재미도 없고.”
“코델리아한테 왜 그렇게 박해요? 내 친군데.”
열여덟 먹은 어린 숙녀에게 유감은 없다. 유감이 있으려 해도 접점이 있어야 유감이 있을 텐데, 그들은 접점도 없었다. 있어도 관심 없었겠지만.
“그냥 사실을 얘기한 것뿐이에요.”
“펄즈베리 자작에 비해선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나도 동의해요. 그리고 그 사람은 내 친구가 아니에요.”
“동문이라면서요? 나름대로 친한 거 아니에요?”
시더는 톱니바퀴 주변의 먼지를 솔로 쓸어 준 다음 기계에서 빠져나와 말했다.
“당신 생각엔 내가 동문이랑 피크닉이나 하며 놀았을 거 같아요?”
“그건 좀, 징그러운데…….”
“정말 변함없이 무례하네요.”
노골적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본 시더가 혀를 찼다. 에스페란사는 곧 표정을 펴고 키득거렸다.
“근데 어디 동문이에요? 대학?”
“아뇨, 칼리지.”
“아, 당신도 그런 데 다녔구나. 반바지 입고 남자애들끼리 기숙사에 모여 살고, 연극하고 시나 줄줄 외우고…….”
“굉장히 편협한 시선인데.”
아주 틀리진 않았다. 반바지는 안 입었지만.
“너무 안 맞아서 월반했어요. 그래도 동문으로 쳐주긴 하더군요.”
“아, 네, 그러시구나.”
학교가 안 맞으면 월반을 하시는구나.
“아무튼 레이디 코델리아가 당신 친구든 아니든, 사람이 더 끼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줄어들잖아요.”
“그렇긴 하네요.”
에스페란사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꼭 중요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지금처럼 잡담으로도 충분히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에스페란사, 무슨 생각 하는지 알겠는데, 여기서 마벨우드까지 기차로 다섯 시간이에요.”
그런 얘긴 아무도 안 해 줬잖아!
얼굴 앞으로 불쑥 다가온 만년필이 에스페란사의 턱을 부드럽게 들어 닫았다.
“친구랑 이런 얘긴 안 했나 보죠?”
시더가 비웃었다. 에스페란사가 들고 있던 쿠션을 던졌다. 쿠션을 붙들어 잡은 시더가 픽 웃었다. 한바탕 2차전이 시작하려던 찰나, 바깥 광장의 시계탑에서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시더는 언제 에스페란사와 시시덕거렸냐는 듯 쿠션을 내려놓았다.
“자, 이제 나가 봐요.”
등을 떠밀려 나오면서, 에스페란사는 투덜거렸다.
“대체 뭘 하길래…….”
무슨 비밀 연구를 하길래? 에스페란사는 연구실 안에 시체가 들어 있어도 놀라지 않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 * *
시더 루스 클라이번. 정말로 2주 내내 힌트 하나 주지 않았다.
‘오늘 오후엔 마벨우드로 출발해야 하는데!’
에스페란사는 불퉁한 얼굴로 지도를 색칠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그사이 에스페란사가 소녀들에게 이끌려서 쇼핑도 다니고, 애니가 좋아할 법한 리본도 사 주고, 잭을 만나러 다니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능한 정보상에게선 사냥꾼을 찾지 못했다는 소식과 함께 마벨우드 영지에 대한 관광 레포트 수준의 정보를 받았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사냥꾼에 대한 정보는, 말씀해 주신 대로 마법 용품점 사장과 거래하는 사냥꾼을 중심으로 찾아보았지만 그자도 기억나는 게 없다고 합니다. 진짜 친척이 아닌 것만은 확실합니다만.”
기억나는 게 없다니. 거짓말이거나 상황을 면피하기 위한 수작으로는 너무 얄팍하다. 정말로 기억나는 게 없다고 한다면, 그 사냥꾼이란 자는 에스페란사의 짐작보다도 더 위험한 인물일 가능성이 컸다. 아마 사냥꾼조차 아니겠지.
“이 부분에 대해선 저희의 과실이 큽니다. 이 부분에 대한 돈은 받지 않겠습니다. 선금도 돌려드리겠습니다.”
마벨우드에 대한 정보의 잔금으로 공제하고 마벨우드의 정보는 받아 가지고 나왔다. 던바틴과의 혼사가 어떻게 진행됐고 어떻게 엎어졌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나와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게 통속 소설마냥 재미있어서 귀찮은 정리 작업은 좀 늦춰졌다.
“에스페란사 아가씨, 백작님께서 부르세요.”
“웬일이래, 이 시간에 깨어 있고?”
아침 여덟 시 정각. 경각심 있는 숙녀라면 절대 남자의 방에 혼자 들어가지는 않을 시간. 경각심도 없고 숙녀도 아닌 에스페란사는 거침없이 시더의 서재 문을 두드렸다. 처음에는 이래도 되나 수군거리던 고용인들도 곧 그러려니 했다. 저 둘은 저녁에도 곧잘 들락거리는데 하물며 오전에야.
“아가씨, 머리 다시 묶어드릴게요.”
처음부터 환호성을 내지른 고용인도 전보다는 익숙해졌다. 에스페란사의 머리를 성기게 땋아 옆으로 내린 애니가 샐쭉 웃으며 종종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왜 불렀어요?”
“보여 줄 게 있어서요.”
시더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에스페란사는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지금까지 숨기고 있었던 그걸 드디어 보여 주려는 거구나.
“뭐예요? 뭔데요?”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눈앞에 거대한 마도구가 보였다.
금빛 장식이 박힌 긴 총이었다.
“당신이 만들었어요?”
총신을 쓰다듬으며 에스페란사가 황망하게 물었다.
“외형까지 만든 건 아니고, 내부 설계는 했죠.”
“세상에.”
외형이 정말 예쁘다는 칭찬을 하려고 했는데. 에스페란사는 입을 잠깐 다물었다. 내부 설계는 봤어야 칭찬을 하지. 우물거리다가, 덩어리를 토해 내듯 물었다.
“나 주는 거예요?”
“당연하죠. 당신 말고 누가 쓰겠어요. 내가 만든 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