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34
34화
에스페란사가 잔웃음을 뱉었다. 잘난 척을 하는 건지 칭찬을 하는 건지.
“써 봐요.”
“여기선 어렵겠고. 사격장으로 내려가요.”
“……당연하죠. 이제부터 그 물건은 내 연구실에 출입 금지예요.”
“자기가 만들어 놓고.”
곧장 사격장으로 내려가 청소하던 하인들을 물리고 멀리 선 과녁을 마주 보았다. 에스페란사는 총신을 어깨에 둘러메고 총을 장전했다.
“응? 으음. 아, 이렇게 하는 건가?”
출력을 최소치로 줄이고 마력을 장전했다. 과연 효율이 남다르다.
눈앞에 상태 창이 떴다. 에스페란사는 장비의 어마어마한 수치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공격, 민첩, 공격 속도, 마력 효율, 마력 회복 속도, 명중, 치명률까지 거의 최고치를 찍었다.
그중 최고는 마력 효율. 보통 무기들은 10을 넣으면 1 정도, 에스페란사가 가진 총은 2 정도 나오는데 이건 10을 넣으면 3만큼 나오는 보물이다.
걸려 있는 버프는 출혈. 상대에게 입힌 대미지에서 최대 100%만큼 지속 대미지를 입힌다니, 거의 거저 먹으란 소리 아닌가.
에스페란사가 가지고 있던 총도 상당히 효율이 좋은 물건이었고, 상급 몬스터 부산물로 떡칠을 한 희귀 아이템이었는데, 이건 그 수준을 넘어섰다. 몬스터 부산물도 없이 이 정도라니.
잠깐만. 몬스터 부산물이 없으면, 그럼 여기에 대체 뭘 썼지?
“설마 여기다 내 피 썼어요?”
“그럼 그걸 갖다 뭐에 썼겠어요.”
두 걸음 뒤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시더가 대답했다. 전혀 몰랐다. 투덜거리고 발도 엄청 아프게 밟았는데. 물론 말해 주지 않은 쪽 책임이긴 하지만.
“……이거 때문에 뽑아 달라고 한 거였구나.”
“안 쏴요?”
슬쩍 뒤를 돌아보자, 목이 붉어진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아무 소용 없었다. 귀도 붉었으니까.
기분이 상쾌해졌다. 에스페란사는 웃으며 총을 쐈다. 순식간에 세 발이 나갔다.
“와, 이거. 어마어마한데.”
감탄이 절로 나왔다. 효율성이며, 공격의 날카로움과 정확도 하며. 게다가 어마어마하게 가벼웠다.
“부족한 부분은 없어요?”
“일단 하나만 물어볼게요.”
“말해요.”
“혹시 당신 연구실에 외계인 있어요?”
이건 또 무슨 소리람. 이 참신한 헛소리를 들어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에스페란사가 이어 말했다.
“외계인 고문해서 나온 기술 아니에요?”
“칭찬이에요?”
“아, 잘 모르겠어요. 고문은 좀.”
눈이 마주치자 두 사람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건 재미 없었어요.”
“웃었으면서.”
“어이없어서 웃은 거예요. 그래서, 불편한 거 없어요?”
잠깐 멈칫했다. 에스페란사가 은근히 물었다.
“진심으로? 자세하게?”
“진심으로. 자세하게. 당신이 쓸 거니까 맞게 조절해야죠.”
후회할 텐데. 하지만 본인이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럼, 일단 너무 가벼워요. 무게가 이 두 배는 돼야 무게 중심을 잡기가 편해요. 그리고 총신이 좀 짧아요. 제가 쓰려면 반 뼘 정도는 더 길어야 할 것 같고요. 화력도 다이얼 말고 레버로 조절할 수 있으면 좋겠고, 초점이 오른쪽으로 약간 쏠린 거 같은데 그것도 개선해 주면 좋겠고요. 마력 분출 방식은 크게 문제없는데, 안쪽에서 톱니 돌아가는 소리가 좀 커요. 그거 어떻게 하면 없어지던데 기억이 안 나네. 지금은 괜찮은데 마력이 많이 들어가면 소리가 너무 커질 것 같아서요. 아, 또 마력탄 형식으로 된 게 좀 걸리는데, 전 보통 지속 공격을 많이 써서. 그게 힘들면 한 번에 100발 정도로 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고요. 50발은 너무 금방 동나서. 음, 음, 그리고…….”
