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39
39화
도적들은 방향을 잘 알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울창한 나무들이 듬성듬성해지고, 허름하고 작은 마을이 보였다.
“여기서 아예 사는 것 같진 않아요. 마벨우드 걱정은 덜어도 되겠네요.”
말투를 보아하니 본인이 마벨우드 걱정을 한 것 같진 않다. 그럴 사람도 아니긴 하지. 에스페란사는 뺨을 손으로 굴리며 생각했다. 그렇게 티가 났나?
“사람 있어요?”
“보이진 않고 기척으로는 어디 보자, 한 다섯 명 정도? 많진 않아요.”
“그 정도라면야. 없는 셈 치고 흙이나 채취하죠. 에스페란사, 당신은 마력이 남아 있을 법한 물건이 없는지 저 집에 가서 확인해 줘요.”
“괜찮겠어요? 그래도 그 사람들 무장하고 있을 텐데.”
“무기는 나도 있어요.”
시더는 권총을 가볍게 들어 흔들며 말했다. 에스페란사는 영 미덥지 못하단 마음을 숨긴 채 집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잠금장치는 전부 부서져 있었다. 도적들이 쓰느라 그랬겠지. 내부는 최소한의 청소만 되어 있었고, 에스페란사는 집기들 중 원래 이 집에 있었을 법한 것을 몇 개 살폈다.
이렇게 봐서는 알 수가 없는데? 에스페란사는 이 집에 원래 있던 것이 분명한 그릇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마력 같은 건 표시되지 않았다. 평범한 그릇이다. 마력이 있을 리도 없겠지만. 시더가 쓰는 스티뮬러 같은 것으로 살펴보지 않으면 에스페란사의 수준에서는 전혀 파악할 수가 없다는 결론이 났다.
그렇다면 심심하게 혼자 돌아다닐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 시더가 도적들 손에 다치기라도 하면 말 두 마리와 사람 하나를 혼자 끌고 가야 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고…….
에스페란사가 문을 열려던 순간, 바깥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으악!”
문고리를 잡았던 손이 멈칫했다가 문을 열어젖혔다.
“죽였어요?”
“안 죽였어요.”
시더는 깔끔하게 기절한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정말 안 죽였군.
“무슨 수로 기절을 시켰어요?”
“날 얼마나 무시하는지 알겠는데, 나도 다 방법이 있어요. 그보다 여기 흙, 못 쓰겠어요.”
흙장난하던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얼굴로 손바닥에 흙을 잔뜩 묻힌 남자가 손을 털어내며 말했다.
“왜요?”
“오래돼서 마력 흔적이 거의 안 남아 있어요. 이 정도로는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 낼 수가 없어요. 혹시 몰라서 깊이 파 봤는데 어림도 없네요.”
시더는 미련을 버리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당신 쪽은 어때요?”
“전혀 모르겠던데. 볼래요?”
인벤토리에서 그릇을 꺼내 주자, 시더가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거기 넣으면 마력 흐름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 주의해요. 하지만 이것도…… 별로 도움은 안 되네요.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은데.”
“그럼 그냥 돌아가요?”
여기까지 와서?
시더는 잠깐 고민했다. 지금 저택으로 돌아가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마벨우드까지 온 수고가 아까웠다.
“조금 더 볼까요.”
그들은 흩어져서 마을을 샅샅이 뒤졌다. 에스페란사가 잔뜩 물건을 모아서 가지고 갔다. 상자에 있었던 물건, 묻혀 있던 물건들일수록 마력이 흩어지지 않아 효과가 좋다고 했다.
죽은 사람의 물건을 함부로 뒤지는 것이 꺼려져, 에스페란사는 개인적인 물건으로 보이는 것들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물론 시더는 그런 고려 따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참 집 안팎을 뒤지던 에스페란사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흔히 볼 수 없는 녹색 털. 잘못 본 건가 했다. 에스페란사가 조심히, 화분 밑에 깔린 털을 꺼냈다.