시더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벽에 기댔다. 무안해진 에스페란사가 뺨을 긁적였다.
“그러게, 진심이냐고 물었잖아요. 제가 무기에 좀 까다로워서. 지금으로도 충분히 좋아요.”
그러나 상대는 ‘충분히’라는 말을 들으면 의욕이 타오르는 타입이었다. 열기가 피부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전에 그 총을 만들어 준 자는 그걸 다 맞춰 줬어요?”
“설리번 박사요? 다 맞추진 못했지만 그럭저럭…… 애초에 그 사람은 제 무기를 전담해서 만들던 사람이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이것도 단일 제품으로는 훌륭한데 제 취향이나 버릇 같은 게 반영돼 있지 않은 거라.”
“그러니까 기성품 같단 말이죠.”
자존심이 잔뜩 상한 듯한 남자가 총을 빼앗아 들었다. 손이 허전해지자 에스페란사가 변명하듯 말했다.
“저, 그치만 마음에 들었어요.”
“기다려요. 말한 것 다 고칠 테니까. 다신 그런 말 안 나오게 해 주죠.”
“기분 나빴어요?”
시더는 눈을 흘기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어느덧 입가에 다시 기계적인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렇진 않고, 자존심은 상했어요. 딴 사람보다 못하단 소리, 몇 년 만에 듣는 건지 모르겠네요.”
“그러니까 그게 못하단 소리는 아니라니까요.”
역시 말을 하지 말 걸 그랬나. 솔직함은 가끔 관계를 망치기도 한다. 특히 자기 능력에 자부심이 강한 시더 클라이번 같은 인물을 대할 때 지적은 별로 좋은 방식이 아니다.
괜한 말을 했다. 어차피 어떤 무기든 길이 들고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부터 제 몸처럼 딱 맞는 무기는 없다. 설리번 박사가 만든 것도 불편한 부분들은 있었고, 그것에 몸을 맞추어 가며 자기 것으로 만들었었다. 이제 와서 몸에 좀 안 맞는다고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것도 우스웠다.
기껏 선물해 줬는데 이런 말을 들었으니 기분이 나쁠 만도 했다. 시무룩해진 에스페란사가 빈손을 움켜쥐었다.
“무슨 생각하는지 뻔해서 말하는데,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것 아니에요.”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떻게 알고.’
에스페란사는 뚱하니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시더는 대부분의 경우 제대로 알고 있었다. 그들이 만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정작 에스페란사는 시더의 생각을 전혀 모르겠던데.
“지도도 지적도 없이 혼자 방향을 더듬어 찾아가는 건 나 같은 사람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에요.”
자기 자랑을 빼먹지 않으며 시더가 말했다.
“기분 상하지 않았어요. 좋은 기술을 쓰는 데 집중해서 이게 당신을 위한 선물이라는 걸 잊고 있었던 것 같네요.”
“저기, 선물 고마워요.”
“인사는 진짜 받을 때 해요. 당분간은 압수예요. 구식 총으로 잘 견뎌 봐요.”
“구식…….”
에스페란사는 설리번 박사의 장총을 떠올리며 애매하게 웃었다. 시더는 에스페란사가 하듯 총을 어깨에 짊어지고 서재로 향했다.
힘줄이 선 팔뚝을 보고 자기들끼리 꺅꺅거리던 어린 하녀들이 얼굴을 확인하고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보기 좋아도 독버섯은 먹는 게 아니란 듯이.
에스페란사가 독버섯의 뒤를 엇비슷한 보폭으로 따라가며 물었다.
“지금까지 뭐가 불편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마법 용품점에다 물어보지. 손님들이 뭐라고 하는지 가르쳐 줄 거 아니에요.”
시더는 고개만 살짝 젖혀 뒤따라오는 에스페란사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 사람들 의견엔 관심 없어요. 별로 가치 있는 의견도 아니고.”
“……뭐가 문제예요?”
인성? 인성인가?
“일단 대체로 멍청하고.”
“아, 네.”
“내 기술은 최첨단이잖아요?”
“아, 네.”
시더가 이마를 찡그렸다.
“끝까지 좀 들어요. 그런 기술이 처음 나오면, 보통은 새로운 게 생겨서 달라진 점만 생각해요. 그런 호들갑은 별로 도움이 안 되죠. 나쁠 건 없지만, 효용은 없어요.”
오만하긴 하지만 적어도 제대로 된 이유였다.
“새로운 기술의 문제점은 적어도 한 계절은 지나야 알 수 있죠.”
쓴 미소를 지으며 서재 문을 연 시더가 총을 받침대에 내려놓았다. 에스페란사가 눈을 깜박였다.
“그래서요? 한 계절이 지나고 물어보면 되잖아요.”
“그 사람들이 알 때쯤이면 나도 이미 알고 있어요.”
“아, 그러시구나…….”
즉각적인 피드백은 없고, 피드백이 들어올 때쯤이면 본인이 먼저 깨우치기 때문에 이러나저러나 쓸모가 없다, 그런 말이었다.
에스페란사라고 그들과 특별히 다른 인종은 아니었다. ……마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인종이 정말 다를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부분에서 탁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13년 후에서 온 에스페란사는 이미 발전된 기술을 체험해 보았고, 능숙하고 무기에 까다로운 전사였다.
“뭐, 자기들이 불편하면 어쩌겠어요? 감수하고 써야지. 아무한테나 다 맞춰 줄 필요 없잖아요.”
혹시나 오해할까 걱정이라도 됐는지 꼭 못된 말을 한마디 덧붙인다.
더 할 말도 없었다. 에스페란사는 시더가 총을 분해하는 모습을 잠깐 지켜보다가, 꺼내 놓은 다른 기계를 가리켰다. 크지 않은 기계에 렌즈와 깔때기 모양의 마력 흡수기가 달려 있었다.
“저건 뭔데 꺼내 놓은 거예요?”
“마벨우드에 가져갈 던전 탐지기예요.”
“던전 탐지기……?”
던전을 본 적도 없는 양반이 무슨 수로 던전을 탐지한다는 말씀인지.
“당장 던전을 탐지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그러면요?”
“마벨우드의 사건이 정말 던전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면 마력 파동이나 흐름에서 차이가 있겠죠. 미세한 파동의 차이를 집어내서 인식시키고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면 알람을 울리는 장치예요. 크기가 좀 크긴 하지만.”
알고 보니 옆에 붙어 있던 해석 기관까지가 하나의 기계였다. 그 해석 기관은 시더의 몸집보다 컸고, 정신없이 차르륵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줄줄 뽑혀 나오는 종이에는 알 수 없는 기호와 그래프가 가득했다.
시더는 ‘나인 호더의 마력을 인식시키는 중이라’ 하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레버를 당겨 기계의 작동을 멈추게 했다.
“이걸 무슨 수로 싣고 가요? 기차 타고 갈 거라면서요!”
“그래서 당신의 그…… 공간을 좀 빌리려고 했죠.”
인벤토리를 빌려서 옮기면…… 저걸 들어 집어넣는 에스페란사만 약간 고생하면 된다. 시끄러운 소리도 안 날 테고, 성능을 상태 창으로 볼 수도 있을 테니까. 무엇보다 이게 다 에스페란사의 필요에 시더가 어울려 주는 일인데 그 정도 수고를 거절할 리가 없었다.
인벤토리에 던전 탐지기가 들어가자, 시더는 반색하며 연구실의 여러 용품들을 에스페란사의 손에 쥐여 주었다. 순식간에 연구실은 이사라도 가는 듯 듬성듬성 비었다. 에스페란사의 인벤토리는 포화 상태를 호소하고 있었다.
“인벤토리가…… 무한은 아니거든요!”
“넣을 수 있는 데까지 넣어요.”
파밍 셔틀을 안 해도 짐 가방은 될 수 있구나. 에스페란사는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짐 가방까지 가득 인벤토리 안에 집어넣었다.
인벤토리가 꽉 찼다. 캐시를 무식하게 때려 박아서 늘려 놓은 인벤토리가…… 대던전 공략 때도 끝까지 채운 적이 없는 인벤토리가…….
에스페란사는 망연히 인벤토리 창을 살피며 한숨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