몇 가닥 되지 않는 털이다. 선명한 형광 녹색이 아니었다면 눈에 띄지도 않았을 텐데, 그래도 이걸 찾아냈다. 에스페란사는 시더가 있던 자리로 뛰어갔다.
“뭐야, 어디 갔어? 로드 에이번데일, 어딨어요?”
“……여기요.”
시더가 왠지 불퉁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러고 보니 자세도 좀 삐딱하고, 불만이 많아 보였다. 에스페란사는 당황해서 내밀었던 손을 가슴 쪽으로 끌어당겼다.
“뭐라도 찾았어요?”
“말투가 왜 그래요? 찾았어요. 이거 좀 봐요.”
반응이 심상치 않자, 시더는 감정을 거두고 주머니에서 흰 장갑을 꺼냈다. 에스페란사는 시더가 시키는 대로 인벤토리를 열어, 그가 원하는 장비들을 몇 개 꺼내 주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본 것 중엔 그나마 제일 가능성이 있어 보이네요. 이거 어디서 찾았어요?”
“저쪽 화단에서요. 넘어진 화분 밑에 깔려 있더라고요. 아마 몬스터의 털이겠죠.”
무슨 몬스터인지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털이 저렇게 쨍한 녹색인 게 뭐가 있더라. 꽤 많았던 것 같은데.
“그건 차차 도감을 뒤져 보도록 하고. 그런데 이게 끝이에요?”
몇 가닥의 녹색 털. 산들바람이라도 불면 휙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애처로운 존재감이었다.
“그래도 찾은 게 어디예요? 그런 걸 이 넓은 데서 더 찾으려다간 눈이 빠지겠어요.”
이거라도 찾은 게 운이 좋았다. 화분에 깔려 있지 않았다면 털 같은 게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전부 날아갔겠지.
“그럼 이제 이걸로 내가 눈 빠지게 뭐라도 있나 살펴볼 차례인가요?”
시더가 픽 웃으며 대꾸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유리병에 털을 잘 넣고 마개를 꽉 막는 손놀림이 조심스러웠다.
생각보다 시간이 꽤 지났다. 마을을 뒤지다 보니 산적 패거리는 마지막 하나까지 싹 기절시켜 놓았고, 저들도 정신이 있으면 당분간은 마벨우드 쪽은 거들떠도 보지 않겠지. 이만하면 코델리아에게도 보답이 될 것이다. 대뜸 이런 일에 관심이 있다며 조사해 보겠다는 데에도 선뜻 도움을 준 코델리아에 대한 마음의 빚이 조금 줄어든 것 같았다.
“이만 돌아가요. 돌아가면 저녁 시간이겠어요.”
시더가 하늘을 보며 대답했다. 느슨하게 묶은 머리칼이 흔들렸다.
“우리가 제때 돌아갈 수만 있다면 말이에요.”
그게 문제였다. 여기까지는 어찌어찌 찾아왔는데, 길을 모른다.
“아, 맞다.”
뒤늦게 맵을 떠올린 에스페란사가 혀를 찼다. 처음부터 알았어도 어차피 새까맣게 표시됐을 테니 도움은 안 됐겠지만. 맵을 띄우자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지나온 길쪽만 미색이었고, 나머지는 숲의 어둠처럼 시커멓게 칠해져 있었다.
[맵: 그린벨트 숲, 마벨우드]그린벨트……?
“여기 숲 이름이 그린벨트래요.”
웃음기 서린 말에, 시더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 발화의 의도가 전혀 짐작되지 않는다는 듯, 미간이 약간 좁아져 있었다.
“아, 그래요?”
“안 웃겨요?”
“왜 웃겨야 하는데요?”
아. 에스페란사는 천천히 두 눈을 깜박였다. 시더의 입장에선 그냥 상당히 직관적인 이름일 뿐이었다.
“그러게요…… 그게 왜 웃길까.”
시무룩해졌던 에스페란사가 고개를 흔들었다. 말을 채근해 앞서 나가며 말했다.
“이쪽 방향이에요. 지도 보고 갈 테니까, 아마 최단 거리는 아니겠지만 우리가 온 길을 얼추 비슷하게 되짚어 갈 수는 있을 거예요.”
“늦어도 상관없어요.”
시더는 그 갑작스러운 감정의 변화폭을 이해하지 못했다. 짐작하기로는, 에스페란사가 의도했던 농담의 요점이 그가 알아들을 수 없는, 13년 후의 인물들만 공유할 수 있는 어떤 것에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걸 무의식적으로 입 밖에 내버렸고, 그는 알아듣지 못했고.
누구의 탓이랄 것도 없었다. 그저 얕은 생채기 같은 불편함이 남았다.
돌아가는 길은 조용했다. 첫날에 바로 성과를 올렸으니 기쁠 만도 한데 각자 자기 나름의 생각으로 머리가 바빴다. 바람 방향이 바뀌면서 ‘로드 에이번데일……’ 하고 중얼거리는 시더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기껏 행운을 내려줬더니 제대로 기뻐하지도 않은 탓인가? 불운은 그들이 숲을 반도 빠져나가기 전에 찾아왔다. 어설프게 반절. 마을로 돌아가기도, 그렇다고 마저 숲을 빠져나가기도 어설픈 때에.
어깨 위로 굵은 물방울이 떨어졌다. 묵직하게 툭. 에스페란사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뭇가지에 가려진 하늘은 어느덧 짙은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솨아아아. 나뭇잎이 바람을 타는 소리처럼 빗줄기가 쏟아지는 소리였다.
* * *
삽시간에 옷이 쫄딱 젖었다. 지나가는 비일 줄 알았는데, 꼬박 30분. 그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비가 30분 내내 쏟아졌다.
“얼마나 남았어요?”
시더가 빗줄기 사이로 물었다. 그의 흰 얼굴은 비를 맞아 핏줄이 비칠 정도로 창백해 보였다. 젖은 머리칼이 뺨에 달라붙어 있었다. 셔츠도 거의 투명할 정도로 젖어 살갗이 비쳤다. 그런 상태로 어찌어찌 후드라도 뒤집어쓰고, 그나마 비가 좀 덜 떨어지는 나무 밑으로 피신한 상태였다. 에스페란사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맵을 살폈다.
“반 정도 남았으니까…… 그래도 한 시간은 더 가야 하지 않을까요?”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한 말들도 체력의 한계를 호소하고 있었고, 에스페란사나 시더나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몸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좀처럼 추위를 잘 타지 않는 에스페란사가 파랗게 질린 입술을 꽉 다물었다. 그런다고 추위가 가시지는 않았다.
“차라리 비를 피할 데가 좀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이런 새까만 숲에 갑자기 동굴이라도 나타나길 바라는 것이야말로 현실적이지 못한 생각이었다. 에스페란사는 여전히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쏟아붓는 빗줄기를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당신 그거 안엔 뭐 없어요?”
“인벤토리요? 뭐가 있으려나…….”
그래서 잠시 후 에스페란사가 찾아낸 것은.
돗자리 [22]
금속 파이프 [999]
밧줄 [999]
합판 [38]
철사 [157]
시더가 그 꼴을 보고 혀를 찼다. 비를 좀 피해 보자고 했더니 빗속에서 공사라도 벌이게 생겼다.
“우리 정말 이것 말곤 방법이 없겠어요?”
“저라고 막 저택을 들고 다니고 그렇진 않거든요.”
기껏 뒤져서 꺼내 줬더니. 투덜거리며 대꾸하자, 시더는 한숨을 내쉬었다. 입김이 번졌다. 이대로 가만히 있어 봤자 될 일도 없다는 생각에,